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전은 한국관을 중성적인 화이트 큐브가 아닌, 다층적 의미를 품은 유기적 존재로 바라본다. 헌 집과 새 집의 유비를 담은 ‘두껍아 두껍아’의 노랫말에 착안해 주제를 구체화하고, 재생과 변화를 상징하는 자연물 두꺼비의 시선을 우화적 장치로 서사의 확장을 시도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5년 김석철과 프랑코 만쿠조의 설계로 자르디니의 마지막 국가관으로 문을 연 한국관은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형태의 전시관과는 성격이 다르다. 비정형의 철골조 유리 건물은 부지 내 나무를 한 그루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베니스 시의 엄격한 지침을 따른 결과였다. 독특한 외관과 내부 구조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지난 30년간 격년으로 열린 미술전과 건축전을 수용하며 고유의 서사를 쌓았다. 올해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CAC가 한국관을 주제로 삼은 배경이다.

〈두껍아 두껍아: 집의 시간〉이라는 전시 이름은 한국관을 중성적인 화이트 큐브가 아닌, 다층적 의미를 품은 유기적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담고 있다. 헌 집과 새 집의 유비를 담은 ‘두껍아 두껍아’의 노랫말에 착안해 주제를 구체화하고, 재생과 변화를 상징하는 자연물 두꺼비의 시선을 우화적 장치로 서사의 확장을 시도했다.

전시는 크게 한국관의 아카이브를 탐구한 기획진의 다큐멘터리 작업과 참여 참가의 커미션 작업으로 나뉜다. CAC를 주축으로 한 기획팀은 한국관 건축 아카이브와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도큐멘테이션 영상을 제작했다. 전시의 포문을 여는 이 영상은 기획의 맥락과 흐름을 보여주며 커미션 작업과의 연결 고리를 만든다.

참여 작가 네 팀은 한국관 공간 구석구석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장소 특정적 작업을 선보이며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한국관의 건축적 특성을 되짚는다. 한국관을 ‘다시 본다’는 전시 의도에 맞춰 건축물 자체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입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흰 천은 이다미의 작업 ‘덮어쓰기, 덮어씌우기’다. 자르디니에 머무는 미생물, 나무, 고양이 같은 비인간 존재가 화자로 등장한다면 한국관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다. 고양이와 프레첼, 차학경이 쓴 문장으로 수놓은 망사 천은 다양한 주체가 공존하는 한국관의 환경을 환기한다.


양예나, 박희찬, 김현종 세 작가는 한국관의 건축적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작업을 전개했다. 양예나는 나무뿌리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기단 위에 띄운 한국관의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땅 아래에서 숨 쉬고 있는 400여 개의 작은 토우들’이라는 가상의 서사를 도출했다. 지하와 벽돌 방에 설치한 ‘파빌리온 아래 삼천만 년’은 고고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국관의 과거를 조명한다.


박희찬은 한국관의 현재에 주목했다.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 한국관의 투명함을 활용해 건물과 환경과 경계를 탐험하는 세 개의 설치물을 선보였다. 유리 벽 앞으로 설치한 패브릭 스크린 ‘그림자 감지 장치’, 전시장 중앙과 외부에 배치한 모듈러 트러스 ‘자르디니 건축 여행자’, 잠망경 형태의 ‘엘레베이티드 게이즈 1995’다.


김현종은 한국관만의 특수한 장소인 옥상을 전시 공간으로 삼았다. 본래 전시 용도로 계획했지만 쓰이지 못한 옥상을 활성화하기 위해 펼쳐진 돛을 형상화한 구조물 ‘새로운 항해’를 설치했다. 초기 도면에서 발견한 지지대와 격자, 두 요소를 축으로 배 형태를 고안해 모든 국가관이 공유하는 하늘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관에서 시작한 전시가 한국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관이라는 경계가 점점 무색해지는 지금, 이번 전시는 한국관이 자르디니라는 공간 안에서, 나아가 베니스비엔날레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