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랜딩 딕셔너리] 이딸라
핀란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딸라가 대대적인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브랜드의 새 시대를 열어가려는 이딸라의 유쾌하고 실험적인 태도를 살펴보자.
핀란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딸라는 지난 2월 새로운 로고와 서체, 룩앤필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브랜드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린 것은 이딸라의 인스타그램 계정. 263K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이 계정은 그간의 피드를 모두 삭제하는 이른바 ‘계삭’을 시전하며 스턴트(stunt) 마케팅을 펼쳤고 3월 현재 33개의 피드만이 게시되어 있다.
스턴트 마케팅은 오랜 역사와 두꺼운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가 리브랜딩할 때 종종 활용하는데 최근 보테가 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이 그 흐름을 주도했다. 계정 프로필은 ‘1881년에 설립한 아방가르드 디자인과 컬러 유리의 선구자. 우리의 창조적인 세계에 빠져들기: iittala.com’으로 브랜드의 보이스 톤마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변화의 핵심은 로고와 서체다. 약 70년간 이딸라의 시그너처였던 빨간색 i-로고는 티모 사르파네바(Timo Sarpaneva)가 1956년에 i-글라스 시리즈를 디자인하면서 만든 것이 시초로, 리뉴얼과 현대화를 거쳤다. 새로운 로고는 1892년 이딸라 로고에서 영감을 얻어 그래픽 디자이너 알렉시 타미(Aleksi Tammi)가, 서체는 타미와 함께 타이포그래퍼 괴란 쇠데르스트룀(Göran Söderström)이 힘을 보태 완성했다.
결합된 T는 오래된 브랜드의 뿌리를 상징하며 설립 연도인 1881년을 넣어 역사와 유리공예의 전통에 대한 경의를 표했으며 미적 균형을 위해 A를 중심으로 디자인했다. 서체명 ‘아이노’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 아이노 알토(Aiono Aalto)의 이름에서 따온 것. 아이노 알토는 이딸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산한 글라스웨어 컬렉션(1932년 출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1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핀란드 국민 브랜드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2023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한 야니 베프셀레이넨(Janni Vepsäläinen). 영국 왕립예술학교(RCA)를 졸업하고 JW 앤더슨을 포함한 럭셔리 패션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예전에 이딸라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다르고 예상치 못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우리는 앞서가는 생각, 대담함, 실험적인 디자인 브랜드라는 이딸라의 창립 이념을 강화하고 있다”라고 밝힌 그의 포부는 아티스트 협업 방식의 재정의,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컬렉션 출시로 이어진다.
그 첫 번째 협업은 런던 기반의 사운드 및 비주얼 아티스트 담셀 엘리시움(Damsel Elysium)과 이뤄졌는데, 엘라시움은 이딸라의 유리공예 장인과 함께 2m 크기의 뿔 또는 종 형태부터 라일락, 살몬 핑크, 라이트 그린 컬러까지 다양하고 독특한 유리 악기와 오브제 시리즈를 제작했다.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창작, 테스트, 실험을 도모한다는 이딸라의 사명을 실천하는 단계로, 유리공예의 전문성과 예술적 비전을 결합해 그 경계를 넓히고 완전히 새로운 오브제를 선보이겠다는 의도다. 브랜드의 전통성에 집중해 로컬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와 노르딕, 핀란드의 정체성을 프로모션해왔던 그간의 협업과는 분명 다른 태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동시에 이딸라 플레이(Play) 컬렉션도 내놓았다. 이 컬렉션은 베프셀레이넨이 프랑스 남부 방스(Vence)에 있는, 앙리 마티스가 디자인한 로제 성당의 유기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세부 요소와 컬러에 감명받아 디자인했다. 가족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기보다 그릇 하나에 음식을 담아 소파나 책상 앞에서 담요를 덮은 채 각자 식사하는 동시대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것으로, 사려 깊고 생동감이 넘친다.
용도에 따른 온갖 식기를 갖추는 대신 예쁜 볼을 액세서리 보관함으로, 와인 디캔터를 화병으로도 활용하는 현대적 실용성과 다목적성도 충족한다. 이렇듯 리브랜딩을 통해 브랜드의 새 시대를 열어가려는 이딸라의 실험적이고 유쾌하며 미래지향적인 태도는 알바르 알토의 명언에서 그 뒷심을 얻는다. “놀이를 잊지 마세요(Don’t forget to 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