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와 민

작업 시간 대부분을 그래픽 디자인에 쓰는 미술가, 또는 그 반대

"디자이너의 역할을 확대하거나 설파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냥 때와 장소, 주어진 기회에 맞게 뭔가를 만드는 거죠. 기능에 충실한 포스터 디자인을 하는 것처럼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맞는, 그 나름의 기능에 충실한 작업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저희는 프로젝트마다 좀 더 의식적으로 그에 맞는 태도나 방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죠."

슬기와 민

최근 슬기와 민은 <작품 설명>(스펙터 프레스, 2017)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한 207개의 작업에 대해 이미지 없이 글로만 설명한 책이다. 본문에는 작업의 제목을 따로 밝히지 않고 텍스트 순서대로 번호만 매겼기 때문에 설명하는 대상이 궁금할 경우 뒷장의 목록을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면 본문의 3번은 모다페 2005 페스티벌 포스터, 116번은 BMW 구겐하임 랩 그래픽 아이덴티티, 164번은 <메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 전시회 홍보물과 도록 작업을 가리킨다. ‘작업 시간 대부분을 그래픽 디자인에 쓰는 미술가(또는 그 반대)’로서 슬기와 민이 하는 일이다. 한편 14번은 ‘기능적 타이포그래피’, 136번은 <Sasa[44] 연차 보고서 2011>, 159번은 <오프화이트 페이퍼 – 브르노 비엔날레와 교육> 전시를 나타낸다. 이는 ‘작업 시간 대부분을 미술에 쓰는 디자이너(또는 그 반대)’로서 슬기와 민이 하는 활동이다. 결국 1번부터 207번까지 모두 같은 셈이다. 슬기와 민은 새로운 유형의 디자이너다.


EK 현재 페리지 갤러리에서 <슬기와 민 페리지 공육공사이일 ~일칠공오일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2006년 갤러리 팩토리에서 개최한 첫 번째 개인전 <슬기와 민 팩토리 공육공사이일~공육공오일삼>이 떠오르는데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SM 우연히 10년 만에 단독전을 여는 것이지, 지난 시간을 정리하거나 회고하는 성격의 전시는 아니에요. 이번에는 슬기와 민의 예전 작업을 원본으로 인프라 플랫(infra-flat) 시리즈를 제작했으니까 괜히 전시 제목도 회고전처럼 지은 거죠. 관객이 그런 오해를 하길 은근히 바라기도 했고요. 두 전시가 끝나는 날짜가 같은 것도 우연일 뿐, 실제로는 그 무엇도 회고하거나 정리하지 않는 ‘가짜 회고전’이에요.

EK 슬기와 민의 작업에서 ‘인프라 플랫’은 중요한 개념이죠?

SK 2015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인 후, 저희가 계속 작업하고 있는 시리즈를 부르는 말이에요. 마르셀 뒤샹이 정립한 개념 중에 ‘인프라 신(infra-thin)’이 있는데 이는 지각하기 어려운, 아주 작고 미묘한 차이를 뜻합니다. 인프라 플랫은 이에 호응하는 개념으로 세상의 두께가 평평하고 납작해진 나머지 뒤집어지면 가짜의 깊이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착안했어요. 그렇게 역전된, 마이너스 깊이감을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본 듯한 이미지, 거대하고 흐릿한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죠.

SM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떤 정보든 손쉽게 접하고 즉시 소통할 수 있잖아요. 미지의 영역, 신비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만큼 세상의 두께가 얇아졌다는 얘기죠. 인프라 플랫 시리즈는 SF적 상상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이미지로 나타낸 겁니다. 작품의 이미지 하나하나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그 원본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그렇다면 인프라 플랫 시리즈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느냐, 그건 저희도 모르겠는데 그냥 거기에서 느껴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약간 미끄덩거리는 느낌이랄까. 지나치게 큰 이미지와 마주하면 어지럽기도 하고 빨려 들어갈 것 같기도 하잖아요.

EK 일반적으로 그래픽 디자이너에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인프라 플랫 시리즈는 그와 상반된 개념의 작업이군요.

