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오타쿠가 이끄는 몇 년째 가장 핫한 회사 넨도 Nendo

<월페이퍼> ‘올해의 디자이너상 2012’를 시작으로 <엘르 데코>, 메종 & 오브제 등이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 부문에 수없이 이름을 올렸다. 뉴욕 모마,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대표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2012년부터 와세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디자인 오타쿠가 이끄는 몇 년째 가장 핫한 회사 넨도 Nendo
홀론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 <넨도: 사이의 공간>전의 한 설치물 뒤에선 오키 사토 ©Takumi Ota

오키 사토 1977년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며 10살 때 일본으로 돌아와 2000년 와세다 대학 이공학부 건축과를 수석 졸업했다. 2002년 같은 대학원을 수료한 후 넨도를 설립했다. 2006년과 2007년 <뉴스위크>의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 ‘세계가 주목하는 일본 중소기업 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월페이퍼> ‘올해의 디자이너상 2012’를 시작으로 <엘르 데코>, 메종 & 오브제 등이 선정한 올해의 디자이너 부문에 수없이 이름을 올렸다. 뉴욕 모마,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대표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2012년부터 와세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평균 직원 연령 27세의 젊은 회사 넨도는 불경기 속에 태어나 호경기라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조직이다. 수많은 제약 속에서 끊임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은 물론 부지런하고 효율적인 시스템 또한 불가피했다.”

따분함이 영감의 원천인 디자이너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일곱 살 난 반려견 키나코(인절미)를 산책시키고 늘 가는 카페,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카푸치노를 시킨다. 점 심에는 늘 가는 국숫집에서 같은 국수를 주문해 먹고 다시 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를 반복한다. 40벌의 하얀 셔츠와 20벌의 검정 바지, 속 옷과 양말도 같은 검은색만 입는 방식으로 선택 지를 최대한 줄여 머리를 비운다. 10년째 가장 핫하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일본 디자인 스튜디오 넨도(Nendo)를 이끄는 오키 사토(Oki Sato, 佐藤オオキ)의 다소 따분한 일상이다. 반 복되는 일상을 살면 자연히 관찰을 하게 된다. 카페의 의자 하나가 망가졌다거나 국숫집 요리 사가 바뀐 것도 커다란 변화로 감지된다. 스스로를 디자인밖에 모르는 ‘디자인 오타쿠’라 칭하 는 오키 사토가 발견하고자 하는 일상 속 ‘!(느낌 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일본 디자인계를 대표하는 차세대 디자이너 오키 사토는 1977년생, 올해로 만 39세로 와세다 대 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2002 년 대학원 졸업 여행으로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방문한 그는 가구와 제품 디자인의 경계를 넘 나들며 활동하는 건축가들을 만났다. ‘나도 이곳에서 꼭 전시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돌아오자마자 도쿄에 사무실을 냈고, 이듬해인 2003 년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두 번째로 밀라노를 찾 았다. 밀라노 진출 10년 만인 2013년, 넨도는 대 규모 개인전을 포함해 20개 브랜드와 함께 작품을 협업한 가장 주목받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2012년 <월페이퍼>와 <엘르 데코>가 선정한 ‘올 해의 디자이너’로 본격적인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오른 넨도는 2013년 ‘스톡홀롬 퍼니처 & 라이트 페어(Stockholm Furniture & Light Fair)’의 ‘게스트 오브 오너(Guest of Honour)’에 선정된 특전으로 전시장 입구부터 200m에 달하는 최고의 전시 공간을 확보해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신고 식을 치렀다. 2015년 메종 & 오브제 ‘올해의 디자이너’로 다시 한번 핫한 디자이너임을 확인시키며 어느덧 필립 스탁, 하이메 야욘, 론 아라드, 파 트리샤 우르퀴올라 등과 나란히 매년 밀라노 가 구 박람회에서 가장 많은 가구를 출품하는 스타 디자이너로서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지 난 6월 7일, 이스라엘의 홀론 디자인 뮤지엄에서 넨도를 설립한 지 14년 만에 처음으로 대규모 해 외 회고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넨도의 대표작을 묻는 질문에 오키 사토는 ‘넨도는 특징적인 히트작이 없는 게 특징’이라고 말하 지만 2008년 이세이 미야케와 협업한 양배추 의자(Cabbage Chair)는 단연코 많은 이들에게 넨도를 각인시킨 전환점이다. 넨도는 주름 소재 원 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량으로 폐기되는 얇은 가공지를 여러 겹 겹쳐 원기둥 모양으로 만든 뒤, 마치 양배추에 칼집을 내듯 사용자 마음대로 칼집을 내어 종이가 펼쳐지면 의자의 기능이 부여되는 콘셉트를 제시했다. 완성형을 한정 짓지 않는 느슨한 넨도식 디자인을 선포한 셈이다. 넨도의 클라이언트 중 60%는 카펠리니, 모로소, 비사 자,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세계적인 가구와 명품 브랜드이며 40%는 일본 코카콜라부터 오모테산 도의 고급 피트니스 센터, 롯데의 새로운 껌 브랜드 론칭까지 분야의 제약 없이 다양하다. 점토라는 의미의 회사명처럼,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제품, 가구, 조명, 인테리어, 설치, 건축을 아우 르는 분야에서 총 40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동 시에 다루며 ‘날마다 접하는 일상 속 작은 발견’을 담고 있다.

