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하우스를 짓는 디자이너 우영미

한국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한 여성 디자이너, 한국 최초의 파리 의상 조합 정회원 등 30년 가까이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무수한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온 그녀를 만나보았다. 디자이너로서, 또 오랜 시간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경영자로서 그녀가 걸어온 발자취에서는 패션 그 자체에 집중한 패션 하우스의 수장다운 창조적 야망과 품격이 느껴졌다

패션 하우스를 짓는 디자이너 우영미
1959년생. 성균관대 의상학과 졸업했다. 1988년 솔리드 옴므를 론칭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남성복을 디자인하는 여성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1993년에는 서울 패션 위크의 초석인 뉴웨이브 서울을 시작했으며 2002년 파리에서 본인의 이름을 건 브랜드 우영미를 론칭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성복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11년 파리 의상 조합 정회원이 되고 2014년에는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선정한 글로벌 패션 500인에 선정되었다. 2006년 파리에 첫 번째 우영미 유럽 단독 매장을 연 것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 도쿄, 홍콩 등 아시아를 비롯해 파리와 런던 등 전 세계 곳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디자이너 우영미가 창조하는 패션은 곧 새로운 남자의 탄생을 의미한다. 1988년 솔리드 옴므 론칭 이후 부드럽고 세련된, 아름다움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남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2002년 파리 컬렉션 진출과 함께 탄생한 우영미(WOOYOUNGMI) 역시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섬세하고 신중한 남자들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우영미를 입는 남자들’이라는 새로운 남성형을 제시했다. 한국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한 여성 디자이너, 한국 최초의 파리 의상 조합 정회원 등 30년 가까이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무수한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온 그녀를 만나보았다. 디자이너로서, 또 오랜 시간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경영자로서 그녀가 걸어온 발자취에서는 패션 그 자체에 집중한 패션 하우스의 수장다운 창조적 야망과 품격이 느껴졌다.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정리: 김민정 기자, 허영은 객원 기자, 사진 제공: 우영미, 솔리드 옴므

“우영미는 파리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솔리드 옴므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남자인 거죠. 좀 더 예민하고 감성적이고 아티스틱하다고 할까요.말하자면 저에겐 두 아들이 있는데 솔리드 옴므 같은 아들이 있고, 우영미 같은 아들도 있는 거예요.”

‘국내 최초의 남성복 여성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붙는데, 처음 남성복 브랜드 솔리드 옴므를 론칭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남성복 디자이너라고 규정짓지 않아요. 그냥 패션 디자이너라고 생각하죠.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2년간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잘 맞지 않아서 그만두고 남성복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 거죠. 흔히 여자 옷은 여자가 디자인하고 남성복은 남자가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편견이에요. 저는 디자인은 환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입을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가 입어줬으면 하는 옷을 디자인하는 것이죠. 남성복을 디자인하는 여성 디자이너가 많지 않을 뿐이지, 여자가 남성복을 디자인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솔리드 옴므를 론칭할 당시엔 어떤 남자를 떠올렸나요?

자신의 일에는 냉철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할 것 같은 사람요.(웃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 실제로 그런 남자를 봤느냐고 물어보는데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이상형이라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계속 늙고 변하잖아요. 디자인이란 결국 자신의 확대해석이기 때문에 만약 제가 여성복을 디자인했다면 나이가 듦에 따라 젊은 여자들의 요구는 맞춰주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남성복을, 그것도 내가 항상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위해 디자인하기 때문에 솔리드 옴므는 늘 젊은 브랜드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남자는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고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는 ‘Forever young Man’인 거예요. 지금도 솔리드 옴므의 주요 고객층은 처음 브랜드를 만든 30여 년 전과 같은 20대예요.

당시 패션 시장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땠나요?

