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호스튜디오 최중호 대표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산업 디자인

패션, 리빙, 산업 등 장르를 넘나들며 디자인 접점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 최중호. 자신의 이름을 건 최중호스튜디오의 탄생부터 오늘날 국내 산업 디자인의 경향까지에 대한 이야기

최중호스튜디오 최중호 대표

국내 산업 디자인의 위상과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탄탄한 내수 제조업 시장과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브랜드들의 약진은 디자이너들이 세계 시장으로 발을 넓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이 산업의 미래를 무작정 낙관만 할 수는 없다. 디자인 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 전문 회사들의 입지가 약화됐고, 디자인 교육계에서 산업 디자인으로의 진로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실에서 문득 최중호라는 답이 떠올랐다. 올해로 스튜디오 운영 15년 차. 제품과 리빙, 공간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이 전천후 디자이너의 행보에서 어쩌면 우리는 국내 산업 디자이너가 가야 할 방향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특히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꿋꿋이 산업 디자이너의 길을 걷고자 하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일독을 권한다.

다방면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산업 디자이너

최중호스튜디오 대표.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8년 후배들과 디자인 그룹 아이디얼그라피를 결성했고, 이듬해 디자인한 ‘청사초롱’ 조명이 〈디진DeZeen〉 등 해외 온라인 미디어에 소개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일찍이 최중호스튜디오를 오픈하는 한편 팬택에 입사해 스튜디오 운영과 인하우스 디자인을 병행했다. 팬택 신입 시절에는 팬택의 밀리언셀러 ‘베가 레이서’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3M, 아메리칸스탠다드, 삼성, LG 등 다양한 기업의 디자이너 파트너로 활동했으며 라이마스, 레어로우, 카레클린트 등 리빙 브랜드와도 활발히 협업했다. joonghochoi.com

요즘은 좀 늘었다고 해도 여전히 국내에서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건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경우가 흔치 않잖아요. 게다가 인지도가 약한 학생 시절에 만든 스튜디오였고. 스튜디오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스튜디오 이름을 지을 당시 저 스스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당시 많은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대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취업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동경하던 디자이너, 즉 후카사와 나오토, 필립 스탁, 재스퍼 모리슨 같은 이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활동했다는 말이죠. 물론 한국 디자인 신 자체가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전이었으니까 이런 현상 자체를 이해 못 했던 것은 아니지만, 좀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학생이 자기 스튜디오를 운영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었죠.

제가 그렇게 현실감 없는 사람은 아니긴 한데.(웃음) 실제로 대학교 재학 시절 산업 디자이너로서 기업에 들어가 대량생산 프로세스를 경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패션 디자이너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리빙 디자인 분야에도 관심을 두게 됩니다. 산업 디자인은 계산적이고 치밀하고 합리적으로 사용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패션이나 리빙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디자이너가 창작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관대하죠.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산업 디자이너로서 배워야 할 소양을 착실하게 쌓는 한편 독립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 BMH 갤러리(*)에서 활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 온라인 클럽 디자이너스 파티를 운영하던 이상윤 대표가 운영하던 공간이자 플랫폼. 2000년대 후반 젊은 산업 디자이너와 리빙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트레이닝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디자이너들이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던 일화가 유명하다.

쿠쿠 트윈프레셔. 화이트와 실버 톤의 조화가 특징인 이 압력 밥솥은 어둡고 무거운 색상이 주를 이루던 밥솥 디자인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다양한 제작 공정을 집약한 의자 ‘미려’. 2014년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이 성북동 대양 갤러리를 설계하면서 이 의자를 갤러리 가구로 선택했다.

패션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산업 디자이너라니 흥미롭네요.

패션의 속성 자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중요하잖아요. 달리 말하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내 디자인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타당한지 늘 습관처럼 점검합니다. 제품 사진을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학생이었던 때만 해도 제품의 기능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화보가 일반적이었는데 저는 제품에서 받는 인상을 연출하는 게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마치 패션 화보처럼 말이죠.

