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도 JTBC 대표
차별화된 방송 채널을 위해 디자인을 선택한
시청자에게 브랜드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자인을 선택한 홍정도 JTBC 대표를 만났다. 다른 방송 채널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차별화된 디자인’을 추구했다는 그에게 JTBC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략과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2011년 12월 1일 4개의 종합 편성 채널이 개국했다. 사실 종합 편성 채널은 대기업과 신문 재벌이 언론 장악을 위해 만든 미디어라는 인식 때문에 부정적 시선과 부담을 안고 출발해야 했다. JTBC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개국 2년이 지난 지금 JTBC는 여느 방송 채널과 달리 전례 없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브랜드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 뒤에는 콘텐츠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디자인 시스템 전략이 숨어 있었다. 시청자에게 브랜드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자인을 선택한 홍정도 JTBC 대표를 만났다. 다른 방송 채널보다 한 발 앞서기 위해 ‘차별화된 디자인’을 추구했다는 그에게 JTBC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략과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2013년 12월 JTBC 대표로 취임하셨습니다. 2011년 12월에 개국한 JTBC를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웠나요?
정식으로 대표 취임을 하기 전 실제 JTBC에 관여하기 시작한 건 개국 1년 전부터입니다. 사업 계획, 예산 확보 등 JTBC와 관계된 다양한 일을 직원들과 함께했죠. 2012년 9월에는 JTBC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비전 선포식도 했습니다. 브랜드와 콘텐츠 전략을 공유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자리였죠. 종합 편성 채널(이하 종편)이라는 신규 시장의 진입자로서 이곳은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방송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어떻게 만드느냐를 고민하기보다 다른 방송에도 다 있는 똑같은 상품을 시청자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같은 음식도 어떻게 서비스하고 배달하느냐에 따라 맛과 기분이 달라지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기존 방송사의 로고, 브랜드 아이덴티티, 컬러 시스템 등을 비롯해 무대 세트 디자인까지 살펴보니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아 보였습니다. 분명 기존의 방송 디자인 전문가들이 봤을 때도 아쉬운 점이 있었을 거예요. 사실 못한 것이라기보다 안 했다고 봐요. 왜냐하면 굳이 하지 않아도 시청률이 충분히 나오고 광고도 잘 들어왔을 테니 적당한 선에서 멈춘 거죠.
실제로 방송을 만들어온 제작팀, 그래픽 디자이너, CG 전문가 등 비주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청자에게 방송 채널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매체가 갑자기 수준 높은 비주얼 디자인을 지향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이를 통해 대중의 디자인 안목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빈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가장 많이 신경 쓴 부분이 JTBC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였어요. 이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CEO도 만나뵈었어요.
어떤 분들의 조언을 참고했나요?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님의 ‘논리 없는 크리에이티브는 없다’는 조언이었습니다. 또 이해진 네이버 의장님은 기능성과 편의성은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지키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당연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결국 기업 문화를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겠더라고요. JTBC 비전 회의를 할 때 자주 강조한 것이 ‘문화를 바꿔야 한다. 우리만의 문화를 가져야 한다’였습니다. 기업 문화가 결국 일하는 방식을 만들고, 회사를 둘러싼 환경이 직원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직원 한명 한명의 가치관이 모여 회사의 가치관이 되죠. 그게 바로 JTBC라는 브랜드를 통해 표출될 테고요.
임직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지향하는 JTBC의 문화는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PD들과 아이디어 기획 회의를 할 때 어떤 제안이 나오면 ‘지상파에는 있는 프로그램인가?’, ‘우리는 왜 이걸 해야 하나?’, ‘따라 하는 건가?’ ,’다른 방송과 무엇이 차별화되었나?’, ‘더 잘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반복합니다. JTBC에는 지상파 출신의 능력 있는 PD가 많습니다. 이들을 보면 프로그램을 만들 때 경험에서 생긴 공식 같은 것이 있더라고요. 그 공식을 지우기 위해 애썼습니다.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바로 드라마 <밀회>,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 <히든싱어> 시사ㆍ교양 프로그램 <썰전> 같은 프로그램입니다. 기존 프로그램에서 반 발자국만 앞서자는 의도로 제작한 것입니다. 6월 초 JTBC 로고 디자인과 시스템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희 로고를 보며 어떤 이들은 ‘화려하고 난해하다’, ‘가벼워 보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직은 시청자들에게 여기 좀 봐달라고 손을 흔드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국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디자인에 투자하면서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다른 방송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디자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JTBC는 주로 단색을 사용하는 여느 방송사와 달리 다채로운 컬러를 활용해 확실한 아이덴티티와 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JTBC는 여성 혹은 패셔너블한 사람을 위한 방송이 아닙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대중매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지금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무지개 컬러를 이용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JTBC의 지향점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남궁유 JTBC디자인센터장은 실무 디자이너 입장에서 저의 선택에 반대하기도 했죠. 디자인 논리를 세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점과 관리 비용 등에 대한 염려를 하더라고요. 저는 실무 디자인을 안 해봐서 그러한 어려움을 모르니, 일단 차별화를 위해 과감한 디자인을 선택한 거예요. 결과를 보니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JTBC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고 ‘디자인 정말끝내준다’는 말을 하진 않지만 저희 방송을 보다가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을 보면 조금 촌스러워 보인다는 얘기를 해주세요. 이게 바로 제가 원한 반응이에요.