1988년에 오픈했으니까 서울 올림픽이 일종의 전환점이 된 시기였죠. 사회적으로도 많은 움직임이 있었고 그 흐름과 잘 맞았어요.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압구정을 중심으로 모여든 젊은 사람들, 흔히 말하는 오렌지족이 등장한 시기였거든요. 실제로 저희 주요 고객들 역시 오렌지족이었고요. 카페도 많이 들어서고 그야말로 압구정 문화가 생기기 시작한 때죠. 사실 처음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는 사업을 성공시키겠다는 원대한 목표나 비전은 없었습니다. 당연히 특별한 비즈니스 전략도 없었는데 제가 하는 디자인이 기성 양복과 많이 달랐기 때문인지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이 엄청 열광했어요. 또 이승철 씨나 신승훈 씨 같은 발라드 가수분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여서 여성이 만드는 남성복의 섬세함이나 부드러움이 여러모로 새로운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2년에는 ‘우영미’로 파리 컬렉션에 진출했는데 40대 초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어요. 당시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때 제가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실은 글로벌화되지 않은 브랜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대부분 사람들은 한복이면 모를까 서양복, 그것도 남성복을 가지고 파리를 간다는 것은 완전 미친 짓이라고 말했죠. 근데 막연한 믿음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저는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외에 나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한국에서만 팔아야 하느냐는 거였죠. 또 국내 시장에서는 대중과의 접점을 위해 내 취향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게 싫었어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은 이런 건데 국내에선 수요가 10명밖에 없다면 전 세계에서 우리 옷을 좋아할 사람 20명을 찾겠다고, 간단하게 생각한 거죠.

파리 진출 초기에는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요, 첫 번째 컬렉션을 끝냈을 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요. 일요일 아침 10시 30분에 쇼를 배정받았는데 최악의 스케줄이었던 거죠. 바로 전날 프레스 파티가 열리기도 했고 솔직히 누가 일요일 아침 그 시간에 쇼를 보러오겠어요. 심지어 그날 비가 오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르 피가로>에 기사가 난 거예요. 파리 컬렉션의 하이라이트 중 신인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섹션에 우영미에 대한 평이 실린 거죠. ‘한국에서 온 우영미라는 디자이너의 쇼를 봤는데 왜 이 사람이 파리에서 숍을 내지 않는지 모르겠다. 당장 열어라’라는 내용으로 유명 패션 에디터인 프레드리크 마르탱베르나드 (Frederic Martin-Bernad)가 쓴 기사였어요. 당시 그가 그렇게 좋은 평을 해준 게 저에겐 굉장히 큰 힘이 되었죠. 덕분에 첫 번째 쇼를 그렇게 끝내고도 기죽지 않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 ‘솔리드 옴므’라는 인기 브랜드가 있었는데 파리 진출을 위해 굳이 ‘우영미’ 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할 필요가 있었나요?

솔리드 옴므는 제가 20대 후반에 만들어서 이미 십몇 년간 유지해온, 캐릭터가 정해진 브랜드였어요. 브랜드 캐릭터라는 건 소비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수정할 수가 없잖아요. 우영미는 파리를 기반으로 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솔리드 옴므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남자인 거죠. 좀 더 예민하고 감성적이고 아티스틱하다고 할까요. 말하자면 저에겐 두 아들이 있는데 솔리드 옴므 같은 아들이 있고, 우영미 같은 아들도 있는 거예요. 두 사람 모두 굉장한 휴머니스트이지만 솔리드 옴므가 반듯하고 건전한 스타일이라면 우영미는 예술가적 기질이 더 풍부한거죠. 형제들은 DNA가 똑같지만 성향은 다르잖아요. 솔리드 옴므와 우영미 역시 저라는 사람에게서 시작됐기 때문에 유전자는 같아도 캐릭터가 달라요.

아티스트 마티아스 키스가 우영미의 2016 S/S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작품.
두 아들 모두 마음에 드네요.(웃음) 취향의 문제지만 실제로 두 브랜드의 타깃은 어떻게 정했는지 궁금해요.

