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액티비즘의 현주소, 일상의실천
디자인플러스의 디자인과 개발을 맡은 일상의실천을 만났다. 올해 11년차에 접어든 이들은 대한민국 디자인 액티비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같은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세 친구는 당시 캠퍼스에 남아 있던 군기 문화가 영 거슬렸다. 이 불편한 감정은 술자리 뒷담화로 풀고 끝낼 수 있었지만 이들은 이런 부조리를 작업으로 표현했다. 당연히 관계자들은 불편해했고 이후로도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걷던 세 사람은 이내 더 많은 부조리와 맞닥뜨려야 했다. 역시나 내 일이 아니라고 눈감을 수 있었지만 이때도 그런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이번에는 수많은 시민 단체와 연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일상의실천이라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는 우리가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10년 넘게 묵묵히. 대한민국 최장수 종합 디자인 전문지는 이런 뚝심을 믿었다. 제호와 커버 디자인, 그리고 웹사이트 ‘디자인플러스’의 디자인 파트너로 이들을 낙점한 이유다. 3월 7일, 디자인플러스 오픈 바로 다음 날 세 사람을 만나 실천하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디자인플러스, 월간 〈디자인〉

작년부터 준비한 웹사이트 디자인플러스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습니다. 이제 겨우 1차 오픈이긴 하지만 수고 많았습니다.
권준호 무사히 오픈해 무척 기쁩니다. 월간 〈디자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불특정 다수가 아닌 전문 디자이너들이 주로 찾는 웹사이트인 만큼 부담도 됐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해 의욕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김경철 도메인(www.design.co.kr)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과연 ‘디자인’이라는 고유명사를 도메인에 걸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될까요? 상징성이 큰 만큼 즐겁게작업했습니다.
김어진 두 사람보다는 한발 떨어져서 꽤 길고 지난한 과정을 겪는 것을 지켜봤어요. 웹사이트 디자인의 방향성을 논의할 때 권준호 실장이 ‘웹 태생이 아닌 스튜디오가 개발과 디자인을 병행하며 국내 디자인 신에서 가장 유의미한 사이트를 개편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게 큰 영광’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게 기억에 남네요.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였다고 봅니다.
김경철 사실 이제 시작이죠.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프레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의 20~30%밖에 되지 않잖아요. 앞으로의 과정도 잘 풀어가야겠죠.
월간 〈디자인〉 제호에 관한 이야기도 해보죠.
권준호 어떤 브랜드는 이름 자체로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이름이 독특하거나 알파벳의 조합에서 언어유희를 즐길 수 있는 경우죠. 보통 이럴 때 아주 작은 시각적 위트만 가미해도 충분히 아이덴티티로서 힘을 갖습니다. 반면 월간 〈디자인〉은 이 부분이 가장 큰 숙제였습니다. ‘디자인’ 자체가 그냥 고유명사니까. 더욱이 48년이나 된 매체이고 긴 시간 제호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욕심도 있었기 때문에 트렌드에 편승할 위험이 있는 장식성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제호 자체는 무난하게 가되 약간의 포인트로 차별화하기로 했습니다. 악치덴츠 그로테스크(Akzidenz Grotesk) 같은 뿌리 깊은 서체를 기반으로 스케치를 시작했고 ‘g’에 약간의 변주를 주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전체 콘셉트는 일상의실천이 정했지만, 디테일을 잡아준 것은 양장점 양희재 실장이었습니다. 미세한 기울기와 꺾임을 수십 차례 조정하면서 최적의 조형을 찾았죠.

디자인 권준호, 김경철
개발 임현지, 김경철
도움 신지웅, 유환준

협업 양희재(양장점)
실천하는 10+1년
지난해 10주년 기념 전시가 파트너로 일상의실천을 낙점하는 데 마음을 굳힌 계기였어요.
