로테르담의 정체성을 집약한 디자인 페어

오브젝트 로테르담 Object Rotterdam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로테르담만의 현대적 미학. 이 도시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디자인 페어, 오브젝트 로테르담이 지난 2월 로테르담 중앙 도서관에서 열렸다.

로테르담의 정체성을 집약한 디자인 페어

로테르담은 언제나 실험적인 디자인 도시였다. 항구 도시 특유의 개방성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의 역사는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와는 구별되는 로테르담만의 현대적인 디자인 미학을 형성해왔다. 이러한 로테르담의 정체성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행사 중 하나가 바로 오브젝트 로테르담(Object Rotterda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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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로테르담 캠페인 포스터

이동하는 디자인 플랫폼, 오브젝트 로테르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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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도시 풍경

2014년 시작된 오브젝트 로테르담은 매해 로테르담의 상징적인 건축 공간을 전시장으로 삼아 디자인과 도시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큐레이티드 디자인 페어다. 일반적인 상업 디자인 페어가 고정된 전시장 안에서 열리는 것과 달리, 오브젝트 로테르담은 특정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매년 공장, 오피스 빌딩, 문화 공간 등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을 무대로 삼아 ‘도시 속 팝업’ 형태로 펼쳐진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전시의 일부가 되며, 장소와 작품이 서로를 확장해 나간다.

페어는 가구, 조명, 텍스타일, 주얼리, 실험적 오브제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망라한다. 작품을 판매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디자이너·갤러리·브랜드·신진 창작자가 직접 참여해 관람객과 디자인의 태도와 사고 과정을 공유하는 플랫폼에 가깝다.

2026년, 중앙 도서관에서 열린 과도기의 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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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로테르담 2026의 장소인 로테르담 중앙 도서관

지난 2월 6일부터 8일간 열린 2026년 오브젝트 로테르담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로테르담 중앙 도서관(Rotterdam Central Library)에서 개최됐다. 얍 바케마 (Jaap Bakema)와 한스 보트 (Boot) (Van den Broek and Bakema)가 디자인해 1983년 개관한 도서관은 포스트모더니즘 양식과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관 이후 연간 230명이 방문하는 로테르담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다. 올해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2029년 재개관을 앞두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건축 사무소 중 하나인 파워하우스 컴퍼니(Powerhouse Company)가 아틀리에 오슬로(Atelier Oslo), 룬하헴(Lundhagem), 델바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DELVA Landscape Architecture)와 함께 이번 재설계를 총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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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로테르담 2026의 장소인 로테르담 중앙 도서관 © 김선영

오랫동안 도시의 지식과 기억을 저장해 온 도서관 공간에서의 마지막 프로젝트라는 점 때문에 이번 오브젝트 로테르담은 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종이책을 대신한 디자이너들의 사고와 실험,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는 도시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차분하게 예고한다.

또한 중앙 도서관이라는 공공 공간은 디자인을 전문가나 컬렉터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도시 시민 누구나 접근 가능한 문화 경험으로 확장시켰다.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와 직접 대화하며 동시대 디자인의 고민과 방향성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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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로테르담 전시관 내부 © 김선영

150여 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동시대의 스펙트럼

이번 에디션에는 150명 이상의 디자이너, 스튜디오, 갤러리가 참여해 가구, 조명, 텍스타일, 제품 디자인, 공예, 주얼리 등 폭넓은 분야를 선보였다. 막 졸업한 신진 디자이너부터 국제적으로 활동 중인 작가까지 다양한 창작자가 한자리에 모이며, 방문객은 동시대 디자인의 흐름과 실험적 접근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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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로테르담에 소개된 주요 작품 © Design Web

산업용 금속 그리드를 컬러풀한 벤치, 테이블, 수납 가구로 변형해 재료의 숨겨진 가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낸 Nina van Bart & Willem van Doorn의 Grid Collection, 질감을 강조한 파스텔 체어와 스트럭처 가구를 선보인 Plaisier Avantgarde & Wannes Royaards, 가늘고 긴 오크 목재를 반복적으로 쌓아 만든 의자, 벤치, 램프로 이루어진 Jim Bob Ruijgrok Eiken Latten Collection, 전통적 조명 개념을 넘어 자연광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형태와 반응을 보여 주는 JO Studio의 Shifting Grounds 등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 디자이너의 참여

이번 에디션에서는 한국 출신의 신진 디자이너의 작업도 눈에 띄었다. 지난해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한 김은솔 디자이너로, 현재 세라믹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은솔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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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트호벤에서 활동 중인 세라믹 디자이너 김은솔
디자인플러스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은솔이고 현재 아인트호벤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라믹 디자이너입니다. 한국에서 도자를 전공했고, 이후 대학원에서는 무대미술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무대미술을 직접 경험하면서 제 작업 성향과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유학은 이전부터 고민해오던 선택지 중 하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나라였고, 실험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교육 환경이 인상적이었어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에 매력을 느껴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다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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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솔 디자이너의 대표 작품
이번 오브젝트 로테르담에 전시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해 주시면요?

이번에 준비한 작품은 Condensation이라는 주제의 시리즈입니다. 작업의 출발점은 네덜란드의 날씨였어요.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제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장면이 비 오는 날 창문에 맺히는 습기였거든요. 제 방에는 테라스와 연결된 큰 창문이 있는데, 비가 오면 습기가 가득 차서 매일 아침 그 물기를 닦아내야 했어요. 창틀에 맺힌 물방울을 닦는 일이 어느 순간 일주일 내내 반복되는 ‘수행’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동시에 꽤 성가신 일이기도 했고요.

매일 반복되는 이 사소한 행위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이 데일리 루틴을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작업이 시작됐죠. 그래서 습기 자체를 하나의 아름다운 현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습니다. 창문에 투명하게 맺히는 물방울의 밀도와 흐름, 빛을 머금은 표면의 질감을 작품으로 구현해 보고 싶었어요.

가장 큰 도전은 ‘습기 같은 유약’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시중에는 투명하게 맺히는 질감을 가진 유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의 1년 가까이 소재 리서치를 진행했어요. 다양한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습기가 응결되는 표면의 느낌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지 연구했습니다. 완전히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 물방울이 맺히는 듯한 투명성과 입체감을 어느 정도 구현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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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오브젝트 로테르담이 졸업전 이후 첫 페어인데, 생각한 것보다 전반적으로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특히 작품의 쉐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또 이번 시리즈에는 컬러 칩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컸습니다. 관객들이 “이 컬러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이 표면은 무엇으로 표현한 건가요?” 같은 질문을 많이 하셨어요. 텍스처와 유약 표현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 특히 컸던 것 같아요. 도자 작업에 익숙하거나 관련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많이 방문하셨기 때문에, 질문도 굉장히 구체적이고 전문적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앞으로는 다가오는 디자인 위크나 아트 페스티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입니다. 특정 분야를 가리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가장 가까운 일정으로는 런던에서 열리는 크래프트 & 디자인 행사에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후에는 메종&오브제(Maison & Objet)와 같은 국제 페어,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디자인 위크 참여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시를 단발성 이벤트로 끝내기보다는, 시리즈를 확장하면서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또한 틸버그에 위치한 한 빈티지 숍에도 작품이 판매 중인데, 전시 공간뿐 아니라 일상적인 상업 공간 안에서도 제 작업이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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