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유이화 대표

아버지의 이름으로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유이화 대표에게 세대를 잇는 창작열에 대해 들어보았다.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유이화 대표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유독 디자이너의 직업 수명이 짧은 나라다. 이유는 다양하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작은 내수 시장, 기형적인 산업 구조. 하지만 여러 난관 속에서도 오랜 기간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닦는 창작자도 있다. 그리고 때로 그 길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일 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 이름 유동룡)의 유지를 체화한 건축가 유이화는 그 정신을 미래 세대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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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 겸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이사장. 이타미준건축연구소 서울지사를 설립한 2002년부터 이타미 준이 타계한 2011년까지 건축과 인테리어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대표작으로 제주 유동룡미술관(이타미 준 뮤지엄), 칠곡 시호재, 한동대학교 하늘소리, 아주 좋은 꿈터, 핀크스 비오토피아 타운하우스, SK 기흥 아펠바움, 쌍용 오보에힐스, 서원힐스 CC 클럽하우스, 제일전기 사옥, 이노이즈 사옥 등이 있다. 한국건축가협회상(2023, 2024), iF 디자인 어워드(2016, 2018, 2023, 2025), 독일 디자인 어워드(2019, 2025), JCD 어워드(2004) 등에서 수상했다. 현재 원주시 총괄건축가와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itmarch.com

건축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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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재. ‘시간을 향해 쏘는 활(時弧齋)’이라는 뜻의 복합 문화 공간이다. 그 이름처럼 건축주가 머무는 주택 양옆으로 두 동이 뻗어 있는 형태가 활시위 같기도 하고 두 팔을 벌린 모습 같기도 하다. 건축·공간 디자인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시공 인터불고건설 인테리어 시공 지음디자인그룹 조경 더가든(대표 김봉찬) 구조 서진ENC 기계 서원이엔씨 전기 한국티이씨 사진 김용관
복합 문화 공간 겸 프라이빗 레지던시 시호재가 2025 독일 디자인 어워드 우수상과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에 이어 최근 iF 디자인 어워드까지 수상했어요.

경상북도 칠곡에 위치한 시호재는 아버지와 오랜 인연이 있던 건축주의 의뢰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어요. 사실 처음부터 상업성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업가이자 미술 수집가인 건축주는 출가한 자녀들도 종종 와서 머무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원했어요. 워낙 방대한 컬렉션이 있다 보니 여기에 수장고 기능이 붙고, 작은 미술관과 카페까지 더해지면서 이 모든 것을 소화할 건물이 필요했습니다. 부지는 팔공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장점이 있었지만 주변으로 슬레이트 지붕의 오래된 양옥이 무질서하게 자리해 있었어요. 아름다운 원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근경의 시선을 적절히 차단하는 게 숙제였죠. 그래서 담으로 기능할 수 있는 건물을 설계했습니다. 좋은 조경가를 선택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더가든 김봉찬 대표에게 협업을 제안했죠. 팔공산 자락의 추임새 같은 건축을 지향하며 설계했습니다.

접근성이 썩 좋은 곳은 아닌데 문을 열자마자 화제가 됐던 걸로 기억해요.

