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
문화를 디자인하는 콘텐츠 프로듀서
"이제 ‘지속 가능’이라는 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디자인도,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거죠. 디자인을 ‘산업 중심’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이나미 스튜디오 바프 대표의 행보를 살펴보면 답은 ‘없다’이다. 북 프로듀서, 전시 큐레이터, 미술 감독, 문화 기획자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공공디자인엑스포, 시민청 같은 국가적 문화 행사에서도 그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디자이너야말로 개인의 역량에 따라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이나미 대표. 그의 족적은 곧 디자이너가 성장하며 뻗어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등대다.

얼마 전 서울 시민청에서 올린 ‘작고 뜻깊은 결혼식’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북 프로듀서와 전시 기획자로서의 활동 범위에서 벗어나 결혼식 기획까지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서울시청 신청사의 지하 1층과 2층은 서울시 홍보관으로 사용할 예정이었어요. 그러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 이후 홍보관이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름도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자는 뜻에서 ‘들을 청(聽)’ 자를 붙여 시민청이 되었죠. 당시 저와 은병수 은카운슬 대표를 비롯한 몇 분이 서울시 전체를 아우르는 전시, 문화에 관련된 자문위원을 맡고 있었어요. 시민들을 위한 공간 계획이 생각보다 진척되지 않자 시장님이 저희들에게 TF(Task Force) 팀을 꾸려 진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울 시민청 기획자로, 은병수 대표님이 서울시 전시 예술 감독을, 이탈리아 건축가들로 구성된 모토엘라스티코가 시민청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이 리서치를 맡아 진행하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지난 1월 12일에 시민청을 오픈하게 된 거예요.
흔히 공공장소에서 올리는 결혼식은 예식을 위한 전문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신부들이 꿈꾸는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멀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럽 성당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결혼식으로 예비 부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더라고요. ‘작고 뜻깊은 결혼식’에 대해 자세히 좀 얘기해주세요.
요즘 결혼 문화를 살펴보면 드레스, 메이크업, 웨딩 촬영, 결혼식장을 패키지 상품처럼 한데 묶어 판매하는데, 화려하고 값비싼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점점 사치스럽게 변하고 있더라고요. 결혼식의 주인공은 젊은이들인데, 정작 그들은 청년 실업 같은 다양한 문제 때문에 결혼식을 올릴 돈이 없어요. 결국 부모의 돈을 빌려 결혼식을 올리는데, 자녀 한 명당 결혼을 시키는데 몇 천만 원의 큰돈이 들어요. 젊은이들이 결혼식을 올린 뒤 그 돈을 갚을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이 받는 연봉이 얼마나 되겠으며 아이까지 낳으면 점점 더 힘들어지겠죠. 그렇다면 부모들의 사정은 어떨까요? 요즘은 평균적으로 48세가 되면 퇴직을 해요. 근데 앞으로 100세 시대가 열린대요. 회사에서 쫓기고 자식들에게 쫓기는데, 앞으로 살 날은 많이 남아 있고, 대책이 안 서다 보니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50대 자살률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데, 비대해진 결혼식 문화가 이런 사회 문제에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든 인생을 행복하고 멋있게 잘 살고 싶어 하잖아요. 예쁘게 잘 살기 위해 디자이너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봤습니다. 사회 운동을 개인의 힘으로 하는 건 쉽지 않지만 시민청이라는 영향력 있는 주체가 함께한다면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부터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 위원 54명 중 한 분으로 활동하고 계시죠? 그곳에서 하는 일을 좀 들려주세요.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앞으로 서울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연구하는 모임이에요. 박원순 시장님은 스스로 명함에도 박아둔 것처럼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그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멋있는 건물을 지어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나은 삶을 위해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 복지에 힘을 싣자는 거예요. 예전에 사람들은 으레 디자인 하면 ‘겉모습이 멋있는 것’, ‘값비싸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가 시장이 된 이후 보통 사람들이 디자인을 인식하는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박원순 시장님이 디자이너의 힘을 빌려 만들고자 하는 복지란 무엇인가요?
