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트렌드 리스트 #13

각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과 해외 트렌드 분석 전문 기관의 발표 등을 토대로 엄선한 디자인 트렌드가 디자이너들에게 2015년 한 해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2015년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트렌드 리스트 #13

미국의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세상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길을 만들어 준다”라는 말을 남겼다. 월간 <디자인>이 매년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트렌드 리스트를 모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각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과 해외 트렌드 분석 전문 기관의 발표 등을 토대로 엄선한 디자인 트렌드가 디자이너들에게 2015년 한 해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되길 바란다.


01 디저트 브랜드들의 달콤 살벌한 디자인 전쟁

경기 침체 속 디저트 시장의 성장은 흥미로운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사치스러운 느낌을 주되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만족감을 가지고 소비를 하는, 이른바 작은 사치가 빚어낸 시너지 효과라고 진단한다. 디저트 브랜드의 달콤함을 더하는 최고의 파트너는 역시 디자인이다. 매장을 찾는 사람들은 눈으로, 향으로, 그리고 촉감으로도 브랜드를 즐기길 원하기 때문. 매장과 패키지 등이 프리미엄화 되어가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욕구가 깔려 있다. 해외 디저트 브랜드의 상륙이 이어지는 가운데 소복이나 설빙처럼 한국형 디저트라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한국적 감성을 공간에 녹이는 브랜드도 등장했다. 디저트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디자이너의 역할은 커질 전망이다. 브랜드의 어느 것 하나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을 테니 말이다.

02 기획자로 진화하는 디자이너, 동료를 만나다

‘디자인=클라이언트 잡’이라는 낡은 공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이제 디자이너 스스로가 콘텐츠를 기획ㆍ유통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 디자이너의 기획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뜻이 맞는 디자이너 및 크리에이터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더 큰 힘을 낼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디자이너 이광호는 지난해 6월 신진 디자이너 지원 프로젝트 ‘서플라이 서울’을 결성했다. 디자이너ㆍ아티스트 연합체인 크리에이티브 그룹 리어는 최근 자영업자들의 매장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리:테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성수동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디자인 협동조합 보부상회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만 하다. 취지도, 성격도, 방향도 다르지만 이들의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유대감은 디자인계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광호 서플라이 서울 기획자    
“우리에게는 더 많은 경험과 노력, 활동들이 필요하다.”

서플라이 서울은 우리(신진 디자이너)가 현재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고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최근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 기획자와 조직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디자이너가 실제로 어떠한 목마름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향이 잠깐의 유행처럼 비쳐지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팀들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섣불리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더 많은 경험과 노력, 활동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2015년에는 좀 더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려고 한다. 새로운 전시 공간이 생길 것이고 전시 외의 콘텐츠도 생산할 계획이다. 또 2월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행하는 그룹전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03 벨보이가 없어도 충분히 ‘힙’한 잠자리, 게스트하우스ㆍ레지던스 디자인

한국관광공사는 2015년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1380만 여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것은 지난해보다 200만 명 이상 늘어난 숫자다. 지난해 호텔 시장이 큰 성장을 이루긴 했지만 폭발적 수요를 충족시키기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게스트하우스나 레지던스 같은 대체 숙박업이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시장의 확산을 이끌었고 서울시 역시 도시민박업 활성화 정책을 마련하며 지원에 나섰다. 시장의 성장과 함께 독창적인 콘셉트와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무장한 숙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청동 ‘에이.비앤비(A.BNB)’는 영국 앤티크 분위기를 한껏 살린 공간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고 한옥 레지던스 ‘고이’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공간 디자인과 장인들의 솜씨가 담긴 소품 등으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 스토리텔링 전문회사 남해의 봄날은 경남 통영에 동네 건축가, 장인 등과 함께 아트하우스 콘셉트의 게스트하우스 ‘봄날의 집’을 열었다. 대체숙박업의 성장 저변에는 좀 더 특별한 경험을 하길 원하는 여행객들의 필요가 깃들어 있다. 이들에게 특별한 하룻밤을 선사하는 것은 온전히 디자이너의 몫이다.

