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메이킴: 디지털 콘텐츠로 트렌드의 선봉에 서다

메이킴 비주얼 아티스트·오브젝트 모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D를 주무기로 시각 디자인을 탐구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메이킴.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살피는 동시에 트렌드의 최전선을 활보하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콘텐츠를 만든다. 글로벌 아티스트부터 유수의 기업과 브랜드, 매거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의 작업에는 어떤 매력이 배어 있을까?

[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메이킴: 디지털 콘텐츠로 트렌드의 선봉에 서다

editor’s note

메이킴(May Kim)은 3D를 명민하게 활용하는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아티스트 그룹 ‘오브젝트 모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입니다. 2D와 3D,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디테일을 활용해 치밀한 그래픽 시스템을 설계하는 프로죠. 그는 뉴욕 패션 브랜딩 회사 ‘2X4(2by4)’를 시작으로, 스튜디오 콘크리트, 젠틀몬스터 등 다양한 회사에서 단단한 업력을 쌓고 독립했는데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스(VANS), 우영미(Wooyoungmi), 비엠더블유(BMW), 버드와이저(Budweiser) 등 유수의 브랜드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졌어요. 그뿐일까요. 아티스트 림킴(LIMKIM)의 앨범 아트워크, 미야오의 앨범 아트워크 모션 그래픽부터 코드 쿤스트 팝업 스토어 VMD를 맡고, 세계적인 DJ이자 프로듀서인 페기구의 무대에 오르는 등 끊임없이 한계를 갱신해 왔어요. 지난해 국립극장이 주최하는 우리 음악 축제 〈여우락 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끄는데요. 국악에 3D를 접목한 키 비주얼을 완성해 전통 음악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는가 하면, 전통 악기를 다루는 국악인들과 협업해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무대와 퍼포먼스를 선보였어요. 시각 디자인 분야에서 전방위로 활동하며 브랜드 및 뮤지션과 협업하는 것은 물론, 지난 2022년 설립한 ‘오브젝트 모드’의 수장으로 활동하기까지. 용산에 자리한 오브젝트 모드의 작업실에서 지난 여정을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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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아티스트 그룹 ‘오브젝트 모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메이킴

PLUS 1. 홀로서기부터 국악 무대의 디렉터로 오르기까지

해외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원래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사실 해외에 가게 된 계기는 학업보다 아버지 직업 특성상 해외 연수를 갈 일이 있어서 따라간 거예요. 유년 시절 대부분을 외국에서 지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학교에 다니며 인종 차별도 많이 겪고 상처도 많았어요. 당시의 억눌리고 위축된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고 발산할 수 있는 수단이 미술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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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매거진 〈더블유 코리아(W Korea)〉 작업 © Maykim
감정이 작업의 중요한 단초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작품에 꼭 무겁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지 않더라도 조금 더 사려 깊은 콘텐츠를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죠. 내가 만든 콘텐츠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재차 점검해 보는 습관을 들인 거예요. 커리어는 뉴욕의 브랜딩 회사에서 인턴 디자이너로 시작했고 프라다나 미우미우 같은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일할 기회를 얻으며 실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왔죠.

국내에 돌아와서도 실험적인 행보로 알려진 ‘스튜디오 콘크리트’나 ‘젠틀몬스터’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어요.

국내에 돌아온 직후 스튜디오 콘크리트와 누데이크에서 각각 1년 정도 일했어요. 연고도, 인맥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포트폴리오로만 승부를 봐야 했죠. 감사하게도 제 작업을 좋게 봐주셔서 국내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특히 젠틀몬스터 ‘프로젝트 파트’팀에서 비주얼 에디터로 근무할 당시에는 누데이크의 브랜딩, 디지털 콘텐츠 제작, 그래픽 디자인 등 포괄적인 업무를 맡으며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어요. 중국 베이징의 ‘SKP-S 백화점’과의 협업처럼 초대형 상업 공간을 전시장처럼 탈바꿈하는 작업도 할 수 있었죠. 정말 원 없이 일했던 시간이에요.