회사 내에 뛰어난 디자이너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 경영인의 안목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디자인은 타협해야 하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하는 데 다수결에 따른 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누군가와 타협해야 할 문제도 아니라고 봐요. 디자인은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가 높고 안목이 더 좋은 사람의 의견을 따르면 되는 거예요.
스마트폰, 인터넷 TV 등을 통해 자신이원하는 시간에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보니 본방을 사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케이블 방송을 비롯해 채널도 늘어나다 보니 이제는 특정 방송국보다는 개별 프로그램을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개별 프로그램을 통해 JTBC라는 브랜드를 어필하고 싶을 때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저희는 개별 프로그램보다 JTBC라는 브랜드가 우선입니다. 예를 들어 <마녀사냥>이 중요한 게 아니라 JTBC 안에 <마녀사냥> 프로그램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해요. 누구나 아는 어떤 인기 프로그램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그램은 아는데 어떤 방송 채널에서 하는지 잘 모르더라고요. JTBC의 초기화면 구성을 보면 유치하다 할 만큼 로고와 컬러를 과다 노출시켰습니다. 한동안 프로그램에 상관없이 JTBC 폰트만 사용하기도 했고요. 물론 PD들은 싫어했습니다. 프로그램의 고유 특성을 표현하기보다 내용과 상관없이 화면 마지막 장면에 JTBC의 그러데이션 컬러를 뒤덮어버리기도 했으니까요. 앞으로는 적정한 선을 찾아내 조율하겠지만 다른 방송사보다 개별 프로그램에JTBC의 디자인 엘리먼트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JTBC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편은 대기업과 신문 재벌이 만든 미디어라는 인식 때문에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많습니다. JTBC의 이미지 개선과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요?
우리 존재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갑자기 종편이 왜 세상에 출현했나?’라는 의문부터 스스로 갖는 거죠.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신문이 어렵기 때문에’ 또는 ‘신문이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되니 방송에서 수익을 내자’는 식으로요. 어떤 이들은 보수정권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저희는 반문하죠. 사실 종편이 출현하기 전 KBS, MBC, SBS 지상파 방송 3사의 독과점에 의해 방송계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종편의 출현으로 방송업계가 자극을 받으며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경영인 입장에서 효율적 경영만 생각했다면 좀 더적은 인원으로 어느 정도 매출 규모를 이루기 위해 적당히 먹고살 정도의 수익만 바라봤겠죠. 그러면 이건 그저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시장의 점유율을 빼앗으며 서로를 어렵게 하는 것밖에 안 돼요. 저희는 국내 방송업계가 서로 자극을 주며 함께 발전해 시장 규모가 커져 나중에는 방송 브랜드가 수출된다는 비전을 생각의 첫 출발로 삼았어요. 그래서 ‘기존 방송이 하던 대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안 된다. 같은 콘텐츠라도 다른 식으로 접근하거나 더 잘하는 것 아니면 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린 남의 밥그릇을 차지하러 온사람들밖에 안 된다’라는 잔소리를 합니다.
미디어에 관해 사람들은 얼마나 공정성을 유지하는가에 특히 주목합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보여준 손석희 보도국 사장의 활약은 JTBC의 이미지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손석희 사장이 합류하며 JTBC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은 모두가 인정합니다. 사람이 곧 브랜드이자 아이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죠. 이번 기회를 통해 시청자에게 따뜻하고 정성을 다하는 방송으로 인식되고 싶습니다. 제가 지난 2년 동안 총력을 기울인 부분이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었습니다. 종편이라고 하면 편파적인 방송, 보도 중심의 방송 등의 부정적 이미지로 알려졌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미지 탈피가 우선이었습니다. 손석희 사장을 JTBC에 영입한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가 온 이후 JTBC의 보도는 사실, 공정, 균형, 품위를 가장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JTBC가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로 자리 잡길 바라나요?
