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갤러리 〈한글 헬베티카 서밋〉전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KF갤러리에서 열렸다. 양국 그래픽 디자인사의 접점을 확인하기 위해 헬베티카와 한글이 만났다.

KF갤러리 〈한글 헬베티카 서밋〉전
KF갤러리에서 열린 〈한글 헬베티카 서밋〉전.

한 시대를 풍미한 서체

거리에 나붙은 포스터부터 대기업 로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된 헬베티카는 한 시대를 풍미한 서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4일부터 10월 27일까지 KF갤러리에서 열리는 〈한글 헬베티카 서밋〉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국내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룬 적 없는 헬베티카의 면면을 조명하는 전시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는 헬베티카에서 영감을 받은 한글 폰트 ‘쓔이써60’의 제작 과정도 최초 공개했다. 한국과 스위스의 서체 문화를 통해 양국 그래픽 디자인사의 접점을 발견해보자는 취지였다. 1957년 스위스 디자이너 막스 미딩거Max Miedinger와 에두아르트 호프만Eduard Hoffmann이 디자인한 이 서체는 중성적이고 과장 없는 생김새 덕에 국경을 넘나들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지만, 특유의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정서는 스위스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네 나라에 둘러싸인 스위스. 공식어로 인정받는 언어가 4개에 달하는 이 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서체가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헬베티카는 알파벳의 가장 친숙한 현현이자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믿음직스러운 주춧돌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익숙한 탓에 역설적으로 그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헬베티카의 의미를 새로이 되짚어보고자 하는 이번 전시는 첫 섹션에서 서체의 탄생부터 1960~1970년대 미국 디자인계를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되기까지의 역사를 살피는 한편, 헬베티카 서체를 사용한 포스터와 견본집, 책과 잡지 등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아우르며 서체의 DNA를 톺아본다. 이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건 고 조영제 디자이너의 1988년 서울올림픽 포스터. 지면에 산재한 헬베티카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동시대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 깊이 아로새겨진 헬베티카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한글 헬베티카 서밋〉전
기간 9월 4일~10월 27일 월~토요일
10:00~19:00(일요일, 공휴일 휴관)
장소 KF갤러리 kfgallery
큐레이터 박경식, 이용제, 메기 춤스타인
포스터 디자인 박경식
주최 한국국제교류재단, 주한스위스대사관

두 번째 섹션은 헬베티카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한글 폰트 쓔이써60을 소개는 자리였다. 스위스를 서사국(상서로운 선비의 나라)이라 불렀던 우리나라의 고유 표현과 발음에서 영감을 받아 ‘쓔이써’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뒤에 붙인 ’60’은 스위스와 한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숫자다. 양국 간 활발한 문화 교류를 염원하는 마음을 서체 이름에 담은 것이다. 한글 디자이너 이용제를 필두로 한 여러 디자이너의 노고에 주한 스위스 대사관의 목소리가 더해져 탄생한 쓔이써60. 서체에 숨은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하나의 서체가 만들어지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전시로 공개했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한 ‘한글-헬베티카 포스터 20 섹션’에서는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선보였다. 국내 디자이너 10명과 스위스, 미국, 이집트 등의 해외 디자이너 10명이 제작한 포스터를 소개한 것. 디자이너 각각의 개성과 견해가 담긴 20점의 포스터지만, 제작에 사용한 재료는 모두 쓔이써60과 헬베티카로 동일하다. 서체 구조도 조합 방식도 서로 판이하게 다른 한글과 알파벳. 두 서체로부터 발견되는 형태적 유사성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이를 통해 두 문자 사이의 조화를 도출해낸 디자이너들의 역량이 돋보인다.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교의 서체 디자인 전공생들도 이번 전시의 한 축을 맡았다. 한 학기 동안 한글 서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생들이 각자의 서체를 활용해 한 편의 한국 시를 포스터로 재해석한 것이다. 한글이 낯선 스위스 학생들의 선입견 없는 눈을 빌려 한글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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