권준호 스튜디오 입장에서도 꽤 시의적절했습니다. 많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그렇듯 일상의실천 역시 편집과 그래픽에 초점을 맞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웹사이트나 부가 인쇄물 등을 통합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사용자 경험이 온전히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감했습니다. 현재 김어진 실장과 제가 그래픽과 브랜딩을, 김경철 실장이 웹을 비롯한 모션과 3D 아트워크 등을 전담하는 구조인데,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작업 방식이 갖춰진 상태라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김어진 아마 4~5년 전쯤 같은 제안이 들어왔다면 엄두도 못냈을 겁니다. 흔히 일상의실천은 디자인만 하고 개발자가 외부에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김경철 실장이 개발과 디자인을 병행합니다. 일종의 브리지가 되어 저나 권준호 대표와 협업하는 것이죠.
김경철 실장도 원래 그래픽에서 출발했잖아요. 어쩌다 웹으로 전향하게 됐나요?
김경철 성향 자체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큰 틀을 짜놓고 부분적으로 계속 수정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 자체가요. 얼핏 뚝딱 만들어낸 것 같은 페이지도 완성까지 수개월이 걸리는데 그런 과정도 그리 힘들지 않고 말이죠.
김어진 김경철 실장이 정통 그래픽 디자인에서 출발해서 마치 조판하듯 하나하나 세심하게 다듬는 특징이 있어요. 그런 집요함이 이번 프로젝트에도 반영되었죠.
김경철 세 사람이 공동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장점 같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운영하는 체제였다면 한 명만 전문 영역을 바꿔도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는데 우리는 다른 2명이 그래픽을 맡아주고 있으니, 웹으로 전향하는 부담도 적었어요.
말이 나온 김에 스튜디오 운영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오랫동안 이만큼 일관된 원칙과 감각을 유지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권준호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보면서 생긴 믿음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할 때나 같이 밥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나. 그 과정에서 바뀌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아요. 20년 전 학생으로 만났을 때의 모습 말이죠. 스튜디오 설립 초기에 김어진 실장이 “우리 셋 중 누구 하나라도 돈독 오르면 끝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프로젝트를 정할 때 예산보다 프로젝트의 가치와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 가치라는 게 무엇인가요?
김어진 세 사람 중 한 명이라도 동의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면 진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의 정치적 스탠스일 수도 있고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기업의 프로젝트일 수도 있어요.
권준호 최소한의 필터링을 거친다는 뜻입니다. 아쉽게 얼마 전 휴간됐지만 우리와 오랫동안 작업했던 〈워커스〉의 덕도 많이 봤어요. 밖에서 알기 힘든 기업의 불편한 이슈가 있을 때 편하게 연락해서 물어봤죠. 일간지에서는 단신으로 훑고 넘어가는 이슈도 심층 취재를 하니까 저희도 많이 배웠습니다.
김어진 그런데 사실 이것들은 이분법적으로 갈라내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가치를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그래픽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는데 2000년대 말에 작업한 밴드 오케이 고OK Go의 앨범 커버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당시 사그마이스터는 이미 어느 정도 반열에 올라 있었던 반면 밴드는 무명에 가까웠죠. 밴드 멤버들이 그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 사그마이스터가 음악을 듣고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결정하겠다고했대요. 실제로 음악을 듣고 너무 좋아 앨범을 디자인하기로 했고요. 돈 이상의 가치를 본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일을 하면서 아직 미흡한 서비스나 행사를 디자인으로 무마해보려는 경우를 왕왕 봅니다. 그건 디자인으로 현란한 눈속임을 하는 꼴이죠. 일상의실천은 바로 그 지점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권준호 얼마 전에는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가 쓴 책을 의뢰받았습니다. 출판사 규모도 크지 않고 일정도 촉박했던지라 제안을 하면서도 무척 조심스러워하더군요. 그때 선뜻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하니 담당자가 깜짝 놀라더군요. 그런 것이 우리 안에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네요. 처음부터 가치관과 지향점을 깨는 스튜디오는 아마 없을 겁니다. 대부분 조직의 규모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희석되는 것이죠. 이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하네요.
