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조 비누 작업자들이 보이는 공간 디자인

한아조가 첫 단독 매장에 담고 싶었던 것

2023년 12월 22일, 안국역과 창덕궁 사이에 ‘한아조 안국점’이 문을 열었다. 2014년 수제비누 브랜드로 시작해 스킨 케어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한아조 첫 단독 매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아조 안국점은 북촌의 여유와 “정성을 다해 지속가능한 물건들을 스스로 만든다”는 한아조의 장인 정신을 담고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러운 비누향이 기분을 좋게 한다.

한아조 비누 작업자들이 보이는 공간 디자인
한아조 안국점 © designpress

한아조가 북촌으로 향한 이유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과, 유명세를 더하고 있는 카페들 덕분에 언제나 인파로 북적이는 서촌과 북촌이지만, 이 지역은 포화 상태에 이른 서울의 숨 막히는 공기가 없다. 한아조의 조한아 대표도 이러한 여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이 일대를 동경하며 마음에 품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의 편안함 같은 것을 느꼈어요. 마음이 편하고 오래 머무르고 싶은 느낌에 함께하고 싶었죠.” 2021년 성수동 연무장길에 오픈한 LCDC 서울에 입점하며 한아조의 첫 오프라인 공간 ‘한아조 성수점’을 연 조한아·김상만 공동 대표는 손님들과 직접 마주하며 자신들만의 매장을 꿈꿨고, 예기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종로로 향했다.

이 붉은 벽돌 건물은 1980년대부터 북촌 일대의 도로가 확장되며 뒤로 밀린 한옥을 개조해 세운 것이다. 주변의 높은 건물과 달리 단층의 낮은 건물이라 더욱 눈에 잘 들어온다. 안국점이 ‘새것’이 아닌 원래 있던 것처럼 보였으면 하는 바람에 외관을 그대로 사용했다. © 한아조

“저희는 굉장히 작은 브랜드예요. 사실 브랜드라기 보다는 제조업을 하는, 생산과 판매를 모두 직접 하는 수공업자에 가깝죠. 그렇기 때문에 근사한 오프라인 매장을 낸다는 생각을 성수점 이전에는 해본 적이 없어요. 처음에는 조금 더 내실을 다지기 위한 공장을 계획하던 것이 어그러지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차에 ‘한번 우리만의 매장을 내볼까? 항상 꿈꾸던 것이었는데…’ 하며 무작정 이쪽으로 왔던 거죠.” 김상만 대표가 말했다. 그렇게 발걸음한 첫날, 두 사람은 붉은 벽돌 건물을 만났다. 지금의 한아조 안국점이 자리한 이 건물은 북촌 토박이인 건물주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집이다. 건물주 아버지의 세탁소였고, 이후 20여 년간 한식 식당으로 운영되었다. 단번에 좋은 사람과 좋은 곳을 알아본 두 사람은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의 임태희 소장에게 연락했다.

한아조 안국점 내부. 계산대 위의 천창은 일부러 낸 것이 아니다. 공사를 위해 천장을 뜯어내니 방치되었던 굴뚝 구멍이 드러났다. 아마 이 자리는 아궁이가 있었을 터. 한아조와 임태희 소장이 이를 살려 창으로 만들었다. 비 오는 날이면 운치를 더한다. © designpress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디자인한 공간

한아조 안국점의 공간 디자인은 조한아·김상만 공동 대표가 마음 깊이 믿고 의지하는 임태희 소장이 맡았다. 한아조와 임태희 소장의 인연은 3년 전 LCDC 서울에 한아조가 입점을 준비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LCDC 서울을 총괄 디렉터한 김재원 대표가 인테리어에 대한 자문을 구한 이들에게 임태희 소장을 추천한 것. “소장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한아조가 어떤 생각으로 브랜드를 하고 있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여쭤봐 주셨는데요. 한아조 성수점에는 저희의 모토인 ‘Pause Your Life(너의 삶을 잠깐 멈춰 봐)’의 멈춤의 시간을 표현해 주셨죠. 안국점에서는 그때 아쉽게 담지 못했던 한아조 내부의 작업자 공간, 작업자 정신을 함께 전하고자 했어요.” 조한아 대표의 말에 김상만 대표가 덧붙였다.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맞아! 내가 생각했던 거 너도 생각했어?’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안국점이 그렇게 진행되었어요. (웃음)”


작업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잭슨 폴록의 작품 같기도 한 나무 판넬은 비누를 만들 때 바닥에 깔아 놓는 도마이다. 제작 과정에서 비누액이 도마에 튀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패턴이다. © designpress
안국점 유리 벽 안쪽의 작업 공간. 한아조 팩토리에서 사용하던 기구를 가져왔다. 한아조는 모든 직원을 소퍼(Soaper)라고 말한다. 어떤 직무를 담당하고 있던 비누를 만드는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기에 모든 직원이 소퍼인 것. 만드는 사람과 이를 사용하는 고객이 이곳에서 직접 마주하게 되며 심리적 거리감도 줄어든다. © 한아조
유리 벽 너머로 작업 중인 비누들이 보인다. © designpress