SM 명확한 의사소통, 투명함, 즉시성은 디자인의 일부이고 디자이너라면 이를 구현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인프라 플랫 시리즈는 디자이너로서 하는 반성이자 한계에 대한 의식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세계를 평평하고 납작하게 만드는 것과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기능적으로는 배반이지만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SK 전시를 본 관객이 주제나 메시지를 궁금해하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관람객이 전시장에 가서 그런 이미지 사이에 둘러싸여 약간은 불분명하고 어리둥절한 감각을 경험하는 거예요.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도 전시의 일부가 되는 거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전시는 작품을 제작해 갤러리에 설치했다기보다, 특정한 공간을 구현하려고 작품을 제작했다는 표현이 더 맞아요.

5월 13일까지 페리지 갤러리에서 열리는 슬기와 민의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불분명하고 모호하다. 전시장에는 슬기와 민이 기존에 제작한 포스터, 초대장, 엽서 등의 이미지를 흐릿하고 거대하게 확대한 프린트 작업뿐 아니라 1981년 문화서적에서 펴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인프라 플랫 버전으로 변환한 〈코스모스, 한국어 3판, 1981>도 진열돼 있다. 작품의 정보를 밝히는 ‘작품 목록’ 역시 하나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페리지 060421~170513〉은 기만하는 전시회다”로 시작하는 슬기와 민이 직접 작성한 전시 소개 글을 읽으면 혼란은 더해진다. “어떻게 설명해야 설명같이 들리면서도 설명이 아니고, 어떤 부분은 해명이 되는 동시에 또 어떤 부분은 더 헷갈리게 만들까 생각하며 간간이 거짓말도 섞어 썼다”는 것이 최성민의 설명이다. 한편 전시장 안내 데스크에서는 슬기와 민이 그간 진행한 프로젝트 중 일부를 글로 설명한 〈작품 설명〉을 빌려주기도 한다. 슬기와 민은 전시 소개 글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미지만 있는 전시장에 〈작품 설명〉을 들고 가서 글과 그림을 비교해가며 읽어도 좋겠지만, 아마 부질없을 것이다.”

EK <작품 설명>을 펴낸 특별한 목적이 있나요?

SM 늘 하는 일이니까, 특히 디자이너들은 작품 설명 늘 하잖아요. 자신의 작업이 설명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하고.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설명이 제대로 안 되는 전시는 좋은 전시가 아니라는 말을 했던데, 미술 분야 역시 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거죠. 한편으로는 ‘이렇게 모든 것이 설명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말(텍스트)을 하지 작업은 왜 하고 작품은 뭐 하러 만들까’ 싶기도 해요. 이번 전시에서 건드리는 내용 중 하나가 작품과 이미지, 만들기와 설명하기의 관계인데, 〈작품 설명〉 역시 그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EK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도 인프라 플랫 버전으로 선보였어요. 왜 하필 칼 세이건의 책을 택한 건가요?

SK 2012년 미국 디자인 잡지 〈프린트〉에 게스트 디자이너로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텍스트를 발췌해 작업했어요. 저희 작업은 가까이에서 이미지를 들여다보는 것인 반면 칼 세이건은 광활한 우주를 얘기하잖아요. 그 대비가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SM 큰 의미는 없고, 좀 엉뚱한 걸 찾고 싶었습니다. 이쪽에 저희 작업이 하나의 레퍼런스로 존재한다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중에는 뭐가 있을까, 생각한 것이죠. 물론 텍스트 자체도 재미있고 여러 의미가 있지만 이번 작업에선 중요하지 않았고요. 뭐랄까, 칼 세이건은 과학자지만 그 사람 자체나 업적이 종교처럼 숭배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대중 과학의 세계가 종교나 뉴에이지 신념과 엮이는 부분이 참 재미있죠.

EK 슬기와 민은 왜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걸까, 솔직히 궁금해요.

SM 한번 작업을 하고 난 뒤, 다음엔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겠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임근준 미술평론가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작업을 하고 싶으면 직업 작가이고, 전시 기회가 생겨야 비로소 작업을 한다면 작가가 아니라는 거예요. 저도 동의해요.

