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미술에 개입하는 법,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 2025

거대한 미술관이 된 암스테르담

도시는 어떻게 예술을 품으며, 예술은 어떻게 도시를 확장할 수 있을까? 예술이 폐쇄적 공간을 넘어 도시의 다양한 지층에 침투한다면, 그 경험은 어떻게 변모할까? 지난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펼쳐진 제13회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는 도시에 예술의 물결을 불어넣으며 제도와 상업 구조, 공간의 위계와 시간의 리듬까지 모두 흔들었다.

도시가 미술에 개입하는 법,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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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sterdam Art

올해 아트 위크는 300명 이상의 작가들이 70여 곳의 공간에서 22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초국가적 언어와 다양한 정체성이 얽힌 복합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상업 갤러리, 비영리 공간, 아티스트 레지던시, 뮤지엄 그리고 각종 커뮤니티 기반 프로젝트들이 한데 얽혔고 이는 단순한 예술 축제를 넘어 도시를 매개로 한 다층적 문화 실천의 장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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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sterdam Art

이번 행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체험과 관계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닌, 함께 머무르고, 움직이고, 말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중심이 됐다. 전시와 더불어, 작가의 스튜디오에 방문하는 스튜디오 비짓, 퍼포먼스, 북 페어, 토크 프로그램은 물론, 어린이를 위한 투어 프로그램(소액으로 생애 첫 아트워크를 구매하는 프로그램, 운하 도시 전역을 누비며 참여하는 아트 보물찾기 등), 지역별 자전거 및 도보 투어 프로그램 등은 관객이 도시와 예술 사이에서 관계 맺는 주체로 작동하도록 유도했다.

홍등가에 놓인 보따리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의 역사성과 공간성은 이번 아트 위크에서 적극적으로 호출됐다. 그 중에서도 홍등가를 무대로 한 전시들은 상징적인 실천이었다. 암스테르담 구 교회Oude Kerk에서는 김수자의 보따리 설치 작업이 전시됐다. 전시는 햇빛을 굴절시켜 무지갯빛을 내는 특수 필름과 시의 이주민 커뮤니티와 함께 만든 다채로운 보따리들로 구성됐다. 고딕 건축의 창문을 덮은 빛과 보따리는 관람자들에게 세속과 신성, 정체성과 이동, 변화와 기억이라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홍등가의 또다른 장소 갤러리 드 스한스Gallery de Schans에서는 정신적 장애, 다운증후군, 성노동자, 퀴어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가 열렸다. 노 리미츠! 아트 캐슬No Limits! Art Castle이 기획한 전시는 인정받는 것과 간과되는 것, 작품과 섹스 토이 사이의 경계, 감탄과 낙인의 간극을 드러내며 예술이 어떻게 타자성과 이중성에 맞서 싸울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도시를 떠 받치는 예술 인프라

암스테르담의 미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축은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프로젝트 스페이스들이다. 라익스아카데미Rijksakademie, 드 아틀리에스De Ateliers, 바일머에어BijlmAir, 타미 므니엘레 재단Thami Mnyele Foundation 같은 기관은 이번 아트 위크에서 다채로운 전시와 오픈 스튜디오를 선보이며 도시 안팎의 예술가들을 연결하고 확장 시켰다. 한편, 드 아펠de Appel에서 열린 <Every Act of Struggle: Intrusion and Assembly> 전시는 네덜란드 문화기관들이 식민주의 역사의 맥락 속에서 구조적 불의, 역사적 폭력 등에 어떻게 대항하는지를 다루며, 제도와 저항의 관계를 섬세하게 탐색했다. 이는 아트 위크가 단지 작품을 선보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정치와 저항, 제도와 그것의 재구성에 개입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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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jks Academie의 정가희 오픈 스튜디오 2024 ⓒ Rijks Acade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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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jks Academie의 Susanne Khalil Yuse 오픈 스튜디오 2024 ⓒ Rijks Academie

세 가지 키워드: 물질성, 기술, 이주

올해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를 관통한 흐름은 크게 세 갈래로 관찰된다. 공예와 재료의 물질성, 기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이주와 식민주의의 유산. 이 세 축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하게 얽혀 있고, 현재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복합적 현실을 드러내는 렌즈로 작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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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Vriend van Bavink에서 열린 Aldo van den Broek의 개인전 <Punctum (KISS, RIDE, REPEAT.)> 전경 ⓒ Gallery Vriend van Bavink

