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포스터제

10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부천아트벙커 B39에서 열리는 대강포스터제는 42명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1970~1980년대 가요제 수상 곡을 중심으로 한 옛 노래를 포스터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다.

대강포스터제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요즘 불고 있는 레트로 광풍은 이 말을 실감케 한다. 10월 27일부터 11월 27일까지 부천아트벙커 B39에서 열리는 대강포스터제는 42명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1970~1980년대 가요제 수상 곡을 중심으로 한 옛 노래를 포스터 디자인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다. 음악을 시각적으로 ‘번안’한 포스터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제1회 2018 대강포스터제

일시 10월 27일~11월 27일
장소 부천아트벙커 B39
기획단 조중현, 권기영, 도연경, 사만다, 신봉천, 이진우, 임이랑, 장기성, 정길웅, 최세진
참여 디자이너 70여 명(포스터 전시 참여 디자이너 42명)
인스타그램 @bigriver__
텀블벅 tumblbug.com/ bigriverposterfesta

대강포스터제의 그래픽 아이덴티티. 레터링은 안삼열이 맡았다. 하단에 서브로 사용한 둥켈산스 서체는 함민주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이다.

잊고 산 것

디자인 김리원, re01.kr
원곡 한인희 (1981년 MBC 대학가요제 금상)

이 곡이 세상에 나온 1980년대는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다. “편지지가 없어 못 쓸 말이란 없다”라는 노랫말이 이러한 시대 배경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비디오테이프 케이스, 라디오 등 당시의 소품을 활용해 편지지가 아니어도 메시지(가사)를 전달받을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꾸몄다. 전체적으로 변화가 많은 곡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가사의 느낌에 맞춰 세 가지 레터링을 제작하고 비디오테이프 케이스에 덧입혀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잃어버린 나의 모습

디자인 김영선 @kimyoungsun.kr
원곡 황호욱 (1994년 강변가요제 동상)

이별 뒤 밀려오는 슬픔과 원망, 체념의 감정을 동화 속 인어 공주로 상징화하고 이를 사각으로 둘러싼 레터링, 유리 조각 이미지 등으로 레이어를 쌓아 깨져버린 액자처럼 구성했다. 날카로운 세리프와 갈고리처럼 날렵한 맺음의 레터링은 생선 뼈와 비늘, 아가미 형태를 차용해 만든 것이다.

그대에게

디자인 안삼열
원곡 무한궤도 (1988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뮤지션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일까? 안삼열은 흥겨운 느낌의 ‘그대에게’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다. 현재 작업 중인 흘림 글자체를 이용해 가사 일부를 겹겹이 쌓아 만장(고인을 칭송하거나 애도하여 지은 글, 혹은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 형태로 표현하고 곡명, 밴드 이름 등 부수적 요소를 낙관처럼 디자인했다.

J에게

디자인  박신우, paperpress.kr
원곡 이선희 (1984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FDSC(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 멤버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박신우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뮤지션 이선희의 곡을 선택했다. 서정적 멜로디를 바탕으로 한 뮤지션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부드러운 색감과 배경, 그리고 그 위에 툭 얹어놓은 듯한 레이어로 시각화했다.

한동안 뜸했었지

디자인 용세라, serayong.com
원곡 사랑과 평화 (1984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대학 시절 1970~1980년대 음악에 한창 취해 있었다는 용세라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망설임 없이 가장 좋아하던 사랑과 평화의 음악을 골랐다. 어렵지 않은 노랫말, 노래를 듣고 난 직후의 감정을 고스란히 옮기는 데 주력했는데, 연모하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커다란 물음표로 표현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꽃 이미지, 손 가는 대로 표현한 드로잉 등으로 서툴지만 순수하며 애틋한 낭만을 표현했다.

꿈의 대화

디자인 최세진, choisejin.kr & 김형민
원곡 이범용 & 한명훈 (1980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정겹고 희망찬 선율이 특징인 이 곡은 소박한 사랑을 주고받는 내용이 가사의 주를 이룬다. 사랑을 받고 다시 그 사랑을 주는 과정을 릴레이 계주처럼 표현했다. 그러데이션 배경에 강렬한 대비가 이뤄지도록 가공한 인물과 깃발 이미지로 이곳이 꿈의 세상임을 나타냈다.

난 아직도 널

디자인 한승연(빵승), @ppangseung
원곡 작품 하나 (1987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블루스의 리드미컬한 선율을 타고 흐르는 가사는 슬픈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가사에 실린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는 듯한 눈을 메인 비주얼로 선택하고 비, 거리 등 가사에서 뽑아낸 요소들로 포스터를 구성했다. 포스터 전반에 흐르는 도회적인 분위기는 블루스 특유의 감성에 기인한 것이다.

