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에서 열린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
장인정신의 예술성과 지속가능성을 탐구하다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취리히 리히탈레 마그(Lichthalle Maag)에서 진행된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 장인들이 제품을 완성시키는 과정과 노하우를 그대로 지켜볼 수 있는 귀한 현장에서 에르메스가 전달하는 럭셔리와 장인 정신에 대한 메시지를 들어보았다.
1837년부터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그룹의 전통을 구축해 온 에르메스는 이 가치를 대중에 알리기 위한 일환으로 2019년부터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Hermès in the Making)’ 행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201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해 일 년에 두어 번씩 전 세계를 순회하며 열리고 있는 이 행사는 올해 5월 서울을 거쳐 11월 스위스 취리히로 이동했다.
11월 6일부터 15일까지 취리히 리히탈레 마그(Lichthalle Maag)에서 진행된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의 주요 장면과 그룹의 부사장 기욤 드 센(Guillaume de Seynes)이 참여한 흥미로운 토크 현장으로 초대한다.
10개 분야의 에르메스 메띠에(Metiers)를 대표하는 장인들의 전문 기술과 노하우를 실제로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에서는 공간 전체에 걸쳐 실시간 시연과 워크샵, 영상 관람, 토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실제 메종에서 근무하는 장인들이 이 기간만큼은 작업실을 벗어나 대중들 앞에서 똑같은 과정을 이어가는데 브랜드에 관심이 없더라도 공예와 수작업에 관심이 있는 대중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관람을 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메종에서 취급하는 제품군인 승마용품, 시계, 실크, 가죽제품, 모자, 도자기, 향수 등이 각자의 부스를 마련해 제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관객들은 시각적 관람을 넘어 직접 재료를 만지거나 장인의 도움으로 간단한 제품을 만들어보는 체험도 가능하다. 자유롭게 일대일로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도 있으니 1837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브랜드의 장인정신 노하우를 이토록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란 매우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11월 5일 저녁 오프닝을 치룬 다음날인 6일 오전 리히탈레 마그(Lichthalle Maag)에서는 에르메스 가문의 6대손이자 그룹의 부사장직을 맡고 있는 기욤 드 센과 와치 사업부 장인, 혁신 사업부 책임,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장인정신의 계승과 지속성에 대한 주제로 ‘토크’ 프로그램을 가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이자 공예가와 디자이너들이 가장 협업하고 싶어하는 브랜드가 전달하는 럭셔리와 장인정신에 대한 메시지를 기업의 6대손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여기서 나온 흥미로운 인용구들을 모았다.
Talk 1. 다음 세대로의 장인정신의 계승과 보존
Transmitting and preserving know-how for the younger generation
참석자
알렉시 지오가코풀로스 Alexis Georgacopoulos (ECAL 학장 / 모더레이터)
기욤 드 센 Guillaume de Seynes (에르메스 그룹 부사장)
이자벨 리비에르 Isavelle Riviere (와치 사업부 가죽 장인)
마테오 고네 Matteo Gonet (유리 공예 디자이너)
기욤 드 센 에르메스는 장인에 의해 창조된 회사다. 처음 파리에 생겼을 때부터 이미 최상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창조성과 치열함, 그리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지속성에 집중했다. 당시의 정신을 지금까지 지속하는 것이 브랜드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장인정신에 있다.
이자벨 리비에르 메종에서 근무하는 것은 나에겐 자부심이며 매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내가 만든 제품이 여러 세대를 거쳐 사용될 거로 생각하면 그런 완벽한 결과물을 위해 가죽이라는 물성을 이해하고 재료와 스스로와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필링(feeling), 제스쳐가 완벽해야 하고, 재료에 대해 늘 질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정이 필요하다. 35년간 동일한 열정으로 일해왔다.
기욤 드 센 평균적으로 에르메스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근속 연수는 긴 편이다. 이자벨의 경우 35년을 함께 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고객과 장인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들 수 있겠다. 에르메스에서 생산되는 마흔 가지 모델의 가방 중 커스텀메이드(A la carte) 제품의 경우 클라이언트가 직접 가죽의 종류, 색, 실을 결정하고 장인과 소통하며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런 양방 감정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작업 과정은 완성된 제품만큼 매우 아름답다.
