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공 디자인 몰아 보기

2006년 서울시는 ‘디자인서울1.0’을 통해 공공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17년 뒤인 2023년엔 ‘디자인서울2.0’을 발표하며 한층 진화한 도시 디자인 비전을 선보였다. 그리고 2025년. 서울은 2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디자인을 매개로 도시의 면모를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바꿔왔다. 지금 그 흐름을 다시 살펴보며 오늘의 서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가늠해본다.

서울시 공공 디자인 몰아 보기

포용과 접근의 디자인, 지하철 노선도

서울은 이제 단순한 수도가 아니다. 글로벌 도시 경쟁력 6위, 전 세계가 주목하는 메가시티가 됐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매일 수백만 명이 오가는 길이 있다. 바로 지하철이다. 하지만 이 지하철을 상징하는 노선도는 오랫동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1974년 1호선 개통 이후 지하철 망은 23개 노선, 624개 역으로 확장됐지만, 노선도는 여전히 1980년대의 디자인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 틀에 새로운 노선을 덧붙이는 방식으로만 업데이트되다 보니 정보는 넘쳐났고, 핵심은 보이지 않았다. 방향도, 위치도 감을 잡기 어려웠다. 일반 역과 환승역의 구분은 흐릿했고, 공항이나 강, 바다 같은 주요 지형지물의 위치도 파악하기 힘들었다. 복잡하게 얽힌 선과 정비되지 않은 각도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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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디자인한 서울시 지하철 노선도.

이런 불합리함을 인식한 서울시는 2023년 지하철 노선도 전면 개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전문가 심사와 제안서 평가를 거쳐 디자인 전문 회사 ‘샘파트너스’를 수행 업체로 선정하고, 함께 본격적으로 개편 작업을 시작했다. 핵심은 하나였다. 누구나 보기 쉬운 디자인.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읽기 쉬운 도시를 만든다. 서울시는 우선 런던, 뉴욕, 도쿄, 파리, 베를린 등이 따르고 있는 ‘지하철 국제 표준 8선형’ 디자인을 도입했다. 노선은 수평, 수직, 45도 대각선으로만 흐르도록 정리했고, 2호선 순환선을 도시의 심장처럼 중심에 배치해, 서울의 도심부가 더욱 또렷이 드러나도록 했다. 복잡했던 환승역 표시는 신호등처럼 보이는 연결고리 구조로 바꾸었다. 각 노선의 색상을 나란히 배열해 환승 구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누구나 보기 쉬운 디자인이란 모든 이용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색약자, 시각 약자, 고령자 등 교통 약자를 위한 개선도 이뤄졌다. 기존 노선도에서는 메인 전철이든도시 철도든 모두 굵은 선 하나로 표시해 구분이 어려웠다. 이번 개편에선 굵은 선, 가는 선, 겹선, 점선 등 다양한 선 형태를 도입해 노선별 특성을 명확히 표현했다. 호선별 색상도 더 밝고 선명하게 조정했다. 또 역명보다는 ‘역 번호’를 보고 이동하는 외국인 여행자를 고려해, 다국어 전체노선도에는 전 역의 번호를 병기했다. 단일 노선도 역시 전체 노선도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색상 체계와 신호등 방식의 환승 표시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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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노선도에는 ‘서울알림체’를 사용해 서울다움을 표현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여기서 더 집중한 것은 단순한 가독성을 넘어, 노선도 안에 ‘서울다움’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우선 한강과 서울시 경계 같은 지리적 요소를 단일 노선도에 반영해, 노선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서울의 윤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도록 했다. 또 지리적 감각을 회복하는 것도 이번 개편의 중요한 목표였다. 예를 들면 기존 노선도에서는 3호선의 대화역과 오금역이 좌측 끝에 나란히 배치돼있지만, 실제로는 서울의 양 끝단에 해당하는 위치다. 이런 공간적 왜곡을 바로잡고, 노선이 실제 어떤 지역을 지나며 연결되는지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서울 지도와 겹쳐 보여주는 노선도 이미지도 함께 제공했다.

또한 정보 전달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스러운 손 글씨 형태의 ‘서울알림체’를 사용했다. 이는 복잡한 정보 속에서도 시선을 끌고 빠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크린 도어에 설치된 투명 OLED 디스플레이에선 노선도와 운행 방향, 비상 탈출 안내 등을 영상 형태로 실시간 제공한다. ‘살아 있는 지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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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도어에 설치된 투명 OLED 디스플레이. 노선도와 운행방향 등을 영상 형태로 실시간 제공한다.

