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보 소스케
평범해서 특별한 산업 디자이너
세계적인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에게 물었다. “당신이 주목하고 있는 디자이너는 누구입니까?” 재스퍼 모리슨이 지목한 차세대 디자이너 나카보 소스케를 소개한다.
”어떤 유명 디자이너에게 추천받은 것보다 기쁘다.” 영국 출신의 산업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에게 추천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나카보 소스케(中坊壮介)의 첫마디다. 사실 재스퍼 모리슨과 나카보 소스케는 런던에서 함께 일했던 사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나카보 소스케가 재스퍼 모리슨과 함께 일하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교토 예술대학 졸업 후 파나소닉에서 일했던 그는 2000년 먼 유학길에 올랐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졸업 후에 뭘 하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영국왕립예술학교(RCA)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취업 걱정은 뒤로한 채 우선 좋은 디자인을 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열심히 하면 자신의 디자인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당연히 따라올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업 후 영국을 비롯한 수많은 해외 디자인 스튜디오에 이력서를 보냈음에도 비자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목을 잡아 일단 일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귀국 후 무인양품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그는 다시 한 번 영국에 도전장을 던졌다. 포트폴리오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예상치 못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재스퍼 모리슨이었다. 그는 재스퍼 모리슨이 아닌 다른 디자이너에게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재스퍼 모리슨은 함께 일할 디자이너를 찾던 중이었고 마침 그와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에게 어디 괜찮은 인재가 없냐고 물었을 때, 나카보 소스케의 포트폴리오가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나카보 소스케는 다시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게 됐다.
재스퍼 모리슨 사무실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2010년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교토에서 ‘소스케 나카보 디자인 오피스’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특히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무인양품와 협업해 출시한 제품을 보면 그의 디자인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 그대로 더하거나 뺄 것도 없이, 디자인하지 않은 듯한 디자인, 본래 제품의 기능에 가장 충실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간단한 기능만으로 충분한 가전제품을 비롯한 거의 모든 제품이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복잡한 기능을 갖춘 시대지만, 그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추구한다. 지난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에서 출시한 선풍기나 히터의 버튼도 터치가 아닌 누르는 방식이다.
“새로운 기술이 제품이나 디자인을 더욱 좋게 만들 때도 있다. 제품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관계없이 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감동을 받는 경우는 아날로그적인 제품을 사용할 때가 더 많다. 일본다운 디자인을 일부러 의식한 적은 없지만 민예품처럼 생활에 깊고 곧은 뿌리를 내려온 물건들 안에 디자인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딱히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르거나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감각을 의식하고 디자인한다고 말했다. 그가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떠한 문제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통합하고 정리해가는 과정이다.
“클라이언트와 사용자는 물론이고 엔지니어, 제작자, 판매자를 거치는 모든 과정에 무리가 없고 이와 관련된 사람 모두가 행복할 수 있길 바란다. 물론 매우 어려운 과정이지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게 최우선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인터뷰 도중 ‘생활과 일의 균형’에 대해서 몇 번이고 강조했다. 생활이 조금 희생되더라도 일을 우선으로 했던 일본과 달리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정리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당연한 영국에서 재스퍼 모리슨과 함께 일하며 생활과 일의 균형,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좋은 디자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마지막으로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해온 일의 90%에는 내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면 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스타일로는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건 어려울 것 같다(웃음).” 좋은 디자인으로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아도 그런 결과물이 디자이너 나카보 소스케를 널리 알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대할 때의 태도는 재스퍼 모리슨에게 받은 영향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 물론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계속해서 영향을 받고 있다.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선생님.
제2의 직업을 선택한다면?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계속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크리에이터나 장인?
여가 시간에는 무얼 하나?
가족들과 함께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시간이 나면 어디든 외출한다.
현재 가장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은?
스포츠와 운동 선수. 열심히 경기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삶이나 가치관이 보일 때 감동받곤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에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다. 굳이 정의하자면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
지금까지 가본 곳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도시는?
런던이다. 디자이너나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 어떤 곳 보다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게 하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면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재스퍼 모리슨이 나카보 소스케를 추천한 이유
“나카보 소스케의 디자인은 매우 뛰어나다. 그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그를 잘 알고 있다. 그의 디자인은 콘셉트와 표현이 균형을 이룬다. 콘셉트는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난다. 나는 그가 다음 세대를 이끌 최고의 디자이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디자이너는?
정말 많다.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장 프루베(Jean Prouvé), 소리 야나기(Sori Yanagi), 찰스 임스(Charles Eames), 막스 빌(Max Bill),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 비코 마지스트레티(Vico Magistretti), 보르게 모겐센 (Borge Mogensen), 한스 베그너(Hans Wegner), 엔초 마리(Enzo Mari)….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그땐 엔지니어나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제2의 직업을 선택한다면?
아마 사진가나 요리사, 정원사가 되려고 할 것 같다.
여가 시간에는 무얼 하나?
평소에는 사진 찍고 요리하고 식물 기르는 것을 좋아한다.
현재 가장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은?
나는 동시에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무인양품 소스 팬, 캠퍼 신발, 이세이 미야케 시계 등 다양한 성격의 디자인을 항상 의자에 앉아 고민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은 당신이 오래전에 샀고 많이 생각하진 않지만 매일 사용하는 것 중 하나다. 만약 고장 나거나 잃어버린다면 매우 아쉬울 그것이 바로 좋은 디자인이다.
지금까지 가본 곳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도시는?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정말 많다. 도쿄, 런던, 파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브뤼셀, 밀라노, 바젤, 뉴욕, 그리고 서울. 5년 전 서울을 자주 방문했을 때 정말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