넨도가 일하는 방식
평균 직원 연령 27세의 젊은 회사 넨도는 불경기 속에 태어나 호경기라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조 직이다. 수많은 제약 속에서 끊임없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것은 물론 부지런하고 효율 적인 시스템 또한 불가피했다. 회사는 아이디어 워크 전반을 담당하는 오키 사토와 공간 디자인을 총괄하는 오니키 고이치로, 매니지먼트 업무를 맡는 이토 아키히로, 이 3명을 중심으로 돌아 간다. 설립 당시 4명의 디자이너와 2명의 매니지먼트로 시작한 것이 현재 밀라노 지사 직원을 포함해 전체 30명 규모(디자이너 25명과 관리직 5 명)의 조직으로 성장했고, 올해 말까지 애니메이션과 그래픽, 컨설팅에 특화된 디자이너를 기용해 80명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장기적인 경기 침 체로 대기업마저 스타 디자이너 기용을 자제하는 추세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디자이너 사관 학교로 불리는 넨도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일본의 주요 기업으로 스카우트되는 일 이 매우 잦다. 그만큼 고된 업무 강도와 집요한 시스템에서 습득한 역량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넨도의 업무 사이클의 한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오 키 사토는 각각의 프로젝트마다 한 명의 책임 디자이너를 배정하고 자신이 직접 그 책임 디자이너와 2인조 팀을 이루어 일한다.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 직후 오키 사토가 아이디어를 스케치하 고 클라이언트의 특징과 니즈를 파악해 프로젝트 담당 디자이너에게 전달하면, 이를 바탕으로 사무실에 있는 3대의 3D 프린터와 3대의 레이저 가공기, 1대의 절삭기를 풀가동해 목업을 만든다. 클라이언트와의 첫 미팅에서 프레젠테이션까지 빠르면 4일이 걸리고 이러한 미팅을 3~4회 거 치면 2주 안에 완성도 높은 모형과 CG가 완성된 다. 넨도와 협업했던 시저스톤(Ceasarstone)의 홍보 담당 제이컵 피어스(Jacob Peres)는 “넨도는 한마디로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첫 오리엔테이션 미팅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교환했을 뿐인 데 바로 다음 미팅에서 10개가 넘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서 놀랐습니다. 비용에 대한 이 야기가 오고 가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죠”라며 넨도의 성실함을 말한다. 일 년 중 절반 정도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일정을 소 화하는 오키 사토의 동력은 여전히 느슨하고 침 착한 특유의 감성에서 나온다. 넨도의 힘은 스토리텔링에서 시작해 스토리텔링으로 끝난다. 그것도 아주 독특하고 화려한 경험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양배추 의자(Cabbage Chair), 2008
도쿄 21_21 디자인 사이트의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이세이 미야케가 총괄 큐레이팅한 <XXIst Century Man>전을 위해 협업한 의자. ©Masayuki Hayashi

