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로우 이의현 대표
본질을 주섬주섬 디자인에 담는 가방장수
업계 최연소 MD에서 시작해 현재는 트립 웨어 브랜드 로우로우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이의현 대표. 브랜딩과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업가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이야기.
가방 장수. 이 얼마나 투박하면서 동시에 명징한 타이틀인가. 본질을 가리는 현란한 수식어가 난무하는 시대에 이처럼 단출한 수식어 하나 달랑 짊어지고 세계로 나아가는 이가 있다. 바로 로우로우의 이의현 대표. 집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일상의 여정을 모두 의미 있는 여행이라고 정의한 그가 최근 성수동에 플래그십 스토어, 월드와이드 서울을 오픈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죽을 때까지 본질에 가닿는 여정을 이어가겠다는 이의현 대표를 만났다.
가방 장수가 된 사나이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를 ‘가방 장수’라고 불러요.
아인슈타인이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고 하죠. 그 말에 동의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직함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수일수록 자기소개는 담백하고 짧더라고요. 이미지이든 글이든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면 명료하고 쉬운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죠. 가방 파는 사람.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작 다른 사람들은 이의현 대표를 ‘장수’라고 부르는 것에 머뭇대잖아요? 저는 그 포인트가 좀 재미있던데요. 한국인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사농공상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는 것 같아서요.
오래전 한 패션 페어에 나갔다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어요. 당시 50개 정도 브랜드가 참여했는데 정확히 42개가 “우리는 패션이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문화이며, 예술이며, 옷 이상의 무엇이라고 어필하는 상황을 보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본성을 부인하는 걸까?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야 더 유니크하게 어필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모두가 그렇게 외친다는 데 있어요. 그 자체가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것이죠. 지금도 이런 수식어가 빈번하게 쓰이죠. 일례로 카페가 아닌 문화 공간을 지향한다는 말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커피 하나 제대로 내리려고 해도 정말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커피 하나만 몇십 년을 파도 아직 커피의 세계를 다 모르겠다는 분도 있는데 곁눈질할 여유가 없죠.
이의현 대표에게는 그게 가방이겠네요. 십수 년간 가방 하나만 팠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가방의 본질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드는 것, 담는 것, 보호하는 것. 패션 MD로 일하던 시절에 그런 걸 느꼈어요. 정말 멋지고 예쁜 티셔츠 한 벌을 만들고 싶은데 언제는 박스티가 예쁘다고 하더니 몇 년 지나니 쫄티가 예쁘대요. 예쁘다고 하던 쫄바지가 3~4년 지나면 촌스럽다며 외면당하고. 열심히 트렌드를 좇던 시절도 있었지만, 미의식에 관해서 제가 주도할 수 없다는 생각에 좀 서글퍼졌어요. 그런데 해외 패션 산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회사마다 좋은 옷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철학이 있더라고요. 스톤아일랜드는 염색과 워싱은 세계 최고입니다. 다잉 레시피dyeing recipe라고 하는데 레드를 200여 개로 표현할 수 있는 별도의 라이브러리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본질에 충실해야 했어요. 가방을 둘러싼 사회적 지위, 트렌드, 온갖 수식을 다 걷어냈을 때 남는 본질, 이걸 짚어내고 싶었습니다. 짐을 수납하고, 나르고, 이동시키는 가방의 본질 말이에요.
디자인과 브랜딩을 공부하는 사업가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업가로 알려져 있어요. 언제부터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나요?
문제 해결 수단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아주 오래됐습니다. 거의 본능적이었죠.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 조립 대회나 과학 상자 조립 대회 같은 데 나가면 늘 상위권이었고, 초등학생 때 특허를 취득한 적도 있습니다. 모양새로서의 디자인은 몰라도 쓰임새로서의 디자인에는 늘 흥미가 있었습니다.
커리어는 사실 디자이너가 아닌 패션 MD로 시작했죠.
제가 원래 좀 청개구리 같은 구석이 있어서 정해진 루트를 따라 산 적이 별로 없어요.(웃음) 학창 시절 학비를 벌 요량으로 카페나 인터넷 쇼핑몰에 나이키 신발 같은 걸 판매하곤 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MD라는 직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흔히 상품 기획자라고 번역하지만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상인(merchandiser)이잖아요. 우스갯소리로 뭐(M)든지 다(D) 하는 게 MD라는 말도 있는데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가격에, 수요를 잘 예상하고 계산해서 시장에 내놓는 것이 상인 혹은 장수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생산을 알아야 하고, 마케팅을 알아야 하고, 디자인을 알아야 하죠.
