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세워진 낫싱폰의 플래그십 스토어

거칠면서도 정교한 산업 미학을 담아낸 낫싱(Nothing)의 새로운 공간

인도 벵갈루루에서 가장 트렌디한 상권으로 꼽히는 인디라나가르(Indiranagar) 거리에 세워진 낫싱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철학을 공간으로 구현한 모습이다. 건물의 3면을 통유리로 설계해 거칠고도 정교한 산업 미학을 담아냈다.

인도에 세워진 낫싱폰의 플래그십 스토어

애플이 터치스크린과 앱 생태계를 도입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꾼 이후, 스마트폰은 피처폰 시절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화했다. 터치스크린이라는 전제로 인해 외관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차별화에 제약이 생겼고, 제품들은 서로 닮아가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제는 화면을 켜기 전까지는 어떤 브랜드의 제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 경계가 희미해졌다. 기술의 상향 평준화가 브랜드의 개성을 지워버린 셈이다.

01 3
사진 출처 Pexels

하드웨어 성능 경쟁 또한 임계점에 도달했다. 고사양 프로세서,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전문가급 카메라 등과 같은 성능들은 이미 일상적인 사용 범위를 훌쩍 넘어섰다. ‘더 빠르고, 더 선명하고, 더 오래가는’ 슬로건은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지금 사용 중인 기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교체 주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 세계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혼합 현실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있지만,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와 같은 근본적인 전환은 좀처럼 재현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정체기 속에서 2020년에 등장한 영국의 IT 스타트업 ‘낫싱(Nothing)’. 낫싱의 CEO 칼 페이(Carl Pei)는 노키아, 메이주, 오포(OPPO) 등과 같은 IT 기업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으며, 원플러스(OnePlus)의 공동 창립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술 과잉 시대의 서로 닮아버린 스마트폰에서 즐거움과 설렘이 사라진 점을 주목했다. 그리고 기술보다 감각과 경험의 영역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04 2
사진 출처 낫싱 인스타그램

낫싱폰의 핵심 아이덴티티는 ‘투명함’에 있다. 낫싱은 기기 내부가 드러나는 투명한 후면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동시에 LED를 활용한 ‘글리프 인터페이스(Glyph Interface)’라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시했다. 빛의 패턴으로 알림과 충전 상태 등을 전달하는 이 인터페이스는 디지털 기기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덧입히면서도, 정보를 직관적으로 인지하게 하는 실용성을 갖췄다.

05 2
사진 출처 낫싱 인스타그램

스마트폰 자체를 오브제로 재해석하며 그 자체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은 ’10미터 거리에서 봐도 낫싱폰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도로 하여 설계된 결과다. 덕분에 낫싱폰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폰에 식상함을 느낀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밖에도 낫싱은 헤드폰과 이어폰에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06 1
사진 출처 낫싱 커뮤니티

낫싱의 차별화는 비단 제품 디자인과 경험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들은 사용자들과의 공감과 소통을 브랜드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낫싱폰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낫싱 커뮤니티(Nothing Community)’다. 이 플랫폼에서는 신제품 개발 과정과 디자인의 방향,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대한 정보를 가감 없이 공유한다. 사용자들은 여기에 직접 의견을 제안하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런 투명한 소통은 브랜드의 충성도에 기여하는 요소가 된다. 팬들은 자신의 의견이 실제 모델 및 업데이트 개발에 반영되는 과정을 보며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동반자라고 여기는 동시에 유대감을 느낀다. 낫싱이 애플, 삼성과 같은 거대 공룡 기업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누락되어 온 소비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덕분이다.

07 1
사진 출처 낫싱 홈페이지

제품 라인업 역시 점차 확장되고 있다. 2022년 ‘폰(1)’, 2023년 ‘폰(2)’, 2025년 ‘폰(3)’에 이어 보다 대중적인 가격대의 ‘폰(2a)’과 ‘폰(3a)’ 등을 선보이며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3월 5일에는 브랜드 최초로 컬러군에 핑크색을 추가한 ‘폰(4a)’를 공개했다.