넨도식 사고방식을 디자인하다
오키 사토는 그의 책 <넨도 디자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기보다 인정받는 조연 정도의 연기자이 고 싶다. 어떤 일이 주어져도 대응할 수 있는 매력을 보유하고 싶다”며 “의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진료하는 환자마다 최선을 다하지만 최고의 진료를 꼽을 수 없듯이 말이다”라고 말한다. 마치 하얀 점토처럼 물처럼 공기처럼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넨 도가 어떻게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라섰는지를 묻는다면, 그의 실력과 무모함으로 점철된 열정 때문이라 말하겠다.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과 달 리 서구 디자인계는 아직까진 기업이 과감한 시 도를 기꺼이 감수하고 모험하는 경우가 많아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에게 덜컥 큰 임무를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기업의 요구를 채워줄 남다른 감각을 지닌 동양의 디자이너가 많지 않다. 그렇기에 한 번도 기존 디자인 회사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 그 어떤 관습 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그래서 더욱 무모했던 오 키 사토의 적극적이면서도 성실한 자세가 세계적 인 기업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오키 사토가 추구하는 넨도는 디자인 회사의 이름을 넘어 높은 품 질의 디자인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하나의 사고 방식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디자인하고 싶은 것은 넨도라는 이름이 찍힌 제품이 아니라 넨도의 정신을 담은 무형의 플랫폼, 즉 사용자 개개인이 디자인에 관여할 여지를 남겨둔 느슨하고 유연한 디자인 프랙티스다. www.nendo.jp
글: 김은아 기자, 사진 제공: 넨도 스튜디오, 취재 협조: 이스라엘 관광청

캠퍼 뉴욕 매장, 2013
1800켤레의 신발 오브제를 벽에 설치했다. ©Daici Ano

Interview
오키 사토 넨도 대표
“좋은 디자인이란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넨도: 사이의 공간>전을 둘러보니 그 어떤 텍스트도 없었다.

전시 섹션을 나눈 설명은 물론 작품명조차 없다. 나는 디자인한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고역이다. 꼭 필요한 경우만 최소한으로 네이밍을 하는데 애초부터 그냥 작업 순서대로 숫자를 붙일 것을 그랬나 보다. 관람객에게 전시 관람을 위한 어떠한 지시 사항도 전하고 싶지 않았다. 전시의 목표는 관람객을 넨도의 크리에이티비티에 참여하게 만드는 거다. 작품 설명을 없애버리는 게 그 시작이라고 봤다. 이 사물을 보고 의자라고 말하는 순간 90%의 다른 아이디어의 가능성이 사라진다. 관객이 사물을 보고 ‘여기에 앉아볼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사실은 테이블이었던 그 사물도 곧 의자가 되거나 바닥이 될 수도 있다.

건축을 공부한 뒤 어떤 건축ㆍ디자인 회사에서 인턴조차 해본 경험도 없이 넨도를 바로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고용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웃음) 대학원 졸업 여행으로 친구 다섯과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둘러봤다. 내가 다닌 학교는 매우 엄격한 기준을 따르는 곳이었는데, 밀라노에 가니 건축가가 가구, 디자인 할 것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에 큰 영감을 받았다. 화려한 색감과 커다란 모형 등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크고 웅장한 모든 것이 목청을 높여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거 같더라. 여기서 누군가가 속삭인다면 어떨까, 소소하고 엉뚱한 내 이야기에 사람들을 귀 기울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작은 호기심이 생겼고 현장에서 바로 회사 이름도 지었다. 실패하면 다시 구직하면 될 것이라는 무모함으로 시작했다. 오픈 초기에는 주로 건축을 기반으로 한 주거 공간 디자인을 의뢰받았지만 점점 가구와 제품으로 영역을 넓혀갔고, 자연스레 이제는 다시 건축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현재 내년 완공을 목표로 교토의 기차역 앞 공원에 첫 번째 건축물을 디자인하고 있다.

50개 망가 체어(50 Manga Chair), 2016
코미디 만화책 본연의 내러티브 특성을 가구 디자인에 접목한 것으로 갤러리 프리드만 벤다Friedman Benda와 협업해 지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였다. ©Kenichi Sonehara
멘토로 삼은 디자이너가 있나?

늘 받는 질문인데 곤란하게도 나는 딱히 이름을 댈 마스터가 없다. 영감은 온 천지에서 다 받는다. 개인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과도한 정보가 넘쳐나는 게 오히려 문제다. 내 디자인적 영감의 원천을 굳이 떠올린다면, 어린 시절 매우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이라고 하겠다. 도라에몽은 사람들이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주머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를 꺼낸다. 설명서 없이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도구인데, 그 도구는 늘 완벽하지 않고 고장이 난다. 그 결함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의 디자인적 관점도 이와 비슷하다. 의자는 안락함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기에 완벽한 의자란 불가능하고 그래서 저마다의 디자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떻게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이너가 됐나?

