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회사에도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이쁜꽃
지금 필요한 건 사랑, 믿음, 그리고 환상! 한국술 비즈니스에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나가고 있는 이쁜꽃의 양유미 대표를 만났다.
주류 회사의 인스타그램을 이렇게 킥킥 웃으며 볼 줄이야. “가장 동시대적인 술을 만드는 주류 회사”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이쁜꽃’ 이야기이다. 이쁜꽃은 ‘곰세마리 양조장’과 ‘구름아 양조장’에서 경력을 쌓은 양유미 대표가 2021년 창업했다. 양유미 대표가 만든 술은 다수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 납품되어 왔는데, 특별한 날에만 술잔을 드는 나에게는 술 그 자체만큼 이를 둘러싼 것들에 더 자주, 그리고 많이 시선이 갔다.
양조사, 브랜드 매니저, 디자이너, 유통 및 마케팅 담당자. 이 모든 것은 양유미 대표 한 사람을 가리키는 수식어이다. 양유미 대표는 “사전 질문지를 받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솔직하게 답을 드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입을 뗐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애쓴 일들과, 멋없는 모습도 감추지 않고 드러낸 것들이 이쁜꽃의 색깔이 되기까지. 일의 기쁨과 슬픔이 녹여진 지난 여정과 이쁜꽃이 만드는 다채로운 콘텐츠들을 소개한다.
우연이 운명으로, 이쁜꽃의 시작
이쁜꽃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그간 여러 인터뷰에서 말씀해 주셨지만, 이쁜꽃의 첫걸음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어요.
저는 원래 친구들과 꿀술 양조장(곰세마리 양조장)을 창업했고, 이후 쌀술을 만드는 ‘구름아 양조장’에서 운영 총괄을 담당했어요. 이쁜꽃은 그 후 제 회사를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회사입니다.
‘이쁜꽃’이라는 이름부터 반가사유상의 표정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로고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어요. 각각에 담긴 의미도 소개해 주세요.
이쁜꽃은 의미가 큰 이름은 아니에요. 몇 가지 후보를 두고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이쁜꽃은 절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건 기억에 남나 보다 해서 정한 이름입니다. (웃음)
로고에 관해서는, 그 전에 ‘구름아 양조장’이라는 이름도 제가 지었는데요. 그런 패턴이 제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구름아 양조장인데 로고에는 구름이 없었어요. 전국 각지의 술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각양각색 나름대로 피어나는 꽃을 떠올렸어요. 어떤 꽃일지 생각하다가 그냥 이쁜 꽃이면 되겠다 싶었고요. 꽃은 원래 이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각자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꽃이 다를 수 있으니 보여주지 않는 쪽을 택했죠. 자기 마음속에 떠오르는 꽃을 이쁜 꽃으로 삼길 바랐어요.
2017년 곰세마리 양조장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위해 합류했다가 양조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마케팅과 디자인 분야에는 원래 관심이 있으셨어요?
정확하게는 영업을 하기 위해 들어갔었죠. 친구들이 만든 꿀술의 판매가 저조한데, 제가 술고래거든요. 즐겨 가는 업장들에 한 병씩만 돌려봐도 판매가 일어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름을 기억하기 쉽게 ‘곰세마리 양조장’으로 바꿨고요.
디자인을 직접 하게 된 건, 인력과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디자인을 보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간의 일관성이 있는데요. 제가 디자인 툴을 다루는 것에 서툴고 비용과 감리 문제 때문에 단색을 선호하다 보니 나름의 어떤 이상한 양식이 만들어진 거죠. (웃음) 이쁜꽃은 디자이너분들과 협업하기도 했는데요. 리라벨링한 ‘사랑과 용기’의 라벨은 디자이너님이 작업해 주셨어요.
양유미 대표가 만든 제품의 라벨 디자인에는 각자 키 컬러가 존재한다. ‘사랑(Love)’, ‘믿음(Faith), ‘환상(Fantasy)’의 핑크, ‘황새’의 그린과 블루, ‘뱁새’의 블랙 등. 양유미 대표는 너무 세련되지 않게, 그리고 옆 테이블에서 봤을 때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신경 쓰며 라벨 디자인을 한다.