SK 사실, 저희에게는 아직 완전히 개발하지 않고 단서만 던져놓은 아이디어가 꽤 많아요. 대안 공간 루프, 플라토 등에서 선보인 ‘현대적 구성’ 시리즈나 첫 번째 개인전에서 전시한 ‘기능적 타이포그래피’처럼요. 던져보고 제시해본 아이디어는 많은데 이를 충분히 다 소진하고 끝까지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 발전시켜보고 싶은 거죠.

EK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인 너머의 창작이잖아요. 디자이너도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에도 의미가 있을까요?

SM 디자이너의 역할을 확대하거나 설파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냥 때와 장소, 주어진 기회에 맞게 뭔가를 만드는 거죠. 기능에 충실한 포스터 디자인을 하는 것처럼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맞는, 그 나름의 기능에 충실한 작업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저희는 프로젝트마다 좀 더 의식적으로 그에 맞는 태도나 방식을 취한다고 볼 수 있죠.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정체성을 무의식적,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무슨 일을 하든 ‘디자이너다운’ 언어와 형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수 있잖아요. 반면 저희는 작업의 구체적인 목적이나 맥락에 관심을 두지, 그 작업이 ‘디자이너’다운지 여부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슬기와 민 SNS 소개 글에 가장 잘 요약돼 있기도 합니다. “작업 시간 대부분을 미술에 쓰는 디자이너 또는 작업 시간 대부분을 그래픽 디자인에 쓰는 미술가.”

EK 그럼 어느 쪽이라는 거예요?

SM 그렇죠! 바로 그거예요.(웃음)

슬기와 민이 처음 국내에 등장한 것은 2005년.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며 만난 두 사람은 네덜란드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에서 디자인 연구원으로 2년간 함께 일한 뒤 귀국했다. 이후 2005년 모다페 홍보물 디자인을 시작으로 주로 문화·예술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작업하는 한편 스펙터 프레스 출판사를 설립해 예술적 개념의 책을 기획해 펴냈다. 이번 인터뷰에선 따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이들은 국내에 더치 디자인을 널리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안그라픽스, 2008)을 집필했을 뿐 아니라 ‘비꼬는 듯한 유머 감각’, ‘장식 없이 글자만 쓰는 기법’ 등 슬기와 민의 일부 작업적 특징이 소위 말하는 스타일로서 ‘더치 디자인’으로 각광받으며 유행처럼 번졌기 때문이다(물론 슬기와 민이 원하거나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또 이들은 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디자이너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2000년대 중반 ‘코드가 잘 맞는 동료와 함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영역을 넓혀나가는’ 소규모 스튜디오의 활약을 설명하는 하나의 좋은 사례였던 셈이다.

EK 두 사람이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활동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SK 저희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개시한 계기도 없고,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도 딱히 무슨 밴드나 회사 이름처럼 고유명사로 의도한 적은 없어요. 예일대학교에서도 함께 작업했지만 슬기와 민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에서부터였어요. 일종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었는데 얀 반 에이크 아카데미에서 기획한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을 공모하면 함께 지원했죠.

EK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만큼 협업자로서 서로의 장단점도 잘 파악하고 있을 것 같아요.

SM 최슬기 씨는 크고 넓은 시야로 전체적인 숲을 보는 편이죠. 사실인지 모르지만 제가 느끼는 바로는 그래요.(웃음) 저는 꼼꼼한 것을 넘어서 유난을 떠는 부분이 있는데 프로젝트 전체를 볼 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에요. 쓸데없이 시간을 쏟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뭐, 명상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헛짓 같아도 나중에는 작업에 다 도움이 될 거다, 이런 식으로요.

SK 최성민 씨가 디테일에 집착하는 건 사실이에요. 굉장히 꼼꼼한 편이죠.(웃음) 저는 그 디테일에 집착하는 태도를 존중하는 거고요.

EK 보통 작업할 때 일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해요.

