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지트, 고이고이

새로운 포장 문화를 제안하는 포장 가게

포장 가게 고이고이는 삼층로비를 운영하는 로비스트의 두 번째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히 포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포장재를 고르고 직접 포장하는 경험을 통해 선물의 본질적 가치를 되살리고자 한다.

선물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지트, 고이고이
선물하는 사람들을 위한 포장가게, 고이고이 © 사진 윤현기, 고이고이

오랜 시간 누군가의 평온과 안정의 장소였을 단층 주택이 선물 포장 가게가 되었다. 용산구 한적한 골목에서 마주한 ‘고이고이(goiigoii)’는 건축가 김수영을 필두로 한 로비스트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공간이다. 로비스트는 ‘삼층로비(3F/LOBBY)’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를 담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팀. 고이고이는 단순한 포장 가게를 넘어 선물의 본질을 되살리고, 일상에서도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포장을 제안한다. 선물하는 사람에 맞춰 세심하게 구성한 상품과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어린 시절 서툰 포장과 함께 선물에 담던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선물도 인스턴트화된 시대에 이제 막 문을 연 특별한 포장 가게의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박수민 고이고이 디렉터

삼층로비에서 김수영 대표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췄다. 삼층로비와 개인이 함께 성장하는 방법,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다 사람과 문화에 대한 관심, 시선과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같아 로비스트에 합류해 고이고이를 기획했다.

선물에 담는 마음과 정성을 되살리다

삼층로비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로비스트의 두 번째 공간이에요. 왜 포장 가게였나요?

​두 번째 공간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는 마음이 컸어요. 처음 나온 주제가 ‘선물’이었고, 이야기를 나누며 요즘 우리가 주고받는 선물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여러 플랫폼에서 나이와 성별만 입력하면 선물을 추천해주고 집까지 배송해주잖아요. 너무 편해서 저도 자주 이용하는데, 문득 내가 하는 선물에 내 마음이 잘 담겨서 전달되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공간과 기물, 상품에는 고이고이가 만든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 사진 윤현기, 고이고이

어렸을 때는 문구점에서 예쁜 포장지를 고르고 서툰 가위질로 포장해서 전하기까지 설렘이 가득했는데, 모든 과정이 너무 쉬워져서 그만큼의 설렘과 감동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그동안 주고받은 선물 기록을 쉽게 볼 수 있으니 가격과 브랜드를 자꾸만 신경 쓰게 되고요. 선물의 가격보다 선물하는 마음에 가치를 두던 때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처럼 포장을 해보기로 한 거예요. 받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선물을 고르고, 그와 어울리는 포장지와 리본을 사고, 서툴지만 정성과 시간을 들여 포장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물하는 사람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기기를 기대하면서요.

‘고이고이’라는 이름에는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선물에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하다가 ‘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사전에 검색해보니 ‘겉모양 따위가 보기에 산뜻하고 아름답게’, ‘정성을 다하여’, ‘온전하게 고스란히’라는 뜻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하고 싶은 포장을 그대로 표현한 단어 같았어요. 선물에 진심을 고이 담아 포장하고, 그렇게 선물이 주고받는 사람 모두에게 고이 간직할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아 ‘고이고이’라고 지었어요.

이곳에서는 고이고이가 직접 제작한 보자기를 비롯해 영국 ‘WRAP’, 일본 ‘REGARO PAPIRO’의 포장지를 만날 수 있다. © 사진 윤현기, 고이고이
포장해주지 않는 포장 가게라는 점이 흥미로워요.

선물 포장을 해주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물론 해드리는 것도 좋지만, 포장 가게로서 저희의 목표는 선물하는 사람이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고 전달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쉽게 고르고 포장할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을 드릴 뿐이죠. 모양이 조금 삐뚤어도 손길과 마음이 담긴 선물이 많아지길 바라거든요.

선물하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것들이 준비되어 있나요?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인 선물들에 맞는 보자기와 포장지, 그리고 그와 어울리는 리본 등 다양한 장식이 있어요. 실제 판매하는 포장 재료와 장식들로 완성한 샘플을 보실 수 있고요. 구매한 재료들로 바로 포장할 수 있도록 도구와 테이블이 준비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제품이 있다면.

아무래도 포장 키드가 아닐까 싶어요. 일상에서 손수건, 스카프, 테이블 매트 등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 원단들로 보자기를 제작했는데, 막상 보자기로 예쁘게 포장하려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포장 키트들을 만들었어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요. 머리 방울을 활용한 보자기 키트는 방울로 보자기를 묶어서 포장하는 거예요. 방울 자체가 장식이 되기도 하고, 나중에 머리끈으로 활용할 수 있죠. 선물 파우치나 가방은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선물들을 포장하기 좋아요. 선물을 넣고 리본이나 매듭을 묶으면 되거든요. 선물을 받는 사람이 파우치나 가방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어요.

고이고이만의 향도 만들었죠?