솔리드 옴므가 도심, 오피스 안에 머물며 바쁘게 움직이는 프로패셔널한 느낌이라면 우영미는 영혼이 자유로운 남자라고 할까요? 정시 출근도 안 하고 자기 느낌대로 움직이며 평일 낮에 갤러리나 카페에서 만날 수 있죠. 그런데 사실 한 사람 안에도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잖아요. 오피스 미팅이 있을 때는 진중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이 필요하지만 휴일에는 좀 더 느슨하고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이 가능한 것처럼요.

우영미의 아티스틱함은 매 시즌 아티스트와 함께 하는 컬래버레이션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협업이 아닌 아티스트가 우영미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잖아요. 처음에 어떻게 기획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제가 예술을 좋아하고요, 우영미는 갤러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남자를 모델로 하기 때문에 광고할 때 단순히 옷, 상품을 보여주기보다는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이건 공동 디렉터이자 제 딸인 케이티 정이 낸 아이디어였는데 저 역시 듣자마자 단박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한 번도 비슷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아티스트도 당황하고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하나씩 풀어나가다 보니 무척 재미있는 시너지가 생겼습니다. 2016 S/S 캠페인을 함께 한 마티아스 키스 (Mathias Kiss)와의 프로젝트 역시 (2016 S/S 룩북 표지의 은색 작은 원을 가리키며) 여기에서 시작했어요. 그 친구가 이걸 보고 순간적으로 포착한 달 이미지(moon-capture)가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치 주인이 방금 떠난 듯 여러 가지 소지품이 자연스럽게 흩어진 책상을 은박 처리한 ‘아웃 오브 타임’ 같은 작품이 만들어진 거죠. 패션과 아트가 만나서 이렇게 새로운 시너지를 낸다는 점이 참 재미있어요.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기준은 따로 있나요? 2012년부터 매 시즌 진행한 만큼 아카이브도 굉장할 것 같은데요.

일단 우리가 먼저 아티스트들에게 제안을 받아요. 그걸 보고 딱 느낌이 오는, 우리랑 잘 맞겠다 싶은 아티스트를 선택합니다. 그 형태는 사진일 수도 있고 오브제, 조각, 회화일 수도 있어요. 또 우영미만을 위해 만든 작품이니까 나중에 한데 모으면 수년간의 컬렉션을 예술 작품으로도 감상할 수 있고요. 이 캠페인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패션 브랜드인데 모델에게 옷을 입혀 광고하는 게 아니라서 새로웠던 것 같아요. 아티스트에게는 자신을 알릴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패션과 예술의 굳건한 컬래버레이션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부산물로 저는 미술 작품을 소장하게 됐는데 거기에 더 만족한다고 할까요?(웃음) 상업적이지 않은데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예술이 좋아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어요.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우영미 단독 매장.
말씀을 듣다 보니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한 일이 자연스럽게 우영미만의 차별화 전략이 된 것 같네요. 그래도 패션 디자인은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가격부터 마케팅까지 판매 전략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예전에 어느 건축가가 한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아서 책상 위에 붙여놓았는데 “디자인은 형태와 기능과 아름다움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라는 말이었어요. 저는 다른 무엇보다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마케팅과 세일즈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결국엔 콘텐츠가 좋아야 소비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10년 동안은 마케팅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기본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그 이후의 과정은 전문가에게 맡겼고요. 제가 치중했던 부분은 ‘옷은 사람이 입는 것’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었어요. 내가 만든 옷을 사람들이 입게 하려면 어디에선가 팔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용감하게 파리에 매장과 회사를 낸 거죠. 컬렉션 쇼를 5~6번 정도 하고 마레에 숍을 오픈한 다음 봉마르셰, 프랭탕 백화점에도 입점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이 다소 무모하게 느껴지지만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2011년에는 우리나라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의상 조합 정회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해외 유수의 명품 브랜드만 가입할 수 있는 만큼 조건이 무척이나 까다롭다고 들었는데요.