SM 프로젝트마다 달라요. 한 사람이 전부 다 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나눠서 하기도 하고. 보통 단순한 업무를 나눠서 하는 경우는 드물고 크고 복잡한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데, 컴퓨터 한 대를 가지고 같이 작업하긴 힘들잖아요. 콘셉트를 정하는 시작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나누는 거죠. 저희 작업 스타일이 손으로 뭘 그려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손대서 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슬기가 했는지, 민이 했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글쎄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절대로 말해주지 않거든요.

EK 각자 작업을 할 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야 할 텐데요. 정해진 방법론라든가 원칙 같은 게 있나요?

SM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나씩은 해보려고 해요. 하다못해 이 종이는 처음 써봤다든가 새로운 서체를 사용했다든가 하는 작고 사소한 부분부터 ‘이건 분명히 우리가 처음일 거야’ 싶은 아이디어까지. 의미가 있건 없건 작업마다 새로운 부분을 하나씩은 넣는 거죠.

SK 오버하지 않는 느낌? 너무 애쓴 것 같은 디자인은 멋이 없잖아요. 때로는 일부러 그걸 과장할 때도 있지만, 보통 작업할 땐 너무 멋을 부리거나 힘을 준 건 아닌지 서로에게 물어봐요. 물론 실제로는 애를 쓰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겉으로 드러나면 민망하니까요.(웃음)

EK 아카이브나 리스트업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예전에 한 신문에 ‘리스트 마니아’라는 글을 연재하기도 했죠?

SK 맹목적으로 수집을 좋아하진 않아요. 오히려 뭘 굉장히 잘 버리는 편이죠. 하지만 목록으로 글을 쓰는 것에는 관심이 있고 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열하는 형식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요. 어떤 기준에서 이렇게 모아보고 또 다른 방식으로 정렬하다 보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내러티브가 생기니까요.
*슬기와 민이 월간 <디자인>을 위해 작성한 새로운 리스트는 인터뷰 맨 뒷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EK 슬기와 민의 작업에서는 언어유희를 포함해 조금은 시니컬한, 유머 감각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예를 들어 AGI 스페셜 프로젝트 <아이 러브 서울>에 ‘아마(Maybe)’라고 답한 포스터를 선보인 것처럼요.

SK 저희의 모든 썩은 농담을 보셔야 하는데.(웃음) 둘 다 코미디를 좋아해요. ‘아마’의 경우 그래픽보다는 다분히 언어적인 유희, 말장난을 이용한 것인데 재미있게 작업한 프로젝트 중 하나예요. 베이징 디자인 위크 주빈 도시 서울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주제를 의뢰받아 똑같은 작품을 제출했는데, 그때는 담당자가 작품 설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적당히 써드리긴
했어요.

SM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의뢰할 때는 그래픽한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물이 당혹스러울 수 있겠죠. 그래서 실제로 거절당한 적도 있고요.(웃음) 1960~70년대에는 이런 말장난이나 시각적 조크를 이용한 그래픽 작업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리 흔하지 않죠. 저희가 요즘 워크룸 프레스와 함께 준비하는 책이 있는데, 그게 그런 ‘무릎 탁!’ 그래픽에 관한 책이에요. 밥 길(Bob Gill)이 1981년에 쓴 책을 민구홍 씨가 번역한 작품입니다. 원서는 교과서적 성격이 강했지만, 이제는 사료로서 가치도 있는 듯해 출간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슬기와 민은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두 사람만 활동한다. 대신 프로젝트에 따라 다양한 협업자와 함께한다. 2013년 워크룸 프레스와 공동으로 설립한 임프린트 작업실 유령도 그중 하나로, 슬기와 민의 표현대로라면 ‘슬기와 민, 둘이서라면 펴내질 않을’ 책을 출판하고 있다. 미술가 Sasa[44], 박미나와 결성한 ‘건강과 행복에 이바지하는 응용 미술 집단’ SMSM 역시 마찬가지다. 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개막 퍼포먼스로 77개의 음료를 한데 섞은 ‘궁극의 파워 드링크’ 시음회를 연 이들은 ‘슬기와 민, 둘이서라면 하지 않을’ 실험에도 적극적이다. 한편 슬기와 민의 협업자 중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을 비롯해 플라토, 문학동네, BMW 구겐하임 랩 등 주요 기관과 상업 브랜드도 있다. 보통은 ‘클라이언트’라고 칭하지만 슬기와 민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협력 관계로 표기한다.