정말 모르겠다. 많은 스타 디자이너들은 대표작이라는 게 있지 않나. 우리는 절대 그런 걸작이랄 게 없다. 우리를 아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는 이름 대신 작업의 느낌만 기억하거나 어떤 이는 아예 이름조차 모른다. 사실 나도 내가 한 수많은 작업의 제목이나 발표 연도 등 절대 다 기억하지 못한다.(웃음) 우리는 단지 눈앞에 주어진 프로젝트에 집중해 차근차근 해나갈 뿐이다.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반려동물 매장 주인이 되었을 거 같다. 강아지, 거북이 등 반려동물을 매우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현재 디자이너라는 직업 또한 반려동물 매장 주인과 크게 다를 것 없다. 이제 갓 태어난 작은 아이디어를 밥을 주고 잘 보살펴 키운 뒤 어느 정도 몸집을 불리게 되면 클라이언트한테 양도해야 한다. 종종 이름도 붙여주고 말이다.

‘넨도식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선 재질, 색깔, 모양으로 정의할 수는 없고 결국 스토리텔링이라고 본다. 좋은 디자인이란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 늘 말해왔다. 아무런 전문 지식이 없는 이에게 전화로 제품 콘셉트를 들려줬을 때 얼마나 직감적으로 내용을 이해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만 스토리가 과도하게 특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센(rassen), 2013
넨도의 수공예 장인 브랜드 ‘엔 마스터’의 젓가락. ©Akihiro Yoshida
넨도의 디자인이 일본적인 세계관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넨도와 일본스러움을 결부 짓는 이도 있지만 나 스스로는 ‘그냥 디자이너’다. 내 안에 있는 일본스러움은 그게 무엇이건 내가 신경 쓴다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침착하게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내가 디자인하는 대로 디자인할 뿐이다.

넨도에게 아트와 디자인은 어떤 의미인가?

아트는 나에게서 나온다. 정치적일 수도 있고 매우 감정적일 수도 있다. 그림으로 나타내자면 화살이 나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디자인은 텅 비워야 한다. 물처럼 공기처럼 다른 것을 투영하고 흡수해야 한다. 나는 사실 디자인하고 싶은 것이 없다. 클라이언트에게 모든 재료가 있으니 나는 비워야 한다. 종종 클라이언트는 자기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기도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얘기인데, 즉 문제를 푸는 것뿐 아니라 문제를 찾아낸 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가 디자이너의 영역이다. 이는 뜨거운 심장보다는 머리에서 나온다. 내가 되도록 머리를 깨끗하게 비워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듣고 10개 이상 해결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진행 중인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이제 막 시작한 이스라엘 홀론 디자인 뮤지엄 전시의 연장선상으로 8월부터 대만디자인센터에서 두 달간 개인전을 연다. 전시작은 홀론의 전시와 겹치지 않는다. 대만에서는 클라이언트별로 제품 중심의 윈도 쇼핑 같은 전시를 선보인다. 홀론과 대만 전시를 합치면 넨도의  완전체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홀론의 전시가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을 담은 전시라면 대만은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실질적인 협업을 했는지 실용적 측면을 볼 수 있다. 이어 9월 뉴욕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고, 10월에는 쾰른 국제 사무 가구ㆍ기자재 전시회 올가텍(ORGATEC)에서 오피스 디자인을 선보이고, 이탈리아 시계 브랜드 파네라이(Panerai)에서 제품도 발표한다. 2017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준비도 이미 시작했다.

디자이너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세이 미야케와 캐비지 체어 작업을 할 때, 나는 여전히 건축학도로서 늘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는 명제를 따라 돌진하던 중이었다. 근데 어느 순간 미야케가 “거기까지만 하죠”라고 하더라.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다 된 거 같으면 다 된 것이다. 어느 순간을 동결(freeze)시키고 또 유연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그 두 과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 훌륭한 디자이너의 요건인 것 같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들은 어느 타이밍에 아이디어를 유연하게 풀어주고 언제 다시 견고하게 굳힐지에 능한 이들이다.

14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나 스킬이 아니고, 어려운 길을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프로젝트건 직업이건 수많은 옵션이 있다. 다만 디자이너는 플랜 A와 플랜 B 중 지금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많다. 양갈래 중 방향이 고민된다면 언제나 더 어려운 쪽을 택하면 된다. 더욱 고된 길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결국 더 옳은 길로 인도한다. 쉬운 길은 늘 솔깃하다. 피곤하고 시간도 없을 때 그 길을 택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곧 커리어의 종착점이 될 것이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