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든 이도의 대표

브랜드 신의 젊은 블렌딩 마스터

협업, 연대 그리고 유연성. 브렌든이 표방하는 키워드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대 크리에이티브 신의 표상이기도 하다.

브렌든 이도의 대표

지난해 서울시의 도시 브랜드 선정 과정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텀업 문화의 확산을 보여준 동시에 시민들의 디자인 안목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서울시가 제안한 최종안이 탐탁지 않았던 대중은 관광 브랜드로 개발했던 브렌든의 디자인까지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갓 5년 차에 접어든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그룹의 디자인이 대한민국 수도의 얼굴이 될 것이다. 물론 이를 해프닝 내지 우연한 행운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하지 않나. 어쩌면 다양성을 존중하고 문화, 기술, 브랜드, 비즈니스, 디자인의 융합을 추구해온 브렌든의 평소 태도가 대중의 ‘간택’을 이끌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브렌든 이도의 공동 대표는 이제 또 다른 창조적 블렌딩을 준비 중이다.

브렌든 공동 대표. S/O프로젝트를 거쳐 SK커뮤니케이션즈, 네이버 라인프렌즈 등에서 근무했다. 라인프렌즈의 디자인 팀장으로 일하다 2019년 정욱 공동 대표와 함께 브렌든을 설립했다. 나이키, 하나투어, 딩고 등의 브랜딩을 진행했으며, 지난해 서울시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와 네이버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치지직’ 아이덴티티로 널리 알려졌다. 최근 2024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아트 디렉터를 맡았다. brenden.kr

서울의 얼굴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서울시 도시 브랜드 아이덴티티. ‘서울, 마이 소울’이라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세대와 배경의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디자인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지난해 공개된 서울의 도시 브랜드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일반인은 구별하기 어렵지만 사실 브렌든의 과업은 도시 브랜딩이 아닌, 도시 관광 브랜딩이었습니다. 서울시 안에서도 관할 부서가 다르죠. 결과물이 잘 나왔고 다수의 글로벌 어워드에서 수상도 했으니 그대로 해피 엔딩인 줄 알았죠.(웃음)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서울시가 ‘서울, 마이 소울’이라는 슬로건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우리와 무관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국민 공모 과정에서 여러 이슈가 발생하며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상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브렌든의 디자인이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제안한 안이 선정된 것이죠.

당사자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겠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제삼자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했습니다.(웃음) 특히 공공기관, 특히 지자체의 디자인 프로젝트는 통상 경험 많고 이 영역에 특화된 디자인 전문 회사가 진행하는 암묵적 관습이 깨졌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브렌든은 이런 프로젝트를 맡기에 너무 젊은 회사라는 뜻이죠.

아마 처음부터 도시 브랜딩이 과업으로 맡겨졌다면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압감도 컸을 것이고. 그 전에 우리 같은 젊은 디자인 스튜디오에는 아예 기회조차 오지 않았겠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글로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였기에 클라이언트인 서울시에서 좀 더 파격적으로 진행하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컨펌 과정도 상대적으로 캐주얼했고요. 물론 도시 브랜드이든 관광 브랜드이든 한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그래도 도시 브랜딩으로 과업이 변경되면서부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민간 영역의 프로젝트와는 절차부터 다르잖아요.

맞습니다. 차이를 절실하게 느꼈어요. 일단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기 전 발주 기업으로 선정되기까지 그 과정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지난했습니다. 우리가 신뢰할 만한 회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처리해야 하는 행정 업무도 많았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최소한 3~4명으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공공기관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 영감, 즐거움을 상징하는 픽토그램을 적절히 배치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다

네이버가 새롭게 론칭한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 ‘치지직’. 디자인 협업 네이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죠. 브렌든 설립 전에는 S/O프로젝트, SK커뮤니케이션즈, 라인프렌즈 등에서 근무했습니다. 디자인 전문 회사와 인하우스를 두루 거친 셈이죠.

