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이 아닌 구조를 보여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안토니오 치테리오

“내 디자인의 목표는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스타일이 아닌 구조를 보여주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안토니오 치테리오

“밀라노 북쪽에 자리한 소도시 메다(Meda)는 이탈리아 가구 산업의 핵심적인 지역이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장인이자 사업가로 활동하는 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했는데, 예술 학교에 진학해 매일 4~5시간씩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고 아버지 회사 일을 도왔다. 아버지는 주세페 테라니 (Giuseppe Terragni), 움베르토 아스나고(Umberto Asnago) 같은 이탈리아 건축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가구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13살 소년 시절 이미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는 안토니오 치테리오(Antonio Citterio)의 이야기다. 치테리오가 20대 청년 디자이너로 활약을 시작한 1970년대, 이탈리아 디자인은 그가 지향하는 구조주의적 기능주의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당시는 2차 대전 이후 줄곧 세계 디자인계를 지배해왔던 엄숙한 기능주의에 반하는 혁신적이고도 전위적인 디자인 운동이 펼쳐졌다.

1980년대는 에토레 소트사스나 알레산드로 멘디니 등을 중심으로 한 멤피스(Memphis)와 알키미아(Alchimia) 같은 그룹이 급진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이들의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이 세계 디자인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치테리오는 오히려 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간다.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터득한 가구와 디자인의 본질, 즉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은 그 가구를 사용하는 환경이나 위치, 다른 가구와의 관계를 고려해 일상의 행위를 접목시키는 작업’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난 40여 년간 산업계의 무수한 파워 브랜드와 손잡고 다양한 작업을 펼쳐온 그에게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비앤비 이탈리아, 비트라, 그리고 카르텔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973년부터 함께해온 비앤비 이탈리아와는 생활 가구를 선보여왔는데, 작고 슬림한 금속 프레임과 상대적으로 거대한 몸체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세련된 비례미와 우아한 단순미로 치테리오 스타일의 전형을 완성해냈다. 그에게 첫 번째 황금 콤파스상을 안겨준 제품 또한 비앤비 이탈리아와의 협업으로 선보인 소파 시티(Sity, 1986)다. 1990년대에 들어 그의 가구 디자인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기능적이되 감성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치테리오의 디자인이 미니멀리즘 사조와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비트라와 함께 선보인 사무용 가구는 인체 공학적 설계에 의한 뛰어난 기능성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신소재와 첨단의 기술 활용에 적극적인 그는 “디자인은 한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프로토타입이 나오면 지속적으로 엔지니어와 상의하며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며 기술과 제작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카르텔을 위해 디자인한 접이식 테이블 바티스타(Battista, 1991)와 움직이는 수납장 모빌(Mobil, 1994) 또한 새로운 기술과 신소재를 도입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뉴욕 현대미술관과 파리 퐁피두센터에 영구 소장되었다.

1980년대 들어 그는 본격적으로 건축과 인테리어 작업에도 착수한다. 1987년부터 건축가 아내 테리 드완과 함께 사무소를 운영하며 암스테르담 경찰청, 밀라노 에스프리 오피스, 뉘른베르크 비트라 공장 등 유럽 각지와 일본을 활동 무대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다. 1999년 파트리시아 비엘(Patricia Viel)과 함께 ‘안토니오 치테리오 & 파스너스’를 설립하면서 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2000년 독일 함부르크의 에델 무지크 본부(Edel Music Headqueter)를 시작으로 국제적인 복합 단지 개발을 진행하는 한편 호텔과 쇼룸 등으로 디자인 영역을 확장해간다. 발렌티노, 웅가로, 세루티 등 패션 왕국의 러브콜을 받으며 세계 각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디자인했고, 최근에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 본사, 밀라노와 발리 그리고 런던의 불가리 호텔, 밀라노와 싱가포르의 레지덴셜 빌딩, 상트페테부르크 W호텔 등을 작업했다.