이쁜꽃은 인스타그램이 유일한 마케팅 창구예요. 대표님께서 곰세마리와 구름아 시절에도 했던 방식인데, 인스타그램에서 다양한 소식을 만화 형식 통해 선보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것 역시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시작된 건데요. (웃음) 예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옆으로 넘기는 기능도 없었던 것 기억하시죠? 한 컷을 4분할해서 그리던 것부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그 어떤 공들여 만든 영상이나 게시물보다 만화의 도달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았어요. 그래서 계속해 왔습니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이과장님(양유미 대표의 남편이자 이쁜꽃의 조력자, 사케 에이전트로 활동한다)도 계시지만, 대표님께서 혼자 모든 걸 다 하시잖아요. 만화의 화자로 등장하시고 응대에도 대표님이 많이 드러나는데, 그것에 대한 부담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부담감… 있습니다. 여전히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고요. 아마 대부분의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님들의 고민과 비슷할 것 같아요. 내가 어디까지 드러나야 하는지, 언제 페이드아웃 되어야 하는지, 이 시점을 정하는 게 관건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인스타그램 만화를 줄이겠다고 하셨어요.
이쁜꽃을 움직이게 하는 세세한 기준이 있지는 않지만, 크게는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인가가 중요해요. 우리만 할 수 있는 시도와 생각인지, 그걸로 사람들에게 조금 더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는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된 부분이 많았어요.
이야기는 구조가 중요한데, 인스타그램은 10컷밖에 되지 않으니까 구조를 고민하더라도 결국 그림만 다르고 비슷하게 흘러갈 때가 많거든요. 만화를 활용한 다른 양조장들의 콘텐츠들도 그렇고요. 서로 변별력이 없잖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한 만화는 줄이고, 그 자체로 확장성 있고 의미 있는 만화에 집중하려고 해요.
다양성을 더하는 제품 이야기
이쁜꽃은 초기부터 지역의 양조장 및 카페와 협업하며 다양한 한국술을 기획하고 생산해 왔다. 2021년 7월 가평 ‘크래머리’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서천 ‘옥순가’, 춘천 ‘감자아일랜드’, 서울의 ‘피터앤코’와 ‘먼데이모닝마켓’과 함께 술을 출시했다. 이쁜꽃은 별도의 홈페이지를 구축하거나 온라인으로 제품을 유통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하며 비정기적으로 출시하는 술을 예약제로 판매, 이쁜꽃 충무로 지점에서 수령하도록 한다.
이쁜꽃이 협업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선정 기준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이쁜꽃의 기준이라기보다는 그들만의 기준이 명확하게 서 있고, 그것이 일관되게 고객한테 전달되는 곳이요. 그리고 특히 한국술에 있어서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강조한 술들이 많은데, 그것보다는 ‘이 술을 마실 때 어땠으면 좋겠어요’하고 포지셔닝이 된, 그러니까 마시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술과 업장을 중심으로 보았던 것 같아요.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프로세스는 양조장마다 다른데요. 대체로 이쁜꽃이 술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편이에요. 양조장들은 술의 내용물에 집중하고요. 물론 그 맛은 양사가 합의점에 도달한 맛을 구현합니다.
그렇게 처음 이쁜꽃의 이름으로 출시한 술이 크래머리와 함께 만든 ‘사랑’, ‘믿음’, ‘환상’이였어요.
크래머리 같은 경우에는 제 초등학교 동창이 거기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어요. 이쁜꽃을 시작했을 때는 양조장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어디와 함께 일할지 찾던 차에 그 친구한테 연락이 온 거죠. 제가 맥주를 다뤄보지 않기도 했고, 크래머리 또한 자신의 철학을 강조하지 않는 점이 좋았어요. 마셔보니까 맛있었고요. 대표님들과 대화도 잘 통해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죠.
