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의 미래에 대하여

성장세 둔화하는 전기차 시장, 과연 그 미래는?

미래형 자동차에 각광받으며 일상에 자리잡은 전기차이지만 화재 사고,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로 1-2년간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시점. 과연 전기차 시장의 미래는 밝을 것인가?

전기차 시장의 미래에 대하여

최근 몇 년간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이었다. 특히 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매연을 발생시키지 않는 전기차는 크게 각광받으며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테슬라를 필두로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신기술을 선보였고,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미래형 자동차가 현실로 다가오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 더 이상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될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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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 ‘스펙터’. 사진 출처 롤스로이스 공식 홈페이지

전기차 회사와 긴밀한 협업

고성능 엔진 기술력과 까다로운 제작 방식으로 유명한 럭셔리 슈퍼카 기업들 역시 전기차 개발 계획을 발표하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페라리, 포르쉐, 벤틀리, 롤스로이스, 애스터마틴 등 전통적인 방식만 고집할 것 같던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전기차를 개발하거나 전기차 회사와 긴밀한 협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 자동차 업계에도 새로운 돌풍이 불고 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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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마틴과 미국 전기차 회사 루시드 모터스가 협업하여 선보이는 ‘루시드 에어’. 사진 출처 루시드 에어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일부 기업에게 전동화 전환은 이른 시도였던 듯하다. 최근 람보르기니는 자사의 첫 전기차 출시 시기를 연기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첫 전기차는 2028년에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새로 발표된 일정에 따르면 2029년에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경쟁사인 페라리는 올해 4분기 전기차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람보르기니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욱 분발해야 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람보르기니는 출시 계획을 늦춰 우려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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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가 2028년에 선보일 예정이었던 첫 전기차, ‘란자도르’. 사진 출처 람보르기니 공식 홈페이지

지난해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람보르기니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CEO인 스테판 빙켈만Stephan Winkelmann은 계획 연기에 대해 “2029년이 전기 자동차를 출시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며 “우리 분야에서는 2025년이나 2026년에 시장이 준비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전기차 시장이 그동안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왔지만 최근 성장세가 둔화되는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전기차 관련 법규와 규제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람보르기니가 신중한 접근을 택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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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carscoops.com

그와 더불어 이 슈퍼카 브랜드가 전기차 출시 시기를 미룬 이유는 하나 더 있어 보인다. 고객들은 신기술을 갖춘 차에도 열광하지만, ‘자동차를 자동차답게 느낄 수 있는’ 요소들에도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성능 엔진에서 나오는 거대한 배기음에 매력을 느꼈던 이들이 전기 배터리팩이 내는 조용한 소리를 바로 만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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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람보르기니 공식 홈페이지

여러 가지 이유로 전기차 개발에 서두르지 않는 람보르기니는 천천히 고객들이 친환경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우루스 SE, 레부엘토, 테메라리오와 같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하며 전기화된 파워트레인과 내연기관의 결합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엄격한 규제 환경 속에서도 내연 기관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잠재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합성연료 Synthetic Fuels, e-fuels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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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nprord.com/en/future-with-e-fuels/

합성연료는 전기, 물, 그리고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화학적으로 제조되며,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연료는 내연기관을 개조할 필요 없이 기존 차량에 바로 사용할 수 있기에 현재의 인프라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미래 운송수단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합성연료 개발에 람보르기니를 비롯해 페라리, 포르쉐, BMW, 벤츠 등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연구 및 투자에 나서고 있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람보르기니의 계획은 다른 브랜드에 비해 느린 편에 속한다. 유럽연합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중단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더 이상 내연기관이 포함된 차량을 판매할 수 없게 되지만 전기차 보급 속도는 아직 더디기에 아예 범유럽 차원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 도입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서 슈퍼카 브랜드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전기차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의 미래는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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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freemalaysiatoday.com

하지만 국가 차원의 계획과 달리 전기차 시장의 흐름은 그리 순조롭지 않다. 전기차 화재 사고, 인프라 부족, 보조금 축소 등의 문제로 인해 지난 1-2년간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었다. 2023년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5만 9,693대로 2022년 보다 1.1% 감소했다. 글로벌 시장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포함한 2023년 세계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31% 성장했지만, 2022년에 기록한 60% 이상의 성장률과 비교하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전 세계의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미국의 전기차 기업들이 대규모 인력을 감축하고 있으며 새로운 모델의 출시일이 미뤄지는 일도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미국 못지않게 세계 시장을 뒤흔들었던 중국의 기업들도 휘청거리고 있는 중이다.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의 전기차 자회사인 헝츠는 5년간 20조에 가까운 영업 손실을 얻었으며, 이에 투자를 담당했던 벤처 회사가 철회 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샤오미는 공장 생산 능력에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판 테슬라’로 불리던 전기차 스타트업 바이톤은 잇달아 파산 신청을 하며 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밝은 미래만 있을 줄 알았던 전기차 시장에 먹구름이 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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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artner.com

