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 에크리튜 김재원 대표

취향과 관점으로 집필한 브랜드

성수동에 본격적인 로프트 컨버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 포인트오브뷰를 운영하는 아틀리에 에크리튜 김재원 대표다. 지금도 취향과 감각을 지켜내며 한 줄 한 줄 브랜드를 ‘집필’해가는 그를 만났다.

아틀리에 에크리튜 김재원 대표

영화 〈현기증〉의 타이틀 디자인으로 유명한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솔 배스Saul Bass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나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디자인 거장의 격언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에게 각인된 이런 본능은 그동안 철부지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타협을 모르는 완성도를 향한 집념은 으레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자신의 감도 높은 취향을 대중에게 들이미는, 심지어 그 집착으로 의미 있는 성취를 거둔 사람이 있다. 포인트오브뷰를 운영하는 아틀리에 에크리튜 김재원 대표다. 성수동에 본격적인 로프트 컨버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그는 지금도 취향과 감각을 오롯이 지켜내며 한 줄 한 줄 브랜드를 ‘집필’해가는 중이다. 보석 같은 문장을 찾아낼 누군가를 기다리며.

(*) 오래된 공장과 창고, 사무실이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는 현상. 1970년대 뉴욕 소호의 주철 공장 건물을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초 런던까지 확장됐다.

취향과 감각의 브랜드를 집필하다

오르에르 2층 한편에서 시작한 작은 문구점을 건물 전체로 확장한 점이 흥미롭습니다. 오픈과 함께 단숨에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가 됐는데,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나요?

확장 이전에도 일부러 포인트오브뷰를 찾아와주는 고객들을 보며 어느 정도는 예감했죠. 2014년 자그마치를 오픈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성수동을 찾는 빈도가 확연히 차이 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모객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확장 오픈 시기가 크리스마스랑 겹치면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인파가 몰리긴 했지만.

확장 오픈을 준비하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요? 품목의 확장?

포인트오브뷰는 65㎡(약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간판도 달지 않고 정말 수줍은 듯 숨어 있는 공간이었죠. 이것을 600㎡(약 180평)로 늘리다 보니 품목을 확장하는 것은 당연히 고려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점을 둔 것은 ‘우리 브랜드가 도구를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보여줄까?’였어요. 다시 말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상품 외적으로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거나, 판매와 직결되지는 않아도 뉴스페이퍼를 발행해 소식을 전한 것도 그 때문이었죠.

새롭게 확장 오픈한 포인트오브뷰. 창작의 장면에서 존재하는 모든 도구를 조명하는 문구점이다. 총 3개 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층마다 ‘Tool’, ‘Scene’, ‘Archive’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창작의 단계를 본뜬 네이밍이다. ©장수인
매장을 둘러보니 이전과 달리 카페를 두지 않았더군요.

사실 마지막까지 카페를 넣을지 말지 고민했어요. 공간 브랜드 관점에서 사람을 모으고 머물도록 하는 데 유용한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카페나 과자점을 운영했을 때 언제나 한계에 부딪혔던 것 같아요. 제가 디자이너이지 F&B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어려움도 컸어요. 제 안의 힘들었던 지난 기억이 카페의 수많은 장점을 이긴 것인지도 모르겠네요.(웃음) 게다가 처음 성수동에 터를 잡았을 때와 달리 이제는 지척에 널린 게 카페잖아요. 굳이 카페를 하나 더 열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오르에르를 처음 오픈했을 때만 해도 카페가 중심이었고 2년 뒤 포인트오브뷰를 열었을 때도 한동안 이 기조를 이어갔어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방문객들이 카페를 거치지 않고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굳이 F&B와 함께 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브랜드를 집필한다’는 표현을 즐겨 쓰잖아요? 그린다거나 설계하는 게 아니라. ‘집필한다’는 동사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포인트오브뷰를 기획한 아틀리에 에크리튜에도 이미 그런 의미가 담겨 있어요. ‘에크리튜Écriture’가 프랑스어로 문체라는 뜻이거든요. 저는 브랜드가 그냥 끄적이거나 스케치(표현)하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쓸 때 공부도 하고 리서치도 하잖아요.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면 소설이 완성되죠. 브랜드도 어느 날 갑자기 운 좋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여러 배경지식과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집필한다고 표현한 거예요.