이후 2021년 열성적으로 일하던 조직에서 독립했어요. 이제 약 4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벌써요? 숨 고를 새 없이 달려와서 실감이 안 나는데요.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2022년 아티스트 그룹 ‘오브젝트 모드(Object Mode)’를 결성해 현재 총 5인이 독특한 형태로 함께 일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또 독립 직후에는 스크린이나 디지털 기기에서 노출되는 3D 위주의 작업을 맡았다면 근래에는 한발 더 나아가 이를 활용한 전시와 행사까지 참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지난해 6월 서울디자인재단의 DDP 전시 〈RSVP: 위대한 유산으로의 초대〉에 이어 12월 DDP 미디어 아트 전시 〈퓨처시티 서울〉에 참여하면서 관객과 접점을 가질 기회가 비교적 많아졌거든요.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많이 했지만, 사회적으로 미디어 아트나 디지털 콘텐츠의 관심과 위상이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돼요.

최근 훨씬 폭넓은 작업을 다루게 됐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특히 지난해 5월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2024 여우락 페스티벌〉에 참여해 아트 디렉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는데요. 〈여우락 페스티벌〉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대표적인 음악 행사잖아요. 참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처음 제가 몸 담은 ‘스피커(Speeker)’를 통해 작업 제안이 왔는데요. 사실 국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도 했고, 제가 유년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냈기 때문에 국악이 좀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잘 모르니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생각에 숙고했던 작업이었죠. 근데 국립극장의 PD님 세 분이 저를 찾아온 거예요. 그동안 〈여우락 페스티벌〉 행사에서는 ‘이날치’처럼 특정 그룹에 대한 소개나 특정 그룹 간의 협업 무대가 중심이었다면 지난해는 12인의 아티스트를 초청해 1시간가량의 개인 무대를 각자 진행하게 됐는데, 이걸 하나로 묶어줄 입체적인 키 비주얼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 해야 하는 이유를 넘버링한 PPT를 발표하는데 빼도 박도 못 하겠더라고요(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제 모든 작업을 상세히 살펴보고 1순위로 리스트업 했다고 하더군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번 행사에서 키 비주얼 제작 외에도 ‘메이킴 〈장면들(Sceneries)〉’이라는 이름으로, 거문고와 가야금, 그리고 미디어 아트가 어우러지는 무대를 기획했어요.

이전에 브랜드와 기업, 아티스트와 호흡을 맞췄던 경험과 전혀 다른 호흡으로 진행됐어요. 제게는 1년여 기간 준비한 최장기 프로젝트였는데요. 그래픽 이미지를 디지털 화면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던 이전 작업과 달리, 이번에는 국악인의 ‘소리’에 대해 탐구하며 합을 맞춰 무대를 구성다는 점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훨씬 많았어요. 공연은 총체적 예술의 결정체임을 몸소 깨닫게 된 계기였죠.

미디어 아트와 음악의 접목이 전혀 새롭다고 볼 수는 없지만, 국악과 미디어 아트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져요. 그 둘을 묶어주는 분명한 요소가 없다면 잘 붙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맞아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우리 음악에 부러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무대가 낯설 수 있거든요. 그러니 더 잘해서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통을 소재로 다루면 늘 그렇듯 절묘한 ‘선’을 잘 지키면서 고루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무대를 함께 꾸밀 국악인을 모시는 것도 중요했는데요. 거문고를 일렉트로닉 뮤직과 연결해 EDM처럼 연출하는 황진아 작가님, 조신하게 앉아서 연주하던 가야금을 춤을 추며 흥겹게 기타처럼 들고 연주하는 박선주 작가님을 모시기 위해 PD님들과 오랜 논의를 했어요. 같이 무대를 해야 하는 이유를 PPT로 만들어서 설득한 거예요. 처음에는 서로 작업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낯설었는데, 금세 마음을 열고 돈독해져서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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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락 페스티벌〉 스토리 라인 © Maykim
함께 작업하며 어려움은 없었나요? 무대를 마친 소회도 궁금해요.

