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이름으로〉전
월간 〈디자인〉이 엄선한 디자인 프로젝트
2024년 2월 문을 닫는 whatreallymatters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가 마지막 기획전의 주제로 택한 것은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었다. 익명의 디자이너 16명과 진행한 인터뷰와 과거 문헌을 토대로 디자이너들의 노동 환경과 문제 의식을 다룬 전시다. 이번 전시에서는 2년 차부터 27년 차 그래픽 디자인, UX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등 업계 종사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2024년 2월 문을 닫는 whatreallymatters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가 마지막 기획전의 주제로 택한 것은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었다. 익명의 디자이너 16명과 진행한 인터뷰와 과거 문헌을 토대로 디자이너들의 노동 환경과 문제 의식을 다룬 전시다. 디자이너들의 업계에 대한 관점과 경험담을 인터뷰, 서베이, 이미지 큐레이션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년 차부터 27년 차 그래픽 디자인, UX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등 업계 종사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인터뷰에 언급한 업무를 일정 관리, 비용 절감, 소통과 설득, 출장, 촬영 등의 48가지 키워드로 분류한 게 특징이다.
전시 공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금속 설치물은 서가를 연상시키는데, 여러 층위의 패널에 총 262장의 종이 카드를 나열해 관객이 하나씩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계약서를 주고받자고 했더니 연락이 없었다”라는 일화나 “수정을 하자는 거지. 난 수정을 할 수 없다고 하고”라는 조소를 통해 디자인 업계의 노동 환경을 가늠하게 한다. 또한 곳곳에 비치한 디지털 패널에는 월간 〈디자인〉 기사를 비롯해 다양한 사료에서 발췌한 문장을 전시하기도 했다. 화면을 통해 1970년대의 디자이너가 출장 중 촬영 업무를 맡게 되며 크레인을 몰다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는 웃지 못할 후일담과, 제품 출시 직전까지 많은 자료와 씨름하고 클라이언트와 경합을 벌이며 겪는 고충을 엿볼 수 있다.
공간 한편에는 디자이너 송민호가 이 주제에 대한 심상을 큐레이션한 시각물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가 직접 작업한 그래픽 이미지부터 과거의 자료를 재해석한 작품을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디자이너의 업무 영역과 노동 환경에 대한 고찰을 통해 ‘일하고 싶은 일터’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Interview
이호정 whatreallymatters 기획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경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이 궁금하다.
2022년에 기획한 〈디자인 책 ― 이 책, 그 책, 저 책〉에 이어 디자인을 화두로 함께 생각해볼 만한 문제의식을 주제로 전시로 공유하고자 했다. 지난해 여름 디자이너들을 만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한 게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나는 전시 주제를 제안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가공하는 일을 맡았다. 또 리서치 과정에서 디자이너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편집하고 정리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일에 대해 파고들었다.
전시 공간의 금속 서가에 놓인 카드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직접 진행한 인터뷰에서 발췌한 문장이라고 들었다.
인터뷰에서는 회사에 디자이너로 입사해 맡은 역할과 업무가 무엇인지, 어떤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하는지, 어떤 일까지 수행했는지 등 각자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물었다. 16명의 인터뷰이들은 2년 차부터 27년 차 디자이너들로 연차와 경력, 그리고 종사하는 직종이나 분야를 특정할 수 없다. 인상적인 점은 기업과 디자인 에이전시, 스타트업, 공공 기관, 대학교, 출판사 등에 근무했으며 각자가 디자인을 시작한 배경과 쌓아온 경험이 다르더라도 이야기하는 경험담은 무척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토대로 각자의 직장과 근무 환경 에서 수행하는 ‘디자이너들의 역할과 업무’를 기준으로 인터뷰 녹취록을 살폈고 이를 발췌해 카테고리별로 세분화해 편집했다.
송민호 디자이너가 큐레이션한 이미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인터뷰 텍스트를 읽고 떠오르는 장면이나 감상을 표현한 작업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미지가 기획자에게 어떤 관점으로 보이는지 대화하며 작업했다. 큐레이션한 작품에는 ‘감리 시간’, ‘용지를 찾아서’와 같이 직관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꿈’, ‘비워야 하는 것’처럼 보는 사람의 해석이 필요한 이미지도 있다. 일부는 뮤지엄의 퍼블릭 도메인 이미지를 활용한 것으로, 감상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도록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인상적인 관람객 리뷰가 있다면 무엇인가?
예전과 비교해 현재 디자이너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업무 내용을 나열한 카드를 보고 자신의 상황을 이입하게 된다는 반응도 있었고, 모두 한 사람의 인터뷰 같다는 반응도 흥미로웠다.
앞으로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확장해나갈 계획인가?
기록집 〈디자인의 이름으로〉를 출간할 예정이다. 프로젝트의 데이터 결과를 펼쳐둔 전시와 달리, 책에서는 업무별로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송민호가 기록집 디자인을 맡았는데 이미지와 인터뷰의 에피소드를 엮어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