먼저, 재료와 물질성에 대한 조명이 눈에 띄었다. 사진 전문 갤러리 빌트할레Bildhalle에서는 네덜란드와 아시아 예술 전통을 결합한 작가들이 사진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물질적 예술 형식으로 접근하는 그룹전을 선보였다. 참여 작가들의 작업에서 사진은 정교한 기술과 신중한 재료 선택을 통해 새로운 경계를 탐색하는 매체로 기능했다. 이외에도, 앙리 야콥스Henri Jacobs, 마레인 반 크레이Marijn van Kreij, 엠마 텔봇Emma Talbot 등이 참여한 그룹 전시는 종이라는 재료 자체와 창작 과정의 물리적 행위가 중심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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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훈 <Stone and Flower> 2025 ⓒ Bradwolff & 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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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adwolff & Part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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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ur & Wouter에서 열린 나탈리아 조르다노바의 개인전 ⓒ Fleur & Wouter

기술을 사유하는 작가들의 실천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브래드 울프 앤 파트너스Bradwolff & Partners에서 열린 박재훈 작가의 개인전 <Shifting Realities>는 기술이 우리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정면으로 다뤘다. 빛과 자연을 활용해 생명의 기원을 탐구하는 3D 시뮬레이션 영상 <Stone and Flower>을 비롯해, 디지털 정밀성과 유기적 형태가 조화를 이루는 신작인 3D 프린팅 조각들이 전시됐다. 갤러리 플뢰르 앤 보우터Fleur & Wouter는 AI를 활용해 ‘오마주’라는 개념 자체에 도전하며, 존중과 모방, 풍자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탐색하는 나탈리아 조르다노바Natalia Jordanova 개인전을 열었다. 작가는 네덜란드 디지털 아트 컬렉션을 참고해 역사적 서사에서 소외 계층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그리고 데이터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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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o Stedelijk에서 열린 단체전 <I Must Still Grow in the Dark> 전경 ⓒ Buro Stedelijk

무엇보다 도시의 맥락을 가장 잘 입고 있던 키워드는 이주와 식민주의였다. 전체 인구의 50%가 이민자인 암스테르담의 현실이 전시 공간 곳곳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뷰로 스테델릭Buro Stedelijk에서 열린 전시 < I Must Still Grow in the Dark>는 ‘어둠’을 정체성과 문화유산을 재구성하는 힘 있는 매개로 탐색했다. 어둠을 지식과 힘의 장소로 되찾으며 식민주의적이며 인종 차별적 서사를 비판하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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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n’s Art Gallery에서 <Buhlebezwe Siwani>의 개인전 전경 ⓒ No Man’s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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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MM에서 열린 Arturo Kameya 전시 전경 ⓒ GRIMM

이외에, 노 맨즈 아트 갤러리No Man’s Art Gallery는 남아공 케이프타운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활동하는 불레베즈웨 시와니Buhlebezwe Siwani의 작업을 통해 네덜란드 내 장소와 공간을 되찾는 과정에 대해 드러냈고, 그림GRIMM에서는 아르투로 카메야Arturo Kameya가 페루의 사회정치적 역사에 얽힌 신화들을, 업스트림 갤러리Upstream Gallery에서는 카스트 제도의 달리트 계급이 마주하는 사회적 불평등에 주목해온 아몰 K 파틸Amol K Patil의 작업이 소개됐다.

이러한 실천들은 각기 다른 지역과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주류 내러티티브에 의해 주변화 돼 온 정체성에 도전하며 이주자와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복잡한 과거와 미래를 탐색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힘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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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sterdam Art

이번 아트 위크의 흐름들은 하나의 질문에 당도한다. “이 시대의 예술은 도시에 어떻게 개입하고, 도시는 그 예술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는 이 같은 질문 앞에 제도와 장소, 공동체와 개인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오늘날의 예술이 감각하고 저항하고 또 구성해 나가야 할 현실을 또렷이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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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sterdam Art

예술의 도시 중 하나로 불려온 암스테르담의 이미지는 관광 자원과 일부 제도 미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아트 위크는 예술이 도시의 내부 갈등과 기억, 관계망 등을 드러내는 실험의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다층적 인구 구성, 이주와 정착의 역사, 제도와 커뮤니티의 관계처럼 암스테르담이 품고 있는 복잡한 현실은 아트 위크를 통해 다양한 감각의 언어로 번역됐고, 이는 살아 숨쉬는 동시대 비평 지대로서 도시 속에 스몄다. 이러한 반영의 움직임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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