정은영 남해의 봄날 대표, 봄날의 집 기획자
“게스트하우스가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저렴하고 깨끗한 숙소를 선호하는 여행객들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창업, 서울 외 지역으로의 이주 등이 맞물려 게스트하우스 시장 증가에 주효하게 작용했다. 여기에 젊은 주인장의 취향과 스타일이 비즈니스와 접목되면서 개성있고 감각적인 게스트하우스들이 늘어났다. 게스트하우스가 단순히 저렴한 숙박 공간을 넘어 문화 공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통영은 문학과 전통 공예 등 여러 분야에서 찬란한 문화 예술을 꽃 피운 곳이지만 이곳 장인들과 지역 예술가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봄날의 집을 구상하게 됐다. 관광 도시의 특성을 고려해 숙소 안에 예술가의 방을 만들어 지역 예술인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게스트하우스가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봄날의 집 역시 이를 바탕으로 지역 예술인의 건재함을 알릴 것이다.

04 일상을 파티처럼, 디오니시안 문화의 대두

컬럼비아대학교의 석좌교수 번트 슈미트(Bernd Schmitt)는 자신의 저서 <체험 마케팅>에서 디오니시안(Dionysian) 문화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디오니시안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에서 따온 말로 황홀경, 열정 등을 의미한다. 극대화된 경험을 원하는 사람에게 클럽이나 파티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요소들은 감성을 증폭시키는데 탁월한 기폭제다. 지난해 얼반테이너는 클럽에서나 볼 수 있던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아디다스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에 적용해 화제를 낳았다. 이것은 비단 공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버진(virgin)사는 장거리 비행 승객들이 좌석 모니터를 통해 칵테일을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넣었다. 이제 파티는 특정 장소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일상 곳곳에 스며든, 이른바 ‘일상의 축제’에 주목한다면 디오니소스는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 보여줄 것이다.

백지원 얼반테이너 대표
“이 시대의 댄스 클럽은 ‘젊은이들의 오페라 하우스’다.”

파티는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줄곧 이어져 온 사회활동이다. 하지만 성장 중심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열심히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사회적 풍토가 강해지며 파티는 언더그라운드 문화로 밀려나야만 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 안에서는 체계적이고 이성적인 아폴로니안(Apollonian)식 문화와 사고가 우선시됐지만 존 호킨스(John Howkins)가 <창조 경제Creative Industries>에서 밝혔듯 디자인, 건축, 광고, 예술, 공예 등 창조 산업이 부상하고 있는 시대에는 감성적이며 체험 지향적인 디오니시안 문화가 더 적합하다. 한 예로 댄스 클럽을 들 수 있다. 이 시대의 댄스 클럽은 ‘젊은이들의 오페라 하우스’라고 생각하기에 얼반테이너 역시 지난 달 베이징에 한국식 클럽 모도 울트라 클럽(Modo Ultra Club)을 오픈 했다. 앞으로 여가, 놀이, 파티 등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이것들에 주목하고 적절하게 융합해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05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아우른다, O2O 커머스 붐

O2O(online to offline) 커머스는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를 모아 오프라인 상거래를 유발하는 마케팅 솔루션을 뜻한다. 온라인 커머스와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무는 서비스인 셈인데, 배달의 민족 등 올해 급성장한 배달 음식 서비스 분야가 대표적인 예다. 현재 배달 음식 분야 외에는 발전 초기 단계지만 전문가들은 O2O 커머스가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급성장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할 것으로 예측한다. O2O 커머스는 그 자체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확장 가능성이 크고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채널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된 이 O2O 커머스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백화점과 아웃렛 등 전국 유통망을 갖춘 이랜드 리테일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고 다양한 O2O 커머스 솔루션을 보유한 SK플래닛과 11월 초 업무 제휴를 맺기도 했다. 다만 이런 O2O 커머스의 오프라인 매장이 단순한 쇼룸이 되지 않게 하려면, 온라인 고객을 매장으로 불러모을 수 있는 창의적인 디자인과 마케팅이 필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UX 디자인, UI 디자인의 필요성 또한 커질 것으로 보인다.

06 2015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 안전과 친환경

패션 트렌드나 인테리어 트렌드에서는 우아한 키워드가 둥둥 떠다니지만,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이쪽에는 우선 규제가 너무 많아졌다. 보행자 안전 규정, 탑승자 안전규정, 등화 규정, 배기가스 규정 등 해마다 생기는 시시콜콜한 규제가 자동차 디자인을 쥐락펴락한다. 한동안 보행자 안전 규정이 익스테리어(외관) 디자이너를 괴롭혔다. “보행자를 치었을 때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앞 부분을 공처럼 둥글게 만들어라. 또한 전면부를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보닛 잠금장치가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게 하라”는 식의 복잡한 주문이다. 이후 길게 돌출된 범퍼가 쑥 들어갔고, 커다란 그릴이 가운데 자리 잡았다. 날렵하게 찢어진 헤드램프 밑에는 커다란 공기 구멍이 양쪽에 자리 잡았다. 모두 공처럼 둥근 전면부를 다이내믹하게 꾸민 노력의 결과다. 라디에이터 그릴이 점점 커지는 것, 헤드램프에 이러저러한 도형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공처럼 둥근 앞모습을 더 강렬하게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점점 강한 그래픽을 쓰고 있다.