EK 작업실 유령은 어떤 성격의 출판사인가요? 스펙터 프레스와의 차이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해요.

SK 지금은 그 차이가 더 선명해졌는데, 작업실 유령에서는 진짜 읽을 수 있는 책, 꽤 광범위하게 유통할 수 있는 책을 펴내요. 최근 몇십 년 혹은 100년에 걸쳐 디자인, 미술, 역사 등의 분야에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서술하는 ‘진짜 책’을요. 반대로 스펙터 프레스에서는 ‘진짜 책’이라고 할 수 없는, 좀 더 예술 작품에 가까운 책을 출판하고요.

SM 일 년에 한 번씩 자신에 관한 사사로운 주제로 애뉴얼 리포트를 만드는 〈Sasa[44] 연차 보고서〉나 무대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출발점으로 해서 공연 예술 전반에 관한 비평적인 글을 모은 〈옵.신〉이 스펙터 프레스를 대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보 자체가 일반적인 책과 다른, 작품으로 존재하는 책이죠. 작업실 유령을 대표하는 책으로는 2015년 개정판으로 펴낸 노먼 포터의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를 들 수 있겠네요. 서현석, 김성희의 〈미래 예술〉 역시 전형적인 작업실 유령의 출판물인데 재미있게도 이 책의 저자 모두가 〈옵.신〉의 기획자들이에요. 같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는 것이죠.

EK 슬기와 민은 작업을 전개하고 보여주는 방식에서 남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유형의 디자이너는 찾기 힘들 것 같아요. 제3의 멤버라든가 내부에 다른 구성원을 두고 있지 않죠?

SM 네. 대신 저희가 선호하는 형태의 협력 방식이 있어요. 사전에서 ‘협업’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분업의 다른 말”이라고 나오는데, 바로 이 ‘분업’에 방점을 찍는 거죠. 각자 주어진 숙제를 다 하고 나서 교환하는 형태랄까요. 커다란 흰 도화지에 여러 명이 함께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을 완성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입니다.

SK Sasa[44], 박미나 작가뿐 아니라 김성희 공연 예술 기획자나 안소연 전 플라토 부관장처럼 저희와 주로 일하는 협업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화답하는 형식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준비가 미흡한 상태로 한자리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에는 익숙하지 않아요.

EK 주변의 동료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기관, 상업 브랜드도 ‘협력(자)’로 표현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SM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역할이 협업자이길 희망하는 거예요. 사실 클라이언트라는 말 자체에도 다른 종류의 바람이 반영돼 있어요. ‘클라이언트’는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 의뢰인을 뜻하니까, 이들이 어떤 문제를 던져주면 디자이너가 전문가로서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마치 변호사나 의사처럼 문제를 해결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한 워딩인 것이죠. 하지만 실제 디자인 과정이 그렇지도 않고, 저희는 해결사를 자처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아요. 디자이너에 관한 정의는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렇게 전문성이나 해결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하더라고요. ‘디자인’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대충 ‘물건을 만들 때 형태를 설계하는 일’, ‘정하고 계획하는 일’이라고 나오는데 제가 볼 땐 이보다 더 좋은 정의는 없어요. 하는 일에 따라 유리하게 해석하지 않고 쓸데없는 욕망이 반영돼 있지도 않으니까.

EK 슬기와 민은 상업 프로젝트에는 관심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의뢰가 안 들어오는 건가요?(웃음) 대표적인 상업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BMW 구겐하임 랩의 그래픽 작업일 것 같은데요.

