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 디자이너] 디자이너 조덕희

디자인플러스는 올해 11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이하 SDF)에 참가하는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2025 영 디자이너] 디자이너 조덕희

23년간 1000여 명의 신진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SDF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은 명실상부 디자이너의 등용문이다. 디자인플러스는 내일의 주인공이 될 이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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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희는 존재하지 않던 형태를 상상하고, 그것을 현실로 끌어오는 과정을 즐기는 디자이너다. 브랜드 자이엔데Seiende를 통해 가구·오브제·디지털 작업을 넘나들며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조형 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영 디자이너 프로모션에 참여한 계기가 무엇인가?

지금까지 이어온 조형 실험을 하나의 브랜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진행했던 ‘아카이브 시리즈’를 자이엔데Seiende라는 이름 아래 체계화하고, 작가로서의 실험이 브랜드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스튜디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자이엔데는 조덕희라는 사람의 생각과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만든 스튜디오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여러 매체를 통해 공유하며 개인 작업을 하나의 브랜드로 체계화하고 싶었다. 나는 욕심이 많은 편이라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손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가능한 모든 작업을 시스템화해 전체적인 흐름을 직접 컨트롤하며 내 세계를 온전히 표현하고자 한다.

스튜디오 이름에 담긴 뜻이 있다면?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차용한 개념인 ‘Das Seiende(존재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실제로는 없지만,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감정에 늘 강하게 끌렸다. 만화나 영화 속에서 그런 감정을 자주 느꼈고, 상상 속에서 세상에 없던 존재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창작의 출발점이 됐다. 그래서 가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림·제품·디지털·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그때의 감정에 가장 어울리는 도구로 표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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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01 – Origin.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한 조형 가구 시리즈. 기억, 감정, 경험 등 자아를 구성하는 조각들을 물리적 구조로 시각화한 작품으로, 각기 다른 각도와 크기의 박스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본인의 작업을 정의하는 키워드는?

정체성, 형태, 축적, 그리고 불안정한 균형. 자아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탐구하며 감정과 기억, 시간이 쌓여 형태로 드러나는 과정을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있다면?

레드오크 원목에 먹을 사용해 마감한다. 가구를 전공하며 목재의 물성과 질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자아의 내면’을 표현하기에는 검정색이 가장 적합한 색이라고 생각했다. 검정색 마감에는 불로 그을리는 소각법, 화학 반응을 이용한 에보나이징 기법, 스테인, 먹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그중 먹을 택한 건 유년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전주향교에서 한문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었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언제나 오래된 책 냄새와 먹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종이에 먹으로 흔적을 남겼다면, 나는 나무 위에 먹을 입혀 형태를 남기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기억과 감각이 내 작업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원천이 됐다.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 끊임없이 형성되고, 해체되고, 다시 구축되는 존재의 구조다. ‘아카이브 시리즈’는 그 과정 자체를 조형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불완전하지만 연결된 구조를 통해 인간의 복합적인 내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가?

관람객이 스스로에게 ‘지금의 나는 어떤 경험과 요소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누군가에게는 한 끼의 음식이나 영화, 여행, 혹은 친구와의 대화 같은 사소한 것들이 자아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각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가 그런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환기시키며, 자신을 이루는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향후 계획과 탐구하고자 하는 과제가 있다면?

‘아카이브 시리즈’의 조형 언어를 브랜드와 제품, 그리고 공간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기억과 정체성을 담는 오브제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감정의 층위를 담아내는 경험적 디자인을 연구해보고 싶다. 또한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협업을 시도하며 조형 안에 담긴 메시지를 새롭게 풀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