인쇄 공장을 개조해 만든 자그마치. 2014년부터 2021년 7월까지 운영했다. H빔 등 기존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디스플레이되어 있던 나무 팔레트 역시 미국에서 커피 머신을 배송받을 때 딸려 온 것을 사용한 것이다. 지금은 소위 힙플레이스의 전형이 된 요소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브랜드 집필의 첫 단추가 호기심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호기심 이전에 발견이 있어요. 쉽게 말해 무언가를 보고 꽂히는거죠. 그 이후 ‘저건 뭐지?’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정체를 알기 위해 조사하고 배우다 보면 또 다른 발견을 하게 되고 발견에 발견이 이어지면서 하나의 프로세스가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발견’이 지닌 잠재력을 발견한 것은 언제인가요?

글쎄요. 사실 지금은 취향, 호기심, 발견, 큐레이션 등을 상업적으로 연결해서 돈을 벌고 있다면, 어릴 때는 같은 행위를 돈을 써가면서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값을 치르면서 취향을 만들어간 거죠. 그때가 아마 초등학생 시절? 어쩌면 그보다 더 전일 수도 있겠네요. 특히 저는 문구를 좋아했어요. 지우개, 메모지, 판박이…. 대한민국에 있는 건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죠.(웃음)

보통 그러면 부모님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기 일쑤잖아요.(웃음) 부모님이 자녀의 수집벽을 잘 이해해줬나 보네요.

글쎄요. 어릴 적 에피소드가 불현듯 생각나네요. 제가 원래 무언가를 한참 수집하다 다른 데로 관심사가 옮겨갈 때가 있었거든요. 메모지를 모을 만큼 모으다 판박이로 눈길을 돌린 거죠. 그런데 수중에 돈이 없다 보니 모았던 메모지를 팔아 판박이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살던 빌라 마당 한쪽에 자리를 깔고 앉아 판매를 시작했는데 당연히 하나도 안 팔렸죠. 식사 시간이 되니 어머니가 와서 500원어치만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제가 뭐라도 좀 팔아야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때 좀 충격을 받았어요. 어머니한테 물건을 골라보라고 하니까 그건 모르겠고 그냥 빨리 500원어치 담아달라고 하시더군요. 저한테는 하나하나가 다 개성이 다른 물건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대중과 괴리를 느낀 첫 순간 아닐까요?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저와 취향이라는 단어를 결부시키곤 하지만, 사실 100% 개인의 취향만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는 없어요. 지금도 직원들과 이야기할 때 우리 취향은 아니라도 대중이 좋아할 만한 제품을 5%만 리스트에 넣자고 말합니다. 취향에서 조금 비켜나 있어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오르에르. 2016년 5월 시작해 지난해 6월 영업을 종료했다. 에디터editor와 디자이너designer의 접미사를 차용해 네이밍했다.

창작의 신(Scene)을 그려낸 포인트오브뷰

그렇다면 포인트오브뷰에서 진짜 본인의 취향을 감별할 방법이 있나요?

포인트오브뷰가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층이 높아질수록 제 취향이 더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면 됩니다. 길가와 맞닿아 있어 불특정 다수가 유입되는 1층은 좀 더 넓은 취향을 포용하려고 하죠. 아직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처음부터 대뜸 우리의 철학이나 취향의 역사를 들이밀 수는 없다고 요. 짧은 시간 안에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좀 더 대중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진열하고, 우리의 취향과 관점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분들이 위층으로 향할수록 포인트오브뷰의 색깔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했어요.

공간 디자인은 어때요? 취향을 좀 더 반영했나요? 아니면 현실적이고 사업적으로 접근했나요?

사업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인테리어에서만큼은 제 취향을 훨씬 많이 드러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이징되는 소재에 애정이 있어요. 원목이나 금속처럼 에이징될수록 느낌이 깊어지는 소재를 좋아합니다. 사업으로 보면 무척 불리하죠. 비싸니까요. 하지만 제가 관여한 공간들이 소위 핫 플레이스라고 부르는 곳과 다른 점은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LCDC 서울 1층에 이페메라라는 카페를 기획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 생겼어도 마치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공간을 추구해요. 같은 맥락에서 가구 역시 빈티지 가구를 선호합니다. 새로 가구를 제작할 때도 의도적으로 빈티지한 요소를 넣으려 하고요.

