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가 선보이는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났을 때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친숙한 브랜드들이 자사의 분위기와 정체성을 담은 이색 아이템을 잇달아 선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브랜드가 자사의 역사와 가치관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로, 예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통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위키피디아가 선보이는 스트리트웨어

최근 몇 년 사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친숙한 브랜드들이 자사의 분위기와 정체성을 담은 이색 아이템을 잇달아 선보이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브랜드가 자사의 역사와 가치관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로, 예상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통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팬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 철학을 경험하게 하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한다. 개성 있는 아이템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소비자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독특한 아이템으로 큰 주목을 받은 국내 사례로는 대한제분의 ‘곰표’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곰표는 식품은 물론이고 의류, 화장품 등 업종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발한 협업을 통해 소비자에게 대한제분의 역사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한편, 감각적인 아이디어로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재정비했다. 곰표의 성공 이후 다양한 브랜드들이 참신한 협업과 아이디어 제품을 속속 선보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중이다. 이제 이와 같은 방식은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색다른 아이디어가 담긴 아이템을 선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특히 패션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OTT 서비스 넷플릭스 또한 트렌드를 반영하여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의 공식 온라인숍에서는 넷플릭스의 시그니처 컬러인 빨간색과 ‘N’로고, 아이디 프로필 이미지를 기반으로 제작된 의류들과 잡화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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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넷플릭스 숍

이 중에서 이목을 끄는 것은 단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테마로 한 굿즈라고 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 ‘기묘한 이야기’, ‘브리저튼’ 등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작품을 기반으로 제작된 아이템들은 팬들로 하여금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이처럼 팬심을 높이는 아이템들은 일상 속에서 콘텐츠의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줄 뿐 아니라, 시리즈의 팬들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조성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하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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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맥도날드 온라인 숍

넷플릭스만큼이나 화제를 모으는 브랜드는 바로 KFC와 맥도날드다. 맥도날드는 ‘골든 아치’라 불리는 브랜드 로고는 물론이고, 대표 메뉴인 빅맥과 프렌치프라이, 맥도날드 캐릭터, 해피밀 등 브랜드 고유의 감성을 감각적인 디자인에 담아 다양한 제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KFC 또한 치킨과 치킨을 담는 버킷 등을 스트리트 패션 감성으로 해석한 아이템으로 선보여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모두 패스트푸드 브랜드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힙한 감성이 느껴지기에, 브랜드가 가진 기존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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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치토스 팬츠 홈페이지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과자인 치토스 또한 독특한 아이템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과자의 매력은 ‘치틀(Cheetle)’이라 불리는, 과자에 묻어있는 주황색 가루에 있다.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가락에 묻게 되는 가루는 불편함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치토스는 이를 단점이 아닌 유쾌한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치틀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팀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기발하다’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이들이 선보인 ‘치토스 팬츠’에는 브랜드의 시그니처 오렌지 컬러를 바탕으로, 과자를 수납할 수 있는 넉넉한 주머니가 달려 실용성과 유머를 모두 갖췄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주머니 옆에 가루를 묻은 손가락을 문질러 닦을 수 있는 타월 재질의 패치가 달렸다는 점이다. 팬츠 하나만으로 과자를 먹는 행동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동시에 담아낸 셈이다.

가루가 수시로 묻을 수 있기에 빨래는 수시로 해줘야 겠지만, 바지 자체로 과자 브랜드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거리를 한층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 바지는 출시와 동시에 매진 사례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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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암드인젤스 홈페이지

이런 가운데,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도 트렌드에 발맞춘 컬렉션을 선보여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독일 친환경 패션 브랜드 암드인젤스 Armedangels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이 컬렉션은 위키피디아 25주년을 기리기 위해서 탄생했다. 언뜻 생각하면 패션과 백과사전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컬렉션에 포함된 디자인을 둘러보면 그 생각은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힙한 감각이 넘쳐흐르는 이 컬렉션은 세계 최대 규모의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의 영향력을 새롭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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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암드인젤스 홈페이지

암드인젤스의 설립자 마틴 회펠러(Martin Höfeler)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티안 뵈르트너(Christiane Bördner)는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위키피디아의 로고를 스트리트웨어에 더하는 방식으로 컬렉션을 완성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브랜드는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에 섬세하게 접근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패션 브랜드로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소신을 지키기 위해 원단 출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품이 쓰이고 버려지는 모든 과정을 분석하는 동시에 탈탄소화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암드인젤스는 항상 기존 시스템에 도전하고 투명성을 증진해왔습니다. 위키피디아는 그러한 가치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상징입니다. 처음의 영감은 우리의 플랫폼을 통해 그 메시지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공통된 관심에서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질문하는 것처럼,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마틴 회펠러(Martin Höfeler)

기존 시스템에 도전하며 투명성을 강조해온 패션 브랜드와 전 세계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여 수정 및 편집이 가능한 열린 구조의 위키피디아가 협업을 진행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성향이 맞는 두 조직의 만남은 예상보다 더 창의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 평등, 자유 및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번 컬렉션에는 후드티, 티셔츠, 모자, 양말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 아이템에는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또한 기후 문제와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오픈 소스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QR 코드가 포함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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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암드인젤스 홈페이지

홈페이지에서는 각 아이템들이 가진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덧붙여져 눈길을 끈다. 그와 더불어 정보의 자유, 개방적인 접근성, 커뮤니티,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 사실의 힘에 관한 공유 가치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고 이를 일상에서 함께 누릴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 이들의 노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다소 무겁고 이론적으로 느낄 수 있는 주제를 감각적인 스트리트 패션으로 재해석한 디자이너의 정성과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컬렉션의 모든 제품은 100% 재활용된 면으로 제작되어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도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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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암드인젤스 홈페이지

일부 제품에는 이번 프로젝트의 슬로건인 ‘팩트를 위하여(For Facts’ Sake)’가 함께 해 위키피디아와의 협업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와 더불어 ‘그래, 나 알아(Yes, I know)’, ‘영원한 정보의 원천(Eternal Source of Information)’와 같은 재치 있는 문구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처럼 정보와 패션의 흥미로운 시너지를 느낄 수 있는 컬렉션의 수익금의 일부는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만든 위키피디아를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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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암드인젤스 홈페이지

최근 들어 여러 브랜드들이 선보이는 아이템들을 보면, 단순히 기업의 이미지를 반영하기만 한 ‘그저 그런’ 물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섬세한 디자인, 뛰어난 품질,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반영한 마케팅 전략이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이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의 신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는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엔 역부족인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동시에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돋보이게 만드는 아이디어가 더욱 정교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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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EXELS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순히 제품 판매를 촉진하는 방식보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학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전략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소비자 인식의 변화가 있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제품보다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사회적 및 환경적 책임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에 따라 브랜드들은 자신들만의 스토리와 철학을 제품에 녹여내며 소비자와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브랜드의 철학이 소비자의 가치관과 맞닿는 순간, 제품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나의 태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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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EXELS

기능 향상이나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으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 브랜드는 제품 자체가 브랜드의 세계관을 담은 메시지이자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제품에 보다 기발하지만 진중한 의미를 담으려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브랜드의 정체성과 소비자의 가치관이 맞닿는 지점을 정교하게 겨냥한 다양한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브랜드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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