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헨스+로얄금속
용접 없이 접어 만든 명품 손톱깎이
브랜드가 공장 그리고 소비자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오늘날, 이 시대가 탄생시킨 신생 브랜드와 그 공장을 방문했다. 금속 제조 공장 로얄금속과 디자인 전문 회사 프롬헨스(Fromhence)의 협업을 소개한다.
프롬헨스(대표 이규현)
런던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롬헨스는 라이프스타일 및 패션, 브랜드 아이덴티티, 아트 디렉션, 디지털 프로덕트 등을 다루는 디자인 전문 회사로 디자인부터 생산, 판매까지 직접 관리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한다. 프롬헨스는 ‘~로부터’라는 뜻의 프롬(from)과 이유를 뜻하는 헨스(hence)의 합성어로 ‘여기서부터’ 혹은 ‘지금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쌓아가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fromhence.design
로얄금속(대표 김갑수)
런던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롬헨스는 라이프스타일 및 패션, 브랜드 아이덴티티, 아트 디렉션, 디지털 프로덕트 등을 다루는 디자인 전문 회사로 디자인부터 생산, 판매까지 직접 관리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한다. 프롬헨스는 ‘~로부터’라는 뜻의 프롬(from)과 이유를 뜻하는 헨스(hence)의 합성어로 ‘여기서부터’ 혹은 ‘지금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쌓아가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fromhence.design주소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경진로392번길 22 로얄금속 문의 032-346-3734
용접 없이 접어 만든 명품 손톱깎이
최근 화제를 모은 <축적의 시간>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26명이 한국 산업의 미래에 대해 제언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책의 골자는 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선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고수를 키우고, 작은 규모로 투자하는 스몰 베팅을 하라는 것이다. 금속 제조 공장 로얄금속과 디자인 전문 회사 프롬헨스(Fromhence)의 협업은 바로 이 전략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모범적 사례다.
부천 공장 지대에 위치한 로얄금속은 1979년부터 약 40년 동안 미용 도구를 전문으로 생산해왔다. 손톱깎이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손톱깎이 공장을 처음 세운 777쓰리세븐의 뒤를 이어 로얄금속도 손톱깎이를 생산해 중동,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까지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수출하던 대형 공장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중국,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저렴한 제조 인프라에 치여 규모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로얄금속은 독일 헹켈사 등 유명 기업의 OEM을 맡을 정도로 금속 사출과 금형 생산에 관해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나 공장을 이끌 미래의 동력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로얄금속 김갑수 대표는 더 이상 OEM이 아닌 독립적인 브랜드로 제품을 생산하는 활로를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브랜드 론칭은 국내 OEM 기반 제조 공장들의 꿈이나 다름없었지만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로얄금속은 브랜딩과 마케팅, 심지어 판매에서도 디자인 역량이 최우선임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 “중소 규모 제조 공장이 디자인을 중시한다고 해서 내부에 디자인팀을 두기는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클라이언트의 제품을 생산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로얄금속의 브랜드를 알리고 제품을 론칭하려면 브랜딩과 마케팅, 제품 생산 경험을 두루 갖춘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로얄금속 김갑수 대표는 제조 공장의 미래를 책임질 협업 파트너를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부 산하의 디자인·브랜딩 전문 회사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기존에 만들어놓은 카탈로그에 로얄금속 제품을 기계적으로 갖다 붙이는 식의 안이한 태도로 실망감만 안겼다. 수소문 끝에 알게 된 프롬헨스는 로얄금속이 찾던 바로 그 회사였다. 이규현 대표가 설립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프롬헨스는 제품 디자인뿐 아니라 생산, 브랜딩, 마케팅까지 두루 겸비하고 있었다. 프롬헨스는 가장 적합한 형태, 기능, 재료를 선택해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는, 딱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로얄금속의 ‘리브랜딩 프로젝트’에 착수한 프롬헨스 이규현 대표는 로얄금속이 최근 개발한 손톱깎이에 주목했다. 흔히 손톱깎이는 압력을 가해 손톱을 자르는 2개의 스테인리스 판을 용접해서 만드는데, 손톱이 뒤집히지 않고 깔끔하게 잘리려면 기본적으로 재료가 두꺼워야 한다. 로얄금속은 용접 대신 스테인리스를 반으로 접는 새로운 실험을 했는데, 여기서 이규현 대표는 특색 없는 생활용품으로 인식되는 손톱깎이도 기능과 디자인을 보고 선택하는 생활 명품으로 거듭날 가능성을 보았다.
프롬헨스 또한 손목시계, 병따개 등 그간 금속을 주재료로 한 제품을 작업해온 터라 로얄금속의 새로운 접근법이 한눈에 들어왔던 것. 이규현 대표는 리브랜딩 이외에도 손톱깎이에 섬세한 디자인 요소를 가미해 프롬헨스 브랜드 제품으로 시험 출시해보자고 제안했다. 오른손과 왼손으로 깎을 때 압력 차이를 고려해 손잡이를 디자인하고, 깎은 손톱이 밖으로 튀어 나가지 않도록 날 부분에 고무 패킹을 추가했으며, 기존보다 8배 고운 연마석으로 고급스러운 질감을 구현했다. 이렇게 완성한 손톱깎이는 프롬헨스의 ‘클리퍼 1401’로 세상에 첫선을 보였고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Makers with Kakao) 플랫폼을 통해 성공적으로 론칭을 마쳤다. 제조 공장의 제안으로 시작한 로얄금속과 프롬헨스의 협업은 디자인 회사가 디자인을 의뢰하고 제조 공장은 그에 맞게 제품을 만들어주던 기존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양상이다. 전문성은 ‘고수’의 정도를 따르면서도 실험성 가득한 도전을 함께 해나가는 두 브랜드의 협업은 국내 제조업이 다시 활기를 띠게 하는 정공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