파리는 패션의 본고장이잖아요. 따라서 진입문이 매우 좁을 수밖에 없어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파리 패션 위크에 서긴 하지만 협회에서는 컬렉션 수준 관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저는 10년 동안 꾸준히 쇼를 하며 고객이 생겼고 백화점 입점 같은 커머셜 활동도 하니까 협회에서 계속 지켜본거죠. 파리 의상 조합은 누가 한 사람을 추천하면 이를 검토하는 위원회를 열어 일정 수 이상 찬성 표가 나와야 하는 등 심사 요건이 까다로워요. 모든 검증 절차를 마친 뒤 조건이 되면 승인해주는데 아시아 디자이너에겐 그런 사례가 많지 않았죠. 아마 남성복 부분에서는 제가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 그들에게 저는 한국 출신의 프랑스 디자이너인 셈이죠.

파리, 서울을 쉼 없이 오갈 텐데요. 패션은 일 년에 최소 두 번은 컬렉션을 진행해야 하니까 디자이너가 굉장히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브랜드가 두 개니까 일 년에 컬렉션을 네 번 치르는 셈이에요. 우영미는 파리를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이고 솔리드 옴므는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선보이다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글로벌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 마치면 다음, 그거 마치면 또 다음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입니다. 지치는 건 항상 그래요.(웃음) 그런데 그게 ‘이제 그만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는 왜 이만큼밖에 못할까?’ 하는 자책감인 것이죠. 디자이너는 계속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진화시켜야하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합니다. 비즈니스가 어렵고 직원 관리도 힘들지만 사실 저는 이게 가장 힘든 일 같아요. 물론 이런 고민을 계속하기 때문에 우리 브랜드가 늙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요.

그렇다면 영감은 어디서 어떻게 받나요? 우영미 컬렉션을 보면 매번 주제가 명확하고 독창적이어서 좋은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감을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영화나 책을 본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어떤 때는 지나가는 남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있습니다. 주제 역시 꼭 정할 필요는 없지만 컬렉션은 팀플레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 같이 한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죠. 사실 이제는 테마 그 자체보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가 더 중요해요. 예를 들어 지난 시즌에는 ‘달로의 우주 여행’이라는 테마로 컬렉션을 풀어냈는데 물리적인 우주 여행 그 자체가 아니라 영혼의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랄까. 우영미의 남자라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 결과 우아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어요. 시즌 테마가 무엇이든 우영미 답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굉장히 많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대기업에 흡수됐죠. 순수하게 그 정체성을 지킨 디자이너 브랜드는 이제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제안을 많이 받았을 텐데 흔들린 적은 없었나요?

제안은 십수 년 전부터 수없이 받았죠. 세컨드 브랜드를 만들자, 해외 컬렉션 열어줄 테니까 우리 회사 들어와라 등 기억도 못 할 만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누구 밑에서 요구를 들어주면서 하는 건 정말 못할 것 같더라고요. 기업에서는 계속 매출을 성장시켜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저를 압박할 테고요.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되면 본질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진하던 커피의 원두가 점점 옅어지는 것처럼요. 배부른 소리 같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단지 내 취향의 옷이 좋은 거예요. 또 운이 좋게도 잘 만드는 것이고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주변에 훈수 두는 사람이 많아지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브랜드를 유지해오기까지 위기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국내 백화점에서 저희의 경쟁 상대로 지목하는 곳은 전부 대기업이에요. 그들의 조직과 유통, 마케팅 역량으로 봤을 땐 겨루기가 힘들죠. 다만 우리는 사장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디자이너 마인드로 브랜드를 이끄는 거예요. 기업이 아니라 패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패션 하우스인 것이죠. 그래서 저는 딱 하나 ‘우리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해요. 이렇게 계속 한길을 걸어가는 것 외에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물론 디자이너는 치열해야 하죠. 하지만 조직 안에서의 치열함은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이 아닌 매출과 성장에 치중되기 마련이에요. 다행히 우리는 아직까지 매출 부진이나 성장을 문제로 구성원을 닦달한 적이 없습니다. 결국 매출 부진은 디렉션을 준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또 매출이 부진하다고 해서 다른 무언가를 따라 해볼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만의 아이덴티티로 우리 옷을 만들다 보면 좋아해주는 소비자가 어딘가에는 있을 테니까요. 만약 한국에 없다면 해외에 가서 찾자는 생각에 글로벌 진출을 한 것이고요.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대가 위기를 극복하는 터닝 포인트이자 브랜드의 경쟁력이 된 셈이네요.

