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리뷰

건축 전시의 반란, 아프리카를 중심에 두고 탈식민과 탈탄소를 외치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서구 중심의 세계관과 모더니즘 건축을 비판하는 한편, 전통과 공동체의 유산을 재해석함으로써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한다.

2023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리뷰
©Matteo de Mayda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 올랄레칸 제이푸스Olalekan Jeyifous의 인스털레이션 ‘ACE/AAP’. 탈식민과 저탄소라는 비전을 실현할 미래 아프리카로 떠나는
라운지를 연출했다.
AD—WO의 인스털레이션 ‘Ghebbi’. 작품명은 에티오피아 언어인 ‘암하라어’로 벽이나 펜스로 둘러싸인 영역을 뜻하는데 작가는 분리된 전시 공간에 2개의 태피스트리를 연결해 ‘Ghebbi’를 구현했다.
본전시장 입구에서 상영하는 시인 릴 라이언하트 케이프의 영상 ‘Those With Walls for Windows’.

본전시 〈미래의 실험실〉

2010년 이후로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그 자체로 매회 변화를 위한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사회적 위기와 재난에 대응하는 건축을 제시한 201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전선에서 알리다〉를 분기점으로 기후 위기, 탈성장, 페미니즘 등 시대적 동향에 반응하며 현실 참여적 방법론을 모색해왔다. 그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난 5월 20일 개막한 제18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동시대에 작동하는 식민 구조와 탄소 경제에 비판적으로 도전했다. 이 급진적 선언을 주도한 인물은 아프리카계 여성 건축인 최초로 총감독에 위촉된 가나 출신의 스코틀랜드 기획자 레슬리 로코Lesley Lokko다. 건축가, 교육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아프리카 미래 인스티튜트(African Futures Institute) 설립자로 활동하며 식민화와 건축의 관계를 비평적으로 고찰해왔다. 로코가 기획한 올해 비엔날레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은 식민 잔재로부터 가려진 아프리카 및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조명함으로써 오늘날 탄소 경제와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을 넘어서는 건축적 실천을 모색한다. 이에 더해 50 대 50으로 참여 작가의 성비를 맞추고, 나이 및 인종 비율을 재편성해 전시에서의 불평등 및 차별적 구조를 개선하고자 했다.•

•전시장 내 차별 구조에 대한 각성은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비엔날레 최초의 여성 감독 마리아 데 코랄Maria de Corral과 로사 마르티네스Rosa Martinez는 평균 5%에 머물던 여성 작가 비율을 100여 년 만에 30%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체칠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가 기획한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꿈의 우유〉는 여성 작가 비율 90%라는 전복적인 방식으로 이 도전적 정신을 계승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성차별, 불평등, 행성 착취적 산업에 대항하는 문화적 동력을 주시한 로코가 올해 시도한 성비 균형은 백인 남성 건축가 중심으로 작동해온 건축계에 더욱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구조적 차별에 맞선 로코는 건축가를 앞세운 작품 중심의 관행적 전시 구조 또한 문제로 꼬집는다. 올해 비엔날레 참여 작가는 비단 건축가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본전시와 특별 전시에 참여한 89팀의 면면을 보면 실무자로서 건축에 기여해온 건축 사무소 직원, 설비 엔지니어, 연구자, 예술가를 비롯해 건축에 드러나지 않는 주변인과 협력자가 가시화된다. 전시는 건축 디자인의 미학과 건축 해법식 디스플레이를 지양하고, 몫이 없는 존재와 역사적으로 은폐된 일상의 건축에 자리를 내주면서 사실상 근대화, 세계화, 자원 착취를 통한 동시대 자본주의에 대항한다.

이번 건축전은 영상, 설치, 대지 미술, 공예, 출판, 시각 디자인, 연구,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한 장르가 혼용되어 있어 형식 면에서만은 미술전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동시대 미술 전시의 형식과 조건을 과잉적으로 차용한 것이 아닌가 되물을 수도 있지만, 기성 건축 전시의 규범이 도면과 모델이라는 형식에 머물렀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단순히 이를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을 듯하다. 2000년 이후로 건축 전시에서 도면과 모델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속도로 낮아졌는데,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시화된 건축 실무자들의 발언은 건축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사고와 실험에 대한 자율성을 증대하는 일과 연관 있다.