맞아요. 김천구미역에서 50분, 동대구역에서 1시간을 가야 하는 곳이라 이렇게까지 관심을 끌 줄 몰랐죠. 그런데 오픈과 동시에 400~500명이 시호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상황을 보면서 건축 자체가 관광 콘텐츠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습니다. 대중이 이런 공간을 너무 갈망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더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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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재 내부. 팔공산에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를 바탕으로 삼는다는 생각으로 노출 콘크리트에 검은색으로 마감했다. 사진 김용관
그게 바로 건축과 공간 디자인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싶어요. 지난해 11월 문을 연 페즈 역시 큰 주목을 받았잖아요.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의 많은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페즈 역시 첫 아이디어는 건축주에게서 나왔어요. 인터랙티브 컴퍼니 디지털다임을 운영하는 임종현 대표가 구상했던 것은 일종의 커뮤니티 몰이었어요. 같은 부지에서 10년 이상 회사를 운영한 터라 인근 주민들의 행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죠. 한남동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진 이곳은 한적하게 산책을 즐기는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어요. 이들이 편하게 들어와 머물다 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임종현 대표의 생각을 구현할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만큼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건물을 통해 비즈니스의 외연을 확장하는 비전도 공유해주었죠. 사실 부지는 약간의 지리적 한계를 안고 있었습니다. 다소 좁은 면적이라 조경에 힘을 주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경험의 중심을 수평 대신 수직에 두었어요. 지하 광장부터 6층까지 얽히고설킨 동선을 따라 마치 탐험하듯 걷도록 했죠. 익숙한 광경을 탈피하는 게 목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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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즈. 이름은 모로코 지역의 천년 고도 ‘페즈Fez’에 힐링과 한남동을 뜻하는 알파벳 ‘H’를 합친 것이다. 도시와 사람, 자연이 교차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가장 작은 도시’를 표방한다. 건축·공간 디자인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시공 더프레임종합건설(대표 최석환) 구조 황경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진구조엔지니어링(대표 김윤진) 기계 서원이엔씨 전기 한국티이씨 토목 유진이엔지 조경 더가든(대표 김봉찬) 조명 비츠로앤파트너스(대표 고기영) 뮤직 바 인테리어 시공 이녹스(대표 김영) 건축 음향 아키사운드(대표 임우승) 사진 제공 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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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즈 내부. 광장, 갤러리형 매장, 라이브러리, 리트리트 공간 등이 밀집한 일종의 수직 도시다. 사진 제공 페즈
부지 면적의 한계, 수직적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이전에 설계한 이노이즈 사옥이 떠올랐어요.

사실 임종현 대표에게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를 적극 추천한 사람이 홍순기 이노이즈 대표였어요. 시호재처럼 자연 속 공간을 설계하는 일과 도심형 건축을 설계하는 것은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해요. 전자의 경우 이미 주어진 자연이라는 콘텐츠를 얼마나 잘 끌어들이냐가 관건이라면, 밀도 높은 도심지에서는 제한된 상황을 얼마나 잘 극복하고 활용하느냐가 중요하죠. 이노이즈의 경우 대지 면적이 175.2m²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면적이 작아도 피난계단을 설치하는 것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죠. 계단까지 고려하면 가용 면적이 너무 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구책으로 생각한 게 아예 이 계단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었어요. 건축주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노이즈의 업무 방식이 ‘따로 또 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프로젝트별로 5~6명씩 팀을 이루기 때문에 계단을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독립성이 보장된 또 하나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페즈도, 이노이즈도 클라이언트의 목적을 충실히 반영한 건축을 하고자 했습니다.

아버지이자 스승, 이타미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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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교회. 수水, 풍風, 석石, 지地 미술관에 이어 작업한 또 하나의 건축물로 ‘하늘(空)의 교회’라고도 부른다. 지형과 자연과의 일체감, 특히 주변 언덕이나 하늘을 의식한 지붕 선의 조형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구조의 철골에 각파이프를 사용하고, 그것을 목재로 감싸 합성 소재를 만들었다. 기둥과 보는 모두 이 합성재로 통일했고, 외부 파사드 역시 이 합성재와 유리로 구성했다. 나무와 유리의 연속되는 스트라이프가 빛과 그림자를 내부에 끌어들여 안팎의 경계를 허문다. 건축·공간 디자인 이타미 준 아키텍츠(대표 이타미 준) &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건축 및 인테리어 시공 엄지하우스 사진 Sato Shinichi
건축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건축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건축은 순수예술이 아니니까요. 저는 예술가 이타미 준의 세계에 오래 몸담았지만 건축가 이타미 준의 세계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해요. 아버지는 생전에 제게 “(자기 건축 세계가 완성되기 전인) 젊은 건축가는 많이 들어야 한다”라고 조언했어요. 아버지 역시 천생 예술가였지만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는 최대한 귀를 열어두었죠. 건축가가 처음부터 자기 세계를 공고히 세울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 역시 젊은 건축가로 시작해 대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상대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는 무례한 건축주도 있었고요. 저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때로 통역도 했어요. 그러면서 경청과 설득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지금도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의 제1원칙은 건축주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최우선 가치는 건축주를 성공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디자이너가 똑같지 않나요? 클라이언트의 성공과 제 성취가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실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 설득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디자이너의 책임이고요.

