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부터 구찌까지, 2026 SS 베스트 데뷔쇼 7
첫 만남의 전율! 2026 SS 데뷔쇼의 순간들
며칠 전 막을 내린 2026 봄여름 시즌 런웨이는 쇼, 그 이상의 의미로 기록된다. 1년여 넘게 이어진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끝낸 패션계가 베일을 벗은 결정적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움에 목말랐던 전 세계 패션피플은 샤넬, 디올, 발렌시아가, 메종 마르지엘라 등 톱 하우스의 새 얼굴들이 펼치는 첫 장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긴장과 설렘, 전통과 혁신의 교차로 뜨거웠던 데뷔 무대 중 베스트 일곱개를 추렸다. 마침내 새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며칠 전 막을 내린 2026 봄여름 시즌 런웨이는 쇼, 그 이상의 의미로 기록된다. 1년여 넘게 이어진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끝낸 패션계가 베일을 벗은 결정적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움에 목말랐던 전 세계 패션피플은 샤넬, 디올, 발렌시아가, 메종 마르지엘라 등 톱 하우스의 새 얼굴들이 펼치는 첫 장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긴장과 설렘, 전통과 혁신의 교차로 뜨거웠던 데뷔 무대 중 베스트 일곱개를 추렸다. 마침내 새 시대의 서막이 올랐다.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이번 시즌 패션위크의 대미는 샤넬이 장식했다. 보테가 베네타를 이끌던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의 새로운 수장이 되었다는 깜짝 발표가 있었던 작년 12월부터 쇼가 열리기 직전까지, 샤넬 쇼에 쏠린 관심과 기대는 과연 대단했다. 한국 시간으로 10월 7일 새벽, 마티유 블라지가 그리는 샤넬의 세상이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냈다.



파리 그랑 팔레는 별과 행성이 뜬 샤넬의 우주로 변신했다. 허리선을 낮춘 유연한 슈트를 입은 모델이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나풀대며 반짝이는 밤하늘 사이로 걸어 나왔다. 대충 접어 올린 재킷 소매와 구겨진 가방, 쿨한 워킹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여성의 몸에 자유를 선물했던 가브리엘 샤넬의 상징적인 코드가 마티유 블라지만의 정제된 감성과 세심한 손길로 새롭게 되살아났다. 샤넬이 꿈꾸는 새로운 여성상을 마주한 첫 순간이었다.





이어 트위드 재킷, 진주, 까멜리아, 버튼다운 셔츠, 드레이프 드레스 등 시공간을 초월한 샤넬의 유산이 우주를 가르는 별처럼 쏟아졌다. 움직임이 돋보이는 여유로운 실루엣과 그 위에서 춤추는 펄, 프린지, 아플리케 등 입체감 넘치는 디테일이 오랜 전통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첫 샤넬 쇼에서는 보편적인 것을 하고 싶었어요.” 쇼 노트에 적힌 얘기처럼 그의 우주는 번뜩이는 참신함 대신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으로 반짝거렸다. 숨을 고르는 모습으로 샤넬의 첫 장을 펼친 영민한 마티유 블라지. 그가 선보일 다음 샤넬에 대한 기대가 또 한번 고조되고 있다.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샤넬이 묵직한 울림을 안겼다면 디올은 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눈과 마음을 훔쳤다. 그 신을 완벽하게 만든 주인공은 조나단 앤더슨. 백스테이지에서 초조하게 쇼를 지켜보던 그가 피날레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환영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그는 동료를 끌어안으며 행복의 눈물을 쏟았다. 벅찬 감동으로 첫 걸음을 뗀 조나단 앤더슨의 디올. 단언컨대 디올의 핑크빛 시대가 다시 시작되었다.



