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말하는 〈파묘〉 포스터에 숨겨진 의미
‘험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 〈파묘〉의 포스터 디자인을 담당한 ‘꽃피는 봄이오면’의 강유나 디자이너와 나눈 인터뷰.
개봉 5주 차에 접어든 영화 〈파묘〉의 인기가 여전히 뜨겁다. 3월 21일 현재까지 누적 관객수 952만 명. 올해 첫 천만 영화이자 오컬트 영화 최초 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셈이다. 영화 흥행의 숨은 주역 중 하나는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포스터 디자인. 영화 속 비밀들이 하나씩 해석되고 공개되는 가운데 작품의 얼굴이라고 일컬어지는 포스터 디자인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다. 배우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화림의 캐릭터 포스터에는 어떤 장면이 숨겨져 있을까? LA에 사는 한 가족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 파묘한 것처럼, 궁금증을 풀기 위해 포스터에 숨은 디테일을 파헤쳤다. 〈파묘〉의 포스터 디자인을 담당한 ‘꽃피는 봄이오면’의 강유나 디자이너가 그 비밀을 들려준다.
Designer Interview
강유나 꽃피는 봄이오면 디자이너
먼저 디자이너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그래픽 디자인 기반의 스튜디오 ‘꽃피는 봄이오면’의 디자이너 강유나입니다. 회사명은 ‘꽃봄’이라고 많이들 줄여서 불러주세요.
그럼 저도 ‘꽃봄’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꽃봄이 <파묘>의 캐릭터 포스터를 작업해 주셨죠?
캐릭터 포스터와 4DX, 스페셜 포스터를 담당했어요. 그리고 영화가 개봉하기 전후로 홍보를 위한 마케팅의 전반적인 이미지들도 작업했는데요. 버스 전단이나 특전 굿즈 등에 출력되는 그래픽 작업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제가 대표로 인터뷰하게 되었지만, 이번 작업은 저희 꽃봄의 여러 디자이너분과 함께 작업하여 나온 결과물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마다 프로세스가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요. 〈파묘〉의 포스터 작업 과정은 어떠했나요?
포스터 촬영을 계획하게 되면 크랭크업 시점에 맞춰서 시안을 준비하고 그것에 맞게 사진 촬영을 진행해요. 촬영이 어려운 경우에는 회차별 스틸을 활용해 포스터 작업을 하게 되고요. 〈파묘〉는 촬영을 계획하다가 시간적 제약 때문에 후자로 진행하게 된 케이스예요.
스틸로 진행하는 포스터는 보통 영화가 개봉하기 2~4개월 전에 작업을 시작해요. 물론, 훨씬 전부터 계획하는 경우도 있고요. 스틸로 작업하더라도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 시안을 만들어서 제작사와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컨셉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쉽게 채택되지 못하는 아이디어들도 있고, 조금씩 수정을 거쳐 공개를 준비하는 포스터들도 얼추 정리가 되죠.
개봉이 다가오면 순차적으로 포스터가 공개되고, 저희는 포스터를 활용해서 마케팅을 위한 선재물(선전 재료물)들을 만들어요. 〈파묘〉는 개봉 이후에도 많은 분이 관심을 주셔서 스페셜 포스터 공개를 위한 추가적인 작업이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파묘〉의 캐릭터 포스터에 대해 여쭤볼게요.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포스터 중에서 특히 ‘캐릭터’ 포스터는 관객들에게 극 중 인물을 한 명, 한 명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끔 하는 하나의 장치라고 생각해요. 〈파묘〉의 캐릭터 포스터에는 프로페셔널한 네 인물의 모습과 작품에서 ‘험한 것’의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달라지는 그들의 강렬한 눈빛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초반 시안 작업을 할 때는 인물의 눈빛에 집중해 풀어나갔는데요. 제작사와 방향성을 이야기하며 풍수사, 장의사, 무당이라는 캐릭터들의 직업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캐릭터 포스터를 보면 인물마다 여러 레이어가 중첩되어 있어요.
캐릭터들을 상징하는 오브제 또한 포스터에 녹이기에 흥미로운 주제였어요. 풍수사의 무덤, 장의사의 관, 무당의 정령 나무, 험한 것의 불 등 조금은 직설적이지만 관객들에게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캐릭터와 함께 오브제를 중첩해 디자인했습니다.
