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신의 확장, 경계를 허무는 디자이너들

SHARE X INSIGHT OUT 현장 리뷰

월간 〈디자인〉과 SHARE X가 함께한 ‘INSIGHT OUT’. 첫 주제 ‘그래픽 신의 확장’에서는 다섯 팀의 디자이너가 그래픽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래픽 신의 확장, 경계를 허무는 디자이너들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 전문 교육 플랫폼 SHARE X가 함께한 ‘SHARE X INSIGHT OUT’은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디자이너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디자인 산업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동시대 디자이너들이 마주한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기획했다. 현재 디자인 필드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콘퍼런스를 비롯한 다양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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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그래픽 신의 확장’을 주제로 열린 SHARE X INSIGHT OUT 포스터

그 여정의 첫 주제는 장르를 넘어 태도이자 접근법으로 진화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이다. 지난 9월 24일 섬유센터 Tex+Fa Hall에서 열린 SHARE X INSIGHT OUT은 ‘그래픽 신의 확장’을 주제로 기술적, 산업적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다섯 팀의 목소리를 한자리에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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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퍼런스 진행을 맡은 월간 〈디자인〉 최명환 편집장 ⓒ designhouse

석윤이 모스그래픽 대표, 장기성 트라이앵글-스튜디오 대표, 조은주·함영훈 ORKR 공동대표, 채병록 CBR 그래픽 대표, 권준호 일상의실천 공동대표가 연사로 참여해 그래픽이 동시대 언어로 기능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와 태도를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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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퍼런스 현장 ⓒ designhouse

1. 오브제가 되는 디자인

석윤이 모스그래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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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윤이 모스그래픽 대표 ⓒ designhouse

북디자이너로 출발한 석윤이 모스그래픽 대표는 그래픽을 인쇄물, 제품, 브랜딩으로 확장해 왔다. 그는 “사람들이 쉽게 쓰고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어딘가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닌 오브제”를 지향한다. 화면 위 그래픽을 현실의 사물로 옮길 때 발생하는 색, 소재, 구조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며, 효율과 미감 사이에서 ‘제작의 감각’을 체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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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열린책들의 기존 프랑스 소설을 새롭게 묶은 ‘블루컬렉션’. 프랑스 국기의 블루에서 착안해 현대 문학의 세련된 이미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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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의 꽃을 그래픽으로 표현한 모스의 실제본 수첩 ©모스

그는 손으로 만들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을 “디자이너에게 가장 큰 배움”이라 말했다. 과정을 우선하는 태도는 인쇄물, 패키지, 웹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경험 속에서 점체 구체화됐다. 그래픽의 미감을 결과물보다 그 과정의 축적 속에서 찾는다. “효율성이 떨어져도 결국 만들어내면 마음이 편하고 좋아요.” 그는 북디자인에서 제품까지 이어진 여정이 결국 하나의 결로 닿아 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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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블랙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비주얼 작업을 도맡았다.

2. 다른 출발, 디자인 밖에서 디자인 안으로

장기성 트라이앵글-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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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성 트라이앵글 스튜디오 대표 ⓒ designhouse

애니메이션 전공자인 장기성 트라이앵글-스튜디오 대표는 비전공자로서 외부에서 출발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디자인을 탐구해왔다. 그는 포스터를 “그래픽 디자인의 꽃”이라 부르며, 타이포그래피를 조형 언어로 다루는 태도를 소개했다. 글자를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닌 시각적 조형의 축으로 보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긴장을 통해 관람자의 해석 여지를 남기는 방식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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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메틱 브랜드 포트레의 콘셉트, 아이덴티티, 패키지 등 브랜드 디자인 전반을 담당했다. ©TRIANGLE-STUDIO

그는 디자인의 본질을 “1등이 없는 일”이라 정의하며, 경쟁이 아닌 스스로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마다 각기 다른 답을 향해 나아가는 그 여정 속에서 오리지널리티가 형성된다는 것. 그의 발표는 완성보다 탐구의 태도, 정답보다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으로서의 디자인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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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4》 2084: 스페이스 오디세이 그래픽 디자인에 참여했다. © TRIANGLE-STUDIO

3. 그래픽 디자인과 브랜드 디자인

조은주·함영훈 ORKR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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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주 ORKR 공동대표 ⓒ designhouse

조은주·함영훈이 이끄는 ORKR은 그래픽을 브랜드 기획과 아트디렉션의 언어로 다룬다. ‘OR(또는)’과 ‘KR(코리아)’의 결합처럼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반된 지점의 공존을 탐구한다. 그래픽 스튜디오가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에이전시로서, 복잡한 분석보다 직관이 가진 힘을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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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훈 ORKR 공동대표 ⓒ designhouse

그들이 말하는 디자인은 ‘직관적 시각화’다. 심플한 로직, 쉬운 비주얼, 명확한 의도로 접근한다. 조은주는 “감각적 비주얼이 공감을 일으키는 순간, 그게 디자인의 힘”이라 말하며 시각적 직관의 정서를 강조했다. 반면 함영훈은 브랜드의 시각 자산을 구조적으로 해석해 핵심 키워드를 하나의 형태로 압축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두 사람에게 디자인은 논리를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명료한 이미지로 설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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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통해 마주하는 ‘나’를 이야기하는 토탈 센트 브랜드 025S의 브랜딩을 맡았다. © 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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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KR이 브랜드 아이덴티티, 편집 디자인을 맡은 ‘2025 에스파 라이브 투어, SYNK: aexis LINE’ © ORKR

