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질서를 나만의 언어로 다시 그리다, 마르틴 아삼부하

우루과이 그래픽 디자이너 마르틴 아삼부하 인터뷰

우루과이에서 태어나고 자라 뉴욕에 정착하기까지, 마르틴 아삼 부하(Martín Azambuja)는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의 경계를 허물어온 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은 구조와 색채의 질서를 통해 감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즉각성과 클라이언트 중심의 실무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와 직관을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탐색의 결과물이다.

타인의 질서를 나만의 언어로 다시 그리다, 마르틴 아삼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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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영화제〉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3 © Martín Azambuja

우루과이에서 태어나고 자라 뉴욕에 정착하기까지, 마르틴 아삼부하(Martín Azambuja)는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의 경계를 허물어온 디자이너다. <펜타그램(Pentagram)>과 <애플(Apple)>을 거쳐 현재는 브라질 디자이너들이 설립한 스튜디오 <포르투 로샤(Porto Rocha)>의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그는, 단순한 시각적 스타일이 아닌 문제 해결 방식으로서의 디자인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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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영화제〉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3 © Martín Azambuja

아삼부하의 작업은 구조와 색채의 질서를 통해 감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즉각성과 클라이언트 중심의 실무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와 직관을 잃지 않으려는 치열한 탐색의 결과물이다.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 작업의 윤리, 개인적 직관, 그리고 글로벌 이주자로서의 복합적인 자아까지, 디자이너로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성과 깊이에 대해 진솔하게 들려주고자 한다.

—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우루과이 디자이너로서, 본인의 문화적 정체성과 세계적 영향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계신가요?

— 우루과이 출신의 디자이너로서 ‘우루과이적인 디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사이의 깊은 연관성은 우루과이 디자인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활동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실제로는 일러스트레이터였으며, 책 표지에서 비닐 음반 커버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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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영화제〉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3 © Martín Azambuja

우루과이 디자이너들에게는 ‘다재다능함’이라는 고유한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에 활발히 유입되었던 폴란드 디자인의 영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유연한 사고 덕분에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을 경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다양한 시각에서 프로젝트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역할이 더 분명히 구분되어 있지만, 우루과이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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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영화제〉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3 © Martín Azambuja

이러한 창의적 자율성은 분명한 장점과 동시에 도전을 동반합니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반면, 협업의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러스트레이션은 제 작업의 중심축이자, 우루과이의 시각 문화 유산을 오늘날의 디자인으로 확장시키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루과이에서 출발해 펜타그램을 거쳐 현재 포르투 로샤(Porto Rocha)의 수석 디자이너로 자리 잡기까지, 그 여정은 어땠나요?

— 처음에는 그림에 대한 관심과 기술적인 측면이 결합된 분야로 건축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ORT 대학교에서 열린 실크스크린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Complot과 Salterine 같은 에이전시에서 일을 시작했고, 드로잉 워크숍에서 프란시스코 쿠냐(Francisco Cuña)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문디알(Mundial) 스튜디오의 파트너가 되었죠. 문디알은 시각적 정체성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소규모 브랜드 및 창업가들과 함께 협업하는 창의적인 플랫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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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붐 매거진》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2016. © Martín Azambuja.

몇 년 후, 저는 보다 복합적인 도전을 원하게 되었고, 펜타그램의 마이클 비에루트(Michael Bierut)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습니다. 놀랍게도 다음 날 바로 답장이 왔고, 제 작업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6개월마다 인턴십 프로그램이 열린다고 알려주었고, 이후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테스(Tess)가 인터뷰를 제안했습니다. 여러 차례의 면접을 거쳐 인턴십 제안을 받았고, 비자와 서류 준비는 모두 직접 처리해야 했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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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붐 매거진》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2016. © Martín Azambuja.

펜타그램에서의 인턴십은 6개월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팀의 한 디자이너가 퇴사하면서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었고, 1년 반 동안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새로운 비자를 준비하던 시기에는 Apple과 프리랜서로 협업하며 WWDC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는데, 이 또한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뉴욕은 제게 급진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집착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처음으로 만났고, 우루과이에서는 흔치 않았던 동료 디자이너들과의 깊이 있는 교류가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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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Typography》 북디자인, 2023. © Martín Azambuja 사진 출처 Vernacular

특히 마이클 비에루트와 함께한 시간은 제 경력에 있어 많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브라질 출신 디자이너 레오와 펠리페를 만나게 되었고, 이들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포르투 로샤(Porto Rocha)와 넷플릭스 프로젝트를 함께한 뒤 스튜디오에 합류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10명 남짓이던 팀이 지금은 30명 이상으로 성장했고, 저도 지난 3년 반 동안 전적으로 이곳에 집중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간혹 개인 프로젝트도 병행하지만, 저의 일상은 오롯이 포르투 로샤에서의 작업과 그 안에서의 성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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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Typography》 북디자인 2023. © Martín Azambuja 사진 출처 Vernacular

— 디자이너로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은 누구인가요?

