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다, 펠른
'커피 오마카세'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다
펠른은 커피와 플레이팅 디저트를 함께 즐기는 커피 페어링 코스를 개발한 커피 전문점이다. 이른바 '커피 오마카세'로 불리는 새로운 메뉴 구성으로 펠른은 경쟁자가 즐비한 국내 커피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까지 계획 중인 펠른의 스토리를 박성호 대표와 함께 알아본다.
2023년 말 기준 전국에는 약 9만 5천여 곳의 커피 전문점이 있다고 한다. 연남동에서 본점을 운영 중인 펠른(Perlen) 역시 이 중 하나. 국내 커피 시장은 이미 다양한 브랜드가 진출하며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지만, 펠른의 커피 비즈니스는 여전히 순항 중이다. 올해에는 국내 지점 확장과 근래에는 해외 진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경쟁자가 수두룩한 커피 업계에서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펠른이 과감하게 도입한 새로운 메뉴 구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페어링 코스다. 마치 오마카세처럼 커피를 비롯한 음료와 디저트를 페어링 하여 코스 요리처럼 선보이는데, 국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방식에 도입 초기부터 화제가 됐다.
약 60분의 코스 운영 시간 동안 손님은 커피를 추출하는 마스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카페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메뉴는 물론 펠른이라는 브랜드를 경험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빠름을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펠른. 독일어로 ‘이슬, 눈물이 진주 알처럼 빛나다’는 뜻을 가진 브랜드명처럼, 펠른은 자신들만의 경쟁력으로 수많은 커피 전문점 사이에서도 여전히 밝게 빛나는 중이다. ‘커피 오마카세’로 국내 커피 시장에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긴 펠른 박성호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박성호 펠른 대표
커피 페어링 코스를 도입해 차별화를 이뤄내다
펠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펠른은 고객에게 새로운 미식 경험을 전달한다는 취지로 다양한 서비스를 운영 중인 커피 전문점입니다. 커피에 집중해 오랫동안 마시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 목표인데요. 현재 페어링 코스를 운영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으로, 고객에게 색다른 커피 경험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커피 페어링 코스를 도입할 당시, 이른바 ‘커피 오마카세’는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도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F&B 산업 내에서 커피는 레드오션이에요. 경쟁이 치열하고 이미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펠른을 커피 비즈니스로 성장시키고 싶었지만, 기존과 차별화된 경쟁력 없이는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포맷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라는 상품보다 손님에게 커피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리자고 결론을 낸 거죠.
구체적으로는 커피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커피가 오래전부터 대중화되면서 미식보다 습관의 영역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말 그대로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커피를 찾고 접하는 것이죠. 펠른에서는 이와 정반대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오롯이 커피 맛을 느끼고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약 4년 전부터 페어링 코스를 선보이며 펠른만의 차별화된 커피 경험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급 코스 요리를 지향하는 만큼, 커피와 디저트 모두 각별히 신경을 쓰실 것 같아요. 펠른만의 특별한 점이 있나요?
커피와 디저트 모두 담당하는 파트가 따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 파트에서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을 하며 메뉴의 퀄리티를 높여나가고 있죠. 커피의 경우, 매 시즌마다 다양한 맛과 향의 원두를 사용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밤 맛이 나는 르완다 원두를 비롯해서 약 6~7가지 종류를 다루고 있는데요. 고객에게 더욱 신선한 커피를 제공하고자 인천에 로스터리 공장도 함께 운영하면서 펠른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춰 원두를 가공하고 있습니다.
디저트는 플레이팅 디저트를 선보이고 있어요. 플레이팅 디저트란 말 그대로 코스 요리처럼 플레이팅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나오는 디저트를 말해요. 맛은 물론 작품성까지 더해지는 것이 중요하죠. 일반적인 디저트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디저트 파트 개설 초기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특히 시장의 크기가 작다 보니 전문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었죠.
하지만 플레이팅 디저트를 통해 펠른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해질 수 있었습니다. 커피와 디저트를 결합해 하나의 코스 요리를 완성할 수 있었죠. 현재는 매 분기마다 새로운 디저트 메뉴를 개발해 고객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5성급 호텔을 포함해 국내에서 펠른처럼 순수히 플레이팅 디저트만을 다루는 곳은 드물지 않을까 싶어요. 호텔은 파인다이닝 코스의 일부로 디저트가 나오기 때문에 메인으로 다룬다고 말하기는 힘들고요.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펠른의 시그니처는 단연 위스키 더치예요.
위스키 더치는 오리지널 더치 커피를 숙성시킨 제품입니다. 실제 위스키가 첨가된 것은 아니고, 그 뉘앙스를 녹여냈다고 볼 수 있어요. 특별히 술과 커피를 접목한 이유는 향후 논알콜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논알콜 시장을 관찰해왔고, ‘만약 펠른이 논알콜 분야에 진출한다면 어떤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자연스레 펠른의 강점인 커피가 떠올랐고, ‘커피가 술을 대체하면 어떨까?’라는 발상까지 이어지게 되었죠.