SM 연락이 안 와요. ‘협력 업체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데 포트폴리오를 보내달라’는 요청은 받은 적이 있는데 저희가 응하지 않았죠. BMW 구겐하임 랩 프로젝트의 경우, 핵심은 사용자의 참여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뀌는 콘셉트에 있었어요. 관계자 모두가 이를 만장일치로 좋아했기 때문에 나머지 과정도 무난할 줄 알았죠. 하지만 사업 규모가 크고 거대 자본이 투자됐기 때문에 의사 결정 과정도 복잡했고, 중간에 수정이라든가 개입도 많았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저희 스스로 얼마나 적극적이냐에 따라서 재량이 달라진다는 걸 느끼고 그에 맞게 대응하면서 훨씬 수월해졌죠. 막연하고 엉성한 의뢰서를 받았을 때 상대방이 뭔가 더 규정해주길 기다리면 그만큼 참견과 간섭, 관리를 받게 돼요. 오히려 그럴 땐 우리가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제안하는 편이 훨씬 낫죠.

EK BMW 구겐하임 랩의 그래픽 아이덴티티 외에도 슬기와 민의 주요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요?

SK 플라토 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과 진행한 다양한 프로젝트와 문학동네에서 펴낸 조르주 페렉 시리즈 등이 있죠. 조민석 건축가, 김성원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들, 페스티벌 봄의 포스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 밖에 Sasa[44]와 박미나, 워크룸 프레스처럼 항상 같이 일하는 협업자와의 프로젝트도 그렇고, 모두 다 중요해요.

EK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SK 인천국제공항 사이니지요. 기회가 되면 저희가 꼭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아카데믹한 책, 예를 들면 우주 물리학자의 수학 공식이 가득한 책처럼 제한된 소수를 위한 굉장히 전문적인 무언가를 다뤄보고 싶어요.

SM 제일 비싼 시계 이름이 뭐죠?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고 사치품, 진짜 비싼 시계와 하이패션 세계를 다뤄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음악과 관련한 작업도 해보고 싶고요. 저희가 미술, 공연, 건축 같은 분야의 프로젝트는 다 해봤는데 아직 음악을 못해봤어요. 기회가 되면 저희가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 재킷 디자인이나 음악과 관련된 브랜딩을 해보고 싶어요.

EK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데요?

SM (입으로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소리를 내며) 이런 거요.

슬기와 민은 ‘슬기와 민’인 동시에 교육자이기도 하다. 최성민은 서울시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최슬기는 계원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또 슬기와 민은 12살 딸과 2살 아들이 있는 평범한 부부이기도 하다. 오전 7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해서 밤 10시쯤 마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육아와 가사 분담을 명쾌하게 하고 있다. 첫째 육아는 엎치락 뒤치락 했지만 이번에는 엑셀로 스케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역할을 분담해 성공적으로 해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창성동에 있던 작업실(스펙터 프레스)을 수원 영통구의 한 아파트 상가 건물로 옮긴 이유 역시 육아 때문이다. 집과 10분 거리에 있는 작업실에는 큰 철제 책꽂이 여러 개가 놓여 있는데 그중 한쪽에는 지퍼백에 밀봉한 작업물이 빈틈없이 꽂혀 있다. 작품의 훼손을 막기 위한 아이디어다. 현재 이곳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그래픽 디자인 디렉팅부터 〈옵.신〉 7호, 그리고 두성종이의 샘플 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가끔 여가 시간이 생기면 〈웨스트 월드〉나 〈브레이킹 베드〉 같은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데 최성민의 경우 작업을 하면서 휴식을 갖기도 한다.

EK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SK AI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근접한 미래가 아닐까 싶은데, 하룻밤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지는 걸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잖아요. 모든 것을 설명하고 프로그램화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죠.

EK 두 분 모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수업 방식이나 태도에서 좀 더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SM 저는 예전부터 디자인 공부를 한다고 해서 모두가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어요. 지금은 더 뚜렷해졌고요. 디자인 교육을 직업 교육이나 전문가 양성으로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올 때가 많아요. 대신 교양으로서의 디자인, 그 경험 자체로서의 예술 교육을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사실 저는 디자인뿐 아니라 모든 교육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 교육을 통해 산업 자원을 배출할 것이 아니라 2년에서 4년, 길게는 6년부터 8년까지 학생들이 그 순간을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잉여 시간에서 나름의 의미를 잘 발굴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장기적으로 자동화, AI, 머신 러닝 같은 전망을 내놓고 있는, 인간의 지식과 노동의 위상이 애매해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어떻게 직업 교육에 미래가 있겠어요.

