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티안 쿠리, 독창적인 색감과 캐릭터로 뉴욕을 매료시키다

애니메이션 디자이너 세바스티안 쿠리를 만나다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을 통해 일상적인 장면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아르헨티나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세바스티안 쿠리를 만나다.

세바스티안 쿠리, 독창적인 색감과 캐릭터로 뉴욕을 매료시키다

최근 들어 독창적이고 대담한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세바스티안 쿠리(Sebastián Curi)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세바스티안은 애니메이터와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을 통해 일상적인 장면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팝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애플, 나이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전시회를 열며 예술적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세바스티안의 작품은 때로는 애니메이션으로, 때로는 대형 벽화나 실크스크린 프린트로 표현되며, 그만의 독창적이고 유쾌한 시각적 언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세바스티안의 창작 과정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과정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Interview with 세바스티안 쿠리

애니메이션 디자이너
미국에 거주한 지는 얼마나 되셨고,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2016년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미국 스튜디오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아르헨티나에서 약 8년 정도 활동하던 중이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미국의 BAC라는 디자인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그 기회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지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와 저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기회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가 졸업을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1년 정도를 기다려줄 수 있는지 문의했고, 그들은 6개월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급히 학위를 마치고, LA로 이주해 풀타임 애니메이터로서 미국에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예술적 배경이 전혀 없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 미국에서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까지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받으셨나요?

​저희 가족 중에는 예술을 전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교사였고, 아버지는 기계공인 매우 소박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펑크와 하드코어 음악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밴드 티셔츠를 디자인하는 취미가 점점 제 본업으로 발전하게 된 거죠.

​대학교에서는 동영상 편집과 프로덕션을 전공했고,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러면서 플렌티(Plenty) 스튜디오의 파블로 알피에리(Pablo Alfieri) 같은 멘토에게 디자인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온 후에는 애니메이터로 경력을 시작해 일러스트레이터로 발전하며,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같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며 제 예술적 시야를 넓히고, 감각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2022년에 뉴욕 타임스 표지에 디자이너님의 일러스트가 실리게 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이러한 명성을 얻기까지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중요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결정들이 제 커리어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기 전에는 저널리즘을 전공했지만, 1학년 때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포스트 프로덕션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TV 세트장에서 안주하며 계속 일할 수도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2D, 3D 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인 플렌티로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플렌티에서 4년 동안 매우 보람찬 시간을 보냈고, 포트폴리오를 쌓으며 몇몇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애니메이션 디렉터로 커리어를 이어갈까 고민했지만,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대학교로 돌아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플로렌스에서 일을 병행하였고, 졸업을 앞둔 시점에 미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미국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애플과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이 경험은 제 커리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에서 일한 것은 이 모든 노력의 절정이었고, 제 경력에서 중요한 성과이자 성장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아르헨티나의 문화유산이 디자이너님의 작품 주제와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아르헨티나의 문화유산은 제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주제와 스타일 모두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사용하는 강렬한 색채와 생동감 있는 대비는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감성을 반영하며, 각지고 명확한 선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미학과 연결된 본질적인 에너지를 표현합니다. 아르헨티나 사람으로서 제 작품에는 열정, 역동성, 그리고 야망과 같은 아르헨티나 문화의 대표적 특징들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특히 아르헨티나의 활기찬 에너지를 아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이처럼 문화적 유산과의 연결은 제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며, 예술가로서 제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작품 과정에서 진부한 표현에 빠지지 않고 문화적 요소를 통합하기 위한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저는 클리셰의 보편성과 그 성공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작품에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의 센트로 컬처럴 레콜레타 프로젝트에서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하트를 들고 있는 손이라는 다소 진부한 이미지를 선택했습니다. 이 상징은 흔하지만, 프로젝트의 맥락에서 이 이미지는 폭넓은 감정적 연결을 이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진부한 표현도 정교하게 다듬고 맥락에 맞춰 사용하면, 보편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동시에 포용성을 높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저는 진부한 표현을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표현 도구로 전환하여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이 공통적인 요소들을 재맥락화함으로써, 원래의 인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와 깊이를 부여하려고 노력합니다. 핵심은 그러한 클리셰를 예술적 틀 안에서 어떻게 다루고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단순히 공허한 반복이 아닌, 새로운 목적과 관련성을 부여받은 상징으로서 말입니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존의 예상을 깨고, 시청자들이 이러한 클리셰를 완전히 새롭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전 게시물에서 로스앤젤레스를 “복잡한 도시”라고 정의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로스앤젤레스는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다면적인 도시입니다. 각 지역은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베벌리힐스의 고급스러움부터 산타모니카의 활기찬 분위기까지, 로스앤젤레스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문화적 모자이크 덕분에 로스앤젤레스는 할리우드와 같은 아이콘으로 유명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야심 찬 대규모 프로젝트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과 자라 같은 글로벌 기업의 프로젝트에서 일한 경험은 이 도시가 제공하는 기회의 범위와 규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문화적으로도 로스앤젤레스는 매우 풍부하고 역동적인 도시입니다. 박물관 전시부터 예술 및 음악계 인사들과의 우연한 만남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역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어린 시절 살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죠.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후, 이러한 두 가지 다른 현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주민과 방문객 모두를 매료시키고 참여하게 만드는 로스앤젤레스의 매력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매일 어떻게 영감을 얻고 업무에서 혁신을 지속하나요?

저는 영감이란 마치 마법처럼 무작위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과정을 꾸준히 훈련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튜디오에서 일관성과 즐거움을 유지하며 매일의 일상을 보내는 것이 저에게는 큰 영감의 원천입니다. 진정한 영감은 다른 직업들처럼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적인 몰입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영감이 저절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삶의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창의력을 발휘하고, 최상의 퍼포먼스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작품에서 손이 예술가의 길(컴퓨터를 떠나 손을 이용한 창작 행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기능한다는 점이 흥미롭지만, 최근에는 AI도 창작,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인을 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미래를 내다볼 때 다시 기계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전단 디자인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에 이르기까지 컴퓨터를 작업의 필수 도구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기술을 예술적 발전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AI는 창작 과정을 가속화하고 그 범위를 넓혀 줄 수 있지만, 저는 여전히 예술의 핵심에는 인간의 진화와 발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예술의 본질은 각 작품이 담고 있는 개인적인 교감과 이야기에서 비롯되며, 이는 아직 인공지능이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현재 저는 스튜디오에서 종이에 하는 드로잉 기법을 실험하고 있으며, 단순한 스케치에서 벗어나 작은 형식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필이나 붓을 사용한 기법에 대한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이러한 분야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있지요. 또한 다른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 그림을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조각 작업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아직 이 새로운 매체의 연구는 초기 단계에 있지만, 그 가능성에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며 앞으로 더 발전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