초기 커리어에서 BMH 갤러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디자이너스 파티나 BMH 갤러리처럼 디자이너들이 이합집산할 수 있는 플랫폼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쉽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갤러리 활동을 했어요. 마침 팬택에서 선발하는 스카이 멤버십에 뽑힌 터라 학업과 멤버십, 갤러리 활동을 같이 해야 했죠. 학생 때는 주로 콘셉추얼한 디자인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죠. 작업도 3D 렌더링 구현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저는 실제 가구나 조명을 만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맥락도 이해하게 됐고요. BMH 갤러리에서 트레이닝받은 것도 좋은 자양분이 됐습니다. 남의 말과 생각을 빌려오는 게 아닌, 자기 생각과 관점으로 디자인하는 데 도움이 됐죠. 그때도 산업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너무 작품 같은 가구나 조명보다는 양산을 염두에 둔 작업을 하려고 했습니다. 갤러리 활동의 경험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 조직한 게 아이디얼그라피였어요. 당시만 해도 학교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그룹이 드물었는데 서울디자인페스티벌과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등에 참가하며 입소문이 나자 이후로 많은 그룹이 만들어졌습니다.

디트로네D.Throne 패밀리 모빌리티. 유아차와 전동차를 결합했다. 1900년대 초반에 유행한 클래식한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산스월스 리조트&빌라. 최중호스튜디오가 공간 디자인, 가구, 브랜드 디자인을 맡았다.

워낙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다 보니 오히려 최중호스튜디오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는 게 쉽진 않지만, 스튜디오의 근간에 산업 디자인이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공간 디자인은 조명, 가구, 집기 같은 ‘프로덕트’들이 잘 연출되는 플랫폼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편입니다. 최근에는 코리빙 스페이스 같은 주거 프로젝트에도 많이 참여했는데 마찬가지로 하나의 공간 유닛을 대량생산한다는 관점을 갖고 작업합니다.

공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품이나 리빙 외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보버라운지라는 아메리칸 프렌치 레스토랑이 시작이었습니다. 다수의 F&B 매장을 론칭한 이력이 있는 LVI의 의뢰로 성사된 프로젝트였죠. 이전에도 클라이언트가 운영하는 한식당과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들어갈 가구를 디자인한 적이 있는데 합이 잘 맞아 공간까지 진행하게 됐어요. 빈티지 인더스트리얼 무드가 인기를 끌던 시기였지만, 클라이언트는 여기서 벗어나 좀 더 우아한 공간을 연출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던 북유럽 스타일에 프렌치 무드를 더해 공간을 디자인했어요. 아직 최중호스튜디오다운 공간이라는 게 확립되기 전 프로젝트이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운 좋게 인스타그램 붐이 일면서 단숨에 핫 플레이스로 등극했고요. 공간과 가구를 아우르는 프로젝트가 드물어서였는지 미디어의 주목도 많이 받았습니다. 처음 발을 디딘 영역의 성과로는 꽤 고무적이었죠.

3M 스카치테이프 디스펜서. 2015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수상했다.

정통 코스를 밟은 공간 디자이너들과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한 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하나요?

불리한 점도 많지만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공간 안의 가구나 집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공간과 사용자 사이의 접점에 늘 가구를 염두에 두죠. 그게 아마 저만의 강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구를 통해 공간에 캐릭터를 부여하니까. 벽체를 하나 두려면 시공을 해야 하잖아요. 한번 공사를 하고 나면 더 이상 손을 대기도 어렵고. 반면 가구는 이동시킬 수 있으니 다양하고 유연한 공간 연출에 유리한 면이 있어요. 그래서 마감재로 멋지게 연출하는 것보다 실제 공간에 놓고 쓸 가구나 제품에 초점을 맞춥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희 공간에는 저희가 디자인한 가구를 놓는다는 단서를 아예 계약서에 못 박아놔요.