쇼 시작 전 피라미드 형태의 스크린에서는 디올 히스토리 다큐 영상이 상영되었다. 하우스의 오랜 유산을 이어받은 새 디자이너가 풀어낼 서사를 자극하기 그만인 오프닝이었다. 그 들뜬 마음은 쇼가 끝날 때쯤 절정으로 치달았다. 디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은 균형미가 대단했고 쇼적인 임팩트도 강렬했다. 그럼에도 입고 싶게 만드는 상업적인 힘 또한 놓치지 않았다. 요즘 시대가 원하는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이 지휘한 완벽한 무대였다.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는 디올 고유의 로맨티시즘을 구조적인 해체를 통해 한층 모던하게 계승했다는 점이다. 리본, 프릴, 꽃은 거대한 볼륨과 우아한 디테일로 룩에 드라마를 불어넣었고, 디올의 뉴 룩을 대표하는 바Bar 재킷은 허리선을 낮춘 크롭 실루엣으로 모던하게 재탄생했다. 과감한 컷 아웃과 뒤를 부풀린 버슬 실루엣이 주는 구조미도 디올만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았다. 이 모든 것들은 지난 여름 먼저 선보인 남성복 데뷔 컬렉션과 기가 막힌 접점을 이루며 비로소 완전한 걸작으로 반짝였다.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발렌시아가
발렌시아가의 고전미와 우아함이 돌아왔다. 뎀나가 지휘하던 발렌시아가가 실험적인 맛이 있었다지만 20세기 복식사를 뒤흔든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유서 깊은 아름다움이 내내 그리웠다. 그걸 피촐리가 해냈다. 무려 25년을 발렌티노에 몸담았던 그다. 향기처럼 벤 발렌티노의 시적 감성에 발렌시아가의 건축적 미감이 더해진 순간, 이건 단순한 브랜드 이적이 아니라 진화에 가까웠다.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발렌시아가는 정말이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적이 결정된 직후 피촐리는 곧장 발렌시아가 아카이브로 달려갔다. 그에 대한 존중과 진지한 재해석은 이번 컬렉션에 고스란히 담겼다. 1957년 선보인 색Sack 드레스를 참조한 롱 블랙 드레스를 시작으로 벌룬 스커트, 코쿤 드레스, 튜닉 등 발렌시아가 특유의 조형적 재단을 살린 컬렉션들이 무대 위를 장악했다. 크롭 상의와 플립플랍, 버그 아이 선글라스, 마젠타톤의 강렬한 컬러 등 적재적소에 가미된 쿨한 요소들은 세련미를 담당했다. 발렌시아가의 과거와 현재가 피촐리만의 언어로 찬란하게 조우한 순간이었다.




글렌 마틴스의 메종 마르지엘라
앞서 선보인 쿠튀르 컬렉션으로 찬사를 받은 글렌 마틴스. 여성복에 대한 기대도 덩달아 고조되었다. 존 갈리아노가 이끈 10년의 메종 마르지엘라를 과연 어떻게 탈바꿈할 것인가. 런웨이 위로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연주가 흐르고, 마르지엘라를 상징하는 스티치 모양 개구기를 한 모델이 괴기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났다. 데뷔 컬렉션에 걸맞은 파격적인 쇼가 시작되었다.