사실 종편이라는 단어가 딱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벗어날 순 없잖아요. (웃음) 사람들은 종편이라고 하면 보도 중심의 방송으로 인식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재미있는 채널, 즐거운 방송이에요. 예능이나 드라마를 통해 민영 상업방송으로서 국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느낌의 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뉴스9>같은 방송을 통해 신뢰도 얻고 싶고요. 즐거움과 영향력을 모두 갖춘 방송 채널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JTBC 디자인센터를 설립했습니다. 특별히 주문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화면 구성과 디자인에 대한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는 식의 요구는 하지 않아요.(웃음) 그렇게 하다가는 망해요. 그 법칙에 맞춘 화면은 절대 아름답지 않아요. 자연스러워야 하죠. 아마 제가 그런 식으로 요구하면 PD는 제작도 못하고 프로그램은 산으로 가게 될 거예요. JTBC 디자인센터는 브랜드에 필요한 디자인 헌법과 조항, 실행력을 만드는 곳이에요. 저는 그저 이진법으로 묻고 대답해요. ‘맞다’ 또는 ‘아니다’ 둘 중 하나죠. 그리고 ‘우리 문법에 맞는가? 틀린가?’라고만 물어보죠. 제가 디자인센터에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에요. 우리가 폰트를 만들었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아요. 그러니까 PD들이 화면을 뒤덮을 정도로 사용하는 거예요. 이건 PD의 잘못일까요? 아니죠. 폰트의 다양성을 제공하지 못한 탓에 발생한 문제죠. 그럴땐 ‘폰트 남용이 심하니 디자인센터에서 폰트 가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디자인과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서체 감각이 뛰어나시다고요.
서체는 본능적으로 습득된 것 같아요. 아버지(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영향으로 신문을 보고 자라서인지 장평, 자간 등을 보는 눈이 조금 예리한 편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셨는데, 스탠퍼드 대학교는 D스쿨로도 유명하죠. 경영학에서는 디자인을 어떻게 활용하라고 가르쳤나요?
자신의 브랜드를 더 잘 만들고 가꾸기 위해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들과 모여 토론은 어떻게 하고, 특정 키워드를 가지고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쳐줘요. 하지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방향, 디자인 경영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D스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 JTBC를 보기 좋게 하고 폰트를 정리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우리의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예요. 디자인이 경영을 앞선다거나 심미성이 콘텐츠보다 우선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중앙일보>가 베를리너판으로 바꾸면서 비율을 조정하고 글자 크기를 조율하며 완벽성을 추구한 것은 신문 기사가 잘 읽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아름다운 신문을 만들려고 애쓰는 게 아니에요. 방송을 위한 디자인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행 경험도 많고, 다양한 물건을 사용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나 물건을 고를 때의 기준이 궁금해지네요.
저는 쇼핑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굳이 꼽으라면 신기한 형태, 특이한 것에 흥미를 느끼곤 합니다. 가끔 자신을 위한 물건을 고를 때면 인터넷 쇼핑을 하는데, 요즘 자주 가는 곳이 팬시닷컴(fancy.com)이라는 웹사이트예요. 저는 술을 좋아하는데 그곳에 가면 신기한 형태의 술잔과 얼음 틀이 많습니다. 해외 출장 일정이 생기면 그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갤러리에 들리는데, 일단 사람이나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한 바퀴돕니다. 그런 후 눈에 띄는 작품이 생기면 그제야 작가나 디자이너, 작품에 대한 정보를 메모하고 나중에 찾아보는 식입니다.
JTBC 대표로 취임하기 전에는 중앙일보에서 지원 총괄을 담당하셨습니다. 중앙일보 출판 법인의 잡지 & 단행본 회사 제이콘텐트리도 있고요. 대표님은 신문, 잡지, 단행본, 방송까지 다양한 분야의 미디어를 경험했는데, 미디어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시나요?
신문, 방송, 잡지 모두 위기입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돼요. 하지만 제가 확신하는 건, 오프라인이 주요 무대였던 매체가 온라인으로 변화할 때 최고의 기회가 올 것입니다. 단,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죠. 제가 2년 전부터 콘텐츠 유료화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터페이스를 바꾸고 결제 수단을 간편화하며 어떻게 전달할지는 지금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사볼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가 무료 인터넷 뉴스를 개방한 적이 있는데, 당시 큰 회의감이 들었어요. 독자들이 현명하게 콘텐츠를 소비하게 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모델로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죠. 신문, 잡지, 방송 등 다양한 매체를 경험했지만 그릇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담을 음식, 즉 콘텐츠를 차별화해야 한다는 본질은 같아요. 매체에 따라 그저 만드는 사람만 다를 뿐이에요. 종목은 다르지만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창의적인 재주를 가진 인력들이잖아요? 글을 잘 쓰는 기자,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기자, 기획을 잘하는 기자 등 특화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앞으로는 양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변화되는 미래 환경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봅니다.