간혹 음악을 다루는 아티스트로서의 관점, 또 영상을 다루는 사람으로서의 시선을 모으는 게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그때마다 봉준호 영화 감독님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결국 궁중에서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연례 음악인 ‘수연장지곡’을 기조로 ‘기-승-전-결’ 스토리라인을 만들었죠. 도입부는 차분하게, 다음은 거문고와 가야금의 단독무대, 마지막은 듀엣을 하면서 수연장지곡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야말로 ‘빅뱅’을 시각화한 무대로 매듭지었어요. 아름다운 우리 음악을 새롭게 탐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프로젝트였어요. 그래픽만 다루던 창작자로서 이렇게 수많은 관객과 만날 일이 그렇게 많지 않는데, 쾌감도 굉장했고요. 완성도는 주관적이겠지만, 확실히 기존의 국악계에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지는 무대였을 것 같아요.

PLUS 2. 따로 또 같이, 디자인 그룹 ‘오브젝트 모드’를 결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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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모드 로고 디자인 © Maykim
홀로 일하다가 ‘오브젝트 모드’라는 그룹을 설립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한창 코로나가 극성일 때 조직에서 독립했는데, 처음에는 작업 시간을 스스로 매니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좋았어요. 근데 화면 앞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 보니 작업실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더라고요. 3D 다루는 사람들의 숙명과도 같은 게 렌더링 시간이거든요.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었지만,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어떻게 리스크를 줄이고 동료들과 체계적인 울타리 안에서 함께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 거예요.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재택근무에 사무실 없이 슬랙(Slack)으로만 함께 작업할 동료를 찾아 나섰어요. 서로 사생활 간섭 없이 슬랙 안에서만 대화하고, 파일만 마감 기한 안에 주고받는 조건으로요. 다만 프로젝트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는 점을 고지했죠. 그런데도 생각보다 수요가 많더라고요. 많은 지원 메일이 왔고 현재 근무 조건에 부합하면서 포트폴리오 성격이 잘 맞는 친구들과 팀을 꾸리게 됐어요.

이름은 왜 ‘오브젝트 모드’라고 지었나요?

‘오브젝트 모드’는 당시 함께하던 팀원 셋이서 지었는데요. 저희가 시중의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3D 프로그램인 ‘시포디(Cinema 4D)’, 렌더링 프로그램 ‘옥테인 렌더(Octane Render)’를 썼거든요. 슬랙으로만 대화하는 팀원들이 마치 약속한 것처럼 모두 같은 프로그램을 쓰다 보니 파일 호환이 너무 잘돼서 좋더라고요. 서로 모르는 기능이 있으면 물어보고 도움받기에도 제격이고요. 그러다 이 프로그램 중 설정 모드 중 많이 쓰이는 주요 기능인 ‘오브젝트 모드’에 꽂힌 거예요. 다른 메뉴를 선택하면 표면이 와이어 프레임처럼 보이는데, 이 기능은 대상이 형상화돼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거든요. 서로 느슨한 연대감으로 선명한 작업물을 완성하고 있는 저희 모습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었어요. 현재는 굉장히 끈끈한 관계로 발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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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코 뮤직비디오를 렌더링하는 과정 © Maykim
현재 어떤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총 5인인데요. 대표인 저는 주로 외부 커뮤니케이션이나 실무를 맡아요. 그리고 오브젝트 모드의 시작을 함께한 AI 마스터 ‘신원’, 오브젝트 모드 소속으로 근무하다 젠틀몬스터에 입사한 ‘재석’, 막내이자 분위기 메이커인 ‘성호’, 가장 최근 합류한 사진 전문가 ‘민제’가 함께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마다 PM과 참여 인원이 다른 게 특징이죠. 모두가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작업자인 셈이에요.

르세라핌 첫 번째 정규 앨범 〈UNFORGIVEN〉 무드 샘플러 © Ma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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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컨템포러리 신발 브랜드 ‘캠퍼(Camper)’의 키 비주얼 작업도 진행했다. © Maykim
일반적인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보다, 시각 디자인과 관련된 재미난 활동을 벌이는 집단 같아요.