내추럴 와인처럼 포지셔닝 되었던 것 같아요. 이름과 라벨이 예뻐서 선물용과 모임용으로 구매한 기억이 있어요.
맞아요. 내추럴 와인과 비슷한 병이었죠. 그런 유리병에 담은 맥주도 처음이었어요. 자동병입설비 없이 그 과정을 세팅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아무도 안 했던 일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모든 걸 하나씩 깨달으면서 겨우겨우 나왔던 술이죠. 반응은 정말 좋았어요. 첫날에 오픈하기로 한 물량이 몇 시간 되지 않아 거의 다 나가며 판매가 빠르게 이루어졌죠.
그런데 여기서 또 많이 배운 게 일반 소비자와 마니아의 반응이 달랐어요. 일반 소비자는 대체로 좋아하셨고, 맥주 마니아 사이에서는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또 한 번 쉽지 않다고 느꼈죠.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보람도 있었던, 재미있었던 작업이에요.
양조장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하셨는데, 지난해 이쁜꽃 양조장의 첫 번째 술 ‘사랑과 용기’를 선보였어요.
양조장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한국에 양조장이 이미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내가 하나 더 만들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협업이 즐겁기도 하지만, 이전에 제가 해온 일과 성질이 다르더라고요. 이를테면 전에는 제 손을 거쳐서 나가는 것만 핸들 하면 됐었는데, 협업의 경우에는 미묘한 부분에서 세련되게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었던 거죠. 완벽하게 컨트롤하기도 쉽지 않고, 컨트롤할 수도 없고요. 한 제품 정도는 완벽하게 컨트롤되는 제품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양조장을 만들고 ‘사랑과 용기’를 출시했죠. 제 나름대로 생각해 왔던 바를 욕심 내서 구현한 술이에요.
3년 동안 맛의 구조를 고민했다고요.
맞아요. 그렇게 하기도 했는데,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 실제 제품의 스펙을 조율하는 데에는 약간 실패한 것 같아요. 좋은 술이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가 ‘갈아 넣어지는’ 수밖에 없거든요. 자동화된 것 없이 다 인간이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아프게 되고, 지속 가능하지 못한 제품을 만들어버린 셈이죠.
지난번 판매한 배치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양조를 쉬어 간다고 하셨던 것이 이것의 연장선이었군요.
일단 이런 제품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으니까요. 만드는 사람이 병 나는 제품을 만들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 조금 쉬고, 아마 내년 정도에 다시 양조를 하지 않을까 해요. 시스템을 좀 더 잘 갖추고 나서요.
양조사의 시대정신과 소명 의식
‘사랑과 용기’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초기에 이쁜꽃을 시작하며 담고 싶은 세 가지 핵심 가치로 사랑, 믿음, 환상을 꼽아 주셨고, 이것이 크래머리 프로젝트 3종의 이름이 되었는데요. 사랑과 용기도 각각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단어이잖아요.
앞서 우리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얘기하자면, 이쁜꽃만의 로직이 있어요. 시대정신을 가장 큰 단위에서 생각해 보고 그다음 동시대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요. 지금 시대가 세분화, 다양화를 넘어 파편화됐잖아요. 메인 스트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고요. 사랑, 믿음, 환상, 오히려 이렇게 상투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지금 시대에 가장 부족한 게 아닐까. 고리타분하게 생각하지만, 언젠간 다시 돌아와야 하는 가치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 이후 사랑과 용기 같은 경우에는, 물론 여기에서 파생된 거긴 한데요. 남편과 보던 일본 동요 프로그램에서 “사랑과 용기, 그것만 있다면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가사가 나온 거예요. 너무 좋다, 저건 술 이름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사랑과 용기’가 되었죠. 나중에 다시 들어보니 완전히 다른 가사였지만요. (웃음)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며 용기를 내는 것.
양유미 대표
이것이 이쁜꽃의 ‘사랑과 용기’가 여러분께 전하고자 했던 바입니다.”
술에 그런 가치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셨어요?