한아조는 원료 수배부터 제조 과정의 모든 R&D와 포장과 배송, 디자인 및 촬영까지 모두 직접 한다. 안국점은 한아조 팩토리(성수에 위치한 오피스 겸 제조 공간)의 작업 공간 일부를 재현했다. 인테리어가 주인공이 아닌 작업자가 하는 행동이 주인공이 되도록, 안쪽의 넓은 공간을 작업자들에게 내준 것. 이곳에서는 실제 벌크 비누를 자르고 단면을 건조하는 작업이 진행되며, 운이 좋으면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위생적이고 관리가 편한 스테인리스 스틸은 작업자를 위한 소재. 제품이 진열되는 쇼윈도의 난간과 판매와 작업이 이루어지는 테이블을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호상근 작가의 ‘조각상과 서 있는 카드’가 걸린 벽. 이곳은 아트월로 활용될 예정이다. © designpress
한아조의 팩토리에는 “우리는 위대한 작업자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아조의 가장 큰 자아인 작업자를 표현하는 작업복. “어떻게 보면 ‘그냥 작업복을 넣었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희에게는 작업복이 소중하고 중요한 거라서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곳이길 바랐어요.” 조한아 대표가 작업복 표구를 담당한 ‘모리함’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 designpress
작업복은 2018년 팩토리를 얻을 당시 탐베레 대표님께 선물 받은 디자인이다. 실제로 한아조 팀원이 입고 일하며 더러워진 작업복을 그대로 표구했다. 펜과 배지는 조한아 대표의 작업복에 있던 것들을 가져다 꾸몄다. © designpress

한편 안국점의 공간은 크게 세 구획으로 나눌 수 있다. 아티스트(Artist)이면서 비즈니스맨(Businessman), 작업자(Craftsman). ABC로 표현하는 한아조의 아이덴티티를 세 면에 구현했다. 전면 쇼윈도를 제외하고 (입구를 등지고 서서) 호상근 작가의 ‘조각상과 서 있는 카드’가 걸린 왼쪽 벽면이 아티스트 영역, 한아조의 제품들로 채워진 중앙이 비즈니스 영역, 작업복이 걸린 오른쪽 벽면과 중앙의 유리 벽 안쪽이 한아조의 가장 큰 자아이자 안국점의 하이라이트인 작업자의 영역이다.


공예적 디테일과 마감

한아조 안국점만의 특별한 바닥. 버려진 조각들을 모아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 또한 한아조가 추구하는 작업자 정신과 맞닿아 있다. © designpress
대리석 조각을 활용해 바닥을 만드는 과정 ©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김상만 대표는 한아조의 작업자 정신 중 하나로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모든 작업자는 작업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를 함부로 버리지 않아요. 한아조도 같아요.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비누를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테라조 비누로 만들거나 퍼그램 프로젝트로 활용하죠. 버려지는 것들, 누군가는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이 있어요.” 임태희 소장은 이러한 작업자 정신과 한아조만의 특별함을 바닥에 표현했다. 버려진 대리석을 모아 테라조 비누 같은 바닥을 만든 것. 한아조가 손으로 비누를 만들 듯, 대리석 조각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레벨기로 하나하나 수평을 맞춰 작업했다고. 시선을 내려야지만 볼 수 있기에 더욱 특별하다.

공예적 미감이 돋보이는 임태희 소장의 디테일은 입구의 손잡이와 고재를 활용한 세수대, 그리고 유리 공예로 만들어진 비누 트레이 등 곳곳에서 빛난다. 뭉툭한 비누의 형상을 닮은 손잡이는 금속을 주된 소재로 사용하는 이윤정 작가, 비누 트레이는 유리 공예가 김은주 작가의 작업이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고재를 활용한 세수대. 이곳에서 한아조의 제품들을 체험해 볼 수 있다. © designpress

한아조가 내보인 첫 번째 초안

한아조 안국점의 또 다른 이름은 ‘드래프트_원 : 북촌’이다. 드래프트(Draft), 즉 초안. 안국점 같은 독립적인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처음 운영하는 한아조의 선언 같은 이름이다. “한아조는 모든 게 완성된 상태로 딱 하고 선보이는 브랜드는 아니에요. 계속 그려 나가는 브랜드이죠.” 조한아 대표가 이어 설명한다.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기대가 커지면서 예전에는 쓱쓱 하던 스케치가 잘 안되고, 무엇을 함에 주저함도 커졌어요. 그런데 10년 동안 한아조를 해오면서, 이전에 했던 것들이 지금 와 보면 다 연습장 한 장에 일부이지 않았나 싶더군요.” 커서가 깜빡이는 하얀 모니터를 마주하면 막막하지만, 한 단어를 써넣는 순간 후루룩 이야기가 풀리기도 한다. 단독 공간 프로젝트로서 한아조가 처음 써 내려간 이 초안이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비누가 기둥이 된 쇼윈도의 진열대 © designpress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거울이 곳곳에 있다. © designpress
한아조 안국점 © designpress

두 사람은 앞으로 한아조 안국점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랄까. “유럽 여행 가면 로컬 분위기가 느껴지는 가게들이 있잖아요. 치즈나 가죽 공방, 오래된 음식점 같은 곳들이요. 여기 오시는 외국 분들이 그런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한국에도 이런 브랜드가 있구나. 얘네 이렇게 직접 화장품을 만들고 있구나, 앞으로도 쭉 만들어 나가겠구나 하고요.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조한아 대표에 이어 김상만 대표는 말했다. “비누 하나를 만들어도 물건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만들어요. 소중하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 것을 느껴 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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