이후 위스키처럼 커피에 오크향을 입혀보는 시도를 통해 위스키 더치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제조 특허까지 받아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온,오프라인 유통을 진행하고 있어요. 훗날 위스키 더치가 술처럼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음료로 자리매김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펠른의 브랜딩을 완성한 것은 바로 디테일
이제 디자인 이야기로 넘어가 보죠. 펠른은 메뉴뿐만 아니라 제품과 공간 등 디자인도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디자인은 외부 디자이너, 스튜디오와 협업을 많이 진행해요. 이 중 권의현 원투차차차 대표와 카페 공간을 꾸몄고, 양민영 디자이너와 펠른 로고를 디자인했죠. 여러 디자이너와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다양한 트렌드를 수용하기 위함입니다. 특정 디자이너의 감각에 의존하게 되면 자연스레 브랜드가 추구할 수 있는 감각의 범위가 한정되기 때문이죠.
펠른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하는데 있어 디자인은 굉장히 중요해요.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모여 브랜드를 완성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통일된 주제와 감각 없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디자인을 하면 어느 순간 브랜딩이 깨져버려요. 특히 펠른 하우스는 브랜드를 알리는 쇼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디자인에 신경을 더욱 쏟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굳이 저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나?”라고 묻지만, 일관된 브랜딩을 위해서는 디테일까지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필수죠.
사소한 디테일까지 챙겨야 브랜딩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서일까요? 최근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고요.
맞아요.(웃음) 위스키 더치가 2024 iF 디자인 어워드 브랜딩 부문 ‘2.01 Beverages’ 카테고리에서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디블러와 함께한 작품인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기쁩니다. 특히 펠른을 글로벌 시장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바bar를 연상시키는 긴 테이블, 원형 무드등 등 인테리어 역시 남달라요.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펠른이라는 공간을 기획할 때 두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카페의 주 타겟층이 외국인이라는 점과 ‘특별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었죠. 이는 제 유년 시절 경험에서 비롯되는데요.
어릴 적 해외에 종종 가곤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현지 식당과 카페였어요. 좋은 식경험이 있던 공간들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았죠.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들에게 훗날 한국을 떠올리게 할 특별하지만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이를 위해 다른 카페에서 보기 힘든 긴 바 테이블을 배치해 공간의 개성을 높이고, 따뜻한 무드등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특히 조명은 손님이 없을 때는 꺼졌다가 들어오면 켜지는 인터렉션까지 고려했는데요. 다행히 인테리어의 각 요소가 한데 잘 어우러져 펠른만의 공간 디자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광고회사 대표가 F&B 업계에 뛰어든 이유
지금까지 펠른의 메뉴 구성, 디자인 프로세스 등을 알아봤는데요. 경영자로서 대표님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우선 펠른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영화를 전공하고 현재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표면적으로 F&B 산업과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지만, 옛날부터 식품은 제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커피를 좋아했는데 어릴적 즐겨 마시기도 했고 커피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막연하게 해왔어요. 그리고 광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광고와 F&B 업계가 최신 트렌드를 항상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죠.
이와 별개로 광고 사업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 형태인데, 대중을 직접 마주하는 B2C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요소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자연스레 펠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펠른은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커피, 디저트 파트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특별하거나 거창한 비결은 없습니다.(웃음) 매 순간 치열하게 맞설 뿐이에요. 커피와 디저트 파트의 경우 서로 하나가 되어야 고객에게 온전한 식경험을 전달할 수 있어요. 하지만 두 파트 모두 각자 분야에서 전문가이자 아티스트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의견을 하나로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럴 때 일수록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코스 내에서 디저트가 메인일 때는 커피가 서브 역할을 하는 식으로요. 물론 그 반대 상황도 있죠. 이렇게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펠른의 브랜드 퀄리티가 높아져요. 어떨 때는 각자만의 감각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 회전율이 낮고 원재료 값이 높은 파인다이닝 형식의 레스토랑이 불경기 속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요. 커피 산업에서 비슷한 포지셔닝인 펠른의 상황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불경기의 여파로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비례해 오마카세, 파인다이닝 열풍이 조금씩 식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요. 펠른도 오마카세와 유사한 코스 메뉴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요. 특히 분기마다 메뉴가 바뀌고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매 변화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점수를 늘리고,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현재 판교 현대 백화점에 펠른 지점이 있는데, 퍼포먼스를 줄이는 대신 상업성에 초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어요. 글로벌 시장은 동남아를 중심으로 매장 오픈을 계획하고 있고, 커피 유통업을 병행하면서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고 있죠. 펠른 하우스를 퍼포먼스에 집중한 브랜드 쇼륨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다양한 수익 구조가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펠른을 만날 수 있겠네요. 동남아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디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베트남 진출을 고려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호치민을 중심으로 매장을 열 생각이고요. 커피 생산국인 베트남은 오래전부터 커피 문화가 발달한 곳입니다. 오래된 역사만큼 커피 문화도 다양한데, 이런 곳에서 분명 펠른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더불어 10~15년 전 한국처럼, 현재 다양한 미슐랭 레스토랑이 베트남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파인다이닝이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 틈새를 펠른으로 공략해 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대표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늘려볼 생각이에요. 최근에는 논알콜 주류를 취급하는 레프(REF.)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논알콜 맥주 외에도 위스키, 와인, 보드카 등 관련 주류를 공급하기 위해 유통권을 취득하고 있어요. 동시에 와인 셀렉샵처럼 논알콜 주류 셀렉샵 오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F&B 사업을 운영하면서 이루고 싶은 바는 새로운 포맷을 선보이는 것이에요. 펠른이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틀을 깬 포맷으로 미식 경험을 다각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