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키 클라이머

놀이 기구가 아니라 놀이 행위를 디자인하다

놀이터의 미덕이 놀이 기구에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네덜란드의 카르버, 코펜하겐의 몬스트룸, 미국의 러키 클라이머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와 기능의 놀이 기구로 아이들의 자유로운 놀이 행위, 그 자체를 디자인한다.

러키 클라이머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한 놀이터
러키 클라이머 Luckey Climber

1985년에 세운 러키 클라이머는 아이들게 자연스레 등반을 경험하게 하는 놀이 기구를 디자인, 제작한다. 스틸 파이프와 케이블에 합판을 매달고 그물 구조로 둘러싼 비교적 간단한 구조이지만 형태는 제각각으로 얼핏 봤을 땐 용도를 알기 어렵다. 대부분의 놀이터가 화려한 성과 집 형태로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 믿는) 어른의 시각을 대변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장식적인 외관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대신 아이들이 직접 오르고 내리는 경험을 통해 모험심과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으로 신체 활동을 장려할뿐더러, 주변 풍경을 탐험하며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등반의 장점을 두루 반영했다. 높은 구조물이라 위험할까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지만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안전이다.

따라서 각각의 디딤 부분은 50cm이상 떨어져 있는 경우가 없도록 하고, 중간에 장애물 없이 곧장 떨어지는 구간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함정과 돌출부를 디자인하는 데에서도 나름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지난 30년간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것 역시 러키 클라이머의 자부심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뛰어난 감각으로 스스로 구조물이 얼마나 단단하고 튼튼한지 판단하며 안전에 집중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현재 러키 클라이머는 미주 국가는 물론 스위스, 아일랜드 등의 유럽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한국 등 아시아 국가까지 전세계에 설치돼 있으며 박물관이나 과학 센터 등 아이들이 자주 찾는 실내와 야외 공간에서 볼 수 있다. 고객과 주변 환경이 항상 다른 만큼 러키 클라이머 역시 공간의 특성을 반영해 디자인한다. 예를 들어 2014년에 설계한 리버티 과학 센터 (Liberty Science Center)의 구조물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이다.

이른바 ‘봉합 클라이머(suture clmber)’로 불리는 방식을 통해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도록 디자인한 것으로 아이들은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직관적인 경로를 선택해 등반할 수 있다. 출구를 찾아 나오기까지 더 쉬운 방법도, 어려운 방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올바르고 잘못된 방향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무한한 경로로 이동이 가능한 이 구조물을 두고 클라이언트인 과학 센터 역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물리적으로 구현했다며 만족해했다는 후문이다. 이 밖에도 라스베이거스의 한 야외 공원에 설치한 제품은 커다란 원 파이프가 멀리 보이는 산을 추상화하고 미국 서부의 자연 풍경의 색상을 참고하는 등 주변 풍경과 어울리게 디자인함으로써 설치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러키 클라이머의 창업자 토머스 러키(Thomas Luckey)는 자신의 엉뚱한 아이디어를 받아줄 고객은 아이들밖에 없다며 이상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으로 러키 클라이머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놀이터가 아이들이 좋아해야 하는 것에 대한 어른들의 간섭과 통제를 담고 있기에 아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놀고 배울 수 있는 놀이 기구를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러키 클라이머는 바람대로 아이들이 저마다 현실을 만들어내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놀이터가 되었다.luckeyclimbers.com 글: 김민정 기자, 사진 제공: 러키 클라이머 (오른쪽 페이지) 두 개의 평행한 원 프레임에 조개껍데기 모양의 패널로 완성한 구조물. LA의 유명 쇼핑몰(The Village at Westfield Topanga)에 설치했다.

Interview
스펜서 러키(Spencer Luckey) 러키 크라이머 CEO
“러키 클라이머는 어른과 아이 누구나 각자의 수준에 맞춰 즐길 수 있다.”

클라이머를 제작하는 과정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미국 뉴헤븐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디자인과 제작이 이루어진다. 총 12명의 직원이 있는데 디자이너는 주로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특정 공간에 러키 클라이머를 설치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과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해 디자인을 심화한다. 약 1100m2에 달하는 스튜디오에는 제작을 위한 다양한 설비가 갖춰져 있으며 나무 패널의 다양한 형태를 위해 곡선의 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잘라내는 기계도 구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프로젝트의 시작 단계를 담당하며 그다음으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협업해 시제 제작을 위한 디자인을 완성하고 시각화한다.

클라이머를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안전 그리고 열린 결말이다. 사실 나는 러키 클라이머가 계단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면 겁을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모험과 위험을 즐긴다. 스스로 위험 요소를 느끼고 컨트롤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열린 결말’은 정해진 결말이 없이 계속해서 가지고 놀 수 있는 레고나 모래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설명을 무시하면 창의력을 유발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클라이언트가 어떤 종류든 테마를 정하려는 것을 지양한다. 아이들이 클라이머를 보고 직관적으로 자기만의 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정해진 규칙은 놀고자 하는 의욕을 꺾을 뿐이다.

사용자가 아이들인 만큼 재료의 선택 역시 중요할 것 같다.

러키 클라이머에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매우 강하고 품질이 뛰어나다. 아이들은 구조물의 취약한 부분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낼뿐더러 우리가 제작한 러키 클라이머 중에는 연간 80만 명이 찾는 곳도 있기 때문에 힘든 과정을 겪으며 여러 가지 교훈을 얻었다. 또한 재료는 놀이 경험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 조형뿐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세심하게 신경 쓴다. 몇 년 전 우리 작업을 쭉 훑어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남성적인 감성임을 깨달았는데 아마 다른 놀이터 장비에서도 그런 요소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 여성적인 것을 만들어보고자 했고 이를 위해 아내에게 베이징 라오니우 어린이 센터 프로젝트의 채색과 스테이닝을 전부 담당하게 했다. 앞으로 색과 재질에 좀 더 여성성을 가미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몇 가지 있다.

러키 클라이머가 특별히 추구하는 디자인이 있다면?

우리는 항상 특정한 스타일, 고정적인 디자인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스스로에게 ‘~한다면 멋질까?’라는 식의 간단한 질문을 한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라이머는 항상 다음에 만들 새로운 것이고 또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사실 나는 아이를 위한 디자인과 어른을 위한 디자인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디자인할 때는 항상 사용자가 누구인지 생각하지만 참고한 부분을 부각시키지 않고 오히려 감지하기 어렵게,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각자의 수준에 맞춰 누구나 즐길 수 있게 열려 있는 것이 러키 클라이머가 추구하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디자인을 할 때는 우선적으로 나 자신이 신나게 하려고 하는데 이보다 진실된 관점은 없기 때문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55호(2016.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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