약간은 인정 욕구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그냥 ‘소맥’ 좋아하는 술고래였는데, 그 덕분에 우연한 기회에 일을 시작하게 됐잖아요. 그런데 양조 일이 되게 고되거든요. 소명 의식 없이는 버틸 수 없어요. 어떤 형태이든 의미를 찾아야 하죠. (웃음) 그렇게 어떤 의미 부여와 리워드의 과정이 반복되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기존에 있던 것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하는 것이 소명 의식”이라고 말씀하기도 했죠. 이쁜꽃이 주류 회사이기 때문에 사랑, 믿음 같은 말이 더 특별하게 다가와요. 술을 통해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일을 이쁜꽃이 하는 것 같아요.
맞습니다. 그런 욕심이 많아요. 뭐가 옳다 그르다 떠나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걸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게 재밌고 좋아요.
문득 처음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으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사실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고심했고 명확한 상도 있었는데, 하다 보니 많이 흐려진 것 같아요. 가장 처음 심플하게 생각했던 것은, 소주와 맥주로 양분된 한국 주류 시장에 양질의 술을 접할 기회와 한국술의 다양성을 전달하고자 싶다는 거였어요. 새로운 술을 통해서 충분히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요. 그런데 생각보다 플레이어 수가 금세 많아져서 다양성 측면에서는 포화 상태가 빨리 달성되었죠.
4⁓5년 사이 생각이 많이 바뀌셨는데요. 그만큼 한국술 비즈니스에서 느낀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너무 많아요. 정말 빠르게 변했어요. 시장 규모로 말씀드리자면, 2017년 곰세마리 양조장을 할 때만 해도 10년 동안 한국술 시장 규모가 500억 원대에 정체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2021년 1,000억 원대가 되고, 2022년 1,600억이 됐어요. 어떻게 보면 여전히 작은 시장이지만, 2~3년 안에 급격한 성장을 한 거죠. 플레이어가 생산한 제품들만 따지면 체감상 100배는 크게 느껴지지 않나 싶어요.
농림축산식품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통주 시장 규모(출고 금액 기준)는 2019년 531억 원, 2020년 627억 원, 2021년 941억 원으로 점차 커지다 2022년 1,629억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젊다’고 표현되는 한국술의 새로운 문법이 곰세마리 양조장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인스타그램 만화를 활용해 마케팅하는 방식도 그렇고요. 이후 들어온 플레이어들이 비슷한 방식을 취하며 변별력이 사라진 것도 처음과 달라진 지점인 것 같아요.
소비자도 ‘한국술이 붐이래’에서 ‘다 똑같지 않나?’까지 굉장히 빠르게 온 것 같아요. 아직 산업화 단계에 이르기 전에요. 산업이라고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1,600억 원대면 중소기업 매출 정도의 수준이잖아요. 갈 길은 아직 좀 먼 것 같아요.
플레이어도 많아지고 처음에 구현하려고 했던 이상도 빠르게 달성된 상황에서 이쁜꽃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떻게 잡고 계세요?
지금 길을 잃었습니다. (웃음) 고민이 많은 시기예요. 그런데 이쁜꽃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명확하게 계시거든요. 그분들께 뭘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욕심도 많았고, 브랜드를 장황하게 전개한 것도 있는데요. 그분들이 이쁜꽃에 기대했던 게 단순히 술 하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영역에서 해낼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살펴보는 중입니다.
주류 산업에서는 브랜딩 외에도 설비와 유통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이쁜꽃은 유통이 원활한 브랜드는 아니에요.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온 저력이 있다면 뭘까요?
저희가 처음에 내세웠던 사랑, 믿음, 환상, 이 기조가 버티게 해준 것 같아요. 그 핵심 가치 때문에 도와주는 분들도, 지켜봐 주시는 고객분들도 많았어요. 그리고 사랑과 용기. 그것들이 가능하게 한 것 같아요.
