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한 글자의 반란, 폴라 셰어
폴라 셰어는 영원히 기억될 브랜드를 만드는 디자이너이고, 그의 손을 거친 디자인은 도시와 시대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 역사상 가장 목청 큰 디자이너를 꼽는다면 바로 폴라 셰어Paula Scher가 아닐까? 온 세상이 헬베티카로 가득하던 시절, 그는 뉴욕 전역을 왁자지껄한 타이포그래피로 도배하며 모더니즘에 안녕을 고했다. 흔히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알파벳 한두 자만 보고 폴라 셰어의 흔적을 알아보기도 하는데 그가 가진 힘을 글자에만 한정 짓는 건 엄청난 실수이다. 폴라 셰어는 영원히 기억될 브랜드를 만드는 디자이너이고, 그의 손을 거친 디자인은 도시와 시대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꾼 적이 없다고 들었다. 어쩌다가 이 일을 하게 되었나?
대학교에 가기 전에는 그래픽 디자인이 뭔지도 몰랐다. 아는 게 없으니까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수업은 뭐든 들었다. 그나마 그림은 좀 그릴 줄 알았기 때문에 졸업하고 나면 막연히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스승이었던 스타니슬라프 주콥스키가 날 구해주었다. 내가 신문과 잡지에서 글자를 오려 그림 위에 붙이는 걸 보고는 한마디 했다. “글자 가지고 그림 그리지 마라.”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머지않아 이해했다. 글자는 이미 고유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그때부터 타이포그래피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글자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무균질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자 비로소 흥미를 느꼈다. 졸업할 무렵이 되니 어느덧 작업의 중심에 타이포그래피가 자리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마주한 미국의 그래픽 디자인 신은 어땠나?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기술이 없었다는 거다. 나는 CBS 레코드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레코드 커버를 디자인하는 게 내 일이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모든 커버를 일일이 손으로 그렸다. 시장조사도, 시안도 없었다. 사람들이 커버를 좋아하면 음반이 팔렸고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었다. 창의적 의사 결정을 할 때 마케터들이 지금과 같이 큰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이 훨씬 빨랐다.(웃음)
범위를 좁혀보자. 1980년대의 브랜드 디자인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단순하고 지루하고 모던하고.

그에 비해 당신의 작업은 종종 모더니즘 디자인의 관습과 대조를 이루었다.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아니면 디자인 관습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나?
둘 다. 나는 헬베티카가 지독하게 싫었다. 심지어 그때는 온 세상이 헬베티카였다. 유니버스 서체를 과하게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기업들이 너나없이 흠모하는 모더니즘이 내 눈에는 너무 지루하게 보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러시아 구축주의와 데 스틸, 그리고 몇몇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의 작업이었다. 헤르베르트 바이어라든지, 얀 치홀트라든지. 눈에 익은 모더니즘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픽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 수많은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퍼블릭 시어터Public Theater가 아닐까? 거리와 대중을 위한 극장을 만드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뒷골목 그라피티를 닮은 그래픽 언어를 개발했다. 왁자지껄한 타이포그래피를 남발하는 퍼블릭 시어터 포스터가 뉴욕 전역에 나붙었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이후 몇 차례 거듭된 리브랜딩도 모두 내 손을 거쳤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퍼블릭 시어터의 디자인을 해왔고 지금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영원히 기억될 로고를 만드는 건 모든 브랜드 디자이너의 꿈 아닐까? 시간이 지나도 건재한 디자인과 금세 낡아버리는 디자인의 차이는 어디서 온다고 보나?
오래 기억될 로고를 만들겠다는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나는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할 때 지속성보다 적합성을 더 중요시한다. 일단 한눈에 들어와야 하고, 제품 또는 서비스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걸 잘 해내면 로고는 당연히 오래 살아남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최근 디자인업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리브랜딩이다. 리브랜딩 수요가 늘어나는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나?
리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대개 둘 중 하나다. 매출이 떨어졌거나 사장이 바뀌었거나. 새로 온 사장은 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싶어 하더라.
AI의 등장이 디자인업계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브랜드 디자인도 예외는 아니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반세기 넘게 디자이너로 일하며 깨달은 바가 있을 듯하다.
한때는 기술로부터 위기감을 느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술은 늘 변한다. 새로운 툴이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어렵고 막막한 게 당연하다. 이걸 당장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고. 하지만 익숙해질 즈음 그 기술은 사라지고 또 다음 파도가 온다. 나는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모를뿐더러 배우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또 바뀔 테니까. 다만 신기술을 통해 무엇을 구현할 수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실무진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 AI도 아주 배척하는 건 아니다. 방금도 AI에게 일을 시켰다. 다만 그것이 내 머리 꼭대기에 있는 세상을 원치 않을 뿐이다.


디자이너뿐 아니라 교육자로도 오래 활동했다. 젊은 디자이너에게 전하고 싶은 좋은 브랜드의 가치는 무엇인가?
브랜드 디자인에서 중요한 건 눈에 띄고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일단 기업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고 나면 이후에는 디자인이 뇌리에 남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개성을 부여하거나, 아름다움을 덧입히거나, 유머를 한 스푼 섞거나. 무엇이 되었든 간에 보는 이의 기대를 뒤흔드는 게 좋은 브랜드 디자인이다.
시간을 거슬러 다른 시대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나?
엘 리시츠키와 알렉산더 로드첸코가 살았던 20세기 초 러시아로 가보고 싶다. 두 사람은 디자인을 통해 혼란스러운 사회를 재편할 수 있다고 믿었고, 전통적인 캔버스 대신 포스터와 잡지를 들고 대중 앞에 섰다. 당시 이들이 선보인 디자인은 지금 봐도 새롭다. 과감한 타이포그래피와 비대칭적인 레이아웃으로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디자이너로 살기에 더없이 흥미로운 시절이었을 거다.
디자이너로서 궁극적인 목표가 있나?
이쯤 되면 목표는 단출하다. 계속 디자인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영감을 건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까지 샅샅이 뒤지며 영감을 찾아야겠다. 어쩌면 후자가 더 큰 동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