이러한 건축 매체의 다양화는 ‘건축가’라는 바운더리를 넘어 건축 환경에 참여하고 있는 여러 존재를 포용하고 확장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건축 전시에서 간과했던 실험, 기억, 존재, 감각, 물성, 상상력에 대한 여러 논의를 촉발시킨다. 기후 위기, 주택 문제, 환경 문제, 양극화 문제, 전통, 버내큘러 건축에 대한 재조명을 다루는 세부 주제에서는 디자인 중심의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설비, 생태, 공동체, 자원 등 건축을 구축하는 주변 요소를 함께 성찰함으로써 탈탄소 시대에 건축을 재정의하는 포괄적 변화를 시도한다.

〈미래의 실험실〉에서 주인공은 스타 건축가도, 서구의 백인 건축가나 민족지학자도 아닌, 참여 작가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남반구 출신의 다양한 실무자여야 함을 로코는 전시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가, 액티비스트, 시인의 목소리는 건축에서 닫혀 있던 상상과 발언의 자유를 강화하는 협력의 연대를 이룬다. 비엔날레 본전시장에 진입하면 바로 보이는 벽면에는 영상을 높이 설치해 ‘은폐’와 ‘가시화’라는 현재의 국면을 시작점에서부터 전한다. 영국계 시인 릴 라이언하트 케이프Rhael ‘LionHeart’ Cape의 작업으로, 눈을 가린 채 시를 낭독하는 한 남자가 영상에 등장해, 안대로 가려진 시야와 창문, 벽의 은유를 통해 건물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시의 정치적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또한 정교한 태피스트리 구조로 거대한 벽돌 벽을 제작한 글로리아 카브랄 & 사미 발로지Gloria Cabral & Sammy Baloji는 제국주의 건축의 잔해로부터 수집한 건설 폐기물과 유리 조각을 아프리카의 전통 기하학 패턴으로 재디자인해 기억에 대한 주체적 물질화를 시도한다.

이 외에도 다수의 참여 작업은 근대건축과 도시계획, 트로피컬 모더니즘이 실패한 자리를 방관하지 않고 기억과 상상의 힘으로 환기함으로써 도시계획의 정주자로부터 내쫓긴 원주민과 디아스포라의 정신을 일깨운다. 이번 전시는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벨 훅스Bell Hooks가 버내큘러 건축을 주목하는 국제적 관심을 경계하며, 아프리카가 ‘블랙 버내큘러’를 통해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지적한 발언을 상기시킨다. “토착 건축은 결코 익명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훅스의 말은 익명화된 건축이 무명화시킨 존재와 문화가 가진 다중적 힘을 상기시킨다. 식민주의, 인종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에 걸쳐 건축에서 익명화된 존재의 이름을 호명하는 작업이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시작되었다.

©Matteo de Mayda
©Matteo de Mayda
지역, 공동체 및 도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 한국관 〈2086: 우리는 어떻게?〉.
©Matteo de Mayda
©Andrea Avezzù
탈탄소 세계를 위한 건축 실천을 다룬 독일관 〈오픈 포 메인터넌스〉와 슬로베니아관 〈+/- 1 °C: 잘 조율된 건축을 찾아서(In Search of Well-Tempered Architecture)〉.

주목해볼 만한 국가관

각 국가관의 예술감독과 주제는 전체 비엔날레의 총감독보다 앞서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에 본전시의 기획과 상이한 방향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국가관 전시는 본전시의 주제인 〈미래의 실험실〉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식민지적 재편 및 자원 착취 구조를 경계하고 기후 위기에 반성적으로 대응하는 대안적 실천을 보여줬다. 박경, 정소익 두 예술감독이 〈2086: 우리는 어떻게?〉를 주제로 기획한 한국관은 서울이라는 중앙집권적 도시 밖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다룬다. 두 감독은 대도시의 영향으로 파괴, 소멸, 변형을 겪고 있는 지역으로 군산, 동인천, 안산 세 도시를 선정해 각 도시별로 건축가, 예술가, 연구자 및 지역 커뮤니티 일원으로 구성된 참여 작가 팀을 구성했다. 지방 소도시에 만연한 빈집을 상세히 해체함으로써 폐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 군산 팀, 자본 주도의 폭력적 개발에 맞서 15여 년간 배다리마을을 지키고자 투쟁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대립적 풍경으로 다룬 인천 팀, 마지막으로 이주민 노동자의 비뚤비뚤한 글씨체와 서툰 드로잉이 담긴 설문지를 리서치 결과물로 전시한 안산 팀에게서 결코 도면화할 수 없는 소외된 삶의 목소리를 목격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전시장 한가운데에 참여형 설치의 일환으로 마련한 미래의 경제, 사회, 자원, 거주 등을 다루는 질문에 응답하도록 한 TV 퀴즈 쇼 형식의 게임 작품은 관객들의 진중한 호응을 얻었다.