공교롭게도 복지라는 단어가 정치적으로 사용되고 있잖아요. 그 뜻을 살펴보면 행복하게 사는 게 바로 복지예요. 근데 이왕이면 멋있고 재밌게, 효율적으로 편하게 살면 좋잖아요. 그걸 제일 잘하는 사람이 바로 디자이너라는 점에 공감하시는 거죠. 그래서 요즘 들어 디자인이 더욱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시민청의 ‘작고 뜻깊은 결혼식’ 현장, 2013. 결혼식장의 꾸밈을 생화 대신 화분이나 과일 등을 이용해 쓰레기를 줄이고 식이 끝난 후에는 하객 답례품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웨딩드레스는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으며 추후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리폼이 가능하다. 시민청 결혼식은 사전 연구를 통해 시민이 활용할 수 있는 두가지 결혼식 포맷을 제안한다. 친환경 결혼식은 사회적 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 전통의 현대화를 통한 한식 혼례는 ‘아름지기’가 함께한다.
(3) 전래 동화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 1988. ‘효’를 주제로 다룬 전래 동화. 글과 그림, 디자인까지 직접 프로듀싱해 만든 첫 번째 결과물이다. 현재 한림출판사에서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출간되고 있다.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기획 큐레이터, 2010 공공디자인엑스포 미술 감독, 최근에는 시민청 기획자 등 주요 공공 행사의 프로듀서로 활동하셨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기획 큐레이터로 참여한 이후 개인을 넘어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디자인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문화 정책에 관심을 가졌다면 공공디자인엑스포를 기획하면서는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구 환경 문제와 관련해 오존층 파괴, 탄소 발생, 쓰레기 발생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이제 ‘지속 가능’이라는 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디자인도,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거죠. 디자인을 ‘산업 중심’으로 바라보던 시각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을 소비자로 보던 관점에서 사용자 관점으로 시각을 바꾸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사용자 입장을 생각해 가장 좋은 것을 주려는 노력이 바로 디자인의 목적이며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용자에게 보다 나은 가치를 줄 것인가’가 디자이너의 가장 갈급한 고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 프로듀서이자 큐레이터, 기획자 등 1인 다역을 해내고 계십니다. 대표님의 기획력과 디자인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일이 들어오면 ‘이 부분은 참 재밌겠다’라는 국면을 잘 찾아내요. 그래서 문제점도 빨리 찾는 것 같습니다. 문제를 알아야 일을 빨리 해결할 수 있잖아요. 제가 찾아낸 문제점이 정확히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면 다음 일들은 순차적으로 쉽게 진행되죠. 문제점도 잘 모르는 채 그저 감각적으로만 디자인을 하려 들면 일이 더 꼬이게 돼요. 취향은 개인마다 다른데, 클라이언트와 저의 취향이 일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감각적으로만 접근한다면 일에 한계가 올 거예요. 디자인은 감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디자이너에게 감각은 중요하지만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디자인 작업의 본질상 감각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제가 보는 관점에서 결혼식이나 디자인비엔날레는 모두 다 디자인 프로젝트인 거예요. 조금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문제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다는 통찰력과 판단력, 그리고 의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대표님은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해 일에 깊이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일을 하거나, 아님 아예 안 하거나지 중간은 없어요. 정해진 시간 동안 엄청난 몰입이 가능한 건 사실이지요. 서너 시간은 기본이고, 정말 급할 땐 여덟 시간 이상 꼼짝 않고 작업에 몰입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작업의 성취율도 높습니다. 하지만 몰입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고 나면 거의 모든 기능이 중단되다시피 해 그대로 잠을 자야만 해요. 저의 장점 중 하나가 숙면이에요(웃음). 숙면은 피로해소제나 마찬가지죠. 어쨌든 디자이너에게 효율적 작업을 위해 몰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의 철칙 중 하나가 상대방의 일의 흐름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팀원들과의 회의가 필요하거나 부탁이 있어도 먼저 이메일로 용건을 전달합니다. 이메일은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이런 상황이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데 편리하죠.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을 때 그 일을 하면 됩니다. 서로 간에 작업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 굉장히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발견했나요?