솔리드 옴므 역시 1년 전부터 글로벌 시장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홍콩의 하베이 니콜스 (Harvey Nichols)를 시작으로 현재 런던의 헤로즈 백화점, 파리의 라파예트, 미국의 온라인 사이트 미스터 포터(Mr.porter) 등에 입점해 있어요. 사실 솔리드 옴므는 국내에서만 선보였는데 해외 시장에서 우영미 말고 또 다른 브랜드가 있다는 걸 알고 먼저 관심을 보였어요. 우영미라는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나중엔 저희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제안이 들어왔는데 런던이나 뉴욕에선 솔리드 옴므가 궁금한 나머지 한국에 와서 시장조사를 하고 간 곳도 있었어요. 그들도 남성 브랜드 중에서 우리처럼 오랫동안 브랜드를 유지하고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패션 하우스가 드물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최근 버버리를 비롯해 몇몇 브랜드가 ‘제철’ 컬렉션을 발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어요. 실시간 컬렉션을 보고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만큼 소비자와의 접점은 더 가까워지지만 상업성만 추구하게 될 거란 염려가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물리적으로도 소비 사이클이 너무 빨라져요. 익숙하기도 전에 바뀌고 또 바뀔 텐데 과연 이게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 모르겠어요. 럭셔리 브랜드 스스로 패스트 패션이 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 옛날 오트 쿠튀르 옷을 보면 그 자체가 훌륭한 오브제인데 요즘 옷에는 영혼이 없는 것 같아요. 한 번 입고 말거나 아예 입지도 않고 버리기도 하잖아요. 대량 소비만 조장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겠지만 젊은 친구들이 옷을 한두 번 입고 버리는 걸 보면 디자이너 입장에서 대량 산업 쓰레기를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솔리드 옴므의 2016 S/S 컬렉션.

“우리는 사장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디자이너 마인드로 브랜드를 이끄는 거예요. 기업이 아니라 패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패션 하우스인 것이죠. 그래서 저는 딱 하나 ‘우리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해요. 이렇게 계속 한길을 걸어나가는 것 외에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영원히 패션 디자인 하우스로 남는 거예요. 그러러면 목표를 매출이 아닌 우리 옷을 입은 남자를 더 멋지게 만드는 것으로 삼아야죠. 그 남자가 더 멋져 보일 수 있도록 까다로워지는 것이 바로 우리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대표님 옷장이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아이템이 있나요?

저는 여성복, 남성복 안 가리고 필요한 옷을 사기 때문에 옷장에 두드러지게 이렇다 할 아이템은 없어요. 몇 가지 옷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표현하려고 할 뿐이죠. 만약 이번 시즌에 마음에 드는 코트가 없으면 안 사는 거예요. 가구도, 액세서리도 똑같아요. 예전에 이사했을 땐 마음에 드는 조명이 없어서 2년간 등 없이 살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게 집안 내력인 것 같기도 해요. 제 딸들이나 조카들 역시 사소한 물건 하나도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매우 거슬려하거든요.

대표님을 포함해 자매 모두(마이알레 우현미ㆍ우경미 대표)가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 있는 만큼 어릴 적 가정환경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집안 분위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디자인을 접하게 된 거죠. 건축가인 아버지와 중학교 선생님이신 어머니가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아버지는 1960년대 초반에도 아침에 로브 가운을 입고 파이프를 피우며 커피를 드리핑해 드셨고 어머니는 지금 봐도 세련된, 고감도의 예쁜 물건을 구매해 집 안을 장식하셨죠. 두 분 모두 당장 한달 뒤에 먹을 쌀이 없어도 예쁜 커피 잔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그런 부모님이 철없게 느껴졌는데 이러한 환경 자체가 우리 자매에게 예술적ㆍ시각적 감각과 취향을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고 자란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는 말을 믿어요.