​이런 이들의 전략에 가장 뜨겁게 반응한 곳은 바로 ‘인도’ 시장이다. 감각적이면서도 차별화된 디자인, 그리고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 전략이 현지 소비자들의 취향과 맞닿으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는 중이다. 공동창업자이자 인도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아키스 에반겔리디스(Akis Evangelidis)가 인도를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언급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08 2
칼 페이와 아키스 에반겔리디스. 사진 출처 아키스 에반겔리디스 인스타그램

이에 대한 칼 페이의 행보 또한 눈여겨볼 점이다. 인터넷 문화와 커뮤니티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그는 인도 소비자들의 정서에 깊숙이 파고드는 전략을 취했다.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 이름을 ‘칼 바이(Carl Bhai)’로 잠시 바꾸었는데, 여기서 ‘바이’는 인도어로 ‘형제’를 뜻한다. 기업 CEO가 권위를 내세우는 대신에 현지 팬들과 눈높이를 맞춘 센스 있는 마케팅은 인도 MZ세대를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낫싱에게 인도는 판매 시장을 넘어 전략적 거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풍부한 노동력과 안정적인 생산 기반은 제조 기업이라면 주목할 요소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재 상황에서 인도를 생산 및 수출 허브로 육성하는 전략은 비용과 리스크를 동시에 낮출 수 있는 좋은 선택지다. 인도는 매출 확대, 제조 역량 강화, 그리고 브랜드 확장이라는 세 축을 지탱할 수 있는 장소로서 낫싱에게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낫싱은 최근 벵갈루루(Bengaluru)에 인도에서의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이는 영국 런던 소호(Soho) 매장에 이은 파격적인 행보로, 인도 시장에 대한 낫싱의 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벵갈루루에서 가장 트렌디한 상권으로 꼽히는 인디라나가르(Indiranagar) 거리에 세워진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철학을 공간으로 구현한 모습이다. 467제곱미터(약 141평) 규모의 2층 건물은 3면이 통유리로 설계되어 내부의 투명성을 극대화했다. 1970년대 공장 조립 라인과 작업장에서 영감을 받아 낫싱 내부 디자인 팀이 직접 설계한 이 공간은 거칠면서도 정교한 산업 미학을 담아냈다.

매장 내 설치된 압도적인 크기의 잠자리 조형물은 공간에 들어서는 방문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존재다. 이곳에서는 낫싱과 서브 브랜드 CMF의 전 제품군과 더불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은 의류와 굿즈까지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건물 전체를 아우르며 펼쳐지는 제품 경험은 브랜드 팬이라면 누구나 반길 만하다. 실제로 오픈 전부터 입소문을 타며 화제를 모았고, 개장과 동시에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며 그 기대감을 증명했다.

MZ세대의 감성을 겨냥하여 설계된 공간은 방문객을 소비자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실제 제품을 구경하고 구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품의 테스트 과정을 관람하고 자신만의 맞춤형 제품을 구상해 보는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곳곳에는 크리에이터를 향한 세심한 배려도 엿보인다. 촬영과 콘텐츠 제작을 돕는 휴대폰 거치대와 별도로 마련된 스튜디오 공간은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CMF 제품군을 만날 수 있는 2층은 커뮤니티 허브로도 활용되며, 지역 크리에이터들의 만남 및 협업이 주최되는 공간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도시의 리듬과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기업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아키스 에반겔리디스는 “벵갈루루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인도의 기술적인 허브입니다. 디자인 분야에서는 더 많은 인식이 필요하며, CMF와 같은 브랜드를 인도에 도입하고 육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습니다.”라며, “인도의 젊은 세대는 매우 세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의 일환으로 젊은 세대가 세계적인 디자인 언어를 갖추게 되고, 더 많은 인재가 세계 서구로 진출하며 인도가 점차 디자인 허브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인도에 자사의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21 2
사진 출처 낫싱 커뮤니티

감각적인 디자인 경험을 선도하는 IT 브랜드가 인도 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행보는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동안 저가 시장으로만 인식되던 인도를 새로운 가능성의 무대로 재조명하는 움직임은 이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닌다. 앞으로 낫싱이 인도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그리고 그 움직임이 브랜드의 정체성과 위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