입에 연출한 금속 와이어 장식, 그 하나만으로도 마르지엘라의 해체주의적 본질이 깨어났다. 쇼는 대범한 컷아웃 실루엣의 가죽 슈트 룩을 시작으로 찢긴 재단, 비대칭 실루엣, 플라스틱과 레이스 등의 이질적인 조합, 트롱프뢰유 기법의 프린팅 등 점차 실험적이고 극적인 룩으로 확장되었다. 모든 피스는 이전보다 정교하지만 간결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핵심 코드와 상업적 가능성 사이의 균형을 영리하게 모색한 글렌 마틴스에게 또 한번의 찬사가 이어졌다.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
루이스 트로터, 처음에는 낯선 이름이었다. 샤넬로 떠난 마티유 블라지의 화려한 유산을 이어받기에는 다소 조용한 인물로 느껴졌다. 그런데 라코스테와 까르벵의 부활을 이끈 바로 그 디자이너라는 얘기에 무릎을 쳤다. 라코스테의 지적인 스포츠웨어와 까르벵의 군더더기 없는 프렌치 감성이 그의 작품이라니! 아니나다를까 베일을 벗은 첫 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은 완성도 높은 구조미로 패션계의 시선을 단숨에 뒤흔들었다. 한 조사에서는 데뷔 컬렉션 만족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루이스 트로터는 조용하지만 강한 혁신을 펼쳐 보였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위빙 가죽 기법을 옷으로 확장해 보테가 베네타만의 장인정신을 강조했고, 힘있는 가죽과 볼륨감 넘치는 프린지, 재활용 유리 섬유, 늘어지는 니트 등 유려한 질감을 살린 소재로 공예적 감성을 일깨웠다. 여기에 어깨를 강조한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차분한 컬러 팔레트를 더해 전혀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한국 설치 미술가 이광호의 대형 조형물이 걸린 런웨이도 인상깊었다. 보테가 베네타의 DNA를 부각하는 동시에 극적인 구조미를 더없이 우아하게 풀어낸 루이스 트로터의 데뷔 쇼. 성공적인 출발이었다.




잭 맥콜로 & 라자로 에르난데스의 로에베
23년간 프로엔자 스쿨러를 이끌어온 듀오가 지난 3월 로에베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었다. 조나단 앤더슨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기대와 우려가 쏠린 가운데, 쇼를 며칠 앞두고 눈을 번뜩이게 하는 티저가 공개되었다. 꽃과 과일, 몸의 곡선을 포착한 강렬한 티저는 쇼에 대한 기대감을 드높였고, 당일 로에베의 런웨이 위로는 우려를 싹 걷어내는 형형색색 생동감이 차올랐다.




클래식 스포츠웨어의 강렬한 변주. 듀오가 새롭게 선보인 로에베의 첫 컬렉션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잭과 라자로는 조나단 앤더슨 시대의 색채와 실험성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들만의 감각으로 로에베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원색 계열의 밝고 선명한 색감, 섬세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가죽 공예, 스포츠 감성의 레이어링, 여름 해변의 감성을 살린 원단과 디테일, 조형미 넘치는 실루엣까지! 럭셔리와 일상의 균형을 절묘하게 조율한, 색다른 로에베가 탄생했다.




뎀나 바잘리아의 구찌
마지막으로 밀란 패션 위크의 문을 연 구찌 컬렉션을 소개한다. 전통적인 런웨이 쇼 형태는 아니었지만 뎀나의 색채를 엿볼 수 있는 데뷔 작품임에는 분명했다. 구찌에 새롭게 합류한 뎀나는 자신이 그리는 페르소나를 담은 37개의 디지털 룩북 컬렉션 ‘라 파밀리아’와 30분짜리 패션 영화 ‘더 타이거’를 공개하며 패션을 단순히 입는 것 이상의 의미와 경험으로 전달했다. 파격적인 이적 소식만큼이나 이례적인 방식으로 구찌에서의 첫걸음을 뗀 뎀나는 또 다시 화제몰이에 성공했다.




오스카 수상 감독인 스파이크 존즈와 함께 만든 영화 ‘더 타이거’는 뎀나가 만든 라 파밀리아 컬렉션 의상을 입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화면 가득 잔상을 남긴다. 데미 무어, 에드워드 노튼, 엘리엇 페이지, 켄달 제너 등 초호화 캐스팅은 덤. 날렵한 슈트, 우아한 이브닝 가운과 망토, 입체적인 꽃무늬, GG 모노그램 등 뎀나는 전통적인 구찌 감성을 이탈리아 특유의 세련미로 녹여냈다. 브랜드의 화려함보다는 인간적인 서사와 구조적인 미니멀리즘에 집중한 단편 영화를 통해 뎀나가 그리는 구찌의 방향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