맞아요. 그동안 저희 팀의 정체성이 2D나 3D를 기반으로 하는 그래픽 디자인 그룹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특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에 합류한 민제는 사진을 3D로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가졌는데요. 3D는 물론 조명에 대한 이해도까지 있어서 대상에 어떤 각도로 빛이 반사되면 어느 정도의 밝기가 적당하겠다는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알려줘서 작업에 큰 도움이 돼요. 지금은 ‘AI’나 ‘사진’, ‘3D 툴’ 등 매달 구성원끼리 돌아가며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 맞는 커리큘럼을 몇 시간 내에 간략히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추후 기반이 마련된다면 ‘디자인 커뮤니티’로도 발전시키고 싶어요. 주로 1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체계적인 배움에 대한 갈망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디자이너를 응집시키는 결속력을 다지는 동시에 독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장을 마련하고자 해요. 머지않아 꼭 실현시키고 싶은 계획 중 하나예요.

오브젝트 모드는 어떤 지원자를 선호하나요?

종종 함께 스터디하고 작업도 함께할 수 있는 분을 선호해요. 배우고 싶은 마음과 자기 계발을 갈망이 있고 인생의 가치관과 포트폴리오의 결이 비슷한 느낌이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작업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중요하게 여겨요.

PLUS 3.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로서의 태도

개인적으로 ‘2D를 3D처럼, 3D를 2D처럼 만드는 연습’도 하시더라고요. 평면을 입체처럼, 입체를 평면처럼 만든다는 표현이 흥미로운데, 어떤 의미예요?

2D 같은 플랫한 느낌을 지닌 3D를 표현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기술의 발전 덕에 순식간에 2D를 순식간에 3D로 만들어 주는 기능인 ‘ComfyUI’까지 등장한 만큼, 그래픽을 평면과 입체로 완전히 구분 짓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생겼고요. 또 특정 툴을 다루는 창작자의 직함을 나누는 게 더는 무의미한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러니 특정인에게 다양한 직함이 따라붙거나, 반대로 여러 역할을 뭉뚱그려 총체적으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아트디렉터’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이 많이 쓰이곤 하잖아요.

결국은 비주얼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시도를 많이 이어오고 있어요. ‘2D도 역동적이고, 3D도 평평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기도 했고요. 이를테면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일지라도 소재에 따라 입체감을 극적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거든요. 매트한 재질은 빛의 반사가 적으니 평면적으로 보이고, 반짝이는 재질을 활용하면 빛의 반사가 극대화되며 입체감 있게 보이는 차이처럼요.

“결국은 비주얼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시도를 많이 이어오고 있어요. ‘2D도 역동적이고, 3D도 평평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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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작업 © Maykim
그래픽 작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클라이언트를 상대해야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요. 이때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노하우도 있나요?

보통의 클라이언트는 예산과 기간 내에 물리적으로 불가하다는 점을 인지하면 무리한 요구를 하진 않아요. 예를 들어 영화 〈트랜스포머〉나 〈어벤져스〉 시리즈를 레퍼런스로 제시하면 이건 어느 정도 버젯으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오랜 기간 제작했는지 안내하죠. ‘1분’ 분량의 영상을 렌더링하는 데 이 정도 시간이 들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점을 수치로 짚어주면 조금 더 소통이 빠르더라고요. 간혹 그래도 “해주세요”하는 경우엔 참고할 수 있는 유튜브 링크를 전달해 드리기도 해요. 왜 이게 현실적으로 어려운지 시각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요.

초가집 예산으로 순식간에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없다는 걸 짚는군요. 결국 정석이 답이네요.

그럼요. 클라이언트도 사람인데, 전혀 다른 분야인데 모르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전문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클라이언트와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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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매거진 〈더블유 코리아(W Korea)〉 작업 © Maykim
요새 생성형 AI 같은 신기술이 작업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화두잖아요. 이에 대해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로서 어떻게 바라보나요?

처음 생성형 AI가 등장했을 때 회의적인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굉장히 유용하다는 걸 체감했거든요. ‘생성형 AI’나 ‘프롬프트 디자인’이 쟁점이 된 지 불과 1년 새에 얼마나 많은 작업 환경이 바뀌었는지 매번 감탄해요. 이미지 낱장 하나만으로 영상을 뚝딱 만들어주는데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자연스럽게 연출해 주거든요. 기능을 잘 활용하면 클라이언트에게 더욱 다양한 시안을 제시할 수도 있고요. 앞으로 생성형 AI를 인간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도구로 이용하면 우리가 상위 포식자가 되지 않을까요? 아직 생성형 AI로 인한 딥페이크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앞으로 여러 전문가의 검열을 거쳐 크로스체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도덕적인 기준을 세워야 할 필요성도 있고요.