SK 이번에 학교에 새로운 총장이 부임하면서 앞으로 5년간 학교의 비전이랄까,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할 기회가 생겼어요. ‘내가 만약 학교의 메니페스토 중 한 항목을 정할 수 있다면’을 전제하고 생각해봤는데, 저 역시 ‘현재의 경험에 촛점을 맞추자’를 제안했습니다. 내용이 무엇이건 자신의 과업을 스스로 제안하고 이런저런 수업 과정을 통해 졸업 전시로 마무리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학교는 이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매 순간 현재를 살 수 있도록 권장해야 하는 것 같고요.

EK 최성민은 2013 타이포잔치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김형진과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을 기획하기도 했고요.

SM 타이포잔치는 신경을 많이 쓰기도 했고, 관객의 반응도 좋았어요. 기존의 디자인 전시에서 답답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도 있었고요. 이후로 행사가 계속 더 좋아졌기 때문에 자리를 잡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은 전시 자체도 그렇고 결과도 재미있었지만 이후 여러 사건과 뒤섞여서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선 좀 더 거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직은 상처가 있어요.

EK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은 최초 전시를 기획한 배경 자체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했잖아요. ‘왜 하필 슬기와 민이 귀국한 시점인 2005년부터냐’와 같은 다소 노골적인 불만도 나왔는데, 그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SM 저희가 돌아와서 일을 시작한 때가 2005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정한 게 맞아요.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저는 어떤 종류의 전시든 결국에는 기획자의 주관적인 시선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해요. 기획자는 당연히 전시의 일부이고 기획자 중심에서 기획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 또한 너무 당연한 일이죠. 만약 역사를 기술한다든가 논문을 쓴다면 객관적인 시점을 가져야겠지만 창작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다 같이 모여 뭔가를 구성하고 만든다면 주관적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주관성을 숨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판단했고요.

EK 전시에 대한 반응도 극단적으로 나뉘었습니다. 오창섭 교수는 직접 책을 써서 자신의 불만을 전하기도 했고요. 전시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의도한 바가 잘 표현됐다고 생각하나요?

SM 전시 자체는 재미있었다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도 욕하면서 재미있게 봤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럼 된 거죠, 뭐. 보통 전시에서는 옹호건 비판이건 반응이란 게 잘 나오지 않습니다. 대부분 뒷담화로 끝나기 때문에 공적인 피드백을 받을 일이 거의 없죠. 그 때문에 저는 되도록이면 답을 하려고 해요. 그게 직업적인 의무라고 생각하고요. 서로의 의견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게 건강하고 좋은 거죠. 그게 냉소적인 언어든, 순화된 언어든. EK 최슬기는 여성 디자이너 정책 연구 모임 WOO의 발기인이기도 합니다. 또 최성민은 이 모임의 시발점이 된 여성 디자이너 3명의 성명서 ‘그래픽 디자인업계 종사자들께 묻습니다’에 김형진과 함께 답하기도 했고요.

SK 6699프레스에서 펴낸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에 대담자로 참여했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당시만 해도 여성 디자이너와 관련된 이슈가 그렇게 심각하거나 절박하지 않았어요. 일련의 사건들이 더해지면서 기획 당시보다 훨씬 더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책이 된 것이죠. 아무튼 책에 참여한 여성 디자이너들이 미래지향적인 제안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WOO를 결성했어요. 여성 디자이너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어떤 정책과 활동이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제안할 수 있을지, 1년 동안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죠. 저는 현재 김영나, 신해옥, 이재원 디자이너와 정기적으로 만나 여성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조사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SM 김형진 씨와 저는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답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어요. 성명서에 저희가 기획한 전시가 거론되었으니까요. 당시에는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진 꼴이라 주변의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미숙하게 대응한 점도 있었죠. 다만 형진 씨의 경우 최악의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교훈을 얻거나 생산적인 뭔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편이에요. 그래서 답변을 통해 전시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디자이너의 남녀 비율을 동등하게 맞추겠다는 실질적인 방안도 낼 수 있었던 거죠. 저 역시 이를 계기로 관념적인 업계의 흐름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독일의 디자인 잡지 〈폼Form〉에서 한국의 디자이너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남녀 동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다 보니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왜 보지 못했지?’ 싶은 디자이너와 작업을 하나둘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고요.