고이고이 브랜드 향 #1은 룸 스프레이로 제작했어요.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고, 저희가 공간에서 사용하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고이고이는 선물을 받는 사람보다 선물을 하는 사람들에 집중해 만든 공간이에요. 진심을 전하는 과정이 설렘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면서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종이와 보자기에 은은하게 배어 있는 향이 일상과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랐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선물을 받는 사람, 혹은 선물에 대한 추억에 몰입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요. 또 저희 제품들이 향이 잘 스며드는 패브릭이나 종이류잖아요. 기왕이면 우리 향이 우리 제품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겼어요. 이름이 ‘#1’인 건 포장과 향을 결합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계획 중 하나라 숫자를 붙이게 되었어요.

선물의 일부가 되는 공간과 경험 디자인

빨간 벽돌집의 컨셉을 그대로 살린 고이고이 외관. 원래 있던 공간처럼 주변 건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 사진 윤현기, 고이고이
고이고이는 용산구의 한적한 골목에 오픈했어요. 건물은 1970년대 지어진 가옥이고요. 여기에 자리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기획 단계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조금 과장하는 것 같지만, 진짜로 모든 게 우연이었어요. 대표님이 근처에 자전거를 수리하려 오셨다가 이 골목을 발견하신 건데요. 이 건물을 보고 ‘이런 곳에 포장 가게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대요. 근데 마침 이 건물이 매물로 나온 거예요. 처음 얘기만 들었을 때는 유동 인구가 너무 적어서 반대했는데요. 직접 와서 건물을 보니 ‘여기서 시작하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어요.

사람도 차도 많아 복잡한 용산 한복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게 한적하고 고요한 동네가 있다는 게 여전히 신기해요. 이 골목은 지나다니는 사람들 소리보다 새 소리를 더 자주 들어요. 봄이면 새빨간 장미가 잔뜩 피고요. 제가 느끼는 동네의 매력을 손님들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고이고이를 찾아오는 과정 자체가 손님들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러기에 부족함이 없는 동네예요.

패브릭이 만든 레이어가 색다른 느낌을 주는 내부. 선물하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선물의 일부가 된다. © 사진 윤현기, 고이고이
내부의 우드, 천장의 패브릭 등의 소재가 눈에 띄었어요.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어떤 무드를 완성하고자 했나요?

고이고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오게 될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따뜻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저희 제품은 무채색 계열에 매끄럽지 않은 텍스처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이러한 소재들이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했죠. 보통 쇼룸은 제품을 돋보이게 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저희는 공간과 제품이 하나의 포장된 선물처럼 느껴지기를 원했어요. 사람들이 서 있고 포장 제품들이 놓일 바닥재와 디스플레이 상판은 하얀색으로 채워 포장하는 하얀 도화지 같은 배경을 만들었어요. 선물을 포장하러 오는 사람 자체도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수직적으로 구획된 벽과 가구에는 따뜻한 자작나무를 사용했고요. 이 두 가지 색감이 공간을 채우고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하도록 계획했어요.

스테인리스를 활용해 입구를 설계한 이유도 궁금해요.

이 건물은 50년의 세월을 품고 있어요. 저희는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과 새롭게 만든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기존 벽체와 구획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길목을 기존 현관이 아닌 스테인리스로 된 사잇길로 우회하게 설계했어요. 이 길목은 지난 시간과 새로 탄생한 공간 사이의 전이를 상징하는 중간 장치로, 공간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느끼게 해줘요.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더욱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만든다. © 사진 윤현기, 고이고이
공간과 상품이 하나의 선물처럼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 © 사진 윤현기, 고이고이
삼층로비를 운영한 경험이 고이고이의 공간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삼층로비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기능적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고이고이에서는 쇼룸, 업무 공간, 적재 공간을 모두 효율적으로 구성하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결론적으로 고이고이는 이런 감각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고이고이에 방문해서 포장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과정들이 선물처럼 설레는 기억으로 간직되기를 바라면서요.

고이고이를 소개하며 “포장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고이고이가 만들고 싶은 포장 문화란 무엇인가요?

포장 가게를 시작한 건, 예쁘고 화려하게 포장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선물을 고르는 마음, 포장하는 정성스러운 손길, 선물을 풀어보는 설렘, 그 모든 과정이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 되길 바랐어요. 그런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해봤으면 하는데, 어렸을 때만큼 포장을 하지 않는 건 여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포장하는 과정이 복잡해서, 한번 쓰고 버려지는 포장지가 아까워서, 포장지를 사도 포장을 하기 어려워서 같이요.

그래서 그 과정이 더 쉽게 느껴지도록 쉬운 포장 방법을 연구하게 된 거예요. 포장을 풀고 난 후에도 선물을 주고받은 기억을 일상에서 떠올릴 수 있도록 재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개발하고요. 포장 재료가 선물의 추억을 간직한 채 일상에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마음을 전하는 모든 과정이 의미 있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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