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서 시작되는 영감의 순간, 텔리엇

신선한 해석으로 욕실을 탐구하는 사려 깊은 브랜드

로고의 미세한 곡률, 크로스 형태의 심볼, 제품 선정, 패키지의 질감에 이르기까지. 욕실용품 연구소와 욕실에서 받은 영감을 브랜드 곳곳에 녹여낸 텔리엇의 브랜드 디렉터 박재연, 서지를 만났다.

욕실에서 시작되는 영감의 순간, 텔리엇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던 중 ‘유레카’를 외치고 달튼 트럼보가 욕조에 몸을 담근 채 타자기로 〈로마의 휴일〉을 쓴 것처럼, 욕실은 영감이 떠오르고 창작이 시작되는 특별한 공간이다. 텔리엇(TelioT)은 일상의 가장 개인적이고 창의적인 장소로 욕실을 주목하며 몰입과 영감을 돕는 욕실 도구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이다. 1970년부터 이어져 온 욕실용품에 대한 연구와 아카이브에서 시작해 욕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불편을 해소함으로써 더 큰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시공을 통해 완성되는 고정물이 아닌 소품과 가변적 요소로 풀어낸다. 텔리엇은 지난 10월 첫 제품으로 양변기를 위한 향수 ‘오 드 토일렛’을 선보이며 론칭했다. 감각적인 세 가지 향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사유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냄새를 차단하며, 유리 소재의 묵직한 보틀 디자인은 마치 향수 같다. 휴대성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냄을 권장하는 양변기 용품이라니. 첫 행보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텔리엇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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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드 토일렛 테토 © 텔리엇

Interview

박재연·서지 텔리엇 브랜드 디렉터

텔리엇의 공동 대표 겸 브랜드 디렉터로,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함께했다. 1년 넘게 텔리엇을 준비하며 생각의 합을 맞춰와 현재는 서로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역할을 구분해 나가고 있다. 큰 틀에서 박재연 디렉터가 제품과 세일즈 기획을, 서지 디렉터가 비주얼과 콘텐츠, 마케팅 기획을 총괄한다.

‘텔리엇’이란 브랜드

1970년대부터 이어져온 욕실용품 연구의 아카이브에서 탄생한 브랜드라고요. 텔리엇의 시작은 언제인가요?

박재연 제가 욕실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화성에 있는 연구소에 갈 일이 있었어요. 그리고 연구원들이 남긴 오래된 노트에서 욕실의 여러 불편함을 기록하려는 시도를 발견했죠. 의식하지 못한 채 당연하게 여겨온 불편함이 많다는 생각과 함께 저도 그러한 불편함을 아카이빙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아이디어의 조각들이 쌓인 이후로는 이 생각을 함께 발전시키고 구현할 능력 있는 좋은 파트너를 구해야 했고, 서지 님과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진행되면서 지난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브랜드 디렉터 서지 님과 함께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박재연 브랜드에 대한 생각이 막연했던 시기에도 꼭 지키고 싶은 두 가지가 있었어요. 높은 감도를 지닌 브랜드가 되고 싶다는 것과 오래 가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브랜드에 대한 이런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서지 님이었어요. 서지 님이 진행하는 브랜드 커뮤니티 ‘브랜드 파헤치기’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 후 1년간 교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연락을 드리면서도 조금 긴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브랜드를 왜 시작하려고 하는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파편화되어 있던 생각을 밤새 정리하고 피칭을 연습한 뒤 서지 님과의 미팅에 나섰던 기억이 나네요.

서지 님은 왜 재연 님과의 작업을 결정했어요?

서지 저는 디자이너에서 시작해 마케터 업무까지 담당하게 된 케이스인데요. 당시 호흡이 빠른 업계에서 일하면서 개인 프로젝트까지 3~5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며 많이 지쳤던 터라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휴식하던 시기였어요. 안식년으로 정해둔 1년에서 4개월쯤 지났을 때였는데, 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몸이 근질거리더라고요. (웃음) 브랜드 파헤치기의 팀원이었던 재연 님이 미팅을 요청하셔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갔는데, 말씀해주시는 내용들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재밌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하겠다고 했습니다. 브랜드명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토일렛 퍼퓸’이라는 제품군을 첫 번째 상품으로 선보일 계획에 따라 300여 가지의 향을 테스트 중이던 시기였는데, 처음부터 그려 나갈 수 있는 게 많다는 것도 저에겐 매력으로 느껴졌어요.