최근 자동차 트렌드는 역시 ‘친환경’이다. 연료 덜 먹고 이산화탄소 덜 배출하기 위해 회장님부터 인턴사원까지 노력한다. 자동차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다. 친환경 자동차를 디자인하기 위해 2015년에도 힘차게 색연필을 그어댈 것이다. 그들은 역시 공기역학적 디자인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기를 매끄럽게 흘려보내는 디자인이다. 세찬 바람에 마구 날리는 머리카락처럼 엉키는 공기를 머리빗처럼 차분하게 펴주는 개념이다.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기도 난해한 것을 글로 표현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내년에도 자동차 디자인은 친환경이 대세다. 앞 범퍼에 커다란 공기 구멍이 양쪽으로 뚫린 신형 K5가 기다리고 있고, 뒤범퍼에 생선 가시처럼 복잡한 공기구멍(처럼 보이지만 막혀 있는)을 그려 넣은 렉서스 RC 쿠페가 국내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이 외에도 공기저항을 줄이거나 공기를 매끄럽게 흘려보내는 디테일이 이 차 저 차에 속속 적용될 것이다.

실내 디자인의 키워드는 스마트폰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스마트폰을 자동차 속에 매끄럽게 녹여내는 디자인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안정적으로 놓을 수 있는 수납공간은 물론, 살짝 올려두면 바로 충전되는 무선 충전 장치를 넣는다든가, 데시보드 가운데 펼쳐진 LCD 화면과 스마트폰을 소통케 하는 인터페이스 디자인도 여러 형태로 시도되고 있다. 이 외에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터치스크린을 허용하는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들(벤츠, BMW, 아우디 등)은 아이드라이브, MMI 등의 불편했던 인터페이스 장치를 새롭게 손볼 예정이기도 하다. 한편 실내 디자인에서도 안전 규정이 강하게 예고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조만간 시작될 실내 안전 규정은 모든 버튼과 모서리, 송풍구까지도 둥글게 다듬도록 규제할 예정이다. 송풍구까지도 말랑말랑한 재질로 만들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부서져야 한다. 충돌 사고 시 승객에게 해가 될 만한 디자인을 모두 규제한다는 취지이지만 디자이너들은 리틀-타익스(둥글둥글하게 생긴 자동차 완구)처럼 디자인해야 하나며 벌써부터 불편해하는 눈치다.

07 3D 프린팅과 환상의 파트너, 온라인 주문 제작

기존의 온라인 주문 제작은 약간의 ‘일탈’이었다. 일탈이란 무릇 본래의 영역이 있다는 뜻. 루이비통 백에 무늬와 이니셜을 새길 수 있는 ‘몽 모노그램(Mon Monogram)’, 페레가모 바라와 바리나 슈즈의 소재와 장식, 색깔을 지정할 수 있는 ‘라이코나페레가모(L’Icona Ferragamo)’, 나이키 운동화의 외피를 이루는 부분들의 색상을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나이키 아이디(Nike ID) 등은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상태에서 팬들에게 제공하는 ‘부차적’ 서비스에 가까웠다. 하지만 요즘 온라인에서 뜨고 있는 주문 제작은 차원이 다르다. 처음부터 주문 제작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더 전문적이고 더 세련됐다. 내키메이드(Nackymade)는 ‘클래식’을 콘셉트로 하는 주문 제작 전문 안경 브랜드. 수십 가지의 다리, 테, 코 받침, 작은 연결 고리를 각각 조합할 수 있는데 대충 조합해도 평균 이상의 클래식한 멋진 안경이 나온다. 가방 브랜드 바민(Bamin)은 가방을 투시도처럼 보여주고 몸통, 옆면, 손잡이 각 부분에 적용하고 싶은 소재와 색깔을 고르도록 한다. 나중에 어느 한 부분이 낡으면 그 부분만 바꿀 수도 있다. 나의 선택과 취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온라인 주문 제작은 3D 프린터와 환상의 파트너. 앞으로 온라인 주문 제작은 3D 프린팅과 결합해 더욱 급성장할 전망이다.