확실히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분이었어요. 결코 자신을 나태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가족 휴가를 갔을 때 정도를 제외하면 아버지가 소파에 늘어져 있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평생 20평 남짓한 집에 살아 소파 놓을 자리도 없었지만.(웃음) 일과도 당신이 정한 루틴을 정확히 지켰어요. 늘 일찍 일어나 홀로 산책하고 아침 식사로 현미죽과 견과류를 드셨죠. 신문을 읽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메모나 스케치를 했고요. 사무실에는 항상 걸어서 출근하셨고 퇴근 후엔 산책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셈이죠. 이처럼 일상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저에게 가르침이었어요.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아버지의 이름이 싫거나 부담스러운 적은 없나요?

결국 모두가 누군가의 자녀잖아요. 누구나 스승이 있고요. 저는 이타미 준이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다는 것이 오히려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타미 준의 딸이 아닌 유이화라는 이름을 더 드러내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인테리어의 경우 아버지와 별개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좀 있었기 때문에 디자인 언어가 채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성급히 작품을 발표했던 것이죠. 지금 보면 말 그대로 ‘이불 킥’을 날리고 싶은 디자인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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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크스 비오토피아 타운하우스와 모델하우스. 아버지와 협업한 초창기 프로젝트로, 제주도의 오름에 순응하는 건축을 설계했다. 건축·공간 디자인 이타미 준 아키텍츠(대표 이타미 준) &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시공 현대산업개발 인테리어 시공 엄지하우스, GNB, 바우하우스 사진 김용관
그렇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한동안 공개적으로 프로젝트를 발표하지 않았잖아요.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말 힘든 시간을 겪었어요. 창작자로도 깊은 정서적 교류를 나눴던 만큼 상실감도 컸죠. 지갑에 단돈 1만 원이 없을 때가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고요. 더 이상 제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발표하지 않았을 뿐 크든 작든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갔습니다. 10년쯤 잠잠히 있다가 발표한 것이 유동룡미술관이었어요.

오랜 침묵을 깬 만큼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한 일인 만큼 부담도 컸을 것 같고요.

아버지와의 시간, 경험, 감정을 일단락 짓는 느낌으로 프로젝트에 임했어요. 물론 부담도 컸죠. ‘아버지만 못하다’라는 소리를 듣기에 딱 좋잖아요. 잘해야 본전이죠. 그래도 최소한 ‘이타미 준의 미술관답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십 개의 안이 나왔고, 직원들이 가장 힘들어한 프로젝트이기도 했어요.(웃음)

이타미 준과 제주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섬의 무엇이 그토록 그를 매료시켰을까요?

여생을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고 말씀하실 정도였어요. 제주도 음식이 당신 입맛에 잘 맞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주도의 친근한 야생을 사랑하셨어요. 외국의 숲은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날 정도로 장대하고 그만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죠. 하지만 제주도의 야생은 휴먼 스케일입니다. 지금은 많이 개발됐지만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게 제주도의 가장 큰 장점 같아요. 아버지는 거센 제주의 바람에서도 어떤 생동감을 느끼셨어요. 한 명의 생활인으로서, 창작 활동을 하는 건축가로서 제주도는 매력적인 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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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룡미술관. 지역의 문맥과 전통에 뿌리를 둔 이타미 준의 건축 사상과 주요 건축 언어를 의식해 설계했다. 특히 이타미 준의 주요 테마인 ‘바람’을 의식하고 제주의 풍토에 순응하며 주변 곶자왈의 수평적이고 고요한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외벽은 옹이 문양의 노출 콘크리트로 나무의 결이 그대로 느껴지게 했다. 건축·공간 디자인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시공 다온종합건설 구조 윤구조기술사사무소(대표 황윤선) 기계·전기 웅진ENG 조경 더가든(대표 김봉찬) 조명 비츠로앤파트너스(대표 고기영) 사진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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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룡미술관 내부. 이타미 준의 시그너처인 먹색으로 연출한 라이브러리, 이타미 준이 남긴 제주 대표작을 망라한 2층 상설 전시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 김용관

미래 세대로 이어지는 건축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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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건축학교에서의 활동.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 이야기도 좀 나눠볼까요? 현재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요.

사실 재단 설립 자체가 평생 가난을 각오해야 하는 만큼 결심이 쉽지 않았어요.(웃음)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은 철저히 아버지의 철학을 알리는 목적으로 세웠습니다. 유동룡미술관을 기념관이 아닌 미술관으로 등록한 것은 건축을 설계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다움에 대해 고민한 결과였답니다. 아버지의 철학을 동시대 작가들과 나누고, 젊은 작가에겐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아버지다운 것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에선 어린이 건축학교와 청소년 건축학교도 운영합니다.