대학 3학년 때 월간 <디자인>을 보다 우연히 벨기에 작가 장 미셸 폴롱(Jean-Michel Folon)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접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얘기지만 당시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장르가 있는지도 몰랐죠. 그 정도로 당시 한국은 디자인에 대한 개념조차 희미한 시절이었어요. 아무튼 그의 작업을 본 순간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디에서 공부를 하면 좋을지도, 당시 월간 <디자인>을 통해 미국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rt Center College of Design)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웃음). 그래서 바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졸업할 시기가 되자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될 것인가’에 대한 정체성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책이니까 스스로 책을 발생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책을 출판하려면 글도 쓸 줄 알아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 하며 디자인도 해야겠더라고요. 단순히 북 디자이너가 아닌 책에 대한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는 북 프로듀서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책에 대해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1988년 대학원 시절에 만든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은 한글과 영어, 독일어가 모두 열거된 동화책으로 지금까지 출간되고 있습니다. ‘북 프로듀서 이나미’를 알리게 된 의미 있는 책일 것 같은데요.
석사과정 논문을 쓰기 위해 ‘전래 동화를 통해 비교한 한국인의 마음과 일본인의 마음’에 대해 연구했었어요. 다름 아닌 저의 뿌리 찾기를 위한 시도였죠. 일본 전래 동화의 전통적인 소재와는 두드러지게 구분되는 한국인만의 소재, ‘효(孝)’를 주제로 다룬 동화예요. 우연히 디자인하우스와 인연이 되어 1988년에 한글과 영어가 병기된 <나무꾼과 호랑이 형님>을 출간하게 되었어요. 이 책은 10년 뒤 프랑크프루트 도서출판박람회에서 오스트리아 출판사 hpt에서 보고 독일어판 의뢰가 들어와 2판 인쇄를, 지금은 한림출판사에서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출간되고 있습니다.
미국 유학 중 결혼도 하고 아이도 출산하셨습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도 시작했고요. 당시 미국에서 디자이너로서, 그것도 동양 여성이 혼자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엄마인 미국인 부인을 알게 되어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를 맡기고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녔죠. 인쇄소를 찾아 명함을 찍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동네 근처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들의 리스트를 뽑아 전화를 했어요. 무거운 포트폴리오 가방을 들고 이곳저곳을 방문하던 어느 날, 한 인쇄 회사의 세일즈맨인 중년 남자에게 전화가 걸려 왔어요. 저의 첫 클라이언트인 래리 블랙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의뢰한 일은 ‘자유(自由)’라는 한자를 캘리그래피로 써달라는 것이었어요. 중국 베이징에서 발생한 천안문 자유 항쟁 사건에서 비롯된 어떤 영감으로부터 시작된 일인 거죠.
작업에 돌입하기 전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다 ‘자유의 완성은 스스로의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 나름대로 이런 영어 표현을 만들어보았어요. ‘Of his own accord, man thinks and acts.’ 그러자 그가 자유에 대한 저의 생각과 캘리그래피를 가지고 티셔츠를 만들자고 제안하더라고요. 디트로이트 지역의 재력가 한 사람과 변호사 한 사람이 투자자로 나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메이시스 백화점에서 깊은 관심을 갖자 그 프로젝트는 급속도로 도약했고 자본금 1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약 5억 4000만 원)의 주문까지 육박하는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판명이 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차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파트너들 사이에 지분율 조정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해 결국 납품 작업에 문제가 생겼고, 이것이 법적 소송으로 불거지는 동안 모든 일은 물거품이 되어버렸죠. 다시 생각해도 정말 내게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은 프로젝트로 기억에 남네요.