그래도 좀 더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탐구하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업계 최연소 MD로 나름대로 유명해졌지만 스물아홉 살 무렵 큰 좌절을 맛봤어요. 당시 재직하던 회사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결과적으로 상품 기획에 실패했거든요. 그때 진짜 디자인과 브랜딩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하라 켄야가 쓴 〈디자인의 디자인〉이나 〈슈퍼노멀〉 같은 책이 제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더하는 것보다 빼는 디자인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죠.
트립 웨어 브랜드, 로우로우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브랜드들도 현재 과포화 상태 아닌가요? 그런 와중에 로우로우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글쎄요. 사실 저는 로우로우가 미니멀리즘보다 심플리시티 simplicity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브랜드 네임에도 이런 관점을 녹이고 싶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구상하거나 기획할 때 사전을 정말 열심히 보는 편입니다. 어원도 샅샅이 뒤지고요. 심플의 어원을 찾아보니 미니멀, 베이식, 노멀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심플이라는 단어를 넣어서는 닷컴 개설이 쉽지 않았어요. 당시 유행하던 페이스북 계정이나 상표권 등록에 걸리기도 했고. 브랜드 이름만 한 3년 고민했는데 그러다 ‘raw’라는 단어에 빠지게 됐고 어느 일요일 새벽 ‘row’와 조합하면 상표등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영어로 구글링하면 생선회만 잔뜩 검색되지만, 영중 사전에서는 ‘生(생)’으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는 다시 라이프life와 연결 되죠. 심플을 우회한 단어이지만 영어, 한자, 한글이 개념상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짜릿했어요. 곧바로 사업자 등록, 닷컴등록, 페이스북 계정 개설을 마치고… 교회에 갔죠.(웃음)
그런 생각이 브랜드 곳곳에 녹아 있는 듯합니다.
맞아요. 생생함, 로우로우를 정의하는 중요한 키워드죠. 숨만 쉰다고 매 순간 살아 있다고 느끼진 않잖아요.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순간이 여행이라고 생각했고요.
트립 웨어라는 정체성도 거기서 나온 것이군요.
어떤 사람들은 로우로우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불렀는데 우리 정체성과는 좀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흔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라고 하면 가구, 의자, 침대, 그릇 같은 게 떠오르잖아요. 한마디로 집 안에서 일상을 영위하면서 쓰는 제품이죠. 북유럽에서 이런 브랜드가 발달한 건 그 지역의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봐요. 그곳에서는 저녁 6시만 되면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기니까 자연스럽게 가구나 조명이 발달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릅니다. 가게들은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술을 마시든 공부를 하든 대부분의 활동이 집 밖에서 이뤄지죠. 핫 플레이스는 또 얼마나 많나요? 일련의 활동을 통칭할 때 트립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방, 신발, 안경, 여행용 트렁크, 모두 집 안보다 바깥에서 필요한 것들이죠.
라인업 확장에 관해 이야기해보죠. 경영자마다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굉장히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직관적으로 방향을 선택하는 사업가도 있고.
저는 후자에 가까워요. 직관과 감을 믿는 편이죠. 가방 다음으로 도전한 신발에는 오랜 애정이 있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슬램덩크와 NBA가 유행이었고 나이키 신발에 대한 판타지도 있었죠. 신발을 만들고 싶어서 스무 살 때 직접 신발 공장도 찾아가고 신발 협회 세미나를 듣기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발을 만들려면 공학, 화학 등 고난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이제 막 창업한 회사가 도전하기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아이템이라 가방을 먼저 선택한 것이죠. 다행히 가장 초기에 만든 가방 300개가 론칭과 동시에 전량 판매됐고, 이후로 생산한 가방들도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어요. 그렇게 3~4년 흐르다 보니 신발로 라인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안경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개인적으로 제조업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각별합니다. 영원무역, 세아상역, 한세실업 등. OEM, ODM은 어려웠던 국가 경제에 큰 보탬이 됐죠. 가발에 머리카락을 심고 신발에 본드를 바르며 경제를 이끈 1세대 덕분에 우리 세대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안목과 취향 모두 높아진 지금에 와서 크리에이티브와 브랜드를 논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죠. 하지만 외국을 보세요. 따져보면 결국 고어텍스는 원단집이었고, 비브람은 고물을 배합하는 아웃솔집이었어요. YKK는 지퍼 하나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 제조사들의 실력도 이에 못지않은데 처우는 너무 다릅니다. 꼭 B2C여야만 브랜드 밸류가 높은 걸까 고민하던 찰나 지인의 소개로 일본에 제품을 수출하는 모 제조 회사를 알게 됐고 그날 바로 안경을 제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로부터 1년 정도 개발 과정을 거쳐 안경을 론칭하게 됐습니다.