텔리엇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서지 ‘텔리엇(TelioT)’은 욕실 혹은 양변기로 칭해지는 ‘토일렛(Toliet)’을 역으로 배열한 거예요. 브랜드명을 정할 때 정말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발음과 철자가 기억하기 쉽고, ‘욕실’을 기반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선보이는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하며, 미래의 확장 가능성을 보았을 때 그중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어서 정했어요. 욕실 안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불편함을 의식하고 새롭게 해석하고 풀어내는 것들을 만들잖아요. 욕실에 관한 어떤 관념들을 뒤집어서 바라본다는 관점에서도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Bathroom essentials for inspiring minds(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욕실 필수품)’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데, 욕실과 영감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박재연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영감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욕실 필수품’에 가까워요. ‘inspiring minds’를 ‘영감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어요. 욕실에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거나 답을 얻게 되는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잖아요. 욕실은 일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고, 이 공간에선 우리가 더욱 자신에게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이 부분을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사람들이 욕실에서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를 제안하고 싶어요.

그럼 타깃은 창작자나 크리에이티브와 관련된 사람이겠네요?

서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궁극적으로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고,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배려심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놓치기 쉬운 욕실의 경험까지 고려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섬세함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 제품인 ‘오 드 토일렛’의 경우에도 한 번 더 행동을 취해야 하는 제품이잖아요.

디자인에 담긴 철학

로고는 산세프리 계열의 서체가 안정감을 주면서도 감성적인 인상이에요. 어떤 이미지를 담고자 했나요?

서지 텔리엇의 배경은 조금 특이해요. 1970년대에 설립된 유서 깊은 욕실회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잖아요. 50여 년의 헤리티지를 지닌 브랜드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정제된 스타일로 녹이되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큰 기업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실험적 디자인을 선보이는 그래픽 공동체 파카이파카이와 협업했고요. 로고는 ‘TelioT’에서 ‘ToileT’이 보다 잘 연상되도록 ‘il을 기준으로 대칭되는 형태로 만들었어요. 산세프리 계열의 서체이지만 R값을 넣고 알파벳의 각을 섬세하게 조정해서 욕실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증발할 때의 모습이 연상되도록 했고요. 파카이파키이가 고군분투해주신 덕분에 완성도 높은 로고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심볼은 그리드 시스템에서 영감받았다고요.

서지 텔리엇의 비주얼 모티프도 브랜드의 정체성이 담긴 욕실과 연구실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텔리엇의 시그니처 크로스 심볼은 연구소와 욕실, 두 공간에 규칙성을 만들어주는 그리드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타일과 타일 사이에 생기는 줄눈의 형태를 차용했어요. 오 드 토일렛의 패키지, 쇼핑백 등 텔리엇의 다양한 브랜드 에셋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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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통해 전달되는 감성에도 신경 썼다. 쇼핑백의 손잡이 또한 크로스 심볼 형태로 구현한 것으로,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 텔리엇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비주얼은 굉장히 절제된 느낌이에요.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한 텔리엇의 미학은 무엇인가요?