— 저의 첫 번째 스승은 어머니였습니다. 교사셨던 어머니 덕분에 집에는 항상 창작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가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미술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창의적인 환경에서 자란 덕분에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자라났죠. 대학교에서는 알바로 카르메네스Álvaro Carmenes와 구스타보 마카Gustavo Maca 선생님들이 제 디자인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분들은 특히 앞서 이야기한 우루과이 특유의 다재다능함이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디자인에 대한 열린 시각을 심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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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P (상파울루 미술관)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5. © Martín Azambuja

국제적인 레퍼런스로는 예술성과 기능성의 경계를 넘나든 이반 체르마예프(Ivan Chermayeff)와 다학제적 접근을 실천한 알렉산더 지라르(Alexander Girard)를 오랫동안 존경해왔습니다. 그리고 펜타그램에서 마이클 비에루트(Michael Bierut)와 함께 일하면서는 그의 창의적 리더십과 섬세한 접근 방식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또한 프란시스코 쿠냐(Francisco Cuña)는 넓은 시야를 가진 디자이너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과 직업적인 삶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태도로도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이처럼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다양한 영향들이 모여, 저는 디자인을 단순한 직업이나 기능이 아닌, 예술과 문화, 그리고 삶 자체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유연한 학문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 당신의 작품에서는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가 인상적인데, 이러한 요소들에 어떤 정서적 의미를 담고 계신가요?

— 저는 색채나 기하학적 요소에 정신적인 상징을 부여하기보다는, 미학적 감수성과의 정서적 연결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에 매료되었고, 그리드 기반의 스위스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질서와 균형감에 깊이 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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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P (상파울루 미술관)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5. © Martín Azambuja

흥미롭게도, 가장 단순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기하학적 구성과 색채의 조화는 반복적인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완성되어 갑니다. 제가 추구하는 조화와 리듬은 계산된 구조 속에서도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시각적 언어에 가깝습니다. 또한 우루과이 문화의 큰 인물인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Joaquín Torres-García 역시 제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구성주의적 접근은 제 디자인 사고 방식 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았고, 제 작업의 시각적 구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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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P (상파울루 미술관)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5. © Martín Azambuja

— 창작 과정에서 이성적인 사고와 직관적인 감각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요?

— 저의 작업 과정은 프로젝트의 성격과 목표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이성적인 접근에서 시작됩니다. 명확한 구조를 바탕으로 한 사고가 중요하지만, 직관 역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많은 시각적 발견은 의도치 않은 실수, 예상 밖의 조합, 혹은 즉흥적인 결정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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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 북디자인 — 2025. © Martín Azambuja. 사진 출처 Vernacular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된 경험은 일종의 ‘시각적 기억’을 형성하게 되고, 이는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수많은 색상 팔레트를 다루다 보면 특정 프로젝트에 적합한 색 조합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게 되죠. 거의 자동화된 선택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자동화된 논리를 반복하는 데 안주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인 실수와 직관적 개입을 계속 시도합니다. 예측 가능한 경로를 따르기 보다는, 예상치 못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가장 강렬한 해결책이 치밀한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즉흥의 순간—그 ‘찰나’에서 탄생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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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 북디자인 — 2025. © Martín Azambuja. 사진 출처 Vernacular

—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 사실 저는 어떤 작업도 ‘완전히’ 완성되었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복과 꾸준한 연습을 통해 세부를 다듬을 수는 있지만, 작업에 종지부를 찍는 것은 결국 마감일입니다. 이러한 외부의 제약이 없다면, 창작 과정은 끝없이 이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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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 북디자인 — 2025. © Martín Azambuja. 사진 출처 Vernacular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테스트를 거쳤는가, 그리고 확실한 해결책에 도달할 때까지 주저 없이 기존의 아이디어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종종 가장 단순해 보이는 해결책일수록 수많은 시도와 고심 끝에 도출된 결과물입니다. 그 단순함은 결코 단순히 도달한 것이 아니죠.

— 디자이너로서 개인의 정체성과 브랜드의 요구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시나요?