촉이 좋다고 할까요, 아니면 용감하다고 할까요? 사실 처음 자그마치를 방문했을 때도 빈티지한 감성이 물씬 느껴졌어요. 미니멀리즘 트렌드가 정점을 찍고 있을 때였는데 말이죠.

사실 그때는 예산 문제도 있었어요. 지금은 빈티지가 유행이고 빈티지 가구를 구하기도 쉬운데 당시만 해도 판매처를 알기 쉽지 않았고 돈도 없었죠. 그래서 그때 가구는 사실 성수동 일대를 발품 팔며 직접 모은 것이었습니다. 주변이 인쇄소이고 공장 지대니까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여기저기 가구며 집기가 거리에 나와 있었거든요. 그런 것을 가져와 수선하고 색을 다시 칠했습니다. 진짜 빈티지인 셈이죠. 지금은 성수동이 많이 바뀌어서 그럴 일이 없지만.

2019년 겨울부터 지난해 6월까지 운영한 구움과자 전문점 오드투스윗. ©장수인

기획·공간·가구 디자인 아틀리에 에크리튜
그래픽 디자인 아라비 스튜디오(대표 이혜원), araby.kr
워크웨어 디자인 스튜디오 오유경(대표 오유경), studioohyukyoung.com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성수동을 선택한 것도 흥미로웠어요.

어떤 사람들은 저를 성수동의 시조새라고 부르던데요.(웃음) 예전에 성수동은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콘트라스트가 도처에 자리한 동네였습니다. 한쪽으로 지게차가 다니는데 바로 옆으로 고급 수입차가 지나가고, 공장 점퍼를 입은 직원들과 멋지게 차려입고 수제화 공방을 드나드는 디자이너가 공존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에서도 가능성을 봤어요. 당시에는 홍대나 경리단길이 한창 주가를 올렸는데 구두를 신고 걷기 힘든 지역이잖아요? 반면 성수동은 편하게 도보로 이동할 수 있었어요. 이런 부분에서 잠재력을 봤던 것 같아요.

지역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목도한 장본인이 아닐까 싶네요.

처음 자그마치를 만들 때는 정말 주변에 비슷한 결을 가진 공간이 하나도 없었어요. 외로웠죠. 그런데 몇 년 뒤에 대림창고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는 양가감정이 들더군요. 갑자기 엄청난 대형 공간이 들어선다고 하니까. 몇 달 전부터 소문이 돌았는데 거기에는 에어컨이 12대 들어간다는 거예요.(웃음) 이웃이 생긴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동시에 ‘이제 임대료를 어떻게 내지?’라는 불안감과 막막함도 밀려왔습니다. 그런 시절을 지나 현재의 성수동을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부동산 관점과 생활자 입장, 또 판매자 입장이 다르고. 어찌 되었건 깊이 있는 콘텐츠를 다루는 공간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해도 그 반이라도 말이죠. 깊이와 내실이 있는 콘텐츠가 많아야 동네의 생명이 길어진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곳, 아틀리에 에크리튜 오피스가 2021년까지 자그마치가 있던 자리잖아요? 본인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공간일 것 같습니다.

자그마치를 운영하며 많은 분과 좋은 연을 맺었습니다. 슬로우파마씨가 대표적입니다. 자그마치에서 진행한 행사 중 가장 흥행했던 게 그들의 팝업 전시였어요. 이번에 포인트오브뷰를 확장 오픈하면서 슬로우파마씨에게 조경을 의뢰했는데 수년 만에 다시 만나 일하며 ‘우리 참 열심히 살았다’고 담소를 나눴습니다. 사실 출발점이었던 만큼 자그마치를 닫기로 했을 때 마음 한편에서 모든 게 휘발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나 아쉬움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어요.