1993년 한국으로 돌아와 월간 <이브> 편집장 겸 아트 디렉터를 맡으셨습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새롭게 발행을 기획 중이던 여성지의 창간 작업에 대한 제안을 받고 13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저 혼자뿐인 텅 빈 사무실에서 직접 편집 기자와 디자이너를 뽑아 팀을 구성하고 직원들이 사용할 가구를 주문하는 일부터 잡지 콘셉트와 이름, 로고 디자인 등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하는 일을 도맡아 창간 준비 작업을 시작했죠. 신이 창조하신 가장 원초적 여성으로서의 이브, 사랑스러운 연인으로서의 이브, 위대한 모성애를 지닌 어머니로서의 이브, 악녀 이브 등 매달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테마로 즐거운 정보를 제공하는 잡지였습니다. <도날드 닭> 작가 이우일, <신뽀리> 작가 박광수, 박명천 CF 감독 등이 월간 <이브>를 통해 처음 소개되기도 했죠. 하지만 현실과 이상과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재정난에 몰리게 되었고 결국 1년 만인 1994년 겨울 저는 패배를 인정하고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발행되었던 잡지로 <세씨> <인서울 매거진> 등이 있었고, 이후 <이브>를 벤치마킹한 <이매진>이 있었지요. 남들보다 딱 반 발짝만 앞서도 모험은 무모한 것인데 앞서도 너무 앞섰던 게 가장 큰 폐인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후 1995년 스튜디오 바프를 설립하셨습니다.
잡지를 만드는 1년 동안 완전 연소를 한 탓에 정신과 육체가 너무 지쳐 있었어요. 잠시 공황 상태로 지내다 일단 사무실을 하나 얻어놓고 여행을 갔다 온 뒤 생각을 해봤죠. 초심으로 돌아가보니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책 만드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은 책, 선물하고 싶은 책을 기획해보자 결심하고 혼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획해 세상에 내놓게 된 책이 삼성출판사에서 나온 기프트 북 ’100과 사전’ 시리즈예요. <남자를 배우는 100과 사전>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스트레스 100과 사전> <다이어트 100과 사전> 등의 시리즈로 8권의 책을 만들었죠. ‘100과 사전’ 시리즈를 통해 ‘북 프로듀서’로서의 역할과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이로써 바프의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알릴 수 있었던 의미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북 디자이너가 아닌 북 프로듀서를 지향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북 디자이너보다 북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을 넘어 책의 맥락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이 컸기 때문입니다. 통합적 사고를 가지고 혼자서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는 분야가 책이라고 생각해 북 프로듀서가 된 거고요. 그래서 글쓰기와 그림, 디자인을 공부한 거예요. 만약 글이 없다면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겠어요? 북 디자이너는 책의 겉모습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글로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목적과 가치를 가지고 글을 쓸 줄 아는 디자이너라면 사용자 입장도 잘 헤아릴 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과 글쓰기가 모두 가능한 디자이너만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그저 텍스트를 받아 프로그램에 얹히기만 하는 식의 디자인만 한다면 디자이너의 자리는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봐요. 시대적으로도 디자인의 개념이 점점 확장되고 있어요. 사람들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고요. 디자이너가 문화 기획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사람들과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에요.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요. 경영만으로는 사용자들과 소통하기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니 디자인의 힘을 빌려 유연한 방식으로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에요. 개인의 역량에 따라 활동 범위를 점점 넓혀갈 수 있는 직업이 바로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북 프로듀서로 알려지며 의뢰받은 대표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기프트 북 ‘100과 사전’ 시리즈 덕분에 글도 쓰고 책도 디자인하는 북 프로듀서라고 알려지며 순수 예술가들의 포트폴리오 북이나 전시 도록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에맞게 책을 디자인하다 보니 실험적인 요소들을 넣어 디자인하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소위 말하는 아트 북으로 분류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웹사이트 디자인 시대가 도래했죠.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디자인 포털 사이트 ‘디자인DB’를 만든다며 저에게 기획을 맡기더라고요.