EK 말씀대로 최근 <폼>에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에 관한 기사를 기고했는데요, 슬기와 민이 생각하는 현재 한국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SM 얼마 전 저희 학교 대학원생과 디자인의 내부와 외부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지난 10년간 최소한 저희가 활동한 동네, 교류한 디자이너, 진행한 작업은 내향적인 성격을 띱니다. 디자인 내부를 재발견하는 느낌 같은 것이었죠. 하지만 그 전까지 한국 디자인은 모든 신생 분야가 그러하듯 외부를 개척하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렇게 기업의 홍보물에도, 국가 이미지에도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고요. 그 성장이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 적용 가능한 외부가 보이지 않자 내부로 시선을 돌린 거예요. 갑자기 없던 자의식이 생기고 내향적이면서 때론 자폐적이기도 한, 자조적이고 자기 풍자적인 작업이 나오게 된 거죠. 하지만 디자인이 수백 년 된 활동도 아니고, 특히나 짧은 한국 디자인 역사에선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에 한계가 있잖아요. 더 이상 디자인 자체의 문제 의식을 메타하는 방식으로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요즘엔 모두가 그것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제는 또 다른 새로운 외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다만 이전과는 외부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져야 할 테고요. 저희 작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전체적인 디자인 신에서 봤을 때, 유의미한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 슬기와 민이 꼽은 ‘백인 남자의 말 중에서 재미있는 말, 생각나는 순서대로’

“세계는 사실의 총합이지 사물의 총합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 1921)
금세기에는 ‘대안적 사실’이 부각해 사정이 좀 더 복잡해졌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은 어떤 중간 상태, 즉 미래를 지향하지만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는 못한 시도에 해당한다.” (잭슨 폴록, 1947)
어떤 창작 지원금 신청서에 써낸 말이라고 한다. 지원 결과에 관해서는 아는 바 없다.

“2분이 지루하다면, 4분으로 늘려 보자. 그래도 지루하면 8분으로 늘린다. 다음은 16분. 32분. 결국에는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존 케이지, 1961)
그런데 4분 33초 만에 침묵을 멈추신 분이 하신 말씀이다.

“문제는 정치적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장뤽 고다르, 1968)
내용이 아니라 형식 또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지극히 정교한 형태로 제시하려는 것—명확한 목적 의식에 이끌리는 혼란.” (고든 마타클라크, 1970년대 중반)
‘우리’를 ‘우리’로 바꾸면 우리에게도 잘 어울리는 모토가 된다.

“왼끝 맞추기를 옹호하느라 변명할 필요 없다. 겉보기보다 의미를 앞세우는 배열법은 어차피 그것뿐이다. 그런데 겉보기에도 더 좋다.” (노먼 포터, 1990)
현재 이 지면도 입증해 주는 사실이다.

“위대한 미술 작품이 감동을 주는 건 균형, 조화, 비례가 우수하기 때문인데, 이 모두 정량적으로 계측할 수 있는 성질이다.” (요제프 뮐러브로크만, 1995)
참고로, 뮐러브로크만은 디자인 봇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결과가 아름다워도 상관없다.” (솔 르윗, 2003)
노먼 포터의 말과 비교해 보자.

“가짜 진짜보다는 진짜 가짜가 낫다.” (에즈라 케이니그, 2015) 
‘가짜 가짜’와 ‘진짜 진짜’도 위 부등식에 넣어 다시 계산해보자.

“저요.” (G. K. 체스터턴, 연대 미상.)
“이 세상은 뭐가 문제일까요?”에 대한 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 한 말인지는 물론, 실제로 그가 한 말인지조차 확인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체스터턴은 1936년에 사망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67호(2017.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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