—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저만의 스타일이 비교적 뚜렷하지만, 시각적 아이덴티티 디자인에서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프로젝트마다 고유한 맥락과 목표가 있으며, 그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각 언어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포르투 로샤에서는 금융 기업부터 박물관, 음악 앨범 커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정한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그래픽적 접근 방식에 집중합니다. 다양성이 핵심이며, 타이포그래피의 활용이나 시각적 명확성과 같은 반복되는 선택은 오히려 창의성을 억누르기보다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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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Hands》 북디자인 — 2025. © Martín Azambuja. 사진 출처 Vernacular

예를 들어 현재는 금융 분야의 글로벌 대기업, 주요 박물관의 시각 정체성, 사진집과 음악 앨범 커버를 동시에 작업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들은 각기 다른 요구사항과 맥락을 지니고 있기에 미학적으로도 당연히 서로 달라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유연성과 적응력이 디자인의 가장 큰 도전이자, 동시에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죠.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저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미학이 형성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브랜드의 본질과 디자이너의 감각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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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EPS 시각 아이덴티티 — 포르토 로차, 2025. © Martín Azambuja

— 소셜 미디어의 즉각성이 지속적인 그래픽 표현을 추구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 소셜 미디어와의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제 작업을 탐구하고 세상에 보여주는 수단으로 모든 것을 공유하곤 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올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게시물을 보다 신중하게 선별하여 공유하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경험한 멘토링 문화는 모든 과정을 드러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때로는 가장 깊이 있는 작업이 외부의 즉각적인 피드백이나 검증 없이, 조용히 진행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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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ÚTBOL」 개인 일러스트레이션, 2021. © Martín Azambuja

저는 지금도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보다 자연스럽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공유하는 접근을 선호합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창작의 본질과 내면의 리듬을 지켜나가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 소셜 미디어에 게시할 이미지를 선택할 때 어떤 개인적인 기준이 있나요?

— 처음에는 필터 없이 직관적으로 모든 것을 게시했지만, 지금은 공유하는 콘텐츠를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셜 네트워크를 단순한 포트폴리오가 아닌, 좀 더 편안하고 유연한 공간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스토리는 즉흥적인 공유를 위한 채널로 활용하고, 피드에는 보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게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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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º 프레미오 몬테비데오 아르테 비주알』 표지 디자인, 2022. © Martín Azambuja

시간이 지나면서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플랫폼들이 실험을 위한 장에서 사실상 포트폴리오로 기능하게 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시각적 큐레이션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소셜 네트워크가 그렇게 경직된 방식으로만 존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가장 기억에 남는 반응이나 상호작용은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이미지보다는, 작업 과정 중의 모습이나 프로젝트의 이면, 무대 뒤의 이야기를 공유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세련된 미학이 지배적이었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일종의 ‘비연출된 순간’이 더욱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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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우정공사 우표 — 〈Migrantes: Derechos Humanos〉 디자인, 2022. © Martín Azambuja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게시물을 일정 부분 ‘관리’한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엄격한 기준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공유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방식은 그때그때의 감정과 맥락에 따라 달라집니다. 최근에는 작업뿐 아니라 개인적인 면모도 조금씩 더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웹사이트는 포트폴리오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으니, 소셜 네트워크는 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 디자이너이자 예술가로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뉴욕에 온 이후, 저는 정체성과 언어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제가 누구인지, 어떻게 소통하는지, 언어가 나 자신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성찰하게 되었죠. 최근에는 이러한 주제를 보다 개인적이고, 어쩌면 예술적인 관점에서 탐구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스튜디오에서의 일상적인 작업은 매우 보람 있고 풍요롭지만, 그 과정의 끝에는 언제나 최종 수용자인 클라이언트가 존재합니다. 저의 창의력을 표현하고 영감을 나눌 수는 있지만,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외부의 요구와 기대에 반응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한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주자로서의 경험, 우루과이의 ‘마르틴’과 미국에서의 ‘마틴’ 사이의 이중적인 정체성, 그리고 그 둘이 어떻게 공존하고 변화해가는지를 주제로 삼아, 보다 내밀하고 자율적인 형태의 작업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디자이너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저 자신을 비추는 창작의 방향을 모색해 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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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 로차 팀사진, 2024. © Martín Azambuja

— 한국 언론과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 언젠가 꼭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런 핑계가 생긴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제게 한국은 단순히 2002년 월드컵의 인상적인 기억을 넘어, 현재 포르투 로샤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를 통해 더욱 깊은 인연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제가 만난 디자이너 중 가장 재능 있고 흥미로운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녀를 통해 한국 문화의 매혹적인 면모를 알게 되었고, 언젠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디자이너들과 교류하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면 더없이 영광일 것 같습니다. 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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