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경태가 찍고 슬기와 민이 디자인한 책
〈동백꽃 도감〉, 제주 ‘카멜리아 힐’의 동백꽃 249종을 사진으로 담다.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카멜리아 힐은 동백을 중심으로 조성된 수목원이다. 약 6만여 평의 부지에는 80개국에서 수집한 500여 품종 6,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가을부터 봄까지 꽃을 피운다. 향기가 나는 동백 8종 중 6종을 보유하고 있으며, 제주자생식물을 비롯한 다채로운 식물 군락이 동백과 어우러져 계절마다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향기가 없는 꽃, 혹은 겨울 한 철의 꽃으로 알려진 동백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수목원이 바로 카멜리아 힐이다.
〈동백꽃 도감〉은 이 수목원의 밀도를 고스란히 책으로 옮긴 결과물이다. 프로젝트는 건축과 예술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출판사 ‘도미노프레스’의 박세미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카멜리아 힐이 보유한 품종은 그 수만으로도 인상적이지만, 그 아름다움이 수목원이라는 큰 스케일 안에서는 분산되어 보이기 쉽다. 각각의 꽃에 집중하고 그것을 정리된 체계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형식으로서, 도감은 가장 적절한 매체였다. 프로젝트는 사진 촬영과 리서치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품종의 학명을 확인하고 검증을 받으며 분류체계를 확립하고 동시에 카멜리아 힐의 건강한 꽃을 따서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으로 완성한 도감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완성된 도감으로, 〈동백꽃 도감〉은 아름다운 사진집처럼 보인다. 도감의 사진을 담당한 김경태 작가는 작게는 돌과 너트, 크게는 건축물까지, 사물의 물리적인 구조와 형태에 주목해 작업해왔다. 식물을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사진으로, 작가가 그간 사용해왔던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은 “대상의 표면 정보를 최대한 확보한다는 명료한 활용 배경”을 갖는다. 포커스 스태킹 기법은 수십 장의 사진을 다른 초점으로 촬영한 뒤 하나의 선명한 사진을 만드는 것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꽃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시드는 그 불완전한 순간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도출하고, 식물 조직의 결까지 표현한다. 한편, 동백꽃의 넓은 색 스펙트럼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표준 색상 프로파일링을 제작해 활용하는 방식을 택해 품종 간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비교하는 데 있어 유효한 시각 자료가 되도록 했다.
“사진은 ‘찰나의 순간’이라는 말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결과물이 순간의 정지된 장면으로 보일지언정, 시간과 거리를 중첩하는 촬영 기법인 포커스 스태킹을 활용한다면 최종의 한 장을 얻기 위해 길게는 2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2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꽃가지의 무게나 환경에 의한 반응으로 미세하게 움직이거나 형태가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촬영 직전 짧은 인상만으로 구도를 결정해야 했다.”
_ 김경태, 〈동백꽃 도감〉 ‘들어가며’ 중에서
도감을 디자인하는 법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최슬기와 최성민)’이 맡았다. 슬기와 민의 첫 도감 작업으로도 의미 있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들은 그래픽 디자이너의 흔적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학술적 정보와 사진 작품의 전달을 돕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다. 가장 먼저 판형은 꽃의 크기(249종의 동백은 XS부터 XL까지 다섯 단계의 크기 분류체계를 갖는다)를 고려해 페이지 안에서 각 품종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잘 표현될 수 있도록 188x258mm로 설정했다.
사진과 정보의 배열에서도 사진집으로서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나란히 배열된 두 사진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지 않도록 한 페이지에 작품과 정보를 다 싣는 대신 오른쪽 페이지에 사진을, 좌측 페이지에는 정보를 정리했다. 내지 서체로는 ‘산돌 정체’가 사용되었다. 디자이너가 어린 시절 보았던 도감의 인상을 주고, 한글과 로마자, 숫자 등을 한 서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된 것. 최성민 디자이너는 산돌 정체의 단정하지만 분명한 매듭 같은 것이 꽃의 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고. 내지와 커버에는 산돌 정체와 대비를 주는, 윤미구 타입 파운드리에서 제작한 ‘YMG 문체고딕’이 함께 활용되었다.












커버는 12종의 서로 다른 꽃 사진을 라벨 형태로 별지 인쇄해 부착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나의 품종이 대표성을 띠게 되는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커버를 고르는 즐거움과 어떤 커버가 배송될지에 대한 기대감도 더한다. 커버 타이틀인 ‘동백꽃 도감’의 타이포그래피는 음절 사이의 간격을 넓히고, 상단에 색이 다른 막대기 두 개를 배치해 글자가 자연스럽게 두 단어로 읽히도록 구성했다. 막대기의 색은 꽃과 대비되는 블루와 그린으로, 디자이너는 이 그래픽 요소가 꽃의 유기적인 이미지와 대비를 이루며 “생각보다 강한 그래픽적인 제스처”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커버의 색상은 사진과 마찬가지로, 꽃의 색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회색이 선택되었다.

이렇게 3년 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카멜리아 힐의 동백 249종을 담은 도감이 640쪽 분량으로 출간되었다. ‘도감’은 대상을 수집하는 책인 동시에, 보는 방식을 다시 정리하게 한다. 〈동백꽃 도감〉은 동백을 품종, 형태, 색상, 무늬, 개화 시기, 크기 등으로 분류하고 사진과 디자인으로 질서 있게 배열하여 카멜리아 힐의 깊이를 가시화한다. 책장을 넘긴 뒤 이 수목원을 거닐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동백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