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넘어 경계를 허물다,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전

배리어프리를 하나의 콘텐츠로 풀어낸 전시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며 타인과 다시 연결되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해를 넘어 경계를 허물다,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전

선천적 전맹 시라토리 겐지와 작가 가와우치 아리오가 함께 미술관을 찾는다. 작품을 직접 볼 수 없는 시라토리에게 가와우치는 말로 작품을 묘사해 들려준다. 시라토리는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익숙한 감상이 낯설게, 낯선 감각이 새롭게 느껴지는 순간이 이어진다. 이들의 여정을 담은 책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감각을 상상할 수 있을까?

4월 17일부터 6월 29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2025 ACC 접근성 강화 주제전〈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는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배리어프리’를 단순한 장치나 보조 개념이 아닌, 하나의 콘텐츠로 풀어낸 이 전시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며 타인과 다시 연결되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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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예슬의 ‘아슬아슬’. 양손으로 긴 장대를 함께 들고 균형을 맞추는 참여형 작품.

전시의 메시지는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안내 리플릿은 일반 활자와 점자 두 가지 버전으로 제공한다. 점자에 손을 얹는 순간, 시각장애인이 이 전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전시 맵은 열팽창 인쇄 방식으로 제작했다. 열을 가하면 잉크 속 발포제가 부풀어 올라 표면이 입체적으로 솟아오르는 방식이다. 말랑하고 따뜻한 질감의 지도를 손끝으로 더듬다 보면, 차가운 스테인리스 재질의 안내판만 접하던 이들의 경험이 상상된다.

전시장 내부 벽에는 네 개의 가로선이 새겨져 있어 손으로 더듬어가며 공간을 나아갈 수 있다. 각 선은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성인 시각장애인/비장애인 참여자, 휠체어 이용 참여자, 그리고 어린이 참여자 손 높이에 맞춰 배치했다. 선을 따라 걷다 보면 세로선과 교차하는 지점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작품의 위치를 뜻한다. 교차점 위에는 눈, 코, 입, 귀 등의 모형을 부착해, 어떤 감각을 사용해 해당 작품을 감상할 지를 안내한다.

전시된 작품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주제 의식을 전한다. 엄정순 작가는 설치 작품 ‘코 없는 코끼리 no.2’를 통해 ‘코가 없으면 코끼리가 아니고,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송예슬 작가는 초음파 파장을 활용한 ‘보이지 않는 조각들: 공기 조각’으로 ‘보는 것만이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의 전부인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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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 no.2’. 코끼리를 이방인의 상징으로 제시한 작품.

아야 모모세 작가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먼저 참여형 설치 작품 ‘녹는점’. 바bar처럼 꾸민 공간에서 관람객은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물 한 잔을 마신다. 그런데 이 물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작가 아야 모모세의 체온과 같은 온도로 데워진 물이다. 퍼포머는 태블릿으로 작가의 실시간 체온 데이터를 확인하고, 전기 주전자와 요리용 온도계를 이용해 온도를 맞춘다. 관람객은 ‘타인의 온도’를 마시며, 작가와 연결되는 기묘하고도 낯선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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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모모세의 ‘녹는점’. 작가의 체온과 동일한 온도의 물을 마신다.

영상 작품 ‘소셜댄스’도 인상적이다. 청각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 커플의 여행 중 일어난 실제 일화를 다룬 것이다. 침대에 누운 여성이 수어로 여행 중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하자 남성은 자꾸 그녀의 손을 감싼다. 그녀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이 짧은 장면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누군가에겐 다정한 손길일지 모르는 ‘손을 잡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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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모모세의 ‘소셜댄스’. 손을 잡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김원영, 손나예, 여혜진, 이지양, 하은빈 작가가 함께한 ‘안녕히 엉키기’다. 2025년 2월, 장애인 참여자 7명과 비장애인 참여자 8명이 함께 무용 워크숍을 진행했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몸이 서로 엉키는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신체적 취약점을 고백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처음엔 어색하게 얽히던 움직임이 날이 갈수록 덜 불편하고 유연하게 바뀌어간다. 그렇게 ‘하나의 몸’처럼 함께 완성해낸 무용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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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손나예, 여혜진, 이지양, 하은빈 작가의 ‘안녕히 엉키기’. 서로 다른 이들이 하나가 되기 위한 무용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이후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서울 모두미술관에서 7월 23일부터 8월 22일까지 순회전 형태로 이어진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다. 그 사색의 기회를 마주해보길 권한다.


Interview
박예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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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기획한 배경이 궁금하다.

미술관 큐레이터로 전시 기획 일을 하기 전, 대학을 갓 졸업하고 맹학교에서 미술수업 보조 강사로 일했다. 당시 아이들하고 미술관 투어를 다녔는데 불편한 요소가 너무 많았다. 언젠간 이 아이들이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각자만의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었다.

‘배리어프리’라는 주제가 흥미로우면서도 생소하다.

전시 준비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배리어프리’와 ‘접근성’을 주제로 전시로 풀어낸다는 것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길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배리어프리와 관련된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누구든 지치게 된다고. 나 역시 지칠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최근 여러 미술관에서 ‘배리어프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열고 있다는 건 고무적이다. 내가 잠시 쉬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면, 그걸 보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선순환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최근 배리어프리 디자인에 대한대중의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배리어프리 디자인은 비장애인 중심의보편적인 디자인과 설계의 장벽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배리어컨셔스’라고 하는데, 현재 내가 가는 장소와 길이 과연 나에게만 편한지,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서 이 장벽을 허물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 싶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64호(2025.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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