은사인 서울시립대학교 최성민 교수의 추천으로 S/O프로젝트에 들어갔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1년 만에 회사를 나와야 했어요. 짧은 근무 기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사무실에 S/O프로젝트가 디자인한 애뉴얼 리포트가 교과서처럼 꽂혀 있습니다. 아무튼 이후 재취업의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막 BX 개념이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포털 사이트들이 그 선봉에 있었고요. 특히 조수용 전 디자인센터장을 주축으로 네이버가 선보인 퍼포먼스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신명섭 현 플러스엑스 고문도 당시 네이버에 근무하면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줬죠. 브랜드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때만 해도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가 다음, 네이버와 더불어 국내 3대 포털로 불리던 때라 다양한 BX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디자인 전문 회사의 만만치 않은 환경을 경험한 입장에서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사실 저는 인하우스에 꽤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에서 동료들보다 반 발짝 빠르게 팀장으로 승진도 했고요. 그런데 몸담고 있던 라인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디자이너로서 꽤 터프한 근무 환경이었거든요.(웃음) 그래픽 디자이너와 단둘이 대만으로 건너가 200평짜리 플래그십을 뚝딱 만들어야 했고 그다음 달에는 바로 홍콩으로 넘어가 비슷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죠.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더 이상 브랜딩이 하나의 상징 기호를 설계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다양한 매체에 녹여낸 시각적 전략이 어떤 사용자 경험을 이끌어내는지 바라보는 과정 자체가 무척 즐거웠고 디자이너로서 스펙트럼 역시 넓어졌다고 느꼈습니다. 이윽고 독립해서 이런 프로세스를 독자적으로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치지직’ 브랜드 아이덴티티 헤르츠와 주파수에서 영감을 받아 키 비주얼과 모션 그래픽 등을 제작했다. 유연한 확장성을 위해 사선 그래픽을 위한 그리드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과 함께 변화하는 브랜드의 패러다임을 목도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네요.

제가 몸담은 조직은 BX 디자인 쪽이었지만 원래 회사 일이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죠. 프로젝트 하나를 완수하기 위해 UI·UX 디자이너나 개발자들과 긴밀히 커뮤니케이션해야 하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협업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브렌든이라는 사명 자체가 ‘브랜드’와 ‘블렌드’의 합성어입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유연한 협업을 통해 만든 결과물이 시너지를 낸다는 것을 IT 기업에서 체득했습니다. 브렌든은 내부에 모션그래픽과 3D 그래픽을 다루는 팀을 별도로 두고 있습니다. 아직 몸집이 작은 브랜드 디자인 회사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크리에이티브의 다양성을 위해선 필요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네이버 테크원 사옥 사이니지. 네이버의 자회사 11곳이 모인 공간의 사이니지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라인과 박스’를 활용한 프레임 형태를 디자인 원칙으로 삼았다. 3단 레이어를 활용한 설치물로 마치 박스 안쪽에 정보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시공 삼익플랜 클라이언트 네이버
그런데 협업이라는 게 현실 세계에서는 늘 이상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구성원 간에 좋은 협업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하우가 있나요?

좀 뻔한 답변 같지만 결국 답은 수렴과 포용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빚 좋은 개살구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떤 원칙이 필요하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최우선에 두는 원칙 중 하나가 마이크로한 아트 디렉팅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의 결과물이 이도의의 취향과 이도의의 미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우리가 지향하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닐뿐더러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하고요. 크리에이터의 감각은 낡기 마련이죠. 자연의 순리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크리에이터 개인의 감각에 기대는 일은 회사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관점이네요. 그렇다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이도의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팀원들의 원안을 최대한 존중하되 ‘어른의 언어’를 더하는 것으로 생각해요.(웃음) 비언어적인 감각의 영역에 비즈니스의 논리를 더하는 것이죠. 정갈하고 설득력 있게 기승전결을 구성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봅니다. 디자인이라는 게 몰입과 거리 두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데 구성원들에게 재차 이 두 가지 태도를 요구하는 것 또한 저의 역할입니다.

브렌든의 핵심 멤버들. (위부터) 정병국, 양수정, 마주혜, 황정원, 윤채원.

브렌든의 사이드 프로젝트

옵포드. 부산 서면에 있는 카페로 브렌든이 운영한다.
부산 서면에서 운영하는 카페 옵포드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눠보죠.

