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국가’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최재은 작가의 개인전 〈자연국가〉가 5월 11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Silk, cotton linen and washi (foil)
155.4 x 122 x 2.7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자연국가’는 무엇이며 어디에 존재할까? 이름 그 자체로 물음표가 되는 최재은 작가의 개인전 〈자연국가(Nature Rules)〉가 지금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K2와 K3 전시장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조각, 설치, 건축, 사진,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존재의 탄생과 소멸, 자연과 인간의 복합적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작가가 오랜 시간 사유해온 ‘숲’의 감각과 언어,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생태적 윤리를 다채롭게 해석하고 풀어냈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재은 작가는 1970년대 중반 도쿄로 건너가 소게츠 아트 센터에서 이케바나(生け花)의 문법을 수학하며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으로 미술의 길에 들어섰다. 1986년에는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가 설계한 소게츠 아트 센터 내 실내 정원 ‘헤븐(Heaven)’ 위에 13톤의 흙을 덮고 씨앗을 뿌린 설치 작품 ‘대지(Earth)’를 발표하며 첫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에도 생명의 순환과 시공간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지속해왔다.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World Underground Project)’에서는 종이를 땅에 묻었다가 꺼내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흔적을 가시화하고, 미생물의 활동을 시각예술과 접목하는 등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를 펼쳤다.


이번 전시는 ‘숲’을 중심축으로 삼는다. 작가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교토의 동네 숲을 매일 산책하며 낙엽과 꽃잎을 수집했고, 이를 재료 삼아 안료를 직접 만들어 캔버스를 채웠다. 그렇게 완성된 K2 전시장 1층의 회화 연작 ‘숲으로부터’는 각기 다른 색채와 질감으로, 재현할 수 없는 고유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회화 표면에는 “Sar r r r r” 혹은 “Hu u u u”와 같은 소리의 음차가 흑연으로 적혀 있다. 이는 늦가을 잎이 떨어지는 소리와 숲 너머 먼 산에서 들려오는 산울림 소리 등 작가가 숲에서 채집한 청각적 기억의 기록이다.


숲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2층 전시장으로 이어진다. 전시장 바닥에는 작가가 직접 쓴 시 ‘나무의 독백’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작가가 숲속에서 조우한 나무들과 나눈 대화로, 벽면에 설치된 황금빛 나뭇가지 조각이 숲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숲이라는 장소가 단지 일상의 배경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유와 감각의 주체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한편, 전시장 안쪽에서 만날 수 있는 영상 작품 ‘플로우(Flows)’에서는 거대한 고목의 밑동이 느린 속도로 360도 회전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시간의 흐름이 남긴 물리적 주름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위엄과 숭고함을 고요히 마주하게 된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K3 전시장은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몰두해온 ‘DMZ 프로젝트’의 공간이다. ‘대지의 꿈’으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자연국가’의 단계로 진입해 비무장지대의 생태 회복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에 이른다. 작가는 DMZ 내부를 환상의 숲이라 여겼지만, 실제로는 장기간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그 지역 숲의 생태가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이에 그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비무장지대의 생태 현황을 면밀히 조사하고, 생태계 복원을 위한 식재의 종류와 양을 정리했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종자 볼(seed bomb)’을 고안했다. 직경 3-5cm의 작은 점토 흙 안에 나무 종자를 넣어 드론을 통해 비무장지대에 살포하는 것이다. 이는 예술의 영역이 생태적 실천으로 확장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Wood structure with pressed flowers on 112 urushi lacquered wood panel, framed
212.6 x 238 x 6.9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와 함께 작가가 직접 제작한 병풍 안에는 컴퓨터가 한 대씩 놓여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작가가 만든 웹사이트에 접속해 DMZ 지도를 살펴보며 특정 구역을 선택한 뒤 ‘종자 볼 기부 약속’을 등록할 수 있다. 100원에 한 개의 종자 볼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이 행위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생태 예술의 새로운 실천 형식으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는 일종의 플랫폼이기도 한 이것을 ‘새로운 유대(New Alliance)’라고 명명하며,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의 역할을 되묻는다.

‘자연국가(Nature Rules)’라는 전시 제목은 이 모든 시도를 통합하는 은유처럼 느껴진다. 자연의 법 테두리 안에서 인간은 지배자가 아닌, 공존의 일원으로 자리한다. 최재은 작가의 전시는 그 세계를 상상하고, 실현 가능성을 제안하며, 우리를 그 안으로 초대한다. 낙엽을 주워 색을 만들고, 숲의 소리를 글자로 옮기고, 씨앗을 뿌리는 일련의 행위들은 전시장의 벽을 넘어서는 예술의 확장이다. 전시장을 빠져나오며 우리는 묻게 된다. 진정으로 속해야 할 국가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지. 최재은 작가의 〈자연국가〉는 국제갤러리에서 5월 1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