08 TV를 접수한 디자인 프로그램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은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이를 증명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인 프로그램이다. TV야말로 모든 미디어를 통틀어 가장 대중 친화적이기에 디자인 프로그램의 부상은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종종 디자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대부분 낮은 시청률을 보이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완성도 높은 디자인 프로그램이 속속 방영되며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MBC 퀸은 2013년 11월 <디자인 서바이벌 K-Design>을 방영했고 SBS CNBC는 지난 4월 국내 최초의 디자인 인포테인먼트 토크 프로그램 <디어헌터>를 선보였다. 디자인 & 리빙 전문 채널을 표방하는 홈스토리 채널은 공간 디자인이 완성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 <스페이스 프로젝트>, DIY 공방 프로그램 <야무진 공방> 등을 방영 중이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 11월부터 CJ E&M과 <디자인 서바이벌 K-Design>의 후속작 격인 <슈퍼 컴퍼니>를 공동 기획해 방영하고 있다. 일련의 방송 프로그램이 앞으로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선도해나갈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우철 <슈퍼 컴퍼니> PD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접목이 가능한 디자인 프로그램이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사람들의 취향은 날로 다양화되고 있다. 획일적인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 나면서 방송 제작자 입장에서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소재를 찾아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두루 접목이 가능한 디자인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한다.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보여주는 <슈퍼 컴퍼니> 같은 프로그램들이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이 높이고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09 브랜드, 미디어로 진화하다

디지털 시대에 모바일과 SNS까지 가세하자 기존 정보 생태계의 패러다임이 변모하고 있다. 21세기는 전통 미디어가 주도하던 정보 생산과 유통 기능을 디지털 세계의 모든 구성원에게 민주화했다. 범람하는 정보가 혼란을 야기하는 시대, 정보의 소비자가 곧 생산자가 되는 시대에 브랜드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보다 고객의 니즈를 들어주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 즉 웰메이드 콘텐츠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유통 비용이 필요 없는 디지털 세계에 공용 허브를 만들고 다양한 SNS 채널에서 고객과 소통하는 브랜드는 미디어의 특성을 흡수해 스스로 미디어를 자처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웹사이트이자 인기 웹진인 코카콜라 저니(www.cocacolacompany. com)는 유수의 미디어 사이트와 비슷한 방문객 수를 자랑하고 레드불은 자체 TV, 잡지, 레코드사, 이미지 공유 사이트, 게임을 총괄하는 미디어 전문 자회사를 두고 마케팅을 전개한다. 콘텐츠에 대한 가치가 중요해진다는 것은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증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이너는 지금 마주한 정보 생태계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기회는 반드시 준비하는 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10 신체 전방위로 파고드는 오감 디자인 전략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중 화자는 마들렌 과자 향을 맡으며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 미각 체험은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디자이너와 마케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 오랜 시간 시각 중심으로만 흐르던 문화, 예술, 디자인이 다른 감각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기 시작한 것. 지난해 크게 주목 받은 미각 마케팅은 변화에 시발점이었고 최근에는 혀를 넘어 오감 전체를 고려한 디자인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것은 후각. 파슨스(Parsons) 디자인 스쿨의 연구원 아이센 카로 챠신(Aisen Caro Chacin)은 향기로 알람 기능을 대체하는 손목 시계 센트 리듬(Scent Rhythm)을 디자인했고 글로벌컨설팅기업 JWT싱가포르는 세계적인 향수회사 지보단(Givaudan)과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메모리향수 키트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청각과 촉각에 주목한 제품도 있다. 이스라엘 출신 디자이너 슐로미 미르(Shlomi Mir)는 티벳의 전통 악기를 모티브로 빛과 진동으로 편안함을 주는 힐링 프로덕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오감 디자인 전략의 부상은 사람에 대한 디자이너의 이해가 한층 더 심화될 필요가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11 북유럽식 단정함은 이제 가라, 본능을 좇는 디자인