서지 기존 토일렛 퍼퓸 시장은 화려하고 팝한 이미지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똥냄새 완벽 제거” 같은 직설적인 언어를 내세우고요. 제품의 기능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기에는 좋은 선택이겠지만, 너무 자극적인 것들은 빠르게 질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브랜드의 지속성을 위해선 롱텀으로 사고해야 하고, 이에 은유적인 언어와 이미지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어요. ‘토일렛 퍼퓸’이 더 이상 고객들이 숨기고 싶은 제품이 아닌 드러내고 싶은 제품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고요.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에서도 기존의 시장과는 다른 룩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어요. 이미지에서는 불필요한 장식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어요. 군더더기 없는 형태, 복잡하지 않은 색채로 시각적 여백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통해 보시는 분들에게 정제된 미감을 전달하고, 전반적으로는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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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욕실회사 공장과 연구소,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화보 이미지 촬영이 진행됐다. 단순히 겉멋 든 가벼운 소품이 아니라 욕실에 대한 이해와 오랜 고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것을 공장과 연구소의 현장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건조하고 차분한 톤은 청결하고 깔끔한 느낌을 연출하기 위한 것. 스테인리스 등의 메탈릭 소재를 활용한 것 또한 연구소나 욕실의 소재를 차용한 것이다. © 텔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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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드 토일렛 테토 © 텔리엇
보틀 디자인은 프래그런스 브랜드의 향수를 연상시켰어요. 패키지는 한 장의 타일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첫 제품인 ‘오 드 토일렛’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보틀과 패키지 디자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서지 앞서 텔리엇이 오랜 시간 욕실용품에 대한 연구의 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아이디어와 실험의 아카이브에서 시작된 브랜드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영감이 가득한 연구실에서 출발한 우리는 가장 일상적인 고립의 공간인 욕실이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연구실’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틀 디자인은 연구실에서 흔히 발견하는 시약병을 모티브로 작업했습니다. 패키지는 말씀하신 것처럼 박스 하나하나가 모였을 때 타일처럼 보이기를 바랐어요. 시각적으로 보이는 모든 부분에 욕실과 연구실의 이미지를 잘 녹이는 것이 가장 주요한 미션이었어요.

영감의 첫 번째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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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드 토일렛 베티브 © 텔리엇
첫 제품으로 양변기를 위한 향수, 오 드 토일렛을 선보였어요.

박재연 욕실을 스스로에게 몰입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설정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 주는 것이었고요. 방해 요소로 가장 먼저 ‘냄새’가 떠올랐고 토일렛 퍼퓸이라는 품목을 정했어요. 아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사실 이미 꽤 많은 토일렛 퍼퓸이 시중에 출시되어 있어요. 하지만 토일렛 퍼퓸 시장은 지난 기간 큰 성장 없이 유지만 되어 오고 있었죠. 우선 대부분이 다음 사람을 위한 제품으로 이야기되거나 개인의 휴대 용품으로 인지되다 보니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확산되기 보다는 쓰던 사람이 계속 사용하는 제품이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준다고 생각하면 제품의 의미가 왜곡될 수 있는 제품군이기도 하거든요. 다만 관점을 조금 바꿔서 공간에 놓는 제품으로 생각하면, 공간을 관리하는 호스트의 섬세한 배려를 드러낼 수 있는 제품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공간에 놓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드러내고 사용하고 싶게끔 해야 했고요. 그 컨셉에 맞춰 섬세하게 신경 쓴 사람들을 위한 섬세한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냄새의 원천 차단에 집중하는 제품이라는 설명을 보았는데요. 여기에 어떠한 기술이 사용된 걸까요?

박재연 ‘오일 레이어링’이라고 부르는 기술이 사용돼요. 오 드 토일렛을 양변기 사용 전 물 위에 뿌려주면 물 위로 뽀얀 유막이 생겨요. 물과 만났을 때 향이 보다 잘 나도록 제조되었기 때문에 나쁜 냄새가 올라오지 않도록 차단해주면서 편안한 향이 은은하게 공간에 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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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욕실용품 공장에서 촬영한 텔리엇 비주얼 화보. 텔리엇은 관점을 바꿔 토일렛 퍼퓸을 호스트의 배려와 섬세함을 드러낼 수 있는 제품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배려는 나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을 위한 에티켓용 제품을 넘어서 나를 위한 제품이 되기 위해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을 사전에 차단한다. © 텔리엇
향은 어떻게 만들었어요? 공간이 욕실이기 때문에 조향 단계에서 조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박재연 조향 단계에서도 몇 가지 기준을 세우고 접근했어요. 우선 자극적이지 않아야 했어요. 좋은 향이라도 코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다면 저희가 원하는 몰입을 위한 환경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또 너무 직선적이기보다는 입체감이 있어서 탑 노트는 제품을 이용하는 사용자가 리프레시를 할 수 있으면서도 잔향은 너무 강하게 남지 않도록 해서 다음 사용자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으면 했어요. 천연향료의 비중을 높여서 탈취의 역할을 충분히 하면서도 향 자체는 은은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또 여러 천연물을 입체적으로 조향하되 부향율을 높여서 여러 노트의 향을 순차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기도 했고요. 일반적인 룸 스프레이의 부향율에 비해 오 드 토일렛의 부향율은 30~50% 높거든요.