김어진 업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 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커지면 작업에서 손을 뗀다고 하더라고요. 작업을 일일이 챙길 수 없으니까 실무보다 디렉터로서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죠. 반면 일상의실천은 3명의 공동 창업자가 여전히 실무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그것이 스튜디오의 정체성과 감도를 유지하는 비결 같아요. 자기 복제를 치열하게 경계하는 것도 크리에이티브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요.
권준호 스튜디오 규모를 늘리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부터 나름대로 강구책을 마련했어요. 이를테면 김어진 실장에게 실무에서 ‘행동대장이 되어달라’고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상대적으로 소규모 전시 프로젝트를 많이 담당했기 때문에 더 과감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말이었죠. 작업 자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해내려고 하는 김어진 실장의 성향을 고려한 요청이었는데 그런 작업에 대한 집요한 태도가 일상의실천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의견 개진 과정에서 다투는 경우는 없나요?
김경철 없지는 않죠. 아무래도 다른 두 실장은 웹사이트의 기술적인 부분은 깊이 알지 못하니까.
권준호 나는 싸운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싸우는 것이었어?(웃음)
김어진 나는 권준호 실장한테 혼나는 건 줄 알았는데?(웃음)
김경철 ….


디렉터 권준호
디자인 권준호, 김선민
사진 김진솔
글 쓰는 디자이너

스튜디오의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웃음) 행동대장답게 김어진 실장은 2015년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김어진 사실 제안이 왔을 때 의아했어요. 권준호 실장처럼 글을 즐겨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써본 적도 없으니까.
권준호 편집자가 내 블로그에 김어진 실장이 단 댓글을 본 게 아닐까?(웃음)
김어진 그럴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 책도 일상의실천의 성향과 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보통 매체에 실린 인터뷰를 보면 에디터들이 인터뷰이의 말을 유려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주잖아요. 독자들이 일종의 추앙을 할 수 있도록. 그걸 읽으며 꿈을 키우기도 하지만 때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괴리를 느낀다고 해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 같고. 그런데 실상 작업실을 운영하는 건 그렇지 않잖아요. 여러 현실적인 문제와 시시각각 부딪히며 골머리를 앓죠. 그런 과정을 솔직히 밝히고 싶었어요. 약간의 운도 따랐던 게, 당시 일상의실천과 비슷한 시기에 설립한 스튜디오가 꽤 많았어요. DDBBMM, 오디너리피플, 물질과 비물질…. 실장들의 연령대도 비슷해서 더 진솔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어요. 서문을 가장 마지막에 썼는데 그때도 솔직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거품을 빼고 담백하게 제가 걸어온 길을 담으려고 애썼는데, 돌이켜보면 어쩔 수 없이 저도 포장을 좀 한 것 같아요. 지금 그 책을 보면 좀 부끄러운데 서문이 가장 부끄러워요.(웃음) 그래도 책의 완성도를 떠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책이었다고 봅니다. 가끔 혼자 서문을 읽으며 초심을 되뇌기도 해요.
권준호 실장은 지난해 두 번째 책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을 냈어요.
권준호 학생 시절부터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지향점과 기준 같은 게 있는데 그저 생각으로만 남겨두면 흐릿해질 것 같았거든요.저도 오래전부터 김어진 실장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클라이언트와의 미묘한 신경전이나 작업실 안에서 경험하는 고충이 있는데 보통 책에서 저자인 디자이너들은 마치 그 모든 것을 초탈한 느낌이죠. 저는 디자이너로 살면서 좀 더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한 10년 전쯤 안그라픽스 안마노 대표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마 흘려들었을 것 같은데 스튜디오 9년 차쯤 됐을 때 ‘책을 낼 때가 됐다’고 연락하니 깜짝 놀라더군요.(웃음)
최근 5쇄를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디자이너가 쓴 책으로 꽤 드문 일 같아요.