성수동에서 팝업 전문 공간 렌트를 운영하는 최원석 대표가 1호점을 열었을 때 잡지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여기에 빗대어봤을 때 김재원 대표의 공간은 어딘지 모르게 중·단편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소설은 언젠가 끝이 나죠. 자그마치나 오르에르의 영업 종료 소식을 들었을 때도 소설 마지막 장을 덮는 기분이 들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은 저를 아틀리에 에크리튜 대표보다 오르에르 대표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제게도 의미가 큰 공간이었죠. 그래서 오르에르를 문 닫기로 결정하기까지 고민은 자그마치 이상이었어요. 저는 브랜드를 이론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에요. 모든 걸 몸으로 부딪치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실전에서 터득했죠. 브랜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아까 수집벽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사실 브랜드도 수집하듯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르에르를 한창 기획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자그마치 2호점’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저는 속으로 ‘2호점 싫어. 나는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거야’라고 생각했고요.(웃음) 그런데 여러 브랜드를 같이 운영하다 보니 각각의 페르소나와 철학을 유지하는 게 만만치 않더군요. 결국 저라는 사람은 한 명이잖아요. 깊이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단일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포인트오브뷰 더현대 서울점. ©장수인

사람을 모으는 공간은 어떻게 기획되었을까?

다양한 공간을 잇따라 오픈해 모두 소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사람을 모으는 공간을 설계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통상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대중의 눈높이에서 60%만 충족하면 그들은 만족한다’고. 사실 비즈니스 마인드로 봤을 때 그게 맞죠. 사업을 할 때는 예산 등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니까. 그런데 저는 일단 제 눈에 만족이 되어야 했어요. 60%는 디자이너 혹은 기획자 김재원 관점에서 턱없이 부족한 거예요. 설령 대중이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깊이 있는 감도와 취향을 추구하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우리만의 집착 내지 고집을 알아봐줄 거라고 생각했고 당장의 효율은 떨어질지 몰라도 팬덤은 형성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대중은 눈치채지 못한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 덕분에 지금까지 잘 흘러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인트오브뷰가 더현대 서울에 입점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성수동을 벗어난 김재원의 공간을 상상해보지 못했거든요.

성수동이라는 홈그라운드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예전부터 있었어요. ‘성수동이기 때문에 잘됐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사실 더현대 서울에 입점하기 전 타르틴베이커리 도산점에서 1년 정도 팝업을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강남에 새로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고려 중이었기에 훨씬 부담 없이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 반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고요. 마침 현대백화점으로부터 제안이 와서 금융 오피스가 몰려 있는 지역에서 창작의 도구를 제안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것을 배웠고요. 나름대로 인지도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저희를 모르더군요. 플랫폼의 유형, 규모,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진짜 우물 안에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LCDC 서울 1층의 카페 이페메라Ephemera. 사전적 정의는 ‘수명이 짧은 것, 잠깐 쓰고 버리는 것’으로 우표, 메모지, 티켓 등 쓰고 쉽게 버리는,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공간 한편에 전시해 환기의 요소를 부여했다. ©장수인
자동차 정비소와 구두 공장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한 LCDC 서울. ©장수인

기획 에스제이그룹(대표 이주영), 아틀리에 에크리튜(대표 김재원)
건축 사무소 효자동(대표 서승모)
공간 디자인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대표 임태희), 아틀리에 에크리튜(대표 김재원), 르씨지엠(대표 구만재)
조명 디자인 EON SLD(대표 정미)조경 디자인 KNL 환경디자인스튜디오 (대표 김용택)
그래픽 디자인 MYKC(대표 김기문·김용찬), 아라비 스튜디오(대표 이혜원)
참여 작가 이광호, 윤라희, 두갸르송
김재원 대표의 참여 프로젝트 중 기획의 묘를 십분 발휘한 게 LCDC 서울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 초기 기획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클라이언트인 패션 회사는 청담동에 200㎡(60평) 규모의 편집매장을 열고 싶어 했죠. 그런데 제가 봤을 때 그들의 타깃이 청담동으로 몰릴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반쯤 농담으로 “성수동으로 오세요”라고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LCDC 서울이 있는 자리는 제가 새로운 공간을 열고 싶어 지켜보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생겨난 부동산 관련 규제로 꿈이 꺾였죠. 클라이언트에게 이런 상황과 아쉬움을 토로했더니 ‘한번 가보자’ 하시더군요. 그리고 바로 매입을 결정했어요.