끝날 것 같지 않던 북유럽 디자인 열풍이 점차 식어갈 조짐을 보이는 것 같다. 팍팍한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일까? 절제된 단순함에서 위로를 얻던 이들이 감정과 본능의 적극적인 표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패턴의 재등장. 심플한 단색이나 기하학적이고 정돈된 패턴으로 대표되는 북유럽 스타일에서 벗어나 눈이 어지러울 만큼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울 만큼 화려한 패턴이 인테리어와 패브릭 디자인 분야에서 점점 더 떠오르는 중이다. 과거에는 촌스럽다고 여겼을 만한 이런 디자인은 사회의 틀 안에 갇혀 살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욕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좋은 예가 LG하우시스가 네덜란드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와 협업해 발표한 벽지 시리즈 그라시아 아티움(Gracia Atrium)이다. 순간에 충실하고 더 역동적인 영감을 받기를 원하며 본능과 감정을 충실히 드러내려는 현대인의 바람이 앞으로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어떻게 표출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12 국내 디자인 경쟁력 향상에 발맞춰 강화되는 디자인보호법

2015년에 두드러지는 디자인 법안 이슈는 지난해 7월 1일부로 시행된 디자인보호법의 적용 사례와 더불어 같은 날 한국이 가입한 ‘헤이그 시스템(Hague System for the International Registration of Industrial Designs)’이 실질적으로 디자인계에 불러올 영향을 지켜보는 것이다. 지식재산권은 권리를 획득한 해당 국가 내에서만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속지주의를 따른다. 따라서 국내에서 디자인을 출원하여 등록되었다고 해도 외국에서는 보호받을 수 없었고, 외국에서 디자인권을 행사하려면 해당 국가에 디자인 출원을 하고 디자인 등록을 받는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지난 해 우리나라가 일원이 된 헤이그 시스템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국제사무국에 하나의 국제 출원서를 내면 여러 체약 당사자 영역에서 디자인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다. 이는 국내 디자인이 미국, 유럽 등지와의 국경 없는 경쟁에서 법적인 보호가 필요할 만큼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매우 고무적인 행보이기도 하다.

김웅 디자인 특허 전문 변리사
“국내외에서 디자인 권리를 출원하는 절차가 한층 간편해진다.”

우리나라는 디자이너가 특허를 출원하고자 할 때, 공개된 디자인을 특허청에 일괄적으로 전부 제출하는 까다로운 입증 절차를 거쳐야 했다. 특허 출원 시 공개 일자와 공개 형태를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자료 미흡이라 하여 수차례 무효 판결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반강제적으로 디자인권을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전면 개정된 디자인보호법은 출원 시점에 공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디자인 출원을 가능케 한다. 이는 형식적인 절차를 이유로 디자인권이 무효되는 일을 방지해 결과적으로 디자이너들의 권익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특정 디자인을 활용하고자 하는 제3자 입장에서는 해당 디자인이 자유 디자인인지 특허가 걸려 있는 디자인인지 빠른 확인이 불가한 탓에 차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어 우려된다. 특허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소식은 헤이그 시스템 가입국으로서 국내 디자인의 국제적인 보호를 쉽게 요청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기존 창구가 단일화되면서 좋은 디자인을 국제적으로 보호받기가 간편해졌다. 헤이그 협약의 효력이 미치는 가입국은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총 62개국이며 미국, 일본, 중국은 가입이 예정돼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미정인 상태다.

13 긴 것은 참지 못한다. 짧게 더 짧게, 스낵 컬처

매년 그해의 트렌드를 조망하는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짧은 시간에 스낵처럼 즐기는 문화 콘텐츠를 뜻하는 ‘스낵 컬처’를 2015년 트렌드로 제시했다. 스낵 컬처에서는 5~10분 내외로 즐길 수 있는 웹툰, 플래시 영상, A4 용지 1쪽 내외의 소단편소설 등 모바일 기기 세대에 맞는 짧고 간단한 콘텐츠가 주를 이룬다. 특히 지난해 구글과 애플은 뉴스를 잘게 쪼갠 후 재조립해 60 단어 내외로 요약 제공하는 써카(Circa)를 최고 뉴스 앱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붐을 이룬 서브스크립션 서비스가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물건을 골라 전달하는 서비스였다면, 스낵 컬처는 치밀한 편집자와 정보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콘텐츠를 구성, 전달한다. 스낵 컬쳐에 맞는 콘텐츠 생산을 위해서는 정보의 편집도 중요하지만 이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디자인도 중요하다.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세대를 위한 콘텐츠인 만큼 사용자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치밀한 UX, UI 전략이 필수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39호(2015.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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