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과 디자인이 만났을 때
21_21 디자인 사이트 〈라멘 그릇의 예술〉전
도쿄의 21_21 디자인 사이트에서 열리는 〈라멘 그릇의 예술〉전은 라멘과 그릇을 디자인 해부학 관점에서 분석하며, 일본 라멘 그릇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노 도자기의 역사와 가치를 조명한다.


21_21 디자인 사이트(21_21 DESIGN SIGHT)는 일본 디자인과 현대적 실험을 중심으로 한 전시 공간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Tadao Ando)가 설계한 미니멀한 콘크리트 건물로 유명하다. 디자인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획 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이곳에서 현재 〈라멘 그릇의 예술(The Art of the RAMEN Bowl)〉 전시가 열리고 있다. 디자인 해부학(Design Anatomy)의 관점으로 라멘과 그릇을 분석하고, 라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라멘 그릇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노 도자기(美濃焼)’를 주목한다.



일본 라멘 문화의 숨은 주역, 미노 도자기
한국에 국밥이 있다면, 일본은 라멘이지 않을까. 지역마다 또 가게마다 나름의 라멘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국물이나 재료를 조합하는 방식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우리가 일본 라멘 가게에서 만나는 그릇은 종종 거의 같은 크기와 소재, 디자인을 지닌다. 이들 중 대부분이 일본 기후현의 토노(東濃) 지방(고대 미노 지방의 동쪽 지역), 특히 타지미(多治見)·도키(土岐)·미즈나미(瑞浪)시에서 생산한 미노 도자기이다.


〈라멘 그릇의 예술〉전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21_21 디자인 사이트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토 타쿠(Taku Satoh)와 아트&사이언스 프로듀서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하시모토 마리(Mari Hashimoto)가 시작한 ‘미노 도자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기획됐다. 일본에서 매일 라멘을 먹는 사람들조차 라멘 그릇의 90%가 미노 도자기라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해 ‘라멘 그릇’이라는 친숙한 아이템을 통해 대중이 미노 도자기를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한 것. 2014년 마츠야 긴자에서 첫 전시가 공개된 이후 여러 도시를 거쳐 발전했다.





이번 전시는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작품과 함께 라멘의 역사를 소개하는 ‘라멘의 과거와 현재(Ramen Past and the Present)’에서 시작해 디자인 해부학 기법으로 용어, 색상, 형태, 패턴, 질감 등 라멘과 그릇을 보다 깊이 분석한 ‘라멘과 라멘 그릇의 해부학(Anatomy of Ramen and Ramen Bowls)’, 그리고 토노 지방의 도자기 공방과 장인, 다양한 점토와 전통 제작 기법을 통해 13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미노 도자기의 가치를 부각하는 ‘미노 코스모(MINO COSMOS)’로 이어진다. 라멘의 역사와 문화에서 시작하지만 라멘 그릇 자체를 주목하며, 일본 최대의 라멘 그릇 산지의 긴 도자기 생산 역사와 미래 가능성까지 뻗어 나간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흙으로 디자인하기’에서 발견된 혁신적인 정신(the cutting-edge spirit)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는 미노 도자기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특징이다. 이 핵심 개념은 궁극의 패스트푸드인 라멘부터 매우 긴 수명을 지닌 ‘가장 느린’ 소재인 점토에 이르기까지, 전시 전반에 등장한다.”
_ 전시 기획자 사토 타쿠, 하시모토 마리
특별한 아트스트 라멘 그릇과 전시 요소



전시의 백미는 ‘아티스트 라멘 그릇’ 시리즈로 전시되는 오리지널 작품 40점이다. 디자이너, 건축가, 일러스트레이터, 요리 연구가 등 일본과 해외의 아티스트 40팀이 만든 40세트의 라멘 그릇과 스푼으로, 이 중 10개의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됐다. 또한 타케나카 공무점(Takenaka Corporation), 토네리코(TONERICO:INC.), 디자이너 나카하라 타카시(Takashi Nakahara)가 설계한 새로운 라멘 가판대, 일본 전역에서 수집된 약 250개의 라멘 그릇, 미노 도자기의 전통적 요소를 활용한 야외 조경도 주목할 만하다. 21_21 디자인 사이트 주변의 라멘 가게를 소개하는 오리지널 맵도 제공하니 놓치지 말 것.



이번 전시는 라멘 그릇을 단순한 음식 용기가 아닌 디자인과 문화의 일부로 바라보게 하며, 일본 도자기의 역사와 디자인적 요소, 그리고 라멘 문화의 발전 과정을 탐색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도쿄에 간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라멘 그릇의 예술〉전은 21_21 디자인 사이트에서 6월 15일까지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