베티브(VETIV), 테토(TETTO), 피그에이(FIG A), 세 가지 향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서지 브랜드를 기획할 당시부터 프리미엄 룩으로 선보일 계획이었기 때문에 향에서도 해당 부분을 반영해 고급스러움이 잘 담길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선택된 향이 테토예요. 테토는 중성적이면서도 세련된 웜 우디 머스크 타입의 향으로, 텔리엇의 섬세한 이미지를 대변하는 데에 손색이 없다고 느꼈어요. 두 번째로 채택한 향인 피그에이는 프루티 계열의 향인데, 아무래도 변기에 사용되는 향이다 보니 너무 달거나 일차원적으로 바로 과일이 연상되지는 않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시트러스한 향으로 싱그럽게 시작하되 달지 않은 풋풋한 무화과 향으로 우아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테토와 피그에이가 개성이 뚜렷한 향이라고 생각되어서 마지막 세 번째 향은 최대한 대중적으로 선호될 수 있는 향을 찾으려고 애썼어요. 더불어 테토, 피그에이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향이기를 바랐고요. 화장실에서 쓰일 때 가장 개운하고 깔끔하게 느껴질 만한 향에 대한 답을 그린 계열에서 찾았고, 기존에 테스트를 진행한 향 중 베티버와 사이프러스를 중심으로 한 향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에 조금 더 기분 좋은 프레시함을 느낄 수 있도록 민트를 더해달라고 조향사님께 요청 드렸어요. 그렇게 새벽녘 풀밭에 맺힌 싱그러운 이슬을 닮은 베티브가 탄생했습니다.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향을 하나만 추천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피그에이가 가장 좋았어요.

서지 저는 베티브요. 오래도록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향인 것 같아요.

박재연 피그에이와 베티브는 향을 맡는 순간 특정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라요.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피그에이는 과일 향이고, 베티브는 풀 향이야,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테토는 처음 맡았을 때 그 향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편이에요. 향에 대해 깊은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더더욱요. 그런 점에서 저한테는 테토가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첫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나요?

서지 전체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과정부터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와 작가 등의 협업 파트너를 찾는 일, 향을 선정하고 제품화하며 소재와 쉐입을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는데, 모든 과정이 우여곡절투성이였어요. 처음 브랜드를 맡고 런칭까지 4~5개월이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17개월 가까이 걸렸으니까요. 브랜드의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일관된 메시지를 이미지에 녹여내기 위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만큼 긴 시간 쌓아 올린 결과물에 대한 애착이 커요.

박재연 사실 시작하기 전에는 제품을 개발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일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우여곡절은 대단히 도전적이고 어려운 미션에서나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기본만 지켜서 가자’며 시작했는데,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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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욕실용품 공장에서 촬영한 텔리엇의 비주얼 화보 © 텔리엇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박재연 우선 향에 대한 소통에서도 시행착오가 있었는데요. 조향사님과 처음에는 막연하게 어떤 감정과 레퍼런스로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답답함을 느끼고 며칠 동안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원료들을 하나하나 맡아보고 좋고 싫음의 이유를 상세하게 찾아 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합을 맞춰 나갔는데 세 가지 향을 확정할 때쯤 세어보니 300가지가 넘는 향을 시향했더라고요. 조향사님의 끈기가 아니었다면 저희도 힘들었을 거예요.