어렸을 때부터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보고 판단하는 법을 습득한 셈이네요. 2014년에는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패션 500인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운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들의 시선에서는 패션의 변방인 한국에서 왔고 저는 경영자라기보다는 디자이너이니까 여러모로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우리가 헛짓을 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처음 파리에 갔을 땐 서울에도 컬렉션이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의 분위기였기 때문에 한국 패션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점에서 뿌듯하기도 하고요. 이제는 서울을 패셔너블한 도시로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한국 패션이 뜨는 분위기랄까,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느낌이에요.

도산공원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맨메이드 우영미의 5층 솔리드 옴므 매장.
서울 패션 위크의 초석인 ‘뉴 웨이브 서울’의 창립 멤버인 만큼 패션 도시 서울에 대한 감회가 더 새로울 것 같아요.

뉴 웨이브는 1993년 당시 저와 같이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패션쇼였어요. 열심히 디자인하는데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없으니까 박춘무, 이정우, 박윤정 등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여 만든 것이죠. 그때는 저희가 젊었기 때문에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파격적인 무대를 많이 선보였어요.(웃음) 그러다 보니까 점차 대중의 관심과 호응을 얻게 되고 영 디자이너들에겐 통과의례처럼 됐죠. 지금의 서울 패션 위크는 시에서 적극 나서서 세계 언론을 부르고 쇼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만큼 젊은 디자이너들이 잘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지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너무나 좋은, 절대로 놓쳐선 안 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패션 위크를 통해서 한국 패션의 르네상스가 되길 바랍니다.

그 중심에 있는 솔리드 옴므가 이제 곧 30주년을 맞게 되잖아요. 30년, 아니 그 이후가 되더라도 사람들이 솔리드 옴므와 우영미를 어떤 브랜드로 기억하길 바라나요?

아직 살아 있는 멋진 남자? 내가 지금 만나고 싶은, 항상 옆에 있고 싶은 남자요. 저는 따뜻한 남자가 좋아요. 여유가 있고 확신이 있어서 방어적이지 않은 남자요.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수록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개개인의 캐릭터가 중요한 것이지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요. 안 그래도 2016 F/W에서 선보인 우영미 컬렉션을 보고 드디어 여성복을 시작했구나 생각했어요. 아직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컬렉션에 세워보면서 워밍업하는 단계죠. 물론 여성복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동안은 엄두가 안 났어요. 이번에도 저와 함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케이티 정이 해보겠다고 자청해서 시작할 수 있었고요. 컬렉션 반응은 좋았는데 사실 우영미는 지금도 여자가 입으면 여자 옷이 되고 남자가 입으면 남자 옷이 되는 스타일이에요. 요즘에는 ‘캐릭터 와이즈’, ‘아이덴티티 와이즈’와 더불어 ‘사이즈 와이즈’가 화두이기 때문에 남자 옷과 여자 옷의 구분이 없는 애매모호한 스타일이 유행이고요. 저 역시 남자 옷, 여자 옷 구분을 두지 않기 때문에 당장 여성컬렉션으로 비즈니스를 하려는 계획은 없어요. 아직 검토 중으로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제 우영미뿐 아니라 솔리드 옴므까지 두 브랜드 모두 세계로 진출하게 되었으니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럭셔리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럭셔리, 말 그대로 명품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한 세대, 두 세대를 거쳐가며 정말 가치있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브랜드로서 앞으로 우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영원히 패션 디자인 하우스로 남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목표를 매출이 아닌 우리 옷을 입은 남자를 더 멋지게 만드는 것으로 삼아야죠. 그 남자가 사람들에게 한 번 더 시선을 받고 스스로 만족하며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것, 더 멋져 보일 수 있도록 까다로워지는 것이 바로 우리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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