R 트렁크는 2018년 코리아디자인어워드 수상에 이어 이듬해 iF 디자인 어워드 위너로도 선정됐습니다.
여행용 트렁크는 앞서 론칭한 제품들과 달리 개발 기간만 2년이 걸렸습니다. 공장도 대여섯 군데를 돌았던 것 같네요. 우리가 유통망을 주름잡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선발 주자들이 즐비한데 틈새를 뚫고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생산을 거절했던 거죠. 그래도 수납과 이동의 최강자가 되고 싶었어요. 여행용 트렁크도 결국 가방의 연장선이라고 본 것이죠. 루이 비통도 여행에서 시작했잖아요. 창업주는 왕실의 패커였죠. 여행용 트렁크를 기획하면서 루이 비통 관련 서적을 제일 열심히 읽었던 것 같습니다.
겉보기에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사실 아픈 손가락 같은 제품도 있지 않나요?
R웨어라는 이름으로 옷을 만든 적이 있어요.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고 경영상 위기감을 느껴 선택한 확장이었죠. ‘나가 놀자’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죄인 취급받는 시기였으니까 트립 웨어 브랜드를 표방하는 우리로서는 부담이 됐죠. ‘가방은 안 메도 옷은 입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옷을 만들더라도 우리답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트립 카고 팬츠나 마고자켓 같은 옷을 만들었어요. 알다시피 군용 바지로 시작한 카고 바지는 효율적인 수납에 최적화된 옷이죠. 마고자켓은 마고자와 재킷의 합성어인데 펑퍼짐한 동양 복식의 특징을 적용해본 것입니다. 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패션은 스타일링이 기능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아요. 2년 정도 유지하다가 결국 우리가 잘 만들 수 있는 제품에 좀 더 집중하는 쪽으로 선회했습니다.
작년 여름 노티카 디렉팅을 맡았잖아요. 다시 패션에 손을 댄 셈 아닌가요?
사실 제가 패션 시장을 떠난 뒤 창업하면서 다시는 티셔츠, 바지 안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웃음) 트렌드를 빠르게 좇는 것도 물론 능력이지만, 지나치게 유행이 빠르게 바뀌고 시장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일하면서 저 스스로 너무 소진되더군요. 그래서 노티카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 솔직히 좀 망설였어요. 그런데 순간 머릿속으로 캐치프레이즈 하나가 스치더군요. ‘육지 여행은 로우로우, 바다 여행은 노티카’. 비즈니스 관점에서 두 브랜드가 상호 보완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내가 또 언제 글로벌 브랜드를 다뤄보겠나’라는 생각도 있었고요.(웃음)
노티카가 프레피 룩의 대명사로 명성을 떨치긴 했지만 왕년의 브랜드라는 인식도 있어서 솔직히 좀 의아했어요.
브랜드라는 게 원래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죠. 버켄스탁을 보세요. 300년이 넘은 브랜드이고 그사이 수많은 굴곡을 겪었죠. 그래서 유행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브랜드의 지향점이었습니다. 프레피 룩의 대명사라고 했지만 제가 느끼기에 노티카는 아메리카 빈티지 캐주얼에 더 가까운 것 같거든요. 편하고, 내구성 좋고, 오래 입을 수 있는. 게다가 노티카는 해양 쓰레기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아빠가 되니 더 진심으로 다음 세대를 걱정하게 되더라고요. 인공지능도 좋고, 메타버스도 좋고, VR·AR도 좋지만, 오염된 세상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역사상 가장 더러운 지구를 물려주게 생겼으니 말이에요. 브랜드를 통해 ‘나가 놀자’고 이야기하는데 당연히 나가 놀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죠. 이런 생각이 노티카의 브랜드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포기 못하는 이유
최근 새롭게 오픈한 월드와이드 서울점은 구석구석 친환경적 요소가 녹아 있습니다.
