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 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바우하우스의 매력

바우하우스의 각 구성원들은 워크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과 실험을 온몸으로 체득하곤 했다. 11월 12일부터 오는 2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열리는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전은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대한 바우하우스의 고민과 기술과 예술 간의 융합을 어떤 방식으로 탐색했는지 살펴보는 흔치 않은 기회다.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 전

바우하우스(Bauhaus). ‘건축의 집’을 뜻하는 20 세기 독일의 이 작은 교육 기관만큼 예술,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불멸의 단어가 된 존재가 있을까. 1916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시작해 1925년 데사우로 이전한 후, 1932년 베를린에서 마지막 1년을 보내며 이듬해 폐쇄된 바우하우스의 존속기간은 채 20년도 못 채웠지만 이곳을 거쳐간 수 많은 인물들은 제 마음속에, 새로운 정착지에 바우하우스 정신을 심으며 20세기 새로운 창조의 숲을 건설했다. 근 100년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예술, 건축, 인테리어, 가구, 산업 디자인,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등 방대한 창작 분야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각인된 바우하우스는 건축을 통해 모든 예술을 통합한다는 궁극적인 기치 아래 선생과 학생이 마치 장인과 견습생처럼 어울리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부류의 예술가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특히 바우하우스의 각 구성원들은 워크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과 실험을 온몸으로 체득하곤 했다. 인간, 공간, 그리고 기계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공간인 무대는 바우하우스의 중요한 실험 장소이자 유희 공간으로 기능했지만 여러 창작 분야에 끼친 영향력이 워낙 막대한지라 바우하우스와 무대 실험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끌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1월 12일부터 오는 2월 2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에서 열리는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전은 인간의 정신과 신체에 대한 바우하우스의 고민과 기술과 예술 간의 융합을 어떤 방식으로 탐색했는지 살펴보는 흔치 않은 기회다.

베를린 디자인 뮤지엄과 더불어 바우하우스 연구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의 기획 아래 2013년 독일에서 첫선을 보인 후 2014년 봄 노르웨이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따끈따끈한 전시인 만큼 ‘신체 조화’, ‘분위기 장치’, ‘구성주의적 형상’, ‘신기한 무대기술’, ‘조각적인 안무’, ‘총체극장’, ‘집단 프로그램’ 등 섹션명에서부터 건축과 디자인에 집중했던 기존 바우하우스 전시와 사뭇 다른 결을 파고든 신선한 기획 의도가 명징하게 전달된다. 

특히 MMCA는 기존 전시를 그대로 이식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지난 2년간 재단 측과 긴밀히 협의하며 김영나, 안상수, 조소희 등 국내 작가 6명의 작업을 추가하는 등 서울 전시를 공동으로 기획하는 열정을 보였다. 덕분에 멀게만 느껴지던 바우하우스의 개념이 지금 우리 곁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모습을 자연스레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더불어 전시를 총기획한 큐레이터 토르슈텐 블루메(Torsten Blume)는 타이포그래퍼 안상수가 이끄는 대안디자인학교 파주타 이포그래피학교(PaTI) 학생들과 함께 ‘파티. 플레이스 바우하우스PaTI. Plays Bauhaus’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바우하우스의 무대 공방과 공연 예술을 이끌었던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의 총체적인 무대 실험에서 영감받아 무대 의상을 직접 제작해 음악, 사진, 영상, 글자, 신체, 디자인을 융합한 그들의 무대는 특별한 매력을 발산했다. 게다가 전시 기간 동안 아예 수업 공간을 전시장으로 옮기는 모험을 감행하며 오래전 사라진 바우하우스의 교육 이념과 창작과정을 21세기 관점으로 다시 구현하는 시도를 통해 여느 해외 순회 전시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함의 방점을 찍었다.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파티가 되고 파티가 놀이가 된다”고 역설했던 바우하우스 교수,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의 말을 이어받아 “바우하우스는 아이들의 호기심과 개방성, 기술자의 정교함, 학자의 엄정함이 모두 모인 성인들의 유치원”이라 복기하는 재단 측의 설명을 듣고 나니 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려 무언가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를 인간에 대한 배움이자 작품으로 여긴 바우하우스의 가치는 다시 100년이 지난 후라도 그 생명력이 바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인간, 공간, 기계>전
‘신체 조화’를 시작으로 ‘분위기 장치’, ‘구성주의적 형상’, ‘신기한 무대기술’, ‘조각적인 안무’, ‘총체극장’, ‘집단 프로그램’까지 총 7부로 구성됐다. 각 섹션은 신체에 대한 관심, 색채, 형태, 기하학적 감각, 3차원적 공간 인식, 새로운 시각 자극을 기반으로 한 놀이와 무대를 통해 다감각적인 전인 교육을 지향했던 바우하우스의 진가를 보여준다. 당시 산업화와 기계화가 시작된 사회적 배경을 품고 인간에 대한 배움, 그 과정 자체를 즐기던 바우하우스는 함께 연구하고 무언가를 짓는 ‘놀이’로서의 실험이 교육과 작품이 되었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바우하우스를 만들며 “친밀감을 기반으로 비슷한 생각을 지닌 예술가들의 혼합”이라 역설한 이유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39호(2015.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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