잠시 양조를 멈춘 상황에서 올해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올해는 콘텐츠 중심으로 움직일 것 같아요. 한국술을 소개하는 만화가 곧 연재될 예정이고, 새로운 협업도 계속 진행하게 될 것 같고요. 저희가 만드는 콘텐츠를 통해서 좀 더 채널의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해요.
그럼에도 이쁜꽃은 여전히 주류 회사겠죠?
그래도 여전히 주류 회사라고 생각해요. 술과 관련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회사인 거죠. 술이 없는 좀 독특한 주류 회사로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술이 저희의 매개체이자 정수예요.
이쁜꽃이 설계한 사려 깊은 주류 콘텐츠
한국술을 다루는 새로운 만화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해 주세요.
한국술의 미래에 대해 그려보려고 하고 있어요. 한국술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요.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의 만화로 풀어내지 않을까 싶어요.
이쁜꽃 자체도 스토리텔링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사랑과 용기 테라피 인스타그램에 아카이빙하는 인터뷰 콘텐츠도 그렇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공유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술을 만드는 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과 비슷해요. 누가 어디에서 누구와 마실지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고객을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이야기들이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상한 술이잖아요. 이상한 회사고요. (웃음) 그런데 저희를 발견해서 제품을 수령하러 이곳까지 찾아오고, 저와 길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독특하죠.
이쁜꽃이 회사라는 성격을 띠고 있지만 저라는 개인은 직접 양조하고, 이를 매개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의미를 찾았던 것 같아요. 그걸 통해서 인간적으로 조금 더 나아진 것 같고요. 그런 경험 자체를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시작한 게 ‘마음의 문제’, ‘사랑과 용기 테라피’ 같은 프로그램이고요.
현재(2024년 3월 기준)는 사랑과 용기 테라피만 운영되고 있다. “양조 클래스를 넘어 사랑과 용기를 불어넣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참여한 사람들은 이쁜꽃이 직접 선택한 단어와 질문들로 구성한 워크북(소책자)을 작성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각자의 술을 빚는다. 사랑과 용기 테라피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되는 인터뷰는 별도로 제작한 콘텐츠이다.
사랑과 용기 테라피는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빚는 건데, 워크숍이나 클래스라고 표현하지 않아요.
워크숍이나 클래스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전문화된 지식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양조까지 도달하는 과정,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거든요. 다른 곳과 협업할 때는 정보 전달의 편의를 위해 클래스 등으로 지칭하지만, 이쁜꽃이 주도적으로 진행할 때는 테라피를 사용하죠. 사랑과 용기 테라피는 워크북을 작성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빚는데요. 이렇게 빚은 술은 정말 허투루 못 마셔요. 그런 경험이 중요하죠. 테라피에 혼자 오셨더라도 다 친구가 되어서 나가요.
사랑과 용기 테라피를 소개하는 문구도 인상적이었어요. “알아두면 삶이 선명해진다”고 표현하셨죠.
보통 음식이나 술을 고를 때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비싼 주류일수록 더 그렇고요. 그런데 나만의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으면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는 거잖아요. 직접 양조한 술은 매일매일 맛이 달라져요.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내가 좋아하는 맛이 나오고요. 매일 맛보면서 나는 이런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내가 만든 술이 기준이 되어서 다른 술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죠. 먹고 마시는 게 별일 아니기도 하지만, 사실 별일이기도 하잖아요.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나만의 기준을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랑과 용기는 술의 이름이기도 해요.
사랑과 용기는 하나의 제품이라기보다는 어떤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사랑과 용기라는 이름의 향수도 연내에 출시할 예정이에요.
최근 이쁜꽃은 예유당과 함께 ‘사랑과 용기’의 향기를 만드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각각 술과 향을 매개로 ‘나다움’을 이야기하는 두 브랜드가 머리를 맞댄 것. 이를 계기로 4주간 나만의 사랑과 용기의 향기를 만드는 ‘사랑과 용기의 향기 워크숍’도 함께 진행한다. 여기서 방점은 ‘나만의’에 찍혀 있다. 단순히 향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고 표현하는 제3의 언어로써 향수를 만들어 나간다.