세상의 모든 컬러를 사용했다
JTBC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 리뉴얼


국내에는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케이블 TV, 위성방송, 종합 편성 채널(이하 종편) 등 약 450개의 방송 사업자가 존재한다. 이처럼 수많은 채널이 있음에도 여전히 시청자는 지상파 방송에 편중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11년 12월 4개의 종편이 개국하며 국내 미디어 시장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3대 지상파가 독점하다시피 한 방송 시장에서 종편의 등장은 브랜드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한 계기가 된 것이다. 4개의 종편 중 JTBC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2013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 부문 본상을 수상하며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었다.
개국 이전부터 다른 방송 채널과는 달라야 한다는 홍정도 JTBC 대표의 강한 의지에 따라 여느 방송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선보인것. ‘다채로운 즐거움’을 슬로건으로 한 JTBC의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채널의 정체성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다. 무지개 색상을 모티브로 한 JTBC 로고는 특정한색, 편협한 시각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JTBC의 정신을 상징한다. 특히 드라마, 예능, 교양, 보도 등 각각의 영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도 통합적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자인 엘리먼트를 기획한 점이 눈에 띈다. JTBC 로고 형태와 컬러에서 따온 디자인 엘리먼트는 각 영역의 성격에 따라 고유 형태와 컬러를 정하고 포스터, 방송자막, 화면 구성 등에 적극 활용했다.









JTBC는 조금 과하다 할 만큼 디자인 엘리먼트를 적용한 비주얼을 선보였다. 흔히 사람들이 방송 프로그램은 알지만 채널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설문 조사결과에 따라 프로그램과 채널을 동시에 연상시킬 수 있도록 과다 노출을 선택한 것이다. 프로그램과 채널은 따로 떨어질 수 없으며 시청자가 채널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브랜드의 생명력도 오래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러한 디자인 엘리먼트를 1년 넘게 사용하며 조금씩 문제점도 발견했다. 심각한 내용의 뉴스를 전하거나 드라마 <밀회>처럼 진지한 내용의 드라마에 무지개색의 엘리먼트를 사용하니 전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심각하게는 뉴스가 가벼운 인상을 풍기는게 고민거리였던 것. 이에 JTBC 디자인센터는 브랜드 이미지, 디자인 운영에 대한 안정성과 시스템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컬러에 무채색을 더해 무게감을 실었으며, 운영의 편리성을 위해 편집 디자인에서 사용하는 그리드 시스템을 방송 화면으로 가져왔다. 기존에는 카테고리를 구분하고 장르의 특성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 디자인이었다면, 올 6월에 발표한 디자인 리뉴얼은 협업 부서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효율성, 확장성에 주력했다. 비주얼만 달라진 게 아니다. JTBC에 목소리도 생겼다.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의 목소리로 JTBC 브랜드 송을 만들었다. 어린아이도 쉽게 따라 부르고 흥얼거릴 수 있는 중독성 있는 브랜드 송을 만들어 시각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청각적 경험으로 브랜드가 인지될 수 있도록 했다. 얼마 전에는 JTBC 한글 전용 고딕 서체 개발도 완료되어 비주얼 아이덴티티 디자인에 완결성을 더했다. 앞으로 JTBC 디자인 엘리먼트를 이용한 스마트폰 게임도 개발할 계획인데, 이것 역시 JTBC의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쉽고 재밌게 알리기 위한 목적이다. 다른 방송과의 차별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JTBC의 노력은 기존 관습에서 탈피한 프로그램에서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변화하는 JTBC의 디자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기획 총괄 남궁유 JTBC 디자인센터 센터장
프로젝트 매니저 김혜진 JTBC 디자인센터 브랜드디자인파트장
디자인 어플리케이션 김지연, 류진아, 김미사 JTBC 디자인센터 브랜드디자인파트 디자이너
브랜드 아이덴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김희선 스튜디오 fnt 실장
브랜드 아이덴티티 아트 디렉션 이재민 스튜디오 fnt 대표
그래픽 & 편집 디자인 이화영 & 임은지 스튜디오 플랫 디자이너, 이혜현, 이건정
모션 그래픽 디자인 이화영 & 임은지 스튜디오 플랫 디자이너, 도트랩(dot lab)
애니메이션 도트랩
채널 브랜드 송 작사ㆍ작곡ㆍ노래 김윤아(자우림)
사운드 디자인 커스텀274(custom274)
한글 서체 디자인 윤디자인연구소, JTBC 디자인센터
영문 서체 디자인 토탈임팩트
로고 디자인 토탈임팩트
Interview
남궁유 JTBC 디자인센터장 & 이재민 스튜디오 fnt 대표
“방송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협업 부서와의 협상과 조율이다.”