PLUS 4. 선택과 집중, 창작자의 숨 고르기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작업의 활기를 되찾고 영감을 얻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최근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요. 글쓰기가 작업을 환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젠틀몬스터에 근무할 당시 누데이크의 박선아 디렉터님이 사수였던 영향이 커요. 늘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디테일한 문장까지 첨삭해 줬거든요. 제 작업을 설명하는 데 큰 전환점을 안겨준 사람이에요. 덕분에 포트폴리오를 설명할 때 어떤 문장이나 단어가 묘사에 적합할지 재차 교정하는 습관을 들이게 됐어요. 또 저는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표현의 도구로 많이 활용하는데요. 광고 글 하나를 작성하더라도 셀프 에디팅해서 자신의 관점과 시선이 담긴 글을 작성하려고 노력해요. 기본 작성 문구를 그대로 업로드하는 건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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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킴과 배우 틸다 스윈튼
메이님의 SNS를 보면 일견 스타의 일상 같아요. 유명인들과 함께하고, 유수의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고, 쉴 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잖아요. 근데 알고 보니 내향인에 집순이라고. 내향 호소인이 아닐지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웃음)

오해입니다. 모니터만 보다가 간혹 외출해서 기분 전환한 날 찍은 사진이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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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젝트 모드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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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아티스트 메이킴
그간 편집 디자인부터 모션 그래픽, 공연 디렉팅 등 시각 디자인 분야의 전방위에서 활동해 왔는데요.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것도 있나요?

20대 때 워낙 다방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더는 열렬하게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끓진 않아요. 30대에 접어들며 욕심을 많이 내려놓게 됐거든요. 제가 엄청난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저를 충분히 사랑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니 좀 더 시야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에 목매지 않고, 포기할 줄도 알고, 과감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고요. ‘선택과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PLUS LIST

메이킴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의 작업 3

  • 야마구치 하구미의 에어브러쉬 일러스트레이션

“1970년대부터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온 야마구치 하루미(Harumi Yamaguchi)는 일본 패션 광고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에어브러쉬 기법을 활용한 여성 묘사로 유명하다. 그녀는 일본의 유명 백화점 파르코(PARCO)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 그녀가 그린 여성들은 ‘하루미 걸즈(Harumi Gals)’라 불리며, 파르코의 홍보 전략과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일본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세심하고 센슈얼한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 너무 좋다. 그 시절 일본 에어브러쉬 일러스트에서 큰 영감을 받고 있다.”

  • 클레오 솔의 음악

“애정하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소녀이자 음악가인 클레오 솔(Cleo Sol)의 예술을 너무 사랑한다. 레게, 재즈, 라틴 음악 등을 두루 즐긴 그의 취향처럼 곡에서도 다양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의 앨범 중 단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잔잔한 무드의 ‘Gold’를 꼽겠다.

  • SUCUK & BRATWURST의 그래픽 디자인

SUCUK & BRATWURST는 주니어 디자이너일 때부터 동경하던 스튜디오다. 버블검이 리모와 캐리어로 변하는 영상, 새빨간 과일 단면이 썩어 곰팡이가 핀 것을 청록색 솜털로 묘사한 그래픽 작업 등 동적인 애니메이션부터 정적인 이미지까지, 현시점 가장 독보적인 3D 그래픽을 선보이는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유리, 아크릴, 석고, 메탈 등 소재 표현에서 어느 팀보다 탁월하다.”

TIPPING POINT

디지털 콘텐츠 제작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메이킴은 눈길을 끄는 장식도 화려한 치장도 아닌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제작한 콘텐츠가 소비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소구하고 있는지 치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 그의 말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디지털 콘텐츠가 데이터를 타고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가늠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만큼, 인간 스스로 윤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늘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작업이 노출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그의 행보를 눈여겨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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