4. 그래픽 요소의 생성과 시각적 애착 형성의 과정

채병록 CBR 그래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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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록 CBR 그래픽 대표 ⓒ designhouse

채병록 CBR 그래픽 대표는 이날 발표에서 그래픽을 ‘그리는 일’이 아닌 ‘세우는 일’이라 정의했다. 그는 작업의 출발점을 작은 요소에서 찾는다. 문자, 기호, 도형 같은 파편들을 하나씩 정성껏 만들고, 그것들이 조합될 때 비로소 이미지가 완성된다고 했다. 완성보다 중요한 건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손의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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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의 안녕(安寧)을 기원하는 십장생 병풍길 © 인천국제공항공사

채병록 디자이너의 시선은 기계적 효과가 아니라 손의 리듬에 있다. 자동화된 툴 대신 직접 수치를 조정하고, 오류나 노이즈를 새 질감으로 전환한다. 반복을 통해 다져진 손의 기억이 결국 그의 조형 언어가 된다. 그는 “툴로는 만들 수 없는 것, 손으로만 남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며, 공예처럼 느리지만 단단한 그래픽의 힘을 이야기했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그는 디자인을 “정답을 내는 일”이 아니라 애착을 쌓아 하나의 세계를 세우는 과정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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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오사카 한국문화원의 확장 이전을 기념하는 유리 외벽 그래픽 출처 채병록 디자이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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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문하는 눈, 말하는 손

권준호 일상의실천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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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호 일상의실천 공동대표 ⓒ designhouse

일상의실천 공동대표 권준호는 그래픽을 “지면에 갇힌 결과”가 아니라 서사를 실어 나르는 언어로 정의했다. 한 장의 포스터로 끝내지 않고, 모션, 웹, 출판, 아이덴티티까지 매체를 아우르며 동일한 메시지의 어조를 유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현장에서 망가지는 디자인”을 피하고자 프론트만이 아니라 백엔드까지 직접 다룬다고 전했다. 자동 효과 대신 손으로 실험하고 구성하며 이미지에 밀도와 근거를 쌓는 과정을 강조했다. 관찰과 기록, 그리고 쓰기는 그 과정을 하나로 묶기 위한 도구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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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실천 권준호 대표가 10여 년간의 작업 메모와 원고, 편지를 엮어 기록한 책 ©일상의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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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프로젝트 포스터, 프로젝트 기획, 진행, 그래픽디자인을 맡았다. ©일상의실천

권준호 대표는 시국선언문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63팀이 참여한 ‘시대정신’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디자이너가 “제작자를 넘어 관찰자이자 질문자”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 장의 이미지에서 시작해 웹, 전시, 현수막, 배너로 이어지는 확장은 디자인이 현실 속에서 발언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그는 형식보다 태도를, 완성보다 실천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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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디자인>과 디자인프레스가 공동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디자인플러스’의 웹페이지를 디자인하고 개발했다. ©일상의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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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콘퍼런스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사전에 받은 질문을 중심으로 Q&A가 이어졌다. 다섯 팀의 디자이너은 실무 경험을 토대로 현실적인 고민에 답하며 각자의 시선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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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ignplus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스’를 운영하며 상품을 확장할 때 어떤 고민이 있었나?

석윤이 처음부터 확장을 전제로 브랜드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운영하며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배웠다. ‘무엇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시장의 니즈를 반영하면서도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일시적인 유행이나 판매 지표보다 ‘모스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개인 작업이 실무 경험보다 많은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평가하나?

장기성 자유 작업은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영역이다. 개인 작업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만 실제 협업 경험이나 실무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자유 작업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벽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부족함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태도가 더 큰 신뢰를 준다.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디자이너의 태도가 있다면?

조은주 회사의 프로젝트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지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패션이나 뷰티 분야에만 흥미를 두고 기업 프로젝트를 지루하게 여긴다면, 그 태도는 결과물에도 드러난다. 어떤 일이든 시선을 달리하면 흥미로운 지점을 찾을 수 있다.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디자이너의 조건이다.

작업 과정에서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답을 찾아가나?

채병록 항상 두 가지를 먼저 묻는다. ‘다르게 할 수 있을까?’, ‘남이 잘하는 건 하지 말자.’ 유행을 좇기보다 내 자리를 지키는 감각이 중요하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고, 생각하는 시간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수많은 시각적 자극 속에서 무엇을 걸러낼지 아는 감각, 불필요한 것을 절제하고 무시하는 힘이 나를 지탱하는 태도라고 믿는다.

디자인 과업뿐 아니라 작품 제작까지 병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 있나?

권준호 초창기엔 셋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11명의 팀이 함께하고 있다. 규모가 커질수록 구성원 모두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한다. 디자인은 결과물의 완성도만큼이나 함께 일하는 과정의 즐거움이 중요하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에서는 조형적 완성보다 그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는지가 더 큰 의미가 있다. 이런 감각을 팀 안에서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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