배경 컬러로 붉은색과 파란색을 고른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험한 것이 등장하며 반전되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강렬한 컬러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극 초반부에 화면에 차갑게 내려앉은 안개와 먹구름 등 스산한 기운이 도는데요. 이후 험한 것의 등장이 영화의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해 레드와 블루의 컬러 대비를 사용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분들이 ‘항일 영화’라는 평을 말씀해 주시며 포스터에도 태극기의 컬러가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도 접하게 되었는데요. 포스터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생기며 재미의 요소가 된 것 같아요.
4DX 포스터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영화에는 없는 장면 같았거든요.
극 중에선 묘와 정령 나무 사이에 거리가 있어 험한 것을 유인하는 장치로 쓰이는데요. 포스터 한 장에 작품을 담기 위해서는 상징적인 두 개의 비주얼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다른 두 컷의 스틸이지만 정령 나무에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묘의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융합되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4DX(*)라는 상영관의 특성이 포스터 디자인에도 반영되나요?
맞아요. 이 포스터는 4DX에서만 느낄 수 있는 〈파묘〉의 웅장한 북 사운드와 오싹한 영상미, 그리고 스산한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되었어요. CGV에서 이후 포스터의 하늘 부분을 야광으로 후가공한 굿즈를 내주셨는데요. 인쇄된 포스터를 접하고 영화의 분위기가 한층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 같았어요. 저희에게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 CJ그룹의 CJ 4DPLEX가 상용화한 4D 영화 상영 시스템의 브랜드 명칭이자 CGV의 특별관
앞서 살짝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아쉽게 채택되지 못한 아이디어도 소개해 주세요.
초기에 작업을 하면서 험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무뿌리를 험한 것의 형체로 표현한다든가, 네 명의 주인공이 험한 것의 관을 들고 가는 장면이라든가… 일러스트, 콜라주 등 여러 아이디어가 있었죠. 스포일러의 문제나 관객분들이 보시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 채택되지 못한 포스터들도 많습니다. (웃음) 아쉽지만 포스터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첫인상이고, 그 첫인상은 좋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공개된 포스터가 이 역할을 충분히 잘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인지 〈파묘〉의 팬아트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개봉 후 관객 500만 돌파를 기념하며 이 팬아트 중 하나를 모티브로 한 스페셜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고요. 스페셜 포스터 작업은 어떠셨어요?
정말 신기하게도 팬아트와 거의 유사한 구도로 작업하던 포스터 시안이 있었어요. 해당 시안은 제작사와 논의하여 개봉 이후 릴리즈를 계획하며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개봉 직후 많은 관객분들이 관심을 주시고, 또 팬아트를 그려서 개인 SNS에 업로드하며 애정을 표현해 주셨어요. 그중 이번 스페셜 포스터의 모티브가 된 팬아트를 접하게 되었고, 제작사가 발 빠르게 일러스트레이터님과 저희에게 연락을 주셔서 너무나도 좋은 아이디어를 더한 포스터 작업이 진행되었어요.
팬아트와의 싱크는 어떻게 맞췄나요?
제 주변 지인들도 원래 스틸을 갖고 있었는지, 아니면 영화의 일부 이미지를 사용했는지 정말 많이 궁금해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팬아트와 작업해 둔 시안이 거의 유사해 큰 어려움 없이 빠른 시간에 작업을 마치고 포스터를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파묘>, 그리고 포스터를 진심으로 즐겨 주셨기 때문에 탄생한 포스터라고 생각해요.
보통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포스터 등의 디자인 작업을 한다고 알고 있어요. 작업 후 〈파묘〉를 본 디자이너님의 감상이 궁금해요.
질문 주신 것처럼 작품을 영상으로 접하지 못할 때는 촬영하며 찍은 스틸이나 시나리오를 전달받아 작품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작업합니다. 〈파묘〉는 이와 다르게 작업을 하며 가편집본을 보고, 개봉 이후에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저희가 작업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디자인적으로 오컬트, 미스터리, 험한 것 등 장르와 보이는 비주얼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몰두했다면, 개봉 이후에는 관객의 입장에서 저희가 갖지 못했던 넓은 시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다양한 역사적 해석과 추측을 접하고 다시 보니 재밌더라고요. 인물들의 이름이나 차량 번호… 오컬트라는 장르를 넘어 감독님이 숨겨 놓은 메시지를 찾아보며 흥미롭게 보았어요.
마지막으로 작업 후기를 들려주세요.
영화에 정말 많은 분의 공이 들어간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포스터가 나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개봉이 다가오면서 밤을 새우거나 주말을 반납하는 날도 종종 있었는데요. 영화가 공개되고 너무나도 많은 관객분들이 열광해 주셔서 꽃봄 식구들 모두 그 시간을 보상받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