ASML이라는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에서 사용하는 박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업사이클링했습니다. 바퀴와 손잡이를 달아 벤치 겸 소파로 만들고 매장 내 수납함으로 활용하기도 했죠. 그런데 솔직히 저는 생산자 입장에서 ‘친환경’을 논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그냥 ‘저공해’를 추구합니다. #쓰레기와싸우자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제품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매장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해주세요.
공간을 리뉴얼하면서 중점을 둔 건 놀거리, 즐길 거리가 있는 가게를 만드는 거였어요. 실제로 지구의 날, 환경의 날, 여행의 날 기간에는 월드와일드 서울점에서 큰 이벤트를 열 계획입니다. 무버블movable한 요소를 적용해 각기 다른 이벤트의 성격에 맞춰 유연하게 공간이 변하도록 했어요. 통창의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행사 진행 시 건물 안팎의 경계를 허물 수 있도록 하고, 천장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행어를 설계했죠. 앞서 말한 벤치에 바퀴를 단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직접 운영하는 브랜드 외에 다른 브랜드도 보이네요.
스티브 잡스도 말했죠. “창의성은 연결하는 것이다”. 노티카의 디렉팅 제안을 수락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브랜드의 케미스트리를 고려했습니다. 하루타는 1917년 론칭한 일본의 구두 브랜드로 일본의 중·고등학교에 납품합니다. 빅토리아는 메리제인으로 유명한 100년 넘은 스페인의 스니커즈 브랜드입니다. 그라미치는 록 클라이밍에서 탄생한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고요. 산에 갈 때, 바다에 갈 때, 소풍 갈 때, 심지어 등교할 때까지 집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게 여행이라는 생각에 이 브랜드들과 협업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로우로우 매장 중 광장시장점이 제일 흥미로웠어요.
런던의 한 재래시장에 갔을 때 재미있었던 점 중 하나가 과일 가게, 건어물 가게 사이로 샤넬 매장과 애플 매장이 들어서 있던 거였어요. 브랜드가 시장의 조건에 맞춰 입점했더군요. 스타벅스 같은 브랜드도 그런 전략을 잘 짜죠. 저는 우리나라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도 정말 좋은데 평가절하되는 측면이 있다고 봤습니다. 여기에 입점하는데 반대도 심했습니다. 상권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도 성공 확률이 낮다며 만류했죠. 그런데 광장시장을 기웃거릴 무렵 맞은편에서 소위 냉장고 바지를 팔던 할머니 한 분이 “나 여기서 장사하면서 애들 대학도 보내고 집도 샀다. 서울에서 이만한 상권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바로 오픈을 결정했어요. 올해로 벌써 7년째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카페 어니언이 들어오면서 제가 런던의 재래시장을 보며 상상했던 모습이 비슷하게 실현되고 있는 것 같아요.
오프라인 매장에 여전히 깊은 애정을 가진 것 같네요.
4차 산업혁명이 온다고 한들 저는 1차 산업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거든요. 제 화두는 늘 거기에 있어요. 예전에 직원 한 명이 “요즘에는 다 온라인으로 사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정정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건 절대 감으로 예측하면 안 되거든요. 명확한 수치에 근거해야 하죠. 실제로 유통 시장을 살펴보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비중이 6:4 정도 됩니다. 온라인 유통 시장이 성장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오프라인이 우세해요. 시장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저는 100년이 지나도 우리나라의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이 없어질 것 같지 않아요. 없어지면 좀 슬플 것 같기도 하고. 로우로우는 홍대의 4평(약 13m²)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해 신세계백화점, 광장시장에 매장을 열고 MoMA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스토어에 가방 브랜드를 입점시켰어요. 페이스북(현 메타) 미국 본사에 팝업 스토어를 열기도 했고요. 저는 로우로우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브랜드라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10여 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바뀐 점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바뀌지 않은 것은요?
변한 건 조직의 체급과 체질이 아닐까 싶어요. 여전히 작은 브랜드이지만, 지하실에서 두세 명이 모여 만들 때와 비교하면 이제 꽤 회사다워졌으니까요. 이에 따라 저도 변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제 생각을 동료들에게 관철시키려고 노력했다면 이제 각자의 주장을 경청하려고 합니다. 반면 본질을 좇고자 하는 브랜드의 태도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제게 최고의 경영 서적은 박찬일 셰프가 쓴 〈노포의 장사법〉이거든요. 개인주의가 강해졌다가 집단주의가 강해지고, 정부의 이념도 오락가락하고, 바지통도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 하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분명히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 같습니다. 그것 자체가 에센셜이자 로우raw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