이자벨 리비에르 보통은 훌륭한 장인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지속적인 연습만을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마티에,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려고 하는 것. 그것에 책임을 가지고 일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처음 와치 사업부에 가죽 장인들이 투입되었을 때 우리에게 1년간 자유롭게 작품을 제작해보라는 제안이 떨어졌다. 그건 일종의 챌린지였고, 이런 한계 없는 요구가 장인들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도록 하는 매개체가 됐다. 모자이크 방식으로 가죽을 조합하는 것은 처음에 너무 힘들었다. 일 년간 시도했는데도 쉽지 않아 처음에는 포기하자고 하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했다. 에르메스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준다. 그렇게 시계 내부에 가죽 모자이크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이곳에서 장인들의 기여와 결정권은 크다. 장인들의 교육은 메종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마테오 고네 유리 공예는 20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술이다. 이 오랜 전통을 습득하는 것뿐 아니라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영감을 젊은 세대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 15살 아들이 이제 막 유리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들 세대들이 창조하는 일과 그 열정이 삶과 하나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길 바란다.
이자벨 리비에르 메종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오랜 시간 동안 일해온 장인들이고 우리는 이곳에서 쌓은 기술을 계승해야 할 책임이 있다. 장인정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세대가 가져가야 할 스타일은 변화해야 한다. 이 말인즉슨 작업에 필요한 동작(제스처)은 새롭게 대체될 수 없지만 세대별 추구하는 작업의 결과물은 시대성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규율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 게 우리 세대라면 오늘날의 젊은 장인들은 그 범위를 벗어나 새로운 것은 시도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고 적응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Talk 2. 지속 가능한 디자인(장인, 예술, 내구성)
Sustainable design (artisan, art, durability)
참석자
알렉시 지오가코풀로스 Alexis Georgacopoulos (ECAL 학장 / 모더레이터)
기욤 드 센 Guillaume de Seynes (에르메스 그룹 부사장)
샤흘 드 라 퀸타나 Charles de la Quintana (혁신사업부 디렉터)
아드리안 로베로 Adrien Rovero (디자이너)
기욤 드 센 에르메스는 처음부터 지속성을 생각해두고 시작된 회사다. 한 번 입고 쓰고 사라지는 물건이 아닌 평생 지속해서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 투자를 해오고 있다. 새로운 가죽 공장을 만들었고, 태양열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렇게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우리가 더 이상 가죽을 취득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된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대비로 동물 가죽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죽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신기술은 공예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하다.
샤흘 드 라 퀸타나 새로운 가죽 개발은 외부 스타트업에 의뢰하지 않고 내부에서 직접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메종에서 사용하는 가죽 특유의 관능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욤 드 센 로베르 뒤마(Robert Dumas)가 남긴 말 중 ‘럭셔리란 복원이 가능한 것이다(Luxury is that which can be repaired).’라는 문구가 있다. 에르메스가 진행하는 복원 사업은 고객과 친밀함을 형성할 수 있는 독특한 활동이다. 소중한 추억이 담긴 오브제가 복원했을 때 고객이 느끼는 감정도 특별하지만 이를 진행하는 장인의 감회도 남다른다. 실제로 제품이 만들어지고 몇십 년 후 복원 작업으로 처음 제작을 맡았던 동일한 장인의 손에 돌아오는 감동적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복원 후 고객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함께 느끼는 것은 큰 기쁨이다. 그리고 리페어와 리뉴에 대해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물건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추억은 그대로 간직한 채 손상된 부분만 새롭게 고치는 것이 복원이다.
아드리안 로베로 오늘날은 환경을 위한 지속성을 얘기하는게 유행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교육되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모든 기업들이 이 방향으로 작업 환경을 변화시키고 이를 마케팅에 이용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변화를 이끄는 부분은 그 결과가 바로 눈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르메스는 오래전부터 윈도우 작업에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 매장에서 동일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월드와이드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하지 않는다. 지역별로 새로운 시각의 크리에이티브를 발견할 수 있도록 지역 아티스트를 고용해 작업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욤 드 센 사용하고 남은 재료로 업사이클링을 하는’ 쁘띠 아쉬(Petit h)’ 또한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좋은 사례다. 사용하고 남은 조각 재료들을 모아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인데 이 과정에는 디자이너와 장인 둘만이 존재한다. 둘의 협업으로 탄생된 한정된 수의 제품들은 일 년에 두 번씩 전 세계 도시를 돌며 전시와 판매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