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관람에 혁명을 일으킨 필립 파레노의 전시
전시를 제어하는 목소리의 정체는?
지난 2024년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선보인 필립 파레노의 전시가 독일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는 두 기관이 공동 기획한 자매 전시로 공간, 시간, 경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는 갤러리를 각본처럼 펼쳐지는 안무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전시 경험을 변화시켰다. 독일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Voices〉 전시는 평행한 현실이 서로 연결되어 공간, 시간, 경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예상치 못한 상호 의존적인 사건을 만들어내는 몰입형 여정이다. 〈Voices〉는 서울 리움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자매 전시로, 공동 커미션 작품, 파레노의 모든 목소리 관련 텍스트를 모은 책, 도록, 대륙과 문화, 언어를 초월한 협력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공유한다.

이 전시는 미술관 공간을 청각적, 시각적 만남을 생성하는 울려 퍼지는 유기체로 탈바꿈시킨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전시를 통제하고 형성한다. 이 목소리는 이벤트와 함께 건물의 모든 공간과 지리적 경계를 넘어 대화를 만들어낸다. 전시는 미술관을 공명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목소리가 전시를 제어하고 상호 작용하는 적극적인 청각적 대화를 만들어낸다. 이 변화의 메아리는 삼각형과 나선형 기하학을 구축하여 대칭을 무시하고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딱딱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 안에서 변형을 일으킨다.


〈Voices〉 전시의 중심에는 스페인의 외딴 건물에서 뮌헨으로 직접 스펙트럼 데이터를 전송하는 영화 ‘El Almendral’이 있다. ‘아몬드 숲’을 의미하는 제목의 이 영화는 단순한 시각적 투영이 아니라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El Almendral’은 사막화 이전의 지형이 풍경과 허구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생태계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현실과 영화 예술을 결합하여 기존의 범주를 뛰어넘는 새로운 개체를 창조하는 프로젝트다. 파레노는 알메리아의 타베르나스 사막에 위치한 숲을 자연, 기술, 예술이 통합된 역동적인 생태계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뮌헨의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이 스페인의 ‘저기’에서도 일어나는 먼 장소와 함께 펼쳐진다. 이 미러링 된 역동성은 뮌헨과 스페인의 사막화되기 전 땅을 하천으로 연결하며, 두 공간 사이에는 음성, 단어, 데이터가 흐른다. 이러한 쌍둥이 같은 환경은 이벤트와 정보를 끊임없이 교환하며 지리적 경계를 넘어 통합된 공명을 만들어낸다.

‘El Almendral’은 다양한 카메라를 통해 내레이션이 있는 영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수집된 이미지와 사운드 및 데이터는 지속적으로 스트리밍 되어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장소의 본질을 반영한다. 이 영화는 생태 음향 기술과 생물학적 데이터를 활용하여 보이지 않는 유령들의 들리지 않는 소리를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 이 접근 방식은 최종 결과보다 과정을 우선시함으로써 시간에 따라 형성되는 무한한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 영화로 하여금 스페인의 순간이 뮌헨의 영원으로 바뀐다. 풍경은 허구가 되어 영화의 다이제틱한 공간 안에서만 그 통일성이 존재한다. 영화의 각 프레임은 물리적 지형을 확장하고 접으면서 두 공간을 하나로 묶는 스펙트럼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무한한 이미지는 시작도 끝도 없이 실시간으로 지형과 공존한다. 전시는 결과보다 과정을 강조하여 관람객이 시간과 공간이 하나로 녹아드는 끊임없는 변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파레노는 아티스트 티노 세갈(Tino Sehgal)과 협업하여 인간의 신체가 전시의 요소들과 지속적인 대화를 나누며 전시의 일부가 되는 새로운 구성 요소를 개발했다. 구음에서 멜로디 구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성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조명이 깜빡이고, 물체가 윙윙거리며, 표면이 파문을 일으킨다. 도브너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무용수들과 교감하며 인간과 인공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파레노의 준 오브제가 무용수들에게 반응하면서 공간은 살아있는 환경으로 진화한다. 다양한 지역 기관에서 대여한 박물관 장치와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지속 가능성 및 협업을 통해 파레노의 도구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 도구들은 깜박거리며 파레노의 환경 요소를 더 많이 드러내는 동시에 관람객들이 전통적인 형태의 전시를 되돌아보도록 유도한다. 전시는 하우 데어 쿤스트의 공간을 초월해 시골 풍경으로 확장되어 실시간으로 촬영 및 방송됨으로써 관객은 현실과 허구가 혼합된 영화를 만나게 된다.
세갈은 전시의 공명 환경에 인간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도입한 작품 ‘Situation’을 선보인다. 무용수들은 미니멀한 참여형 만남에 관람객을 참여시켜 각각의 상호작용을 자발적인 공명의 순간으로 변화시킨다. 세갈의 작품은 기술 중심의 전시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강조하여 목소리, 데이터, 공간의 안무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마치 망상 에피소드에서처럼 한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로 전시의 요소를 제어한다.



망상의 고립된 성격과 달리 이 목소리는 연결을 만들어낸다. 파편적이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이 단어들은 서로 연결된 공간에서 사물, 소리, 빛을 움직이며 인물을 중심으로 세상을 배열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머신러닝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언어이자 유명 TV 연설가 수잔느 도브너(Susanne Daubner)가 목소리를 연기한 ∂A를 소개하며 언어의 힘을 탐구한다. 뉴스의 사실성과 파레노의 상상력을 결합한 이 언어는 전시에 기묘한 진실감을 불어넣는다. 독일 TV 뉴스 진행자인 수잔느 도브너의 목소리는 인물의 발언에 응답하여 환경이 응답하는 지속적인 교류를 형성한다. 이 목소리들이 모여 전시를 하나의 풍경으로 변화시키는 메아리를 만들어내어 미술관 공간을 초월해 그 울림을 확장한다.

무용수의 목소리는 이 세 가지 차원을 넘나들며 진화하는 상상의 언어를 합성한다. 파라프레닉 망상의 복잡성에서 영감을 받은 이 언어는 다차원적인 포스트 상징적 구조로 나타난다. 목소리는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구조화되는 힘으로, 그 형태를 통해 공명을 일으킨다. 자크 라캉의 오브제 ‘petit a’를 차용한 목소리는 의미를 벗어난 친밀하면서도 이질적인 청각적 존재가 되어 공간을 변형시키고, 소리와 건축을 결합하여 새로운 공명을 만들어 낸다.

관람객, 무용수, 공간, 뮌헨과 스페인의 먼 사막 같은 지역 사이에서 다양한 대화가 펼쳐지는 전시 〈Voices〉는 이벤트가 공동 창작되고, 인터페이스가 사라지고, 인간과 비인간이 새로운 언어를 통해 연결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체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