일곱색깔 무지개

디자인 김미리내, @kikirinaeru
원곡 작은거인 (1979년 TBS 전국대학가요 경연대회 금상)

보컬 김수철의 경쾌한 창법이 돋보이는 이 노래는 경쾌한 로큰롤 사운드와 자연을 주제로 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 포스터는 일곱 가지 색에 각각 고유 번호를 부여한 뒤 여러 자연 오브제에 해당 컬러를 덧입힌 점이 눈길을 끈다. 의도적으로 강렬하게 컬러를 처리해 로큰롤 느낌을 강조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팡팡팡 그래픽 실험실, @__pangpangpang
원곡 익스Ex (2005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1993년 동갑내기 디자이너 3명으로 구성된 팡팡팡 그래픽 실험실은 이례적으로 2000년대 곡을 선정했다. 어린 시절 즐겨 듣던 곡이라 친숙했고, 가사 속 면접에 실패한 구직자의 ‘웃픈’ 고백이 사회 초년생인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 허상일지도 모르는 미래를 무지개색으로 표현하고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을 흑백으로 처리해 대비를 극대화했다.

한여름 밤의 꿈

디자인 이광호, @kwangho_leee
원곡 권성연 (1990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아름다운 멜로디와 슬픈 가사의 대비가 인상적인 곡.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심플하게 묘사한 블라인드는 쉽게 잠들지 못했던 늦은 밤, 블라인드 사이로 비치는 아련한 빛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던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여낸 것이다. 가사 일부를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Interview
조중현 대강포스터제 기획단장, 그래픽 디자이너
“가요제 음악은 향수라기보다는 발견에 가깝다.”

어떻게 처음 행사를 기획하게 됐나?

지난해 시티팝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일련의 음악을 들으며 ‘왜 한국에는 이런 음악이 없을까?’라고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작업실을 사용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권기현이 오래된 한국 음악을 들려줬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서 들으려고 리스트업한 곡들이었는데 ‘한국에 이런 노래가 있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했다. 진짜 ‘한국형 시티팝’이었던 것이다. 그중 유독 마음을 끌었던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를 포스터로 디자인해봤는데, 만들고 나니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혼자 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지인들을 모아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대강가요제는 무슨 뜻인가?

‘대학가요제’의 ‘대’, ‘강변가요제’의 ‘강’에서 따온 네이밍이다. 사실 ‘가벼운 마음으로 대강 하자’는 뜻도 있었는데, 프로젝트 규모가 커지면서 더 이상 대강 할 수 없게 됐다.(웃음) 재미있는 점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 출품 곡의 성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대학가요제가 조금 더 엘리트적 감성이 있다면, 강변가요제는 소위 ‘동네에서 조금 놀 줄 안다는 형, 누나들’이 나와 끼를 발산하는 느낌이랄까?(웃음) 두 가지 다른 결의 행사가 공존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기획단을 비롯한 참여 디자이너 대부분은 ‘가요제 세대’라고 하기에 연령대가 낮다. 추억이나 향수라는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 세대에) 가요제 음악은 향수라기보다는 발견에 가깝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조차 당시 가요제 음악이 매우 실험적으로 들렸다. 우리에게 이런 멋진 음악이 있었는데 그동안 너무 단절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 좋은 콘텐츠를 오늘과 연결시키고 싶었다. 당시에는 다양한 군소 가요제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몇 명의 스타만 돋보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아이돌 시스템과 달리 함께 잔치를 벌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포스터 전시에는 40여 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기획자 입장에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옛날 음악을 주제로 했지만 그래픽마저 예스럽게 나오진 않더라. 그게 오히려 더 좋았다. 행사 취지 자체가 단순히 과거의 감성을 소환하자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디자이너들이 과거의 소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서 더 의미가 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번 포스터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 신재호의 경우 아버지가 1979년 대학가요제 동상을 수상한 신영섭 씨다. 실제로 아버지의 곡을 선택해 포스터를 디자인했는데, 한편에 아버지의 사진을 넣었다.

공연, 마켓, 세미나, 워크숍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준비 중이다.

일단 활주로 밴드의 섭외를 마친 상태다. 아직 배철수 씨가 참여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웃음) 인디 신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밴드 문댄서즈도 참여하는데, 참고로 밴드 보컬인 홍현의는 산업 디자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마켓의 경우 지난 7월 연남동에서 처음 시작한 올댓글리터즈와 함께 하게 됐다.

행사명 앞에 ‘제1회’라고 붙였다. 그 말은 앞으로도 행사를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뜻인가?

여력만 된다면 하고 싶다.(웃음) 처음에는 한정된 콘텐츠를 갖고 지속적인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한정된 콘텐츠를 두세 번 반복해 진행하는 것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노래를 디자이너들이 여러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회차가 쌓이고 포스터가 늘어나면 서로 다른 디자이너들의 해석을 비교할 수 있게 되어 흥미로울 것 같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84호(2018.10)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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