최근 포트폴리오를 보면 확실히 공간 스타일을 어느 정도 굳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처음 보버라운지를 디자인할 때만 해도 스타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희가 만드는 제품들과 괴리가 생기더군요. 그때부터 ‘최중호스튜디오가 디자인하는 공간은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어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착된 상태인데 사실 여기서 머물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는 현재 스타일에 다른 문화를 융합해보고 있습니다.

환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공유 주거 브랜드 커런트 페이지 1. 영등포구의 노후된 고시원을 감각적인 MZ세대가 머무는 공유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최중호스튜디오는 지난해 코리아디자인어워드 기업가치혁신상을 수상한 SK디앤디의 에피소드 101, 신영건설의 지웰홈스 등 유독 공유 주거 프로젝트와 인연이 깊다.

디자이너로서 본인의 최대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역시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달리 말하면 접점을 만드는데 능하다고 할까요?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를 의뢰할 때 보통 어떤 판타지가 있잖아요. 저는 그 판타지를 잘 흡수합니다. 공급자, 수요자, 그리고 저도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최중호스튜디오의 특징 중 하나가 정해진 프로세스가 없다는 것입니다. 프로젝트마다 클라이언트와의 대화를 통해 최적의 프로세스를 도출하죠. 이를테면 기업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때는 또 다른 제3의 인격체를 조형하는 것이지만, 개인 클라이언트의 경우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커요. 매장 하나를 열 때도 기업은 전체적인 시장 안에서 전술적인 선택을 할 때가 많지만 개인 사업자는 매장 하나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도 있죠. 이렇게 욕구가 다른데 동일한 프로세스로 접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프로젝트 초기에 제가 직접 클라이언트를 만나 경청하고 최적화된 방향과 프로세스를 설계하려고 합니다.

어쩌다 보니 산업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좀 소홀한 감이 있네요.

제품 디자인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산업 디자이너가 시장과 산업, 즉 환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레퍼런스를 축적하고 훌륭한 디자인 철학을 갖는 것만큼 말이죠. 제아무리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뛰어나도 소비자나 공급자가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느껴진다고 디자이너의 생각이 무작정 틀렸다고 말해서는 곤란하지만. 디자이너는 중재자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자리에 있어요. 때로 자아를 내려놓고 상대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하죠. 코웨이 정수기를 디자인하는데 무조건 우리 스타일을 고집할 수 없잖아요. 그건 우리도 원치 않고요.(웃음) 접점에서 어떻게 해야 세 가지 입장, 다시 말해 클라이언트와 소비자, 디자이너 자신의 입장을 조화시킬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벨트 드라이브 플로어 램프. 라이마스와 협업했다. 공사장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운동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운동화 끈에 해당하는 벨트를 늘이거나 줄여 광원의 기울기나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저는 지금 국내 산업 디자인 신이 기묘한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 디자이너들이 다수 배출되고 있지만, 산업 디자인 전공의 진로를 택하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글쎄요, 거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하이테크를 앞세운 제품 중 상당수가 미니멀한 외관을 갖추면서 산업에서 예전만큼 많은 수의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디자인 전문 회사에 외주를 주는 게 보편적이었다면 지금은 인하우스 디자이너만으로도 소화할 수 있는 거죠. 게다가 조직의 생리에 대한 이해도도 외부 디자이너보다 높을 수밖에 없고요. 그러다 보니 기업의 외주가 선행 디자인 위주로 쏠리게 되는데 선행 디자인은 통상 기밀로 진행됩니다. 소비자와 접점이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보니 시장에서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드러날 수가 없죠. 산업 디자인 회사의 활약이 예전만 못하다고 느끼는 건 아마 이런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타파할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리빙 분야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나 스테판 디에즈Stefan Diez 같은 산업 디자이너를 좋아하는데 그들의 최근 포트폴리오를 보면 가구와 조명의 비중이 일반 프로덕트보다 월등히 커요. 오늘날 산업 디자이너들은 좀 더 전반적인 문화와 다양한 카테고리를 습득할 필요가 있어요. 대학 강단에 서는 다수의 이전 세대 디자이너들이 이걸 가르치는 게 쉽진 않아 보입니다. 그들의 역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과거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좀 더 특수하게 전문화된 영역을 가르치면 됐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어쨌든 산업 디자이너들이 리빙 디자인으로 눈길을 돌리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브랜드들도 선호할 것입니다. 산업 디자이너는 본능적으로 파트 하나 늘리는 데에도 죄책감을 느끼니까요.(웃음)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리빙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란 뜻이죠.