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단체인만큼 한국 문화에 대해 디자인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당시 플래시가 막 나올 때라 그런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응용한 이미지 구성을 기획해드렸더니 덜컥 바프에서 제작을 맡아 진행해보라는 거예요. 4~5명의 직원 중 사이트를 구축시킬 수 있는 프로그래머도 없었고 웹사이트 디자인을 해본 적도 없는데 난감했죠. 하지만 저는 맨땅에 헤딩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밤을 꼴딱꼴딱 새워 공부해가며 웹사이트를 디자인했습니다. 결론은 디자인 테크닉이 필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달려 있었던 것이고, 이 점에서 바로 프로듀서로서의 디자이너의 강점이 발휘될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를 뽑을 때 프로듀서를 지향하는 디자이너를 뽑습니다. 디자인 테크닉은 노력을 통해 곧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기획력이 좋은 책, 가치 있는 책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대량으로 찍어내야만 했고, 유통 과정도 복잡했고요. 일단 책이 나왔다 하면 독자들은 ‘그 책은 당연히 훌륭하니 나왔겠지’라고 믿고 구입했던 시대였죠. 하지만 지금은 1인 출판이 가능한 시대인 데다 대량으로 책을 만들지 않아도 돼요. 그 사람이 작가일 필요도 없고 문학계에 등단할 필요도 없어요. 자신만의 특별한 콘텐츠가 있다면 얼마든지 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에요. 자가 출판으로 다양한 성격의 책들이 범람하는 시대에서 독자들은 ‘이걸 왜 사야 하지?’라며 자신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 책인지 더 꼼꼼히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기에 한 가지 생각을 더한다면 ‘굳이 종이 책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져봐야 해요. 태블릿 PC 덕분에 e-북으로 책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대예요. 그러니 한편으론 종이를 들여서 책을 만드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결단력이 필요해졌어요. 책을 찍었는데 팔리지 않는다면 그건 쓰레기, 즉 환경에 폐해가 되는 거예요. 게다가 종이 책은 물리적이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인쇄소로, 서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다 싣고 다니죠. 자동차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는 오존층을 파괴해요. 이런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앞으로는 책을 만들 때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요즘 출판업계를 살펴보면 세계문학전집을 전자책으로 펴내거나 종이 책과 동시 출간하는 등 전자책 출판에 전력투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종이 책의 보완재나 경쟁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내용의 책을 어떠한 매체를 통해 선보일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지요. 종이로 나오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전자책으로 나오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에 고민이 필요해졌어요. 하지만 전자책의 경쟁 상대는 종이 책이 아닐 것 같아요. 장르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페이스북 같은 SNS나 3D 애니메이션 같은 것이 경쟁 상대가 될지도 몰라요. 종이책은 종이를 투자해서 만들어야만 하는 가치 있는 결과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졌을 때 어떤 느낌인지, 그 느낌이 책 내용과 어떻게 주고받으며 내 옆에 존재할 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는지를 연구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 책은 훨씬 더 아날로그적으로 섬세하게, 종이와 인쇄 기법에 대해서도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더 많은 고민을 거쳐 만들어야 합니다.
북 프로듀서로 출발해 전시 큐레이터, 문화 기획자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활동하는 선배로서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화는 누가 디자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한 시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받아들여지기가 반복되며 차곡차곡 쌓여야 문화가 되는 거예요. 문화는 개인이 주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어떤 좋은 문화를 확 터트려줄 사람이 필요하긴 하죠. 디자인을 ‘명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동사’라고 생각해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디자인의 목적어가 될 수 있어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디자인의 목적어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들이 관심을 가져온 디자인의 목적물이 눈에 보이는 물건과 같은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디자인의 영역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 삶 속에 포진해 있는 다양한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해 보다 효율적이고 매력적인 방법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우리 삶을 보다 즐길 만한 삶으로 만드는 일, 그것은 누구보다도 디자이너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