이 노선도는 디자인을 넘어 실제 이동 경험을 바꿔놓았다. 역 찾기 소요시간은 최대 55%, 환승역길 찾기 시간은 최대 69%까지 단축됐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내국인보다 21.5%더 빠르게 길을 찾는 효과를 보았다. 디자인에 대한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2024년 서울 지하철 노선도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레드닷 어워드 브랜드·커뮤니케이션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지하철 노선도를 전동차, 승강장을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해 서울을 대표하는 디자인 아이콘으로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Interview
이창호 샘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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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서울 지하철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정도로 노선망이 복잡하며, 일상적인 이용자부터 외국인 관광객, 교통 약자까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한다. 따라서 이용자가 쉽고 빠르게 자신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목적지까지의 이동 경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용자들이 실제 생활에서 형성하는 ‘멘탈 맵’을 면밀히 분석하고, 서울의 상징적 지리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실용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 정보 구조를 구현하는데 중점을 뒀다.

이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공공 디자인은 특정한 사람만을 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포용성과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향후 더 확장될 교통 체계에서도 지속 가능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 프로젝트가 서울 시민은 물론 서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제 정말 길 찾기가 쉬워졌다’는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더불어 일상에서 공공 디자인의 긍정적인 영향과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작지만 뿌듯한 자부심으로, 또 서울의 도시 정체성을 상징하는 디자인 중 하나로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조용하게 도시를 바꾸는 표준 디자인

하지유지下知有之. 〈도덕경〉 17장에 나오는 말이다. 최상의 지도자는 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사실만 알 뿐 깊이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공공 디자인도 이와 비슷하다. 도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눈에 띄지 않으면서 잘 작동할수록 그 존재는 오히려 투명해진다. 표준디자인이 특히 그렇다. 반대로 디자인이 잘못되면 금세 모두가 불편을 느끼고 불만을 쏟아낸다. 도시가 어지럽고, 시설물마다 제각각이라면 공공 디자인은 오히려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서울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시설물은 제각각이었고, 통일성 없는 구조물로 인해 도시 풍경은 복잡하고 산만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공공시설물표준디자인 개선 작업을 시작한 이유다. 맨홀, 자전거 거치대, 공원벤치, 관광 안내 부스처럼 일상과 맞닿은 것부터 거리 두기 픽토그램, 생활 방역 디자인 같은 팬데믹 시대의 대응 시설까지. 도시의 일관성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매일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서울은 기본적으로 10년 이상 유지 가능한 디자인을 만들고, 도시 전체가 조용히 정돈될 수 있도록 디자인의 기준을 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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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개선을 거친 지하철 캐노피.

최근에는 특히 두 가지 시설물이 표준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옷을 입었다. 지하철 캐노피, 그리고 구두수선대·가로판매대 같은 보도상영업시설물이 그 주인공이다. 이 두 시설물의 변화는 제한 경쟁 입찰로 선정된 디자인 회사 ‘디자인팩토리’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 그동안 지하철 캐노피는 설치된 시기와 장소에 따라 디자인이 제각각이었고, 도시 미관을 해치거나 유지·관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출입구 번호나 위치 정보는 이용자입장에서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었고, 멀리서도 눈에 띄는 상징성이나 식별력 또한 부족했다. 게다가 주변 시설이나 환승 정보 같은 부가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도 거의 없어, 외국인 등 그곳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은 구조물이었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기능과 미관을 모두 고려한 새로운 지하철 캐노피를 디자인했다. 전체 캐노피를 모듈화해 구조 안정성과 시공 효율성을 높였고, 디자인에 일관성을 더해 도시 경관의 정돈된 인상을 되찾았다. 출입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상단에 번호를 큼직하게 표기하고, 야간 시인성을 고려해 조명 요소도 통합했다. 또한 캐노피에는 디지털안내 패널 혹은 표준화된 지역정보 안내판을 설치해 이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즉시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는 이 구조물에 ‘서울다움’이라는 감각을 더했다. 기존의 무채색, 폐쇄적 구조에서 벗어나 따뜻하고 개방적인 인상을 주는 공공시설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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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디자인의 가로판매대와 구두수선대를 시범 전시하고 있다.