지금까지 만난 고객 중 인상적인 고객도 있었겠죠?
너무 많은데요. 지금 떠오르는 분은… 이쁜꽃 고객은 아니고, 곰세마리 양조장 때 고객이셨어요. 부인이 암에 걸리셨는데, 원래 술을 좋아하셨대요. 이건 꿀과 물로만 만든 거니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며 연락을 주신 거죠. 그때 재고가 진짜 없었는데, 보내 드렸어요. 그 이후로 제 인터뷰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좋은 댓글을 써주세요. (웃음) 그분이 인상에 많이 남아요. 그런데 저희는 가족들과 마셨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항상 가장 좋아요.
오프라인 활동도 활발하게 이어오고 계세요. 지난해 12월 이쁜꽃이 마켓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연말부터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어요. 그 긴 시간 동안 혼자 모든 걸 다 하고 있었으니 정말 고장이 난 거죠. 그래서 쉬고 있었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그때 마켓이 생각났어요. 마켓은 해볼 수 있겠더라고요.
마켓을 주최한 적이 있으셨어요?
당연히 없죠. 대책 없이 했는데, 너무 잘됐어요. 한 번 더 하니까 또 잘된 거예요. (웃음) 심지어 매출이 성장했어요. 그래서 계속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추진력이 너무 좋으신데요.
겁은 많은데, 그냥 해보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난 연말에 마케팅 공부를 시작하셨다고요.
약간 아쉬웠던 점이, 사실 저희 술이 좋거든요. 그런데 전략을 잘 짜서 마케팅과 브랜딩을 잘 하는 사람들로 많이 언급됐어요. 저희는 전략이 없었어요. 들어보니까 아시겠죠. (웃음) 그래서 연말연시에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공부를 했어요. 정말 많은 콘텐츠를 보고, 경영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얘기도 듣고요. 그래서 깨달은 것은 아, 정답이 없구나. 다들 ‘생겨먹은’ 대로 하고 있구나, 그냥 나인 채로 계속하면 되겠다고 느꼈죠. 모두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의 성공 방식이 다른 사람한테 통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사업이나 브랜드에서는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이쁜꽃 초기에 인스타그램 만화로 그려 주셨던 게 “없는 것을 있는 척하지 않고, 있는 것을 애써 뽐내지 않아도 되는, 있는 그대로 괜찮은 삶. 그리고 그런 맛과 순간들을 나누고 싶다”는 거였어요. 솔직한 말들이 계속 쌓이고 그것이 이쁜꽃의 정체성이 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이를테면 저희 술이 다른 품목에 비해 고가의 제품이니까 케이스를 비싸게 만들어야 하나, 뭐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건 우리가 아니니까 하지 말자, 이 얘기를 남편과 많이 했어요. 감사하게도 그대로를 좋아해 주셨고요.
결국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하네요.
맞아요. 이쁜꽃이 콘텐츠 중심인 것도 제가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걸 잘하고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협업 역시 과정이 즐겁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빛나게 하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언가가 가진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애정을 담아 전달하는 것이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이쁜꽃의 콘텐츠가 지향하는 바가 있을까요?
큰 꿈인데요. 술과 관련해서 가장 우아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우아함은 사려 깊음 같아요. 술과 관련한 콘텐츠가 때로는 무책임하거나 공격적일 때가 있어요. 미식의 영역으로 넘어가거나 누가 옳고 그르다 논할 수도 있고, 특정 집단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그렇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쁜꽃의 콘텐츠도 누구도 상처 주지 않도록 잘 정제하고 있어요. 주변에 보여주며 선을 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런 술도 다시 만들 수 있는 회사이면 좋겠습니다. (웃음) 살아가는 게 보편적인 거잖아요. 그래서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즐거운 술을 다시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좋은 술이 있으면 좋은 음식을 먹고 싶고, 좋은 술과 음식이 있으면 좋은 사람과 같이하고 싶잖아요. 그런 일상을 꾸려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들을 계속 만들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