전시 사업 외에 아버지의 철학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교육을 떠올렸어요. 아파트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교감하는 방법, 환경을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돌, 나무, 흙 등 자연 소재를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는 방법부터 이를 통해 자기 생각을 담은 무언가를 만들기까지가 수업의 주를 이룹니다. 사실 교육 역시 녹록지 않은 사업이지만 감사하게도 여러 기업과 건축주의 후원으로 프로그램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전시를 통해 얻은 잉여 수입도 건축학교에 투자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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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유이화가 아버지의 이름과 더불어 활동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디자인을 대할 때 아버지와는 다른 접근 방식도 필요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아마 마스터 아키텍트의 마지막 세대라고 보아야 할 거예요. 기념비적 건축물을 남기는 게 건축가의 소명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요즘 저는 그것만으로 훌륭한 건축가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더불어 제가 존경하는 건축가가 시게루 반입니다.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라 저도 곁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죠. 종종 그를 만나면 “건축가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말입니다. 저와 스케일이 너무 달라 부담스럽긴 하지만 말이죠.(웃음) 아버지 역시 제게 “건축가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선 안 된다. 시대를 읽을 때 동시대에 메시지를 남기는 건축가가 된다”라고 했어요. 더 이상 제 이름을 남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이로움을 전하느냐가 중요하죠. 그래서 최근에는 느닷없이 목조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아직 산업과 법령 사이에 엇박자가 나고 있긴 하지만 스스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건축가인 동시에 디자이너라는 점도 유이화라는 창작자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둘 사이의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요. 제 대학교 때 전공이 실내 환경 디자인이거든요. 실내를 다루지만, 환경을 아우르다 보니 건축을 공부해야겠더군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를 넘나들 때 유기적인 공간이 완성됩니다. 결국 사람이 들어가야 공간이 완성되니까 실내에서 휴먼 스케일 역시 고려해야 하고요. 건물 안팎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도 관건입니다. 일례로 실내 디자인에서 창문을 뚫어야 하는 위치가 있는데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될 경우 입면이 깨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안과 밖이 끊임없이 소통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우리 사무소에도 인테리어 팀과 건축 팀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 의견을 공유하며 의견을 개진해요. 화장실 위치와 동선, 환기와 채광을 둘러싼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에요. 더러 다툴 때도 있죠. 그런데 분명히 합의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어느 쪽도 버릴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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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소리 기도실. 한동대학교 캠퍼스에 있다. 한정된 예산을 고려해 마감은 일체 생략했고, 조형 언어는 오롯이 의미에 초점을 맞춰 설계했다. 언덕의 시작 부분에도 의미를 두어 묵상의 길을 만들었다. 캔딜레버 구조로 천장을 잡아주어 십자가가 지닌 묵직한 의미를 담았고, 십자가 위로 자연광이 흘러 들어오게 해 하늘과의 소통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건축·공간 디자인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대표 유이화) 시공 아커스디앤씨 (대표 이상용) 구조 윤구조기술사사무소(대표 황윤선) 기계 서원이엔씨 전기 한국티이씨 조명 비츠로앤파트너스(대표 고기영) 사진 김용관
건축가인 동시에 디자이너라는 점도 유이화라는 창작자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둘 사이의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는 것 같아요. 제 대학교 때 전공이 실내 환경 디자인이거든요. 실내를 다루지만, 환경을 아우르다 보니 건축을 공부해야겠더군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를 넘나들 때 유기적인 공간이 완성됩니다. 결국 사람이 들어가야 공간이 완성되니까 실내에서 휴먼 스케일 역시 고려해야 하고요. 건물 안팎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도 관건입니다. 일례로 실내 디자인에서 창문을 뚫어야 하는 위치가 있는데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될 경우 입면이 깨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안과 밖이 끊임없이 소통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우리 사무소에도 인테리어 팀과 건축 팀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 의견을 공유하며 의견을 개진해요. 화장실 위치와 동선, 환기와 채광을 둘러싼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에요. 더러 다툴 때도 있죠. 그런데 분명히 합의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어느 쪽도 버릴 수가 없죠.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3호(2025.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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