보도상영업시설물에는 깔끔한 외관을 더하는 동시에, 운영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용자 중심디자인을 적용했다. 그 전까지 가로판매대와 구두수선대는 대부분 2009년에 설치한 것으로 노후화가 본격화되고 있었다. 외관은 변색했고 구조물은 부식되거나 손상돼 도시의 풍경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문제는 단지 오래된 외관만이 아니었다. 시설물마다 디자인이 제각각이라 거리의 조화는 무너졌고, 어두운 ‘기와진회색’ 색상은 전체 경관을 침체돼 보이게 했다. 게다가 외부에 물건을 쌓아놓는 구조, 협소한 내부 공간, 부족한 통풍과 환기 등은 운영자의 작업 환경을 심각하게 제한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간 구조부터 새롭게 다듬었다. 천장높이를 2m로 확보하고, 인체공학적 행동반경을 고려해 좁고 답답했던 구조를 확장했다. 상부공간에는 외부 적치물을 둘 수 있도록 설계하고, 전면부는 넓게 개방했으며 측면에는 개폐형 창문을 달아 통풍과 환기가 잘되도록 했다. 판매 품목의 다양성도 고려해 수납구조를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마지막으로 외장은 오염에 강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하고, 색상은 기존보다 한층 환한 ‘밝은 기와진회색’을 사용해 도시 전체에 깨끗하고 생기 있는 인상을 더했다. 서울시는 안전과 편의는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의 첫인상까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표준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변화가 결국 서울의 인상을 더 정돈되고 선명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Interview
황규연 디자인팩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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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 도심과 어울리는 세련된 조형성과 절제된 색채 계획이 필요했던 이유다. 보도상영업시설물의 구조는 경량 금속재료와 비례감 있는 면 분할, 라인 패널 디자인을 통해 경쾌하면서도 정돈된 인상을 주도록 했다. 공공시설물이 시각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기능성을 유지하도록 균형을 잡는데 주력했다.

사람들에게 이 디자인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표준 디자인 개선 사업은 단순한 시설물 교체를 넘어, 서울의 거리에서 시민들이 매일 마주치는 공공 서비스 공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정돈된 외관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시설물이 서울의 도시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시민들이 ‘서울은 거리의 작은 시설물조차 세심하게 관리한다’라고 인식했으면 좋겠다.


사람의 행동을 디자인하는 펀 디자인

앞서 살펴본 지하철 노선도, 지하철 캐노피, 보도상영업시설물 등은 기존 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춘 작업이었다. 하지만 유지·보수만으로 도시를 이끌 수는 없는 법. 때로는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상상하고 제안하는 창의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2022년 서울시는 그 상상에 ‘펀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시민의 일상에 유쾌함과 감성적인 풍요를 더하는, 도시에 매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펀 디자인 시설물은 권은선 서울시 공공디자인진흥팀 팀장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됐다. 단초는 아주 작고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는 어느 날 찾은 한강공원의 의자가 전부 90도로 반듯하게 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강을 찾는 서울 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은 이미 다변화되었는데 왜 의자만 그대로일까? 이 질문은 사람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조금 더 느슨한 의자’를 상상하는 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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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이 떨어지는 찰나의 곡선을 형상화한 의자 ‘소울드롭스’.

그렇게 탄생한 펀 디자인 사업의 첫 결과물이 바로 벤치 ‘소울드롭스(Soul Drops)’였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찰나의 곡선을 형상화한 이 벤치는 형태부터 구조까지 유연함을 핵심으로 한다. 스툴, 선베드, 라운지형 좌석 등 다섯 가지 모듈로 구성되어 있어 1인용부터 소규모 모임용까지 다양하게 배치할 수 있다. 공간의 특성과 사용 목적에 따라 유기적으로 분리 및 결합할 수 있어 자율적이고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낸다. 서울 도시 브랜드의 색상을 반영한 다채로운 컬러와 초고성능 콘크리트(UHPC)를 활용한 구조는 디자인적 매력은 물론, 내구성과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뛰어나다. 사용자의 안전을 고려해 모듈 하부와 모서리는 모두 라운딩 처리했고, 중앙에는 배수홀을 두어 비가 온 뒤에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디자인은 2023 iF 디자인 어워드 제품 부문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서 본상을 받았다. 펀 디자인의 또 다른 사례인 그늘막인 ‘구름막’ 역시 팬데믹 시기에 시민의 감성적 안전을 고려한 결과물로 주목받았다. 하얀 구름 아래 누워 있는 듯한 형태를 통해 자연스럽게 거리 두기를 유도한 이 시설물 또한 iF 디자인 어워드 건축 부문 본상을 받았다.

이와 같은 반응에 힘입어 서울시는 펀 디자인을 더욱 본격화한다. 사례와 노하우를 정리한 책자 〈서울 펀 디자인 레시피 30〉을 발간하고 새로운 디자인의 벤치 8종과 조명 1종을 추가로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창의성과 실행력을 고루 갖춘 디자인 회사를 선별했다.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시민과 소통하고 공공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아이디어와 실현 능력을 주요기준으로 삼았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디자인 스튜디오 BKID와 협업해 탄생한 ‘폼&폼(Form & Foam)’ 체어다. 이 벤치 역시 다양한 자세를 고려해 앉거나 기대거나 누울 수 있도록 세 가지 높이로 설계했다. 서울색인 스카이코랄, 그린오로라, 그레이 등 서울의 도시 환경과 어울리는 색상을 적용했고, 설치 장소에 따라 색상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소재는 100% 재활용 가능한EPP(Expanded Polypropylene)를 사용했다. 가볍고 탄성이 있으며 내구성도 뛰어나 필요할 땐 손에 들고 옮기는 것도 가능하다. 유지·관리 측면에서도 효율적이고, 반복 설치나 보관에도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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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냇가’ 행사 당시 청계천에 폼&폼 체어를 진열한 모습.