옵포드는 제가 독립을 결심하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비즈니스예요. 독립과 함께 정욱 대표와 카페를 공동 운영하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죠. 심리적인 안정감이라고 할까요? 컨설팅 업에만 의존한다면 미래가 불투명했겠지만, 자체 비즈니스를 함께 운영하면 어찌저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웃음)

그런데 사실 카페 운영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10여 년 전에는 ‘모든 디자이너의 꿈은 카페 주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만큼 많은 디자이너가 우후죽순 카페를 열었는데 대부분 몇 년 못 가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제로 독립하고 처음 9개월 정도는 컨설팅 비즈니스보다 카페 안정화에 더 주력했어요. 카페를 운영하면서 배운 게 많습니다. 특히 예쁜 카페를 디자인하는 것과 직접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걸 알았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다른 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내 뜻대로, 마음껏 크리에이티브를 발산한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어요. 하지만 정욱 대표와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상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유려하게 디자인한 얇은 컵은 세척이나 관리에 용이하지 않아 쉽게 깨지고, 수백만 원을 투입해 제작한 근사한 의자는 착석감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고객의 외면을 받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디자인 컨설턴트로서 책임감도 느끼게 됐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자영업자가 의뢰했는데 제작한 디자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다른 한편으로 좋은 파트너의 중요성도 느꼈습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 외 영역의 사업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해당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옵포드Oppodd는 ‘opposite(상반된)’와 ‘odd(특이한)’의 합성어다.
스타트업 플래튼의 한정판 스니커즈 발매 정보 플랫폼 ‘슈프라이즈’나 ‘킥스’ 같은 경우 단순 컨설팅 수준을 넘어 함께 사업을 성장시키기도 했잖아요. 전문가들과의 협업이라는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요.

두 프로젝트의 경우 브렌든이 일정 지분을 갖고 해당 스타트업의 CDO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디자인과 브랜딩을, 플래튼이 개발과 운영을 전담했죠. 작년에 카시나의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업무 협업은 종료됐지만 스타트업과 디자인 회사의 장기 협업이라는 관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사례를 남겼다고 봐요.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또 다른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습니다.

한정판 스니커즈 발매 정보 플랫폼 슈프라이즈의 아이덴티티. ‘열려 있는 슈 박스’를 상징하는 라인을 활용해 축약과 확장이 용이하도록 설계했다
킥스 아이덴티티. 슈프라이즈와 킥스 모두 스타트업 플래튼이 운영하는 플랫폼으로 브렌든은 이들과 긴밀한 업무 협업을 진행했다.

디자인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

2024 서울디자인페스티벌 티저 포스터. 향후 다양한 스타일의 포스터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아트 디렉터를 맡은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제안이 들어왔을 때 무엇보다 브렌든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인 커머셜 프로젝트와는 조금 다른, 하지만 지나치게 예술성에 편중되지도 않은 작업이 될 테니까요. 다양한 디자인이 어우러지는 행사인 만큼 브렌든의 지향점과도 부합한다고 생각했고요.

딩고 리브랜딩. 알람과 소리를 상징하는 ‘진자’ 그래픽을 바탕으로 딩고의 워드 타이프에 맞는 레터링을 제작했다. 시그너처 사운드를 모션 그래픽에 적용해 정체성을 강화했다.
올해 주제인 ‘게임 체인저’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것을 향후 공개할 시리즈 포스터에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궁금하군요.

이번 주제에 맞춰 이 시대의 ‘게임 체인징’을 이룬 결과물들을 키 비주얼로 활용하고 싶었어요. 이 결과물 안에는 단순히 예쁜 디자인을 넘어 일상을 바꾸거나 삶에 새로운 의미 혹은 질서를 부여한 것까지 포함되어 있죠. ‘디자인’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의 생필품, 무형의 시각물, 심지어 자연물까지 포함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관객들이 디자인과 게임 체인징의 의미를 좀 더 폭넓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거든요. 표현 면에서는 그러데이션 기법과 역동적인 모션 그래픽으로 다채롭게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5호(2024.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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