권준호 인상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시중에 도는 많은 에세이가 위로를 하려고 애쓰잖아요. 사실 저는 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제 책에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어서 의아했습니다. 아마 인턴 생활을 거치면서 혼이 났던 이야기나 부족했던 과거의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풀어낸 것에 위로를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의실천이라는 스튜디오가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으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고 나름의 고충을 겪고 좌충우돌하며 성장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 것이죠. 다른 한편으로 디자이너로 살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던 자신을 돌아보고 정신 차렸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아직 갈 길 먼 디자인 회사이지만 ‘10년 차 스튜디오인데도 여전히 저렇게 치열하게 작업을 고민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주더군요.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일상의실천은 초기부터 자신들의 정치적 소신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정치라는 게 원래 유기체처럼 변하고 성장하잖아요? 예를 들어 스튜디오 설립 초기에는 국내에서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젠더 이슈나 생태주의적 관점이 개입하기 시작했죠. 이런 현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김어진 그걸 위해 따로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하지는 않아요. 운 좋게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의식 있는 클라이언트들이 있었고 그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디자인을 제안하기 위해 그들의 문법을 공부하고 자료를 찾아보며 스스로 외연을 넓혀가는 것이죠. 큰 방향성이 바뀌진 않지만 여러 생각과 관점이 우리 안으로 계속 유입되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 초기에는 스튜디오에 굵직한 윤곽 같은 게 있었다면 조금씩 다른 입장 차이들을 수용하면서 좀 더 몽글몽글해졌다고 할까요?(웃음) 무의식적으로 불쑥불쑥 나오는 잘못된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김경철 최근에는 장애인을 위한 예술 페스티벌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웹사이트를 작업하면서 웹 접근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이전에도 이론으로는 접했지만 실제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실제 시각 장애인이 웹사이트를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크린 리더로 사이트 내 텍스트가 사운드로 전환되도록 해야 했고요. 다음 작업에서는 이런 것을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디렉터 김어진 디자인 및 모션 그래픽 양현호 디자인 도움 안지효 사진 김진솔
표현 방식 면에서도 꾸준한 자기 쇄신이 필요하다고 봐요. 디자이너는 결국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니까 말이죠.
권준호 예전에는 멤버 각자의 색깔이 뚜렷하게 나뉘었다면 점점 서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김어진 실장과 제 자리가 붙어 있거든요. 특별히 워크숍을 진행하지 않아도 서로 스킬을 공유하면서 성장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스며든다는 표현을 써도 될 것 같고요.
김어진 서로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죠. 이런 뒤섞임은 매체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스튜디오 초기만 해도 인쇄 포스터의 비중이 컸죠. 하지만 이제 포스터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딘가에 포스팅되는 모든 것을 두루 설명하는 개념이 되면서 디지털 기반의 작업도 늘어났어요. 시각적인 화법이 바뀐 것이죠.
권준호 예전에 트위터(현 X)에서 ‘일상의실천의 예전 스타일이 그립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실제로 예전에는 아날로그한 느낌이 꽤 강했다면 어느 순간부터 모션이나 3D 작업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직 내부적으로 충분히 논의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예전의 아날로그한 감성을 디지털로 끌어오는 것을 고심하고 있어요. 우리와 함께 일하는 직원, 즉 동료들이 세대교체가 되면서 현실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요즘 AI가 디자이너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은데 이런 방식이 어쩌면 새로운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렉터 권준호 그래픽 디자인 권준호, 안지효 도움 정영선
모션 그래픽 브이코드 웹사이트 디자인·개발 김경철 개발 도움 신지웅



디렉터 권준호 디자인 권준호, 안지효, 정영선 모션 그래픽 브이코드
로고 모션 양현호
마지막 질문입니다. 실천하는 일상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김경철 ‘실천’이라는 단어는 작지만 계속 유지해나가는 루틴 같은 개념과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하루하루 자기 앞에 놓인 것들을 실천하고 그 실천을 모아 루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