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최초의 현대 미술관, 2025년 말에 문을 열다

작가·큐레이터·대중이 자유롭게 소통하게 될 글로벌 아트 허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태국의 수도 방콕에는 다양한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복합문화공간이 생겨나며 예술을 사랑하는 전 세계인의 발길을 끌고 있다. 그런 방콕에서 또 하나의 화제작이 등장했다. 태국 최초의 국제 현대 미술관, '딥 방콕Dib Bangkok'이 그 주인공이다. '태국과 세계 예술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미술관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태국 최초의 현대 미술관, 2025년 말에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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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딥 방콕 홈페이지

이 미술관은 태국의 사업가 겸 예술가, 컬렉터, 그리고 자선가였던 펫치 오사타누그라Petch Osathanugrah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비록 그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생전에 모아왔던 예술 작품들이 대중에 공개되며 방콕 현대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술관의 기반을 다진 펫치 오사타누그라는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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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포브스

1954년 8월 21일 방콕에서 태어난 펫치 오사타누그라는 미국 서던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가족 소유의 제약 및 소비재 기업인 오솟스파Osotspa에 광고 부문으로 입사하며 경력을 시작했으며, CEO까지 역임했다. 이 회사는 1891년에 설립되어 태국의 대표적인 에너지 드링크 M-150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 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유명한 기업가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가수로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여느 CEO 답지 않은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유지한 것도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예술가적인 끼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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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포브스

또한 그는 방콕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며 디지털 마케팅, 금융 및 투자 계획, 비디오 게임 및 인터랙티브 미디어 제작 등과 같은 파격적인 학과를 신설해 교육 분야의 현대화를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광고 대행사인 스파 애드버타이징Spa Advertising(현재는 스파-하쿠호도 Spa-Hakuhodo로 변경)를 설립하고 여성을 위한 잡지를 출간했으며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그뿐만 아니라 열정적인 예술 컬렉터로서 수십 년 동안 피카소, 데미안 허스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태국 현대 회화도 다수 수집하며 컬렉션을 이뤄 나갔다. 이는 72세의 나이에 사진작가로 데뷔했을 만큼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이처럼 전 세계의 작품을 감상하고 모으며 예술적 안목을 키웠던 그는 태국 현대 예술의 작품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서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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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포브스

그는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저는 태국 현대 미술이 국제 미술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거나 잠재력이 있는 작품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라며 “아마도 두세 명의 예술가를 제외하고는 태국 미술이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라며 태국 현대 미술이 세계 무대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가 작품을 수집한 것은 그저 순수하게 예술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방대한 컬렉션에 대한 질문에 절대 투기나 투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만큼 그는 예술 컬렉터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술이 ‘평범하며 얄팍한 사고방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현재의 순간을 숙고하고 경험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 그가 평생 과업으로 여겼던 딥 방콕은 태국의 현대 미술이 국제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그의 꿈은 그의 아들인 푸랏 오사타누그라Purat Osathanugrah가 이어받아 실현해 나갈 예정이다. 여기에 현대 아시아 미술에 뛰어난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펫치 오사타누그라가 컬렉션을 구성할 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와코 테즈카Miwako Tezuka가 딥 방콕의 초대 이사로 발탁되면서 프로젝트 진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미술관의 건축적인 아름다움

이 미술관은 방콕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새로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지어졌던 약 1,995평 규모의 강철 창고를 개조해 조성했다. 태국 출신 건축가 쿨라팟 얀트라사스트Kulapat Yantrasast와 그가 설립한 WHY 아키텍처 WHY Architecture가 설계를 맡았으며, 총 3층 건물에 11개의 갤러리와 중앙 안뜰, 야외 조각 공원, 특별 이벤트를 위한 펜트하우스 등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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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HY 건축회사 인스타그램

스튜디오에 따르면, 미술관 전체에 깔려 있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불교의 ‘깨달음’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이면서도 사원 같은 엄숙함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들어서자마자 차분함을 느낄 수 있는 건축 디자인에 누구나 사색과 명상을 누릴 수 있을 듯 보인다. 그와 더불어 미술관이 세워진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요소들은 이곳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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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rchinect

1층은 노출된 콘크리트 표면을 유지하여 과거 창고로 활용되었던 건물의 산업적 특징을 간직하고 있으며, 거친 질감을 통해 현실적인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2층은 성찰의 공간으로, 이 건물의 과거를 느낄 수 있는 오래된 태국-중국식 창틀을 남겨두어 공간과 역사의 깊은 연결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러우면서도 미묘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박물관의 이름인 ‘딥 Dib’에도 반영된 것으로, 이 단어는 태국어로 ‘날 것’ 혹은 ‘자연 상태’를 의미한다.

최상층은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백색의 큐브형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물관의 특징적인 실루엣을 형성하는 톱니형 지붕이 자리 잡고 있다. 모자이크 타일로 둘러싸인 원뿔형 갤러리 ‘채플The Chapel’은 몰입형 예술 설치를 위한 명상적 공간으로 설계되어, 관람객들에게 깊이 있는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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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archinect

태국 현대 미술의 세계화를 견인하는 동시에 작가·큐레이터·대중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글로벌 아트 허브로 자리할 이 미술관은 곳곳에 상징적인 요소가 담겨있어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감성을 선사할 예정이다. 그와 더불어 보는 것만으로도 정화되는 건축 디자인은 태국이 지닌 예술적인 매력을 한층 더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개관전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예술의 향연

개관전 ‘보이지 않는 존재The Unseen’는 펫치 오사타누그라의 예술적 비전을 기리는 전시회로, 그의 방대한 컬렉션에서 선정된 주요 작품들이 공개될 예정이다. 그와 함께 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몬티엔 분마Montien Boonma의 설치 작품을 비롯해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알리샤 콰데Alicja Kwade의 대형 조각 작품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불 작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어서 더욱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시회에서는 현대미술에서 보이는 힘과 숨겨진 힘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예술적인 시도를 조명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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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딥 방콕 인스타그램

전 세계 200명 이상의 예술가가 제작한 1,000점 이상의 작품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 미술관은 오는 12월에 개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이 미술관은 예술을 상상력과 창의력의 결정체로 소중히 여기며, 지역 사회와 관람객 모두에게 선구적인 정신을 구현하는 공간이자 영감을 주는 오아시스가 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방문객들에게 명상과 현대 미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는 이 다채로운 예술 공간은 태국 현대미술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서 역할을 하며, 동시에 방콕에서 꼭 들러야 할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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