어느덧 환갑을 넘기며 그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 작은 테이블웨어부터 거대한 복합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디자인 작업을 펼쳐왔다. 그러나 그것은 스케일의 차이일 뿐 제품이든 건축이든 그 출발점은 모두 하나. 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필요와 요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에 맞는 섬세한 솔루션을 제공한는 것이 디자인의 본질이라는 믿음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양산해내며 변덕을 부리는 시장에서 치테리오가 지금까지 세계 정상을 지켜온 비결은 ‘눈에 보이는 스타일’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능’에 충실했기 때문인 것이다.

“내 디자인의 목표는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안토니오 치테리오
오랫동안 디자이너로서 세계 정상을 지켜왔다. 40여 년을 관통해온 당신만의 디자인 철학이 궁금하다.

내가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은 제품 중심이지 시장 중심이 아니다. 내 디자인의 최종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개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디자인한다. 내가 트렌드를 앞서왔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요구를 남들보다 먼저 파악했고, 그 해결책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앤비 이탈리아, 비트라 등 세계 유수의 회사들과 수십 년간 꾸준하게 작업해오고 있다. 클라이언트를 응대하는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나?

모든 프로젝트에는 아빠와 엄마가 있다. 디자이너가 전자이고 제조 회사가 후자라 할 수 있다. 디자이너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제조 회사와의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낸다. 생산 기술에 대한 지식이나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대한 이해 없이 새로운 제품을 상상하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비전과 디자인 언어를 이해하는 이들과 함께 일을 하려 한다. 고로 클라이언트 기업은 내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나에게 클라이언트 이상의 파트너다. 신뢰와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야말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비앤비 이탈리아와 함께한 지 올해로 40년이다. 이번 방한 또한 한국의 인피니를 통해 새롭게 론칭한 비앤비 이탈리아의 아시아 최대 쇼룸 오픈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에게 비앤비 이탈리아는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정말 오랜 인연이다. 1970년대 초반, 첫 개인 스튜디오를 시작한 직후부터 함께 일해왔다. 반세기 동안 세계 컨템퍼러리 가구 산업을 선도해온 비앤비 이탈리아와 함께 다양한 디자인을개발할수있었던것은정말이지큰 행운이었다. 1996년부터는 막살토(Maxalto) 라인의 디자인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고,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비앤비 이탈리아의 콘트랙 디비전과 협력하며 진행해왔다. 대부분 호텔 프로젝트인데, 예를 들면 밀라노와 런던의 불가리 호텔, 상트페테부르크 W호텔이 있다.

당신의 디자인은 구조적이고 기능적이다. 이탈리아 디자인 하면 연상되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디자인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


가구를 디자인하는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시각은 산업 디자이너들과 매우 다르다. 그들은 가구를 공간안어느위치에어느정도의밀도로놓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 디자인의 차별화는 건축가로서의 개념적 접근과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창조성이결합한결과로볼수있다. 스스로 꼽는 당신의 대표작이 궁금하다. 비앤비 이탈리아에서 출시한 찰스 소파(Charls Sofa, 1997)다. 사실 이 소파는 당시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밀라노 아파트 거실에 놓으려고 디자인한 것이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공간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등받이를 낮춘 것이다.이처럼생활속에서나와내가족의 필요에 의해 디자인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우가 많다. 찰스 소파는 여전히 비앤비 이탈리아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제품인데, 아웃도어용으로도 출시되었다.

불가리, 에르메스 등 패션 브랜드와의 작업은 또 다른 경험일 것 같다.


불가리 호텔은 토털 디자인의 좋은 예이다. 문고리 같은 디테일부터 가구, 패브릭, 소품, 전면 파사드와 공간 디자인까지 호텔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디자인했다. 그 결과물은 놀라우리만치 일관성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 환경과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연관성을 띠게 되었다. 2011년 에르메스 가구 컬렉션을 디자인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요즘과 같은 산업화 시대에 장인 기술로 유명한 회사와 타임리스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인 장 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의 뒤를 잇는 컬렉션을 디자인하게 된 것도 뜻깊은 일이다. 2006년부터 멘드리시오 건축 아카데미 (Academy of Architecture in Mendrisio)에서 강의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꼭 들려주는 조언이 있는가?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태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매우 신중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너희는 세상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만약 디자인 회사에 너의 작업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계약을 하고 어떻게 네 아이디어를 보호할 것인지 등을 협상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말아라. 너희는 천재가 아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라”고 이야기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15호(2013.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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