200㎡ 규모의 프로젝트가 갑자기 2000㎡로 늘어난 셈이네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의외로 다른 공간에 비해 순탄한 편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공간 프로젝트와 다른 프로세스를 밟았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복합적인 기능을 갖춘 공간을 일단 구획하고 인테리어를 시작할 때쯤부터 콘텐츠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LCDC 서울은 네이밍부터 공간의 기능, 그리고 공간을 가장 잘 표현해줄 파트너까지 동시에 입체적으로 구상했습니다. 앞 단의 기획을 철저히 짜놓은 것입니다. 기획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디렉션을 맡았기 때문에 다양한 기능을 갖춘 공간이라도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었던 것 같고요.

 LCDC 서울 3층의 도어스. 글월, 셀렉트 마우어, 오이뮤, 요안아, 이예하, 한아조가 입점해 있다. ©장수인
2층 편집숍의 이름이자 LCDC 서울을 아우르는 콘셉트 ‘르콩트 드콩트Le Conte Des Contes’가 그 증거죠.

르콩트 드콩트는 여러 개의 단편을 모은 책을 이르는 말입니다. 프랑스에 동명의 책이 있기도 하고요. LCDC 서울에 10여 개의 테넌트와 브랜드가 모여 있지만 결국 LCDC라는 이름으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해 부여한 콘셉트였습니다. 이 책 안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담길 수도 있고, 유쾌한 이야기가 담길 수도 있어요. 그런 유연성을 가진 플랫폼을 지향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3층 도어스가 그런 다양한 이야기꾼이 모여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브랜드를 모으는 기준이 있었나요?

원래 다층 건물에서 사람들을 위로 끌어 올리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아예 고층 건물은 경우가 다르지만. 모객을 위해 1층에 카페를 배치했지만, 카페만 방문하려던 사람들이 최대한 위로 올라가도록 유도해야 했습니다. 4층은 목적성이 분명한 공간(바)이기에 미션은 3층까지 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강력한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것도 생각해봤어요. 젠틀몬스터 같은 브랜드가 회의 중 물망에 올랐죠. 하지만 그런 브랜드는 아우라가 너무 강력해서 나머지 신생 브랜드가 먹힐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균형을 맞추면서도 스몰 브랜드로서 충분히 매력 있는 단일 브랜드로 선정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브랜드냐 하는 것이었어요. 멋진 인테리어도, 맛있는 시그너처 메뉴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어딘가에서는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야 해요. 그러려면 생산이 기반이 되거나 콘텐츠를 잘 큐레이션해 또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브랜드가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LCDC 서울 2층의 편집매장 ‘르콩트 드콩트’. 이광호 작가의 작품을 곳곳에 배치했다. 김재원 대표는 그의 작품임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안목 있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알아봐주길 바란 것이다. ©장수인
도어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8개 문으로 공간을 쪼갠 점도 흥미롭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를 정말 좋아해요. 여기에 다른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여러 개의 문이 등장하는데 그걸 계속 생각했어요. 문을 열면 마치 브랜드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테넌트 측이 내부 공간은 자유롭게 연출해도 좋지만 문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아예 매뉴얼로 못 박았습니다. 사실 이렇게 공간을 쪼개는 게 건축주 입장에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에요. 공용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충분히 더 높은 임대료를 받고 단일 브랜드에 공간을 내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그럼에도 기획에 공감하고 결정해준 클라이언트에게 감사하죠.

브랜드부터 협업 파트너까지 김재원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은 큐레이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 회사가 온라인보다는 물리적 공간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잖아요. 사실 팬데믹 이전에 플랫폼의 차이일 뿐이었던 온·오프라인이 이제 점차 자기 성격을 찾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량이나 용이성 면에서 오프라인이 온라인을 따라가긴 힘들어요. 그렇다고 오프라인 공간이 의미가 없어지나요? 종이 잡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디지털 매거진이 우후죽순 등장할 때 종이 잡지의 위기라는 말이 횡행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디지털 매거진이 사라졌고 종이 잡지는 살아남았어요. 종이 잡지가 더 편리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이 더 커졌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고 느끼고 싶어 하죠. 물건을 구매하러 간 매장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려도 온라인 쇼핑몰 화면을 캡처해서 올리는 사람은 없잖아요. 저는 오프라인의 경험을 산책에 비유합니다. 공간을 기획할 때는 이 점을 놓쳐선 안 된다고 봐요. 상품을 직병렬로 배치하는 것을 넘어 환기 요소를 집어넣어야 하죠. 저는 그게 바로 큐레이션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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