보틀의 캡도 여러모로 고려를 많이 한 케이스인데요. 컨셉을 살리면서도 욕실에서 쓰는 제품인 만큼 손이 미끄러워도 제품을 집는 데 문제가 없고, 반대로 캡만 잡고 들었을 때도 본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되어야 했어요. 시중에 있는 캡 중에서는 딱 맞는 것이 없이 결국 금형을 파면서 디자인도 새롭게 다시 잡아야 했고요.

패키지의 경우에도 원하는 부피감이 있었는데, 이 부피감을 구현하기 위해 박스 내부에 보틀을 고정하는 아이디어도 필요했어요. 마감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종이로 내부 구조를 잡기로 했는데, 유리 보틀의 무게가 있다 보니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어요. 결국은 합지한 두꺼운 종이 구조물 여러 개가 무게를 분산하는 형태로 내부 지기도를 설계하면서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완성하고 보니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 형태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서지 개인적으로는 텔리엇이 이타심에 기반한 브랜드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어요. 텔리엇의 제품을 만드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섬세한 배려로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었으면 하고요. ‘섬세함’을 내세우고자 할 때 만드는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그것들을 기꺼이 감수할 때 비로소 기존의 브랜드와 차별성을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욕실에서 일상으로 이어지는 변화

오 드 토일렛을 공개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났어요. 첫 제품을 선보인 소감이 궁금해요.

서지 후련하다! (웃음)

박재연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마음이 바쁘기도 해요. 누군가 우리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설레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다음 것을 더 잘 해낼 수 있을지 조급해지기도 하는, 여러 마음이 공존해요.

텔리엇 티징 영상 © 텔리엇
이후 제품은 어떤 방식으로 공개되나요?

서지 기존에 오 드 토일렛을 제작하면서 재연 님과 함께 논의했던 차기 제품들이 있어요. 지난 여정을 돌이켜봤을 때 다음은 언제쯤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앞으로 나올 제품들 역시 브랜드 에센스를 담아 촘촘하게 설계하는 데에 온 신경을 쏟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제품을 언제 어떻게 공개하는지보다는 각각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재연 저희는 제품의 카테고리보다는 공간에서의 경험에 집중해 제품을 기획하고 제안하게 될 것 같아요. 첫 제품은 향이지만 앞으로 모든 제품이 향에 집중된 제품은 아닐 거예요.

1970년대부터 욕실용품 연구 아카이브와 연결될까요?

박재연 아카이브에는 아직도 다양하고 사소한 불편함이 쌓여 있어요. 당연하게 여겨지는 불편함을 의식하고 바꾸려는 시도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서지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의 불편함을 모두 제품화하기보다는 현시대가 요구하는, 지금의 사람들이 필요로 할만한 아이디어를 텔리엇의 언어로 치환해 선보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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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욕실용품 공장에서 촬영한 텔리엇 비주얼 화보 © 텔리엇
텔리엇의 제품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나요?

서지 현재는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하고 있어요. 몇몇 채널들과 논의하고 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채널이든 텔리엇의 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을 선택하게 될 거예요.

박재연 습관이 형성되어야 하지만, 한 번 써보면 계속 쓸 수밖에 없는 제품이에요. 어떻게 공간에 더 잘 드러내고 사용해보고 싶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 텔리엇은 새로운 욕실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은데요. 텔리엇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서지 욕실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어쩌면 가장 뒤편으로 밀려 있던 공간이잖아요. 욕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욕실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영감의 도구들을 만들 예정이에요.

박재연 일반적으로 욕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에 30분 남짓이에요. 24시간 중 2% 정도죠. 하지만 스스로에게 몰입하고 자신과 대화하려는 시도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욕실에서의 그런 시도들이 자연스럽고, 더 나아가 하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제안을 계속해서 해나갈 거예요. 결국 텔리엇은 작은 습관이나 사려 깊은 선택들이 모여서 삶에 크고 작은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경험을 통해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은 브랜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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