남궁유 센터장은 방송 디자인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JTBC를 맡게 되었다. 부담은 없었나?
남궁유 <중앙일보> 디자인팀에서 일했기 때문에 방송경험이 있던 것도 아니고 JTBC로 넘어와서 브랜딩을 리뉴얼하기에 예산이 충분한 것도 아니었다. 프로세스도 안정적이지 못했고 관련 부서에서 요청한 작업량이 꽤 많아 우리와 함께 개발해줄 외부 디자인 스튜디오가 필요했다. 시장 조사를 하다 우연히 스튜디오 fnt를 알게되었다.
파트너 디자인 스튜디오 fnt 역시 방송 디자인 경험이 없었다.
남궁유 웹사이트를 통해 스튜디오 fnt의 포트폴리오를 봤는데 영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웃음) 그래서 더 좋았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관습도 없을 것이고, 겁 없이 새로운 시도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스튜디오 fnt가 제안한 디자인 대부분이 기존 방송 디자인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3명이 운영하는 소규모 스튜디오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조직이 큰 스튜디오는 대표가 실무를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재민 메가박스 영화관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이후 브랜딩 프로젝트에 목말라 있던 참이었다. 방송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그동안 해보지 않은 분야였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사실 JTBC 로고 자체가 좋은 디자인이어서 우리로서는 장점이자 부담으로 다가 왔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남궁유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PD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디자이너가 일 잘하는 디자이너라고 인정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 비협조적인 디자이너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각 분야를 책임지는 전문가들과 갈등을 해결하는 게 제일 큰 일이었다. 신문 제작 과정을 보면 사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하지만 크게 보면 기자를 중심으로 한 나머지 부서다. 그런데 방송은 무대에 공사를 하시는 분, 조명을 감독하는 분, 분장사, 자막 디자이너, CG 전문가 등 서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과 협업해야 한다. 이들과 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로 방송 사고가 난다. 기술적인 영역에서 협업 부서들은 보기 좋은 디자인보다 당장 사고가 나지 않고 안전하게 방송을 마치는 게 우선이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기술과 방송상 통용되어야 된다고 믿는 부분과 운영적인 부분에 디자인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다른 부서와 협상하고 테스트하며 운영 시뮬레이션을 하는 것 등이 가장 어려웠고 중요했다.
이재민 브랜딩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처음 의도와 다르게 내부 사정에 의해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JTBC의 경우 처음 기획한 대로 일관된 색채를 가지고 완결성 있게 관리하는 것을 보니 협력 디자이너로서 뿌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 디자인센터가 중간자 입장에서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JTBC 디자인센터에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와 함께 브랜드 송도 개발했다. 디자이너가 브랜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 외에 청각적 아이덴티티를 만들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남궁유 JTBC 디자인센터 브랜드디자인파트의 디자이너 모두가 서로 다른 분야를 전공했다는 점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빛을 발한 것 같다. 디자인센터의 브랜드디자인 파트에는 나를 포함해 4명의 디자이너가 함께한다. 나는 UI를 전공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림을 그리며 사진도 찍고 피아노 연주도 한다. 이 밖에 광고 회사 출신의 디자이너, UX 디자이너, 편집 전공자, 영상 출신 등 다양한 장르의 디자이너가 함께한다. 여기에 더해 스튜디오 fnt를 통해 우리가 갖지 못한 색을 공유하며 발전해나갈 수 있어 좋았다. 이러한 여러 배경이 존재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 홍정도 JTBC 대표에게 스튜디오 fnt를 직접 소개했다고 들었다. 경영자에게 외부 디자인 파트너를 소개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남궁유 스튜디오 fnt를 소개한 이유는 중간 단계인 디자인센터를 통해 프로젝트 내용을 이해하기보다 최고 경영진이 원하는 방향을 직접 들어보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JTBC에게 디자인은 우리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그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홍정도 JTBC 대표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와의 미팅 시간을 충분히 내줄 것이라고 믿었다. 긴 시간 동안 JTBC가 바라는 점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재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최고 경영진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대표 인터뷰야말로 디자인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필수 항목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종편에 대해 좀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JTBC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디자인 프로세스를 위한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