한편 지난 건축전에서 QR코드 하나만 전시장에 두고 텅 비워둔 채 진행했던 독일관은 올해도 어김없이 파격적인 전시 구성으로 이목을 끌었다. 각종 전시 폐기물을 종류별로 분류해 겹겹이 쌓은 독일관 〈오픈 포 메인터넌스Open for Maintenance〉는 2022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이후 각 국가관에서 버려진 건축자재를 일일이 수집해 전시장 전체를 재활용 수집장 혹은 업사이클 작업장처럼 구성했다. 비엔날레가 소비했던 건축자재가 다른 용도의 사물이 되어 도시와 교환 관계를 형성한다는 계획에 따라 전시장에서는 이 과정에 참여하는 테크니션, 활동가, 제작자의 부단한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탈탄소 사회를 위한 건축 행보에 현실적인 역동성을 부여했다.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에 속하는 국가관은 이집트, 남아프리카, 니제르 세 곳이었는데, 그중 가장 최근 비엔날레에 입성한 니제르는 전용 전시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부 장소에서 아프리카의 혼성 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니제르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내년에는 비엔날레 참여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동시대 아프리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정치적 충돌은 여전히 국제 무대에서 은폐되며, 이러한 상황은 대항 문화적 흐름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또 다른 식민적 구조로 고립시켜버리고 만다. 국가관 전시의 다양성과 실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와의 괴리감은 여전히 크기에 이를 줄여나가는 건축적 실천이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다.

심소미

파리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이자 연구자로, 신자유주의 도시와 예술 실천의 관계를 시각예술, 건축, 디자인, 도시 연구에 걸쳐 탐구하고, 이를 큐레토리얼 담론으로 재생산하는 데 관심을 둔다. 주요 기획으로 〈미래가 그립나요?〉 〈리얼-리얼시티〉 〈2018 공공하는 예술: 환상벨트〉 등이 있다.

2023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국가별 전시 내용 분류(국가명 가나다순)

탈 식민으로 재검토한 건축국가관의 물리적·문화적 경계 허물기탈탄소 세계를 위한 건축 실천소비사회와 건축 문화건축 자원과 생태인류세 시대의 물과 인프라유기물로서 건축의 가능성(음식, 균사체, 배설물)문화적 플랫폼으로서 공간
브라질, 영국오스트리아, 일본, 스위스독일, 슬로베니아, 이탈리아라트비아, 미국그리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네덜란드, 바레인, 아르헨티나, 이집트, 칠레, 파나마, 포르투갈벨기에, 스페인, 핀란드멕시코, 에스토니아, 프랑스
주거 권리와 원주민 투쟁해양 자원과 문화지역, 공동체 및 도시의 미래건축의 가치, 건축의 실패를 다시 읽기토착 건축의 부활디지털 기술과 생태테라포밍과 우주 산업대안 페다고지와 건축 재생
캐나다덴마크, 아일랜드체코, 한국, 호주싱가포르, 튀르키예남아프리카, 니제르, 필리핀우르과이, 아랍에미리트, 베네치아, 이스라엘룩셈부르크, 사이프러스리투아니아, 불가리아, 페루

2023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주제 미래의 실험실
기간 5월 20일~11월 26일
장소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아르세날레, 포르테 마르게라 등
이사장 로베르토 치쿠토Roberto Cicutto
총감독 레슬리 로코
웹사이트 labienna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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