카레클린트와 협업한 JC 시리즈. 건축의 구조적 특징을 가구화했다.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협업에 대해서

그건 리빙 디자인 시장의 성장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네요.

맞습니다. 예전에는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죠. 몇몇 기업이 있었지만 다종다양하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디자이너가 꿈꾸는 가구를 만들기 위해선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따랐죠. 생산과 유통까지 도맡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최근 리빙 시장이 활기를 띠며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도 늘어났습니다. 올해 서울리빙디자인페어를 둘러보면서 리빙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협업이 늘어났다고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 해외 리빙 브랜드의 컬렉션을 보면서 디자이너 이름이 드러나 있는 게 늘 부러웠습니다. 협업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죠. 오히려 해외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자기 브랜드를 갖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브랜드 운영의 부담을 지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국내 디자인 시장에 일조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리빙 시장에서 디자이너 협업 문화를 활성화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라이마스, 레어로우, 카레클린트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죠.

사실 카레클린트 이전에 라이마스나 레어로우는 브랜드에 맞춰 디자인한 게 아니었어요. 저희가 내부적으로 고안한 디자인이 있었고, 그걸 양산에 최적화시킨 케이스죠. 딱 봐도 벨트 드라이브 같은 조명이 라이마스의 기존 스타일과 갭이 크잖아요.(웃음) 색깔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저는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두커니 있는 것보다 뭐라도 실행하는 게 낫죠. 카레클린트와 한창 협업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라이마스가 SWNA의 리버럴오피스와 컬래버레이션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이번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비아인키노와 유스풀 워크숍의 협업도 흥미롭게 봤고요. 제가 오래전부터 꿈꿨던 생태계의 모습이 조금씩 현실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웃도어 가구 ‘파사데나’. 레어로우와 컬래버레이션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내 기업이 디자이너의 이름을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분명 아쉬운 점이지만 기업 탓만 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협업이라는 타이틀을 내걸 만큼 매력적인 소구점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죠. 디자이너들이 인지도 확보를 위해 그만큼 노력을 기울였는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걸 잘 못하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죠. 저는 이런 부분에 노력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왜 협업을 드러내야 하는지 설득하는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도 있어요. 기업은 생각보다 생리가 복잡해요. 담당 실무자와 합이 잘 맞는다고 해서 상사나 임원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이 없죠. 보고 체계에서 담당자들이 저를 대신해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어렵죠. 정말 어려운 부분입니다. 저도 설득에 실패했을 때 상실감이 크고요. 하지만 더 애써봐야죠.

이미 많은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혹시 앞으로 디자인해보고 싶은 게 또 있나요?

사실 예전부터 진짜 해보고 싶은 게 호텔 프로젝트입니다. 오직 입주자만 경험할 수 있는 공유 주거보다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호텔은 리조트나 펜션과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호텔의 브랜드부터 서비스, 공간, 가구, 제품까지 종합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5성급은 아니고 3성급 부티크 정도? 저는 중간 영역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관심이 많거든요. 저희가 디자인한 가구도 값비싼 아트 퍼니처가 아니라 보급형 가구의 상위 버전이잖아요. 호텔로 치면 에이스호텔 같은 것이죠.(웃음) 앞으로도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좋은 디자인 가치를 선사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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