전기차 시장의 밝은 미래는 이대로 저무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내놓는 대답은 ‘아니오’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 전기차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판매시장의 둔화는 시장 경기가 어렵다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전망을 봤을 때에는 이러한 이슈들은 큰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발표한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전 세계 유형별 전기 자동차 유형’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적으로 운행되는 전기차는 6,400만 대에 달하고, 2025년 말이 되면 이보다 33% 증가한 약 8,500만 대의 전기차가 도로를 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전기로 운행되는 승용차, 버스, 대형 트럭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며, 2025년에 운행하는 전기 자동차의 73%는 BEV(Battery Electric Vehicles)가 될 전망이라고 한다. 또한 세계 전기 자동차 시장은 중국(58%)과 유럽(24%)이 주도하며 시장 확대를 이끌 것으로 예측했다. 2030년까지 자동차 제조업체는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95%를 재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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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spglobal.com

자동차 산업 분석 기관인 S&P 글로벌 모빌리티가 발표한 자료도 이와 유사하다. 이들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약 1,51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2024년 대비 30% 가까이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이에 따라 전기차 시장 또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가별로 살펴봤을 때 중국은 2025년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의 약 29.7%를 차지하며 계속해서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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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coxautoinc.com

미국 자동차 시장분석기관 콕스 오토모티브는 미국 내 전기차 판매가 계속 증가하여 2025년에는 판매되는 신차 4대 중 1대가 전기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4년에 7.5%였으며, 2025년에는 10%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은 시장의 약 15%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순수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량은 사상 최저 수준인 75%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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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exels.com

전기차 판매량과 마찬가지로 충전 인프라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2023년 공용 충전설비 설치는 40% 이상 증가했으며, 급속 충전시설은 55% 성장했다. 2030년까지 전 세계 공용 충전기 수는 약 1,500만 개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용 충전기만큼 가정용 충전기 확산도 눈에 띄는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23년에는 2,700만 기가 설치되었고 앞으로 2035년까지 2억 7천만 기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시장이 성장한 이유 또한 전기차 충전소 설치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 바이든 미국 전 대통령은 2030년까지 미국 전역의 전기차 충전기를 50만 개로 대폭 늘리는 국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프로그램을 전개했고, 2024년 2분기 기준 미국 전역에 레벨 2 충전소와 급속 충전소가 18만여 개를 넘어섰다는 집계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던 인프라 문제가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해결되자, 자연스럽게 판매량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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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exels.com

몇 년간 시장 경제의 둔화로 인해 전기차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통계와 분석 결과를 보았을 때 전기차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지금까지 발생한 부정적인 사건 사고들은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기차의 단점만으로 시장이 위축되기에는 그 장점이 훨씬 크다. 전기차는 배기가스 배출을 줄여 더 깨끗한 공기를 제공하고, 석유 및 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 한때 전기차의 전력 생산 과정이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재생 에너지 개발이 지속되면서 이러한 문제들도 점차 해결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기차의 미래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진행했던 전기차 정책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 전기차 충전소 확충에 투입될 예산을 방위비와 기타 인프라 건설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전 세계 배터리 소재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 내 배터리 생산을 유도하는 계획을 발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정책과 더불어 배기가스 배출 및 연비 기준을 폐지해 내연기관 차량 생산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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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exels.com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에서 각종 제약이 발생하면서 전기차 시장의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에 맞서 전기차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테슬라를 비롯한 주요 제조사들은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는 한편, 가격 인하 행사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도 전기차 시장이 꾸준히 성장해온 만큼, 여러 변수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시장의 미래는 여전히 밝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일상화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2000년대 전 세계가 인터넷에 주목했던 것처럼, 이제는 전기차가 그 중심에 서 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며, 결국 탄탄한 기술력과 지속 가능한 자본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아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변화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각국의 정책 차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성장 속도와 양상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전기차는 결국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주요 운송수단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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