폼앤폼은 단순한 착석을 넘어 사용자의 머무는 방식 자체를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바꿔놓았다. 이런 효과가 극대화된 사례가 바로 청계천에서 열린 ‘책 읽는 냇가’ 행사였다. 당시 청계천을 따라 배치한 폼&폼 체어에서 시민들은 책을 읽거나 기대고 눕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소를 향유했다. 도심 속 공공 공간을 유연하고 감각적으로 채울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처럼 공공 디자인은 도시의 외형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행동을, 관계를, 그리고 궁극적으로 도시의 감도 자체를 바꿀 수 있다.

Interview
송봉규
BKID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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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때 특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성, 부담 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에 초점을 맞췄다. 단순히 공공의자로서 기능을 충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울이라는 도시 환경에서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재료와 구조를 설계하고, 주변 건축물과 거리 풍경 등 도시의 레이어와도 조화를 이루는 조형 언어를 구성하고자 했다. 또 시간이 지나 마모되고 사용 흔적이 남더라도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

이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서울의 상징적인 의자는 아마도 편의점 앞의 플라스틱 모노블록일 것이다. 폼&폼 체어도 그 의자처럼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종종 ‘서울엔 공원이나 공공 공간에 앉을 자리가 너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폼&폼 체어는 ‘만만한’ 의자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더 자유롭게 사용했으면 한다. 복잡하고 바쁜 서울의 도심 속에서 잠시 쉬어가며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의자. 그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


서울을 기억하는 또 다른 요소, 서울색과 서울빛

서울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이는 랜드마크를, 어떤 이는 건물 높이를, 또 누군가는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속도를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걸 떠올리는 사람도 생길지 모른다. 바로 서울의 색과 빛. 서울시는 2024년 스카이코랄, 2025년 그린오로라처럼 해마다 ‘올해의 서울색’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미 2008년, 기와진회색과 꽃담황토색 등 서울 고유의 색을 개발한 바 있다.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조화로운 경관을 조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도시가 담아야 할 기능과 역할은 훨씬 더 확장됐다. 환경, 브랜드 메시지, 이벤트, 디지털 미디어 환경 등 도시가 반영해야 할 맥락이 훨씬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시민의 감정, 사회적 이슈,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까지 시시각각 변한다. 서울시는 이런 도시의 속성을 감안해 ‘하나의 상징색’을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일반적인 도시브랜딩 전략을 탈피해 매년 ‘올해의 서울색’을 선정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이 색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선 서울 시민의 라이프스타일변화, 사회적 이슈, 도시 트렌드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SNS에서 자주 언급되는 감정이나 키워드, 도시를 둘러싼 분위기 등이 주요 단서가 된다. 여기에 시민 대상 설문 조사를 더해, 현재 서울의 정서적 흐름을 읽어낸다. 이렇게 도출된 키워드를 바탕으로 이미지 색채 분석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는 색채, 디자인, 패션, 조명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다. 그렇게 한강의 핑크빛 노을을 담은 2024년의 스카이코랄, 푸른 가로수의 인상을 담은 2025년의 그린오로라가 탄생했다.

이 색은 단지 선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RGBW 조명으로 연출 가능한 형태로 변환되어 N서울타워, DDP, 서울시청 등 서울의 주요 야간 명소에 실제로 구현된다. 이 작업은 조명 디자인 전문 스튜디오 이온에스엘디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울색 굿즈도 제작 중이다. 서울색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도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감각되는 경험이 되기를 꿈꾼다.

Interview
정미 이온에스엘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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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도시들은 낮에도 색감이 비슷비슷한 편인데, 밤이 되면 더더욱 획일화된다. 대부분톤 다운된 황색 계열조명을 사용하고, 단일 색상만으로 연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의 밤색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의 야경에도 기억에 남는 색을 남기고 싶었다. 누군가 서울의 밤을 사진으로 찍고, ‘이번엔 이런 컬러가 있어서 서울이 다르게 보였다’고 느끼는 것, 그게 서울빛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이기에 각별히 더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민간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타깃이 명확하고, 클라이언트의 취향이나 요구사항도 뚜렷하다. 하지만 공공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것이기에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디자인 요소도 최대한 정제하려 했다. 너무 튀거나 과하지 않게, 부드럽고 둥글게 다듬었다. 동시에 꼭 필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디자이너로서의 사회적 책임 역시 중요했다. 그저 무난하기만 한 디자인이 아닌, 시민들의 감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자 했다.


▼ 기사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시민의 시선까지 디자인하다, 권은선 서울시 공공디자인진흥팀 팀장 인터뷰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4호(2025.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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