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디자이너의 달력
새해를 맞아 분주히 달력을 고르고 있다면 주목하기를 바란다.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가 선보인 각양각색 달력을 소개한다. 똑같은 하루도 다르게 그려낸 디자이너의 달력을 넘겨보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자.
인생일력
민음사가 2018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일력 시리즈다. 인생일력 한 권에 민음사의 동양 고전 60여 권이 담겨 있다. 고전에서 발췌한 365가지 명문장을 낱장에 수록해 하루에 한 구절씩 고전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2025년 인생일력의 표지는 푸른 뱀의 해를 기념하는 일러스트로 장식했다. 내지 속 세시풍속 일러스트는 절기에 따른 계절의 흐름을 보여주고, 매일 변하는 달의 모습도 그래픽 이미지로 수록해 전통적인 미감을 더했다.
디자인 민음사(대표 박상준)
사진 ©민음사
다양-력
다양성 달력의 역사는 1990년대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인과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교와 문화 관련 기념일을 수록한 달력을 만들기 시작한 게 기원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선 오늘날, 아키타입 이지원 대표는 한국에도 다양성 달력을 도입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다양-력’을 만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외국인뿐 아니라 성소수자, 아동, 장애인 등 각자 고유한 배경을 가진 채 살아가는 이들의 문화를 조명한다. 생소하고도 친숙한 75개 기념일을 소개하며 다문화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할 기회를 모색한다. 동명의 단행본을 함께 발행했다.
디자인 아키타입(대표 이지원)
Every Day Is a New Day
매일 한 장씩 뜯어서 사용하는 이 일력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카럴 마르턴스(Karel Martens)의 작품이다. 인쇄물의 형태와 배열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그의 작업 태도가 달력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기초 금속 부품을 365가지 경우의 수로 조합해 숫자를 디자인하고 이를 카럴 마르턴스 고유의 인쇄 방식인 ‘레터프레스 모노 프린트’ 기법으로 찍어냈다. 오브제 위에 잉크를 묻혀 하루에 한 가지 색만 인쇄하는 것인데, 이는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작업 방식이다.
디자인 카럴 마르턴스
모서리 캘린더 – 더 바이블 에디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서리와 모스의 컬래버레이션 달력.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부착하도록 디자인한 일력이다. 달력을 한 장씩 떼어낼수록 판형이 미세하게 작아지는 게 특징이다. 12월에 가까워질수록 달력 크기가 점점 작아져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경험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모래시계를 닮았다. 계절의 흐름을 은유하며 다채롭게 변주하는 84개의 그래픽 이미지는 그래픽 스튜디오 모스가 디자인했다.
Typodarium
독일의 디자인 출판사 페를라크 헤르만 슈미트 마인츠Verlag Hermann Schmidt Mainz가 해마다 선보이는 일력 시리즈다. 매해 전 세계의 아름다운 글자를 선정해 그것으로 달력을 만든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폰트를 감상할 수 있고, 서체를 만든 디자이너와 폰트 구입처 정보도 함께 수록했다. 하루에 한 번 달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해의 타이포그래피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달력에는 41개국 357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한 해에 걸쳐 넘겨 보는 타이포그래피 연감인 셈이다.
디자인 줄리아 유플레거Julia Uplegger
수류산방 + 이진경 물산 달력
해마다 특정 지역의 고지도를 탐구하고 해당 지역의 문화 자산을 활용해 달력으로 제작하는 ‘물산 달력’ 프로젝트가 을사년을 맞아 일곱 번째 프로젝트로 돌아왔다. 올해 주목한 지역은 수원과 경기도 남부. 이진경 작가가 그린 수원 화성, 거중기, 사당패 놀이 등 다양한 문화·역사 자산이 달력의 각 장을 수놓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첫 장의 해태. 조선 시대 정조는 수원 화성으로 도읍을 옮기고자 한 적도 있는데, 수류산방과 이진경은 이에 착안해 법法 자의 고어 ‘灋’ 자를 파자해 그 안에서 담긴 해태(해치 치廌)를 발견했다. 장인 정신으로 책을 만드는 수류산방답게 이 달력 역시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목수가 다듬고, 일일이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달력 봉투 안에는 아피통 합판으로 제작한 달력 판과 나사를 동봉했고, 본문 용지